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열망, 화살기도 그리고 선한 지향
우리가 하나님 곁으로 은둔하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 곁에 숨으려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영적 은둔은 서로 영향을 끼치며, 이 둘은 모두 선한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필로테아 님, 끊임없이 하나님을 열망하고, 짧지만 열렬한 기도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십시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그분께 도움을 청하며, 마음으로 십자가 아래 엎드려 주님의 자비하심을 찬미하십시오. 또한 그대 마음을 끊임없이 주님께 봉헌하십시오. 그대 마음의 눈을 자비로우신 주님께로 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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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처럼 주님께 손을 내밀어 인도해 주시기를 청하며, 향기로운 꽃다발을 가슴에 안듯이 주님을 그대 마음에 껴안고, 휘날리는 깃발처럼 그대 영혼을 주님 앞에 들어 올려 그분을 찬미하십시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키우고, 그대의 천상 배필이신 주님에 대한 열망을 뜨겁게 하려는 여러 가지 수행을 실천하십시오.”
이는 위대한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신심 깊은 귀부인 프로바에게 화살기도를 권하면서 한 말입니다.
필로테아 님, 화살기도를 통해 우리 마음은 하나님과 친밀해지며, 우리 영혼은 하나님 현존의 향기에 흠뻑 젖게 됩니다.
화살기도는 세상일을 하면서도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쉽게 바칠 수 있는 기도입니다.
이미 언급한 영적 은둔과 이 기도는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나그네가 입술을 축이고 기운을 차리고자 잠시 걸음을 멈추고 포도주를 조금 마신다고 해서 결코 여행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걸음이 더욱 가볍고 빨라져 여행에 도움이 됩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화살기도를 수록해 놓은 책이 많습니다. 모두 유익한 것이지만 책에 적혀 있는 말마디 하나하나에 얽매이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더욱 좋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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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편에 많이 나오는 화살기도들과 아가서에 나오는 사랑의 속삭임 등과 같이 특별한 힘을 주는 기도문들도 있습니다.
또한 성가도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부르면 같은 효과를 내는 화살기도가 됩니다.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은 늘 연인을 생각하고, 입에서는 연인을 칭찬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습니다.
떨어져 있을 때에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리움을 달래고,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나무에 새기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도 이처럼 끊임없이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위해 살며, 주님을 열망하고 주님에 대한 말을 합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예수님의 거룩한 이름을 새기기를 바랍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나깨나 연인만을 생각합니다. 연인을 칭찬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세상 만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소리 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거룩한 염원을 일깨우는 사랑은 하나님을 사모하는 많은 기도에서 우러나온다." 하고 말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나지안조의 주교 그레고리오 성인이 어느 신자에게 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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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성인이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을 거닐고 있을 때 해변에는 바다가 토해 놓은 작은 조개와 해초, 굴 껍질과 온갖 찌꺼기가 널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큰 파도가 밀려오자 그것들은 물결에 휩쓸려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건너편에 우뚝 서 있는 바위만은 세차게 휘몰아치는 엄청난 파도에도 꿈쩍하지 않고 버텨 냈습니다.
이것을 본 성인의 머리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해변의 조개껍질처럼 나약한 사람들은 운명의 물결이 밀어닥칠 때 이리저리 흔들리는구나. 이와는 달리 우뚝 서 있는 저 바위처럼 신심이 굳건한 사람은 폭풍우 속에서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그 순간 성인의 머릿속에 시편의 기도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님, 저를 구하소서 목까지 물이 들어찼습니다. 깊은 수렁 속에 빠져 발 디딜 데가 없습니다. 물속 깊은 곳으로 빠져 물살이 저를 짓칩니다."(시편 69:2-3)
[시]69:2 |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
[시]69:3 |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나의 목이 마르며 나의 하나님을 바라서 나의 눈이 쇠하였나이다 |
이때는 그레고리오 성인이 막시모에게 주교좌성당을 빼앗기고 무척 괴로워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루스페의 주교 풀젠시오 성인은 어느 날 고트족의 임금인 테오드릭이 로마 귀족들을 모아 놓고 연설하는 자리에 참석하여 연설을 듣다가 귀족들의 화려함을 보고 속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오! 주님, 지상 로마가 이처럼 아름답다면 하늘나라 예루살렘은 어떠하겠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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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헛된 영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도 이처럼 화려함을 주시는데 후세에서 진리이신 주님을 뵈올 때에는 얼마나 큰 영광 중에 저희를 머물게 하시겠나이까!"
캔터베리의 대주교 안셀모 성인은 선한 생각을 하신 분으로 유명합니다. (그분이 우리처럼 시골 출신이어서 더 자랑스럽습니다.)
어느 날 성인이 말을 타고 갈 때 사냥개에게 쫓기던 산토끼 한 마리가 별안간 말 밑으로 뛰어들어 와 숨었습니다.
사냥개는 짖어 대며 성인이 탄 말 주위를 맴돌았으나 감히 가까이 와서 토끼를 끌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이 광경을 본 수행원들은 재미있다며 크게 웃었으나 성인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자네들은 어떻게 저 불쌍한 토끼를 보고 웃을 수 있는가? 우리 영혼도 일생 동안 마귀에게 쫓겨 다니며 죄악의 올가미에 걸려 시달리다가 임종 때에 마귀의 손을 피하려고 최후의 피난처를 찾아다닐 것이며, 우리의 그런 모습을 보고 마귀도 재미있어 하며 웃을 것이다."
그러고는 한숨을 쉬며 길을 떠났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안토니오 성인에게 정중한 편지를 보낸 것을 보고 성인의 제자들이 놀라자, 성인은 "황제가 평범한 시민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그리 놀랄 것은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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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계명을 주시고 당신 아드님을 통해 직접 말씀해 주신 것이야말로 진정 놀라운 일이오."라고 말했습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어느 날 염소 무리 속에 양 한 마리가 있는 것을 보고 옆에 있던 친구에게 "염소들 속에 있는 저 양은 얼마나 온순한가? 바리사이들에게 에워싸여 계신 우리 주님을 보는 듯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숫염소가 어린양을 뿔로 들이받아 죽이는 것을 보고는 "오! 어린양아, 너는 우리 구세주의 죽음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듯하구나!" 하며 울었다고 합니다.
위대한 프란치스코 보르지아가 칸디아의 공작으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는 사냥을 하는 와중에도 언제나 신심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뒷날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사냥매가 주인의 손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것을 볼 때마다, 그리고 눈을 가리고 나무에 붙들어 매어도 얌전하게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왜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도 돌아오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위대한 바실리오 성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미꽃에 가시가 있듯이 이 세상 아름다운 것에도 슬픔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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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 뒤에는 후회가 따르고, 결혼한 뒤에는 배우자를 잃고 홀아비나 과부가 될 때가 찾아오며, 아이를 낳으면 근심거리가 생기기 마련이고, 영광 뒤에는 치욕이 따르기 마련이며, 즐겁게 지낸 다음에는 불쾌감이 생기고, 건강하다가도 병에 걸릴 수 있다. 장미꽃은 정말 아름답지만 나를 슬프게 한다. 왜냐하면 이 땅에 가시덤불을 돋게 한 원죄를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어떤 신심 깊은 사람이 고요한 여름밤에 시냇가에 서서 물속에 비치는 별이 빛나는 하늘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주님, 주님께서 저를 하늘나라에 있는 당신의 성전에 살게 해 주시는 날에는 저 아름다운 별들이 제 발아래 있게 될 것임을 알고 있나이다. 또한 저 별들이 이 시냇물 속에 비치듯이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하늘나라에 있는 하나님 사랑의 샘물에 비치고 있음을 알고 있나이다."
또 어떤 사람은 시냇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내 영혼은 고향인 하나님의 바다로 흘러들어 갈 때까지 쉴 새 없이 흐를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프란치스카 성녀는 어느 날 아름다운 시냇가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황홀경에 빠져 P165
"하느님의 은총은 이 맑은 시냇물처럼 고요하고 감미롭게 흐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아름다운 화원에 서서 “성교회의 화원에서 왜 나만 꽃을 피우지 못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탄식했으며,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병아리가 어미 닭 품에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주님, 당신의 날개 그늘에서 쉬게 해 주소서."라며 기도했고, 해바라기 꽃을 보고는 "주님, 제 영혼이 이 꽃처럼 당신의 사랑으로 환하게 피어날 날이 언제쯤 오겠나이까?"라고 말했으며, 아름답지만 향기가 없는 색색의 오랑캐꽃을 보고는 "내 생각도 이와 같구나. 듣기에는 그럴 듯하지만 아무런 실천도 하지 못하니 ・・・・・・.” 하며 탄식했다고 합니다.
필로테아 님, 선한 지향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이런 평범한 일상에서 비롯됩니다.
피조물을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이탈시켜 죄악에 이용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 찬송하도록 피조물을 돕는 사람들에게는 큰 축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 성인은 “나는 세상 만물을 나의 영적 진보에 이용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예로니모 성인이 바울라 성녀를 위해서 비석에 새긴 경건한 글을 읽어 보십시오. 성녀가 항상 품고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영적 생각을 알면 매우 놀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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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언급한 화살기도는 영적 은둔과 더불어 신심이 진보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이 두 가지로 다른 부족한 것들을 보충할 수 있습니다.
화살기도 없이는 관상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으며, 노력을 한다 해도 헛수고가 될 것입니다.
화살기도가 없으면 휴식은 나태로 변하고, 노력을 해도 초초함만 더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이 진심으로 이 두 가지 방법을 신심 수행에 자주 이용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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