<남원양씨족보 을해보>는 너무나 인쇄상태가 양호하고 지질도 장지이다. 17세기 말의 족보로서 남학겸(南學謙)의 발문이 붙어있다. 숭정기원후 재을해(1695)에 간행하였다는 간기가 있다. 그리고 목판본이다. 한국고서연구회에 남원양씨 한 분이 계시는데 족보를 수집하는 분이었다. 양성지의 후손인데 그 분의 업적을 잘 알며 학술발표도 하신 분이다. 양성지의 호는 눌재인데 그의 저서로는 눌재집이 전한다. 그리고 해동성씨록이란 저술을 남겼다는 기록은 있으나 그 저술은 전하지 않아 보학연구에 아쉬움이 있다.
무애 양주동 선생이 남원양씨로 유명하다.자칭 국보라고 하시면서 호탕하게 웃던 모습이 생각난다. 무애 선생은 동국대학 국문과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연세대학에 잠시 계셨던 분이다. 이분은 1903년에 태어나서 1977년에 돌아가셨는데 1928년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23년에는 금성이라는 잡지를 발간하고 1929년에는 문예공론을 간행하고, 1942년에는 조선고가연구를 간행하였고, 1947년에는 여요전주를, 1962년에는 국학연구론고를 간행하였다.그리고 자료집으로 국문학고전독본을 간행하고, 시집 조선의 맥박,에세이집 문주반생기, 인생잡기, 지성의광장, T.S엘리어트전집, 영시백선, 세계기문선 등이 있다. 최근 동국대 출판부에서 저술 모두를 모아 12권의 방대한 <양주동전집>을 간행하였다.
최근래에 나온 남원양씨족보에는 부록 형식으로 양성지의 <눌재집>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한편 본관이 같은 남원윤씨족보의 부록에는 윤행임의 저술인 < 대방언행록>이 들어간다. 윤행임과 정조대왕은 돈독한 군신간이라 많은 학문적 대화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