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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성경의 숫자학 / 수비학 | 남대극 교수
안녕하십니까. 에스라 나무강단 오늘 다시 성경의 어휘 연구를 계속하겠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중요한 어휘들이 있고, 또 오늘 공부하는 것처럼 굉장히 중요한 숫자들도 있습니다. 숫자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의 어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숫자들의 성경적 의미와 숫자가 포함된 본문의 정확한 이해, 나아가서는 성경과 신학을 올바르게 수립하는 목적으로 오늘은 41번째 시간으로 '성경의 숫자학' 또는 '수비학'이라고 하는 특별한 학문 영역을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지난 40번째 강의에는 40이라고 하는 숫자를 먼저 공부했습니다. 40이라는 숫자가 성경에 많이 사용되어서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그것을 포함해서 모든 숫자가 일반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쭉 한번 훑어보겠습니다. 이것을 특별히 연구하는 유대인들의 학문 분야가 바로 숫자학, 즉 수비학이라고 하는데 오늘은 그 맛만 조금 보겠습니다.
숫자학 또는 수비학은 숫자에 대한 학문입니다. 숫자학이라고 하면 대수나 산술 같은 느낌이 있어서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람들이 '수비학'이라고 했습니다. 숫자의 비밀을 배우는 학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숫자학이라 해도 괜찮습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수 또는 숫자들의 의미를 연구하는 학문을 성경 숫자학 또는 수비학이라고 하며, 라틴어로는 '누메로(Numero)'라고 합니다. 영어의 넘버(Number)가 여기서 왔습니다. 우리가 넘버를 축약해서 쓸 때 'No.'라고 쓰지 않습니까? 1번을 'No.1', 5번을 'No.5'라고 할 때의 'No'가 바로 라틴어 누메로에서 온 것입니다. 라틴어 누메로의 첫 글자 N과 끝 글자 O를 따서 'No.'라고 표기하며 몇 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숫자학이라고 합니다.
이 학문은 성경에 사용된 숫자들의 상징적 또는 예언적 의미와 히브리적 개념을 적용합니다. 히브리인들이 갖고 있는 수에 대한 특별한 개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관습이 있지 않습니까? 사업하는 분들은 '죽을 사(死)' 자와 발음이 같다며 4를 꺼리고, 7은 행운의 숫자라고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수비학은 이러한 개념을 적용하고, 특히 유대인들이 숫자를 적용하는 특별한 방법인 '게마트리아(Gematria)'의 입문 정도를 포함하여 성경의 수에 관한 사항들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숫자를 쭉 열거해 보여드렸습니다.
1:하나 또는 연합, 즉 '우리 하나가 되자' 할 때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2:나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3:하나님의 숫자이자 하늘의 숫자입니다.
4:동서남북 땅을 뜻하며, 남녀노소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5:손가락 다섯 개가 찼으니 충만함을 뜻합니다.
6:완전수에서 하나가 모자란 숫자입니다.
7:완전수입니다. 왜 완전수냐 하면 3(하나님)과 4(사람)를 더했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을 합치니 7이 되어 완전함을 뜻합니다.
10:손가락 열 개가 다 찬 상태를 말합니다.
12:3과 4를 곱한 수입니다. 그래서 충만함과 총체성을 뜻하며 12지파 등으로 쓰입니다.
이 외에도 지난 시간에 본 40을 비롯하여 42(42명의 아이가 죽은 사건), 49(49일 만에 오는 칠칠절), 70, 100(많음), 120, 153(요한복음의 물고기 마릿수) 등이 있고, 크게는 2,300, 1만 2천, 144,000 등의 숫자가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공부하는 것을 숫자학, 수비학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게마트리아'가 어떤 것인지 잠깐만 보겠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이 숫자를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는 전통적인 수비학입니다. 히브리 문자 자체에 고유의 숫자가 있어서, 단어의 문자를 숫자로 환산하여 치환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에 주술적 의미를 부여하거나 문장을 암호화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중세 유대교 신비주의자들을 '카발라(Kabbalah)'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모든 단어를 신비하게 숫자로 암호화했습니다. 카발라에서 글자의 의미를 감추기 위해 게마트리아를 애용했으며, 구약 경전이나 종교적 텍스트에 숨겨진 내용을 발견하고 재해석하고자 하는 일련의 노력이 다 게마트리아에 포함됩니다. 어떤 이름이 있다면 그 이름의 글자마다 매겨진 숫자를 다 더해서 '무엇이다'라고 해석하는 방식입니다. 성경 해석에도 많이 적용했는데, 한편으로는 너무 과도한 면이 있습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이 나타내는 숫자들로 단어의 뜻을 풀어 성경을 해석했지만, 카발라가 아닌 일반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이 지나치게 암호화되었다고 생각하여 정통 해석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게마트리아'라는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어원을 따져보면 중요한 학설이 세 가지 있습니다.첫째는 헬라어 '게오메트리아(Geometria)'에서 왔다는 설입니다. 게오메트리아는 영어의 '지오메트리(Geometry)', 즉 토지의 넓이나 부피를 재는 기하학을 뜻합니다. 일반 대수의 헬라어가 역으로 음역 되었다고 보는 것인데, 수비학과 기하학은 의미상 그리 매끄럽게 연결되지는 않아서 발음이 비슷해 나온 학설로 봅니다.둘째는 헬라어 '그람마테이아(Grammateia)'에서 왔다는 설입니다. '그람마'는 글자이고 그람마테이아는 글을 쓸 줄 아는 법, 영어로 '라이팅(Writing)'을 뜻합니다. 문자를 가지고 숫자화하고 숫자를 문자로 바꾸는 학문이니 이 학설이 조금 더 해당하지 않나 생각합니다.셋째는 알파벳의 세 번째 글자인 '감마(Gamma)'에 '트리아(Tria, 3)'를 더해서 감마트리아가 되었다는 설인데, 이는 다소 억지스러워 보입니다. 확실한 근거가 없어 받아들이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어쨌든 이와 비슷한 어원에서 그들이 사용하는 '게마트리아'라는 용어가 나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글자를 숫자로 바꾸는 실제적인 방법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의 각 글자는 아래와 같이 숫자를 나타냅니다.첫 번째 글자인 '알레프(Aleph)'부터 아홉 번째 글자인 '테트(Tet)'까지는 1, 2, 3, 4, 5, 6, 7, 8, 9를 가리킵니다. 그다음 열 번째 글자인 '요드(Yod)'부터 '차디(Tsadi)'까지는 10, 20, 30, 40, 50, 60, 70, 80, 90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마지막 네 글자인 '코프(Qof)'부터 '타브(Tav)'까지는 100, 200, 300, 400을 가리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이 숫자를 사용합니다. 아라비아 숫자 1, 2, 3, 4도 쓰지만 자기들 성경을 읽을 때는 이 숫자 표기를 겸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500 이상의 숫자는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가 생깁니다. 히브리어 글자는 총 22자인데, 이 중에 다섯 글자는 모양이 두 가지입니다. 단어의 처음이나 중간에 올 때 쓰는 모양이 있고, 단어의 맨 끝에 올 때 모양이 달라지는 글자가 있습니다. 이를 '어말형(Final form)' 문자라고 부르는데 카프, 멤, 눈, 페, 차디가 그렇습니다. 이 다섯 글자는 단어의 끝에 올 때 아래로 쏙 내려가는 형태로 바뀝니다. 게마트리아에서는 이 다섯 개의 어말형 문자에 500부터 900까지의 숫자를 부여합니다. 카프의 어말형은 500, 멤의 어말형은 600, 눈의 어말형은 700, 페의 어말형은 800, 차디의 어말형은 900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해서 1부터 900까지의 숫자를 글자로 다 표현할 수 있습니다. 1,000이 되면 아예 '천'을 뜻하는 다른 단어가 나옵니다. 이것이 게마트리아의 기본 계산법입니다. 방금 말씀드린 표가 바로 1부터 9까지, 10부터 90까지, 100부터 400까지, 그리고 어말형 문자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계산법을 가지고 재미있는 숫자놀이를 합니다. 창세기 14장 14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많은 재산을 빼앗겼다는 보고를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318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추격하여 모두 도로 찾아옵니다. 여기서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318명'이라는 기록을 게마트리아식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엘리에셀(Eliezer)'이라는 종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도움의 하나님'입니다. 이 엘리에셀이라는 이름의 히브리 글자를 숫자로 치환해서 다 더하면 정확히 318이 나옵니다. 그러다 보니 게마트리아를 과도하게 적용하는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데리고 간 군사는 318명의 군대가 아니라, 그의 종 엘리에셀 한 명이었다. 숫자가 318이니까 엘리에셀만 데리고 간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게마트리아를 너무 과도하게 적용한 성경 해석입니다. 자기들 나름으로는 아주 신비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너무 공교롭게 억지로 뜯어 맞춘 해석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신약성경의 예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마지막 장(21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153마리였습니다.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153'이라는 숫자에 대한 게마트리아식 해석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첫째, 이 153은 에스겔 47장 10절에 나오는 '엔에글라임(En-eglaim)'이라는 샘 이름의 숫자라는 주장입니다. 에스겔 47장에는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엔에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같이 심히 많으려니와"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서 '엔에글라임'이라는 히브리 글자의 숫자를 다 더하면 153(혹은 154) 근처가 되므로, 요한복음의 고기가 엔에글라임 샘에서 잡혔다는 뜻이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엔 어처구니없지만 이렇게 숫자 맞추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둘째,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세어보니 1부터 17까지 순서대로 다 더하면(1+2+3+...+17) 정확히 153이 됩니다. 유대 관습에서 17은 총체적 승리와 부활을 가리키는 숫자이므로 고기를 다 잡은 것은 복음의 총체적 승리를 뜻한다고 해석합니다.셋째, 153의 각 자릿수를 더하면 9(1+5+3)인데, 여기에 17을 곱하면 153이 된다는 계산법을 들이대기도 합니다.네째, 각 자릿수를 세제곱해서 더하면(1의 세제곱 + 5의 세제곱 + 3의 세제곱 = 1 + 125 + 27) 다시 153이 된다는 신비한 수학적 의미를 부여합니다.그 외에도 당시 알려진 물고기 종류가 총 153종이었다거나, 헬라 지혜에 대한 은유라거나, 사복음서에서 예수님께 개인적으로 축복받은 사람들의 수가 마태복음 23 경우(40명), 마가복음 13경우(10명), 누가복음 14경우(94명), 요한복음 8경우(9명)인데 이를 다 더하면 153명이라는 등 참 끼워 맞추느라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마지막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지지하는 해석은 히브리어 구절 '아니 하엘로힘(Ani HaElohim)', 즉 "나는 하나님이다"라는 문장의 게마트리아 값이 153이라는 사실입니다. 제자들이 물고기를 전혀 못 잡았을 때 예수님이 잡게 하셨으니, 이 고기 마릿수를 통해 "내가 곧 하나님이다"라는 사실을 암시한다는 해석입니다. 이것이 게마트리아 방법입니다. 참 재미있지요? 재밌지만 너무 은혜로운 영역으로만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에는 제가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많은 숫자가 나옵니다.
1:연합이나 통일을 상징합니다. 남과 북은 하나다 할 때의 통일입니다.
3:삼위일체 하나님과 하늘을 뜻합니다. 바울이 셋째 하늘에 다녀왔다고 했지요.
4:사람과 땅을 뜻합니다. 사지(팔다리)가 멀쩡하다 할 때의 신체나, 남녀노소, 그리고 사방(동서남북)을 가리키는 인간적인 숫자입니다.
7:3(하늘)과 4(땅)를 더한 수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하늘과 땅의 연합이므로 완전하다는 뜻을 나타냅니다. 세상에서는 럭키 세븐이라 하지만 성경에서는 '완전수'입니다.
10:5+5이므로 온전함과 충만함입니다.
12:3과 4를 곱한 수로, 총체적인 전부를 뜻합니다. 12지파, 12사도가 그렇습니다.
24:12+12로 전부 중의 전부입니다.
49 또는 50:7×7로 완전함 중의 완전함입니다.
144,000:12×12×1,000으로 이루어진 상징적 숫자입니다.
성경 자체에 이러한 암시가 많이 들어 있습니다. 실제로 제7일(일곱째 날), 십계명, 1년 12달, 열두 광주리, 열두 기둥, 열두 지파, 열두 돌, 열두 덩이 떡, 열두 관장, 열두 마리 소, 열두 마리 사자, 열두 제자, 열두 사도, 열두 바구니, 열두 기초석, 열두 실과 등 12와 7이 얼마나 많이 쓰였습니까? 숫자의 상징적 의미 때문에 이렇게 많이 기록된 것입니다. 666 역시 성경에 세 번(솔로몬의 세입 금 666달란트, 아도니감 자손의 수 666명, 요한계시록의 짐승의 수) 등장하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러한 숫자들은 성경을 해석하는 데 상당한 의미가 있고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억지로 다 갖다 맞추면 안 되지만, 특별히 성소(성막) 구조나 예언과 관련해서 이 숫자의 의미가 참 돋보입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가 성경 숫자학을 공부하고 책도 냈습니다. 불린저라는 사람의 '성경의 숫자 해설(Numbers in Scripture)'이라는 번역판이 있고, 데이비스라는 사람의 '성경 수학과 숫자의 영적 비밀(Biblical Mathematics)'이라는 책도 번역되어 있습니다. 또한 '성경 속 수의 신비'라는 책이나 좋은 테가 쓴 '축복과 저주를 숫자로 구별한 지혜'라는 책도 있습니다. 흥미를 느끼시는 분들은 이런 책들을 한번 깊이 연구해 보십시오. 재밌습니다.
숫자가 성경에 이만큼 많이,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볼 때 이 숫자들에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너무 과도하게 자의적으로 뜯어 맞추지는 말고, 올바른 기준 안에서 성경의 예언과 상징을 이해하는 데 유익한 도움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성경의 숫자학, 수비학에 대한 아주 간단한 입문 소개를 해 드렸습니다. 성경의 숫자가 하나의 어휘처럼 다가오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다루었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다른 어휘로 여러분을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핵심 요약 정리]
성경 숫자학(수비학)의 정의
성경에 사용된 숫자들의 상징적, 예언적 의미와 히브리적 개념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라틴어 '누메로(Numero)'에서 유래했으며 성경 속 숫자를 하나의 중요한 어휘로 취급하여 본문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목적을 둡니다.
성경 대표 숫자들의 상징적 의미
1:연합과 통일
3:하나님과 하늘 (삼위일체)
4:사람과 땅 (사방, 동서남북)
7 (3+4):하늘과 땅, 하나님과 사람의 합이므로 '완전수'를 상징
12 (3×4):충만함과 총체적인 전부 (12지파, 12사도)
10, 100, 1,000:온전함과 충만함의 확장
유대인들의 전통 수비학: 게마트리아(Gematria)
히브리어 알파벳 22자와 어말형(단어 끝에 오는 변형 문자) 5자에 각각 1부터 900까지의 고유 숫자를 매겨, 단어의 철자 값을 더해 비밀스러운 뜻을 해석하는 방식입니다.
과도한 해석의 예:아브라함의 군사 '318명'을 종 '엘리에셀' 이름의 철자 합(318)으로 치환하여 엘리에셀 한 명만 데리고 갔다고 해석하는 등, 신비주의(카발라)적 과도한 적용은 정통 신학에서 경계합니다.
153 마리의 물고기 해석:수학적 누적수(1~17의 합)나 에스겔의 샘 이름 외에도, 히브리어 구절 "아니 하엘로힘(나는 하나님이다)"의 게마트리아 값이 153인 것에 착안해 예수님의 신성을 암시한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결론 및 주의점
성경의 숫자(특히 성소 구조나 예언서의 7, 12, 40, 666 등)는 분명한 상징성과 타당한 기록 이유를 가집니다. 따라서 이를 억지로 모든 본문에 끼워 맞추는 과오(과도한 게마트리아)는 피하되, 성경이 시사하는 숫자 고유의 예언적·문화적 상징을 올바르게 이해하면 성경을 더욱 풍성하게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