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차 산행 후기

[니캉내캉]

제 35차 산행 후기

"산만큼 좋은 것이 없지요."

택시 기사분의 말을 빌자면 나는, 그리고 우리 문산은 오늘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누리는 셈이다. 좋은 사람과, 좋은 풍광과, 좋은 공기와…. 세상 가장 좋은 것을 품어 안는 사람은 세상 가장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을 터. 생면부지 기사님의 한 마디 말부조가 하루의 시작을 더욱 가볍게 한다. 새삼, 말 한 마디의 위력을 느끼며 좋은 말만 하며 살아야겠다는 철딱서니가 드는 아침이다.

서둘러 달려왔음에도 부지런하신 어르신들을 좇아갈 수가 없다. 민주공원 입구에는 회장님을 위시해서 박지현, 이남기 선생님께서 이미 도착해 계신다. 저 어르신들이 계시는 한 문산은 영원히 건재하리니. 덥석 손인사를 청하시는 어르신들의 살가운 환대를 받고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는다. 속속 도착하는 여전히 행복한 얼굴들.

35차 산행의 인증샷으로 출발지점인 공원입구에서 단체 사진 한 장을 찰칵. 황금 돼지머리를 호위하듯 둘러선 문산인들의 웃음소리가 산자락을 정정하게 울린다. 말 그대로 유쾌, 통쾌, 상쾌! 이쯤에서 오늘의 깜짝이벤트를 준비한 박혜연 수필가의 공로를 치하해도 좋을 것이다. 시산제를 며칠 앞두고 '내 머리통 만 한 돼지 한 마리 준비 할게유~' 그러더니 이건 뭐, 머리통 서너 개는 족히 될 만한 누런 돼지 저금통을 모시고 왔다. 구제역이니 살처분이니 연일 살 떨리는 기사에 주눅이 들던 터라 후덕한 미소를 안면 가득 품고 있는 돼지의 얼굴이 코끝이 찡하도록 반갑다. 반짝반짝 튀는 아이디어도 그렇지만 늘 몸을 아끼지 않고 세세한 부분까지 챙겨 신경 쓰는 박 수필가, 그녀가 아름답다.

어쨌거나 출발이다. 우리 문산이 여느 산악회와 차별화 되는 점이라면 올라 정상을 찍기 위한 등정이라기보다 산이 거기에 있어 오른다는 느긋함이리라. 삼삼오오 그간의 안부를 나누며 조근 조근 오르는 이야기길이 즐겁다. 무거운 세상 치레는 저 만치 벗어 두고 잠시 산에 들어 산이 되는 시간, 앞서 가는 이의 어깨가 산처럼 우뚝하다. ‘호젓한 산길이 너무 예쁘다.’며 연신 입에서 입으로 터져 나오는 탄성들.

어느 시인의 글귀처럼 외로움도 그녀에게 힘이 되었을까. 엄광산의 저쪽 초입을 기점으로 홀로 고독한 등정을 선택하신다던 이말라 선생님이 누구보다도 씩씩한 모습으로 합류를 한다. 제물로 놓을 시루떡 한 되를 자그마한 등에 당당히 짊어지시고. 잠시나마 그녀를 지탱해주었을 외로움과, 지극한 소명으로 분주했을 두발에 영광 있으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최화수 부회장님의 안내로 터를 잡고 현수막을 건다. 명당자리가 따로 있으랴. 풍수지리에는 문외한이나 생각해 보건데, 마음과 마음이 정성으로 하나 되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명당이 아닐까. 회장님의 절대미감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화사한 새 현수막을 걸고 보니 이보다 더 좋은 자리는 없어라. 신묘년 한 해 우리 문산의 무탈과 회원 개개인의 건강을 빌고 내리 내리 좋은 작품을 출산하시라는 기원을 담아 제물을 차리는 손들이 경건하다. 문산의 종부와도 같은 이말라 선생님의 진두 아래 소박하나마 정성이 깃든 상이 차려지고….

초헌관으로 수석 부회장이신 최화수 선생님께서 잔을 올리고 회원들은 모두 하나로 마음을 조아린다. 김광수 부회장님의 걸쭉한 축문으로 산신님은 물론이고, 하늘 신, 땅 신께서도 문산의 장도를 위해 마다않고 내왕하셨으리라. 우리 문산, 올 한 해 걸음걸음 무탈하게 하시고 좋은 일만 생기도록 부디 굽어 살피소서!

<< 2011년 부산문협 문산회 산운山運을 위한 축祝 >>

유세차維歲次 단군왕검기檀君王儉紀 4344년 서력西曆 2011년, 신묘辛卯 정월에 문인산우회 회원과 부산문협 가족일동은 해마다 산신님께 세배 드리기 위하여 올리는 시산제에 임하여 재배하면서, 삼가 고하여 산신님의 영험하신 가피력과 은혜에 감사드리고자 하옵니다.

하늘능선과 바람과 계곡과 수목 거느리고 산을 지키시는 산의 수호신이자 인생세간 산사람의 보호자인 산신님, 고맙습니다.

매년매월 정기산행일에 아무 사고 없이, 산과 산우에 대한 믿음과 소망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과 건강까지 주신 것 고맙습니다.

신묘한 신묘년辛卯年 한 해도 저희들을 보살피고 도와주소서!

산에 대한 지나친 욕심 부리지 않게 하시고, 만용 부리지 않게 하시고, 산신님 외경하는 것처럼 산을 두려워하고 절제하여 오직 산에 대한 사랑만이 깊어지게 하신 것, 고맙습니다.

역지사지易之思之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마음을 배워, 산과 나를 바꾸어 생각하게 하시고, 이웃과 나를 바꾸어 생각하는 마음 기르게 하시고, 웃음 한 번 웃는 데도 열 가지 이유도 넘는다는 것 깨닫게 하신 것, 고맙습니다.

우리 문산 회원과 문협 가족에게 산을 오르내리는 이유 역시 각가지임을 서로서로가 이해하게 하신 것, 마침내 사랑하게 하신 것, 고맙습니다.

산신님 큰 음덕으로 산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 두루 건강하게 하신 것, 가족 더불어 보람찬 나날이게 하신 것, 문운 왕성하게 하신 것, 고맙습니다. 박홍길 교수님 무사귀환하게 하신 것, 특별히 고맙습니다.

신묘정월 엄광산에서, 문인산우회와 부산문협을 대표하여 산우회장 박달수 상향尙饗

이남기, 박지현 선생님의 아헌에 이어 김광수, 조성순, 이말라 선생님께서 종헌을 하신다. 회장님을 선두로 남은 회원들이 돌아가며 헌작을 하고 넙죽 넙죽 절을 올린다. 도란도란 둘러 앉아 음복을 하는 것으로 간소한,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숙연한 시산제를 마친다. 우리 문산, 신묘년 한 해도 작지만 큰 행보를 멈추지 않으리라 다시 주문을 걸며 김광수 선생님의 신명나는 한바탕의 푸닥거리를 옮긴다.

몽달귀신 사갈 귀신 와서 들으시게나

후여이 후여, 사갈귀신 몽달귀신 모두 나오너라. 얼른 나와서 들으시게나.

신묘辛卯 정월正月 오늘은 그저 고맙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으니 안심하고 얼른 나오시게나.

시집 못가고 죽은 사갈귀신 장가 못 들고 죽은 몽달귀신은 잘 들으시게나, 우리 문인산우회 회원과 부산문협 가족일동의 고맙다는 인사를.

- 아이구야 반말에 온말 섞인 화법씩이나, 오늘따라 웬 일.

자네들 동남동녀들이 비아냥거려도 할 말이 없네. 부끄럽지만 사람이 다 그런 것 아니던가. 오늘은 특별히 사람의 말로 고마움을 표하니, 이 주반 마음껏 먹고 마시면서 춤추고 노래하며 실컷 놀아보시게나.

천상도 지상도 아닌 중천*주註 1에서 신도 귀도 아닌 중음*주註 2으로 떠다니면서도, 우리들 인간을 해코지 않고 오히려 보살펴 주신 것 고맙네.

문산 가족과 문협 회원 특별히 보살펴 두루두루 화목하게 하고, 문운완성하게 하신 것 고맙네.

사대육신 건강하게 하여 연연세세 탈 없이 산길 오르내리게 하신 것, 고맙네.

산길 오르내리며 건강제일 수복장수의 중요성과 즐거움 배우게 하신 것 진정 고맙고도 고맙네.

사갈귀신 몽달귀신 자네들 순결한 동남동녀, 염치없지만 부탁 딱 한 가지만 할 것이니, 신나게 마시고 먹고 춤추고 노래한 다음, 들어주게나.

- 그러면 그렇지, 인생세간 인사들이 뭐가 부족해서, 답답해야 우리 같은 별볼일없는 동남동녀 중음에게도 듣기 좋은 말로 사정하는 거지.

구우일모에 만분지일의 경우지만 황원준이란 친구 보이거든 같이 놀자 하지 말고 천상으로 보내게나. 자네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아저씨니까. 자네들하고 같이 놀 군번이 아니니 절대로 끼어주지 말고 보내게나. 붙잡으면 뿌리치지도 못하는 등신불아재니까. 그래도 등신불 아닌감.

천상에 올라 자네들을 조만간에 빛 많은 곳으로 부를 착한 귀신이 그 친구임을 아시게나.

후여이 후여 왔다가 후세 후세이 가야 되는 자네들이 제자리에 가서, 필히 살펴야할 일임을 아시게나, 부디 아시게나. 후여이 후여 후여이 후여

*주註 1 천상天上 지상地上 중천中天 불교에서 말하는 육도에서 유래된 말이다. 법어가 속어로 바뀐 말인데, 도량度量과 같은 말은 속어가 법어로 바뀐 예다.

육도六道란 중생이 업장과보에 의하여 걷는 여섯 가지 길이며, 낮은 것부터 높은 것 순으로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인간도人間道 아수라도阿修羅道 극락極樂이다.

여기에서 특이한 것은 아무리 먹어 배가 고픈 아귀도가 축생도 아래고, 천날만날 싸우는 아수라도가 인간도 위라는 사실이다.

*주註 2 신神 귀鬼 중음中陰. 사람보다 격이 높은 귀신을 신이라 하고, 사람 아래 격 귀신을 귀라 한다. 귀도 신도 못되고 중천을 떠다니는 영이 중음이다. 아귀도와 아수라도의 상징적 존재라는 설도 있으나 말 그대로 설이다. - 김광수

마치 아니 온 듯….

뒷정리를 말끔히 하고 꽃마을로 하산한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뒤풀이 장소인 식당으로 먼저 가서 기다리고 계셨던 김도우 수필가님, 반갑고, 고맙고,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고독했을 기다림에 치하를 드린다. 느지막이 민생고를 해결하며 잠시 따스한 시간을 보내고 문산의 시산제 및 제35차 산행도 막을 내린다.

함께 해주신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육신은 멀어 있어도 마음은 가까이 계셨을 또 다른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격려와 응원의 마음으로 금일봉을 전해주신 부산문인협회 정영자회장님과 임종찬 시조시인님께도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문산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더운 마음들이 또 한해를 지탱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2011년 정기 총회이자 36차 산행, 그리고 문산 제3집의 출판기념회가 겹치는 3월에는 몸과 마음으로 함께 동행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얹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자세한 일정은 추후에 공지로 올리겠습니다.

* 참석자 명단(존칭 생략)

- 박달수, 최화수, 이남기, 박지현, 김광수, 조성순

이말라, 김명옥, 노옥분, 감윤옥, 김도우, 정은영

정정희, 박혜연, 문경희 (이상 15명)

* 찬조금 맟 회비 내역

정영자 문협 회장님(10), 박달수 회장님(10), 임종찬 시조시인(10)

최화수(5), 김광수(3), 박지현(3), 이남기(1), 조성순(3), 이말라(3)

노옥분(3), 김명옥(3), 감윤옥(5), 김도우(2), 정은영(1), 정정희(5)

박혜연(2), 문경희(5) - 총 74만원

[산에산에]

산처럼 향기로운 글입니다. 무슨 '작품'과도 같은 산행후기에 감동!!!

[니캉내캉]

에고....산에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는 쥐구멍을 찾아야 합지요....어쨌거나 주신 격려에 그저 떙큐입니다........^^

[소금인형]

'산에 들어 산이 되는 시간'
크햐 좋고도 좋을시고
산심에 젖고, 좋은 사람들과
아름다운 글에 취하고 .
후여이 후여
김광수 선생님의 신명나는 축문대로
문산 선생님들 무탈하시고 문운 가득하소서
문경희 샘, 박혜연 샘, 이말라 선생님, 정은영 선생님, 정정희 대장님
수고 많았고예, 참말로 사랑합니데이
역시 산만큼 좋은 것이 ''
문산

[니캉내캉]

소금인형님...간만에 뵈어서 정말 반가웠습니다....잠시지만 돌아앉아 속닥속닥 나눈 얘기에 더욱 가까워진 듯 합니다...ㅎㅎ...언제든 술 땡기는 날 번개치세요....꾼들 모아서 달려 가겠습니다....ㅎㅎㅎ

[문석경]

함께 못한 것을 죄송하게 생각하오며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진정으로 읽어 산과 하나 되어 그 날을 되새겨 봅니다

[니캉내캉]

안오셔서 섭했습니다....막걸리 다섯 병 지 혼자 낑낑거리고 갔습니다, 공원 입구까지만....ㅎㅎㅎ.....다음달에 뵙겠습니다.........^^

[하얀맘]

후기글 늘 기다립니다.
내가 보지 못한 뒷 부분까지 소상히 볼수 있는 매력이 있으니까요
국장님 수고많았어요
부 같은 이말라 선생님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전을 들어서라도 모셔야 하는 참 뛰어 나신 선생님이십니다. 늘 곁에 머무를 수 있기를 또한 곁에 있음으로 행복합니다.
노 모모 선생님 아니 옥분선생님 말에 대한 책임 아시죠
번개 때리시면요
꾼들 있어요 마캉 갑니다 뒷 처리만 해주세요^^*

[소금인형]

전 말이죠, 말에 대한 책임은 '학시리' 집니다.
봄비는 내리고, 심장이 난동부리는 날
마음 맞는 꾼들끼리
마음의 띠 풀어헤치고... 기대만땅, 학수고대
맘님께서 책임지고 마캉 데불고 오시길
이쪽으로만 와 주신다면 제가(뒷처리) 책임짐돠
머잖아,, 번개칠 날을 기다리며

[박혜연]

봄비나리는날, 빨리 하늘을보고 기도해야겠습니다. 축축한마음을 열어줄 꾼들이 항상 대기허고 있습니다.
맘님...비오는날 번개한번치고 소금인형님께 달려갑시다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