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감독이 거둔 결과에 대해 기본적으로 존중합니다. 4강, 결승 진출 전력을 가지고도 조별예선을 뚫어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게 존재하니 원정 첫 조별예선 돌파에 대한 결과에 대해서는 그 어떤 이유로도 가볍게 비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결과가 전적으로 대표팀 감독직 유임의 보장책이 될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 이유를 몇가지 열거해 보겠습니다.
첫째 이번 월드컵의 최우선적 성공 요인은 우리 선수들의 기술적 진보이다.
조별예선 첫 경기 그리스전에서 확연히 드러났듯 우리 선수들의 기술 진보가 무척이나 돋보였습니다. 볼을 지켜내는 능력, 볼을 지녔을 때 서두르지 않고 목표한 전술, 전략을 이행하는 능력, 그리스 전에서 이러한 기술의 우월함을 바탕으로 시종일관 여유로운 플레이를 펼쳤고 이 기술의 진보는 나이지라아, 우루과이전에서도 선제골을 얻어 맞고도 주눅들지 않고 추격해내는 동력으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김정우, 이청용 선수의 기술적 능력이 돋보였고 대부분의 선수들이 기술적으로 매우 안정되어 있었습니다.
둘째 실전에서 허정무 감독의 영향력은 극히 미미했다.
허정무 감독은 기본적으로 한국선수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단한 전략가나 승부사는 아니지만 선수들의 재능을 어느정도 이끌어내면서 일반적, 기본적 전략을 구사하는 감독이란 말이지요. - 반대의 경우로 핌 베어벡의 경우 대단한 이론가이긴 합니다만 선수들의 재능을 이끌어냄에 있어 어려움을 겪었지요. - 그 결과 조별 예선을 힙겹게 돌파하긴 했지만 곧이어 그 한계도 명백하게 드러난 셈이 되었지요. 그 한계의 근거로는 대략적으로 떠올려도 여럿 떠오르는데, 지나치게 소극적 경기 운영, 교체 카드의 편차, 교체 타이밍의 부적절, 검증되지 않은 전술의 지속적 이행 등으로 큰 윤곽을 그릴 수 있을텐데 이러한 몇가지 근거들을 요약하면 허정무 감독의 축구는 상당히 비과학적이고 직감에 크게 의존하는 축구로 볼 수 있습니다.
허정무 감독은 월드컵 예선과 평가전 등에서 투톱 전술에 상당히 비중을 두고 대표팀을 운영했습니다만 정작 월드컵 본선에서 꺼내든 전술은 박주영 원톱 전술로 일관했습니다. 때문에 대표팀 투톱 전술에 맞춰 선발된 대표팀 전체 스쿼드는 급변한 원톱 전술로 인해 매우 비효율적으로 되어 버렸습니다. 이전의 월드컵 등을 보면 조재진-안정환, 박지성-설기현, 이천수-박주영 등 주전-비주전간 숫자가 효율적으로 딱딱 들어 맞았는데 이번 월드컵의 안정환, 이승렬 등의 선수는 잉여자원으로 전락했고 이로 인해 정작 필요한 윙포워드 등의 교체카드가 부족해지는 결과를 낳았는데 그 자리마저도 감독 스스로도 실전에 투입이 꺼려지는 김보경 등의 선수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지요.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또 정작 원톱으로 나선 박주영 선수는 이번 월드컵을 포함해서 그 이전 어느 대표팀 경기에서도 원톱으로 나서서는 필드골을 뽑아내지 못했습니다. 허정무 감독은 이 부분을 충분히 읽어내지도 검증하려 들지도 않는 큰 오류를 범합니다. 이 부분은 다수 축구팬의 책임도 있습니다. 허정무 감독은 대회기간 시의적절한 전술 운용에서 더 큰 부족함을 드러냈지만 이러한 기본적 셋팅에서도 많은 모순점을 안고 대회를 시작한 셈이지요.
게다가 아르헨티나전 이후 히딩크 감독이 직설적으로 비판했듯 충분히 연습되지 않은 90년대식 소극적 경기 운영은 한수 위의 아르헨티나전은 차지하고서라도 대등 혹은 그 이하의 전력의 나이지리아, 우루과이를 맞아서도 선취골을 실점하고 쫓아가는 형세의 어려운 경기로 일관하게 됩니다. 소극적 선발 라인업에 이어 교체 카드 역시 과감성 결여된 소극적 형태로 일관했기에 16강 우루과이전 이동국의 교체카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교체카드는 경기에 어떤 영향력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 더구나 이동국의 교체카드 역시 그 시의적절성에 있어서는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 - 또한 같은 경기에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본선용 전술과 괴리된 선수 선발은, 감독 스스로 패착으로 인정하며 선발 명단에서 내린 염기훈 카드를 마지막 승부수로 내놓는 안타까운 장면을 연출하고 맙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결론지어 볼 때 허정무 감독의 축구는 과학적 치밀함과 합리적 유연성 양자 모두에서 부족함을 드러냈다고 볼 수밖에 없겠지요.
셋째 좀 더 큰 그릇에 우리 선수들을 담고 싶다.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는 감독으로서의 그릇이란 축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지도자, 전술/전략가로서의 능력과 축구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팀의 총괄자, 대표자로서 양자 모두를포함하는 것입니다만 대표팀 감독과 클럽팀 감독의 지위를 혼동한다든가 하는 식의 전자에 해당하는 경우는 요 몇 년간 주구장창 다뤘기에 차지하고 대표팀 수장 자격으로서의 인터뷰어 허정무에게 적지 않은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인터뷰 스킬이 달리려니 말 주변이 부족하거니 하면서 치부해 버릴 수 있지만 월드컵 같은 대회가 진행 중임에도 차두리, 염기훈 등 선수들의 실명을 언급하면서 잘못과 부족함 등을 직접적으로 지목하는 것은 자폭행위나 다름없을진데 10년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변하는게 없는 분입니다. 우리 선수들의 정신력이라든가 겸손함이라든가 이런 보편적 인성과 문화가 출중해서 그렇지 잘못됐다간 프랑스처럼 팀이 와해될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그렇게까지 가지 않더라도 대회 중 선수들의 잘잘못을 공개적으로 지적해서 얻을게 뭐가 있었을까요? 더군다나 그 선수 중 일부는 팬들의 적극적 만류에도 불구하고 리그의 경기력 등을 무시하고 거의 감독의 독단적 선발에 의해 선택된 선수였는데요. 대표팀 수장쯤 되시면 스스로에게 좀 더 엄격하고 선수에게 좀 더 관대하시면 좀 좋을까요. 예를들면 “염기훈 선수가 결정적 찬스를 놓치긴 했지만 다음 경기에서는 그와 같은 상황에서는 반드시 결정지어 줄 것으로 믿는다.” 등으로 발언하고 더 깊은 얘기는 개인면담으로 해결하는 것, 뭐 특별하거나 어려운 부분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스스로의과오를 반성할 줄 알고 그 성찰로 인해 공부하고 그 공부로 인해 또 발전하는 지도자가 대표팀 지도자로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넷째 2011아시안컵은 무리없이 진행될 수 있다.
축협에서 대표팀 감독 임용 작업은 7월초까지 마무리된다고 하였습니다. 축협의 발표시점이나 남은 시간을 산정하면 이미 유임이나 내정자가 결정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이미 팬들의 설왕설래는 무의미한 작업이 될지도 모르겠으나, 내국인 감독이나 K리그를 거쳐간 지한파 외국인 감독이 임용될 경우 6개월의 시간정도가 주어질 경우 수차례의 소집훈련 없이도 이미 어느정도 만들어진 대표팀을 부분리빌딩 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 아닐것이라 생각합니다. 월드컵이나 아시안컵 같은 경우 팀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토너먼트에서의 승부수를 띄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토너먼트 진출이 확정적인 아시안컵은 더욱 그러하겠지요. - 허정무 감독의 토너먼트에서의 승부력은 이미 골드컵, 아시안컵, 월드컵을 통해 두루 확인되었습니다. 이번 대표팀 감독 임용 작업은 결코 아시안컵을 대비한 것만이 아니겠지요. 허정무 감독이 유임된다면 차기 월드컵을 내다본 결정이 될 것입니다. 충격적 중도 탈락 아니면 유임될 것이고 충격적 중도 탈락을 당할 확률은 극히 희박하지요. 졸전 중 졸전이라고 극악의 평가를 내렸던 지난번 아시안컵에서도 대회 3위을 차지했던 우리 대표팀이니 현재의 우리대표팀 전력이나 K리그 최정예로 꾸려진 대표팀 전력이면 어지간한 지도자라도 지난번 대회에 상응하는 결과는 만들어 낼 수가 있겠지요. 무엇보다 저는 차기 월드컵에서 우리의 최선의 능력치가 어디까지인지 보고 싶기에 허정무 감독의 유임에는 거듭 반대의사를 표명합니다.
다섯째 K리그의 성장과 함께 성장하는 대표팀 감독을 보고 싶다.
K리그에서 성공을 거둔 감독의 대표팀 입성이라는 당연한 명제가 이상시 되는 이 땅에서 이러한 염원은 영원히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이 부분을 끊임없이 주장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K리그에서의 성적이나 기존의 국제대회에서의 성적과 무관한 오로지 축협프렌들리 인선작업, 이 분들이 적어도 K리그에서 성적 못내셨더라도 K리그의 위치나 제대로 인지하시면 좋겠지만 이 분들 기존의 성적과 비례할만큼 유럽축구 사대주의나 패배감에 빠져있는 분들이 많지요.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쯤 되면 손, 발부터 먼저 오그라들고 허접한 유럽 B급리거도 K리거 최고 수준의 선수보다 영예롭게 대접하시는 분들, 이 분들만 아니면 사커월드에서 A대표까지 번잡하게 신경 쓸 필요도 없지 않겠습니까. 리그팬으로서 고맙긴 하지만 배철수 씨나 오상진 씨 같은 방송인들마저 홍보에 열내게 만드는 지경에 이른 한국축구의 진실, 이 진실과 무관하게 훌륭한 경기력을 이해하고 그 훌륭한 선수들을 리그에 전념케 만드면서 그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어 리그에서 활약하면 누구나 대표팀에 선발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줄 수 있는 분, K리그 감독으로서 K리그 출신 선수의 진실과 환희, 서러움까지도 공명할 수 있는 분, 이러한 분들이래야 K리그와 함께 성장하는 대표팀의 미래도 있을 것입니다. 분데스리가 MVP에 올랐던 차범근 감독이 “저 선수 K리그 시절에도 저런 플레이 잘했다”란 식으로 멘트 날리시는 것 보면 오로지 K리그 감독 출신으로서만 자신의 존재를 알린 김학범 감독 등의 경우엔 오죽하겠습니까. 한국축구의 진실과 미래를 위해서...
첫댓글 전술적인 미스는 확실하지만 저는 허정무 감독이 팀은 잘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대표팀은 특히나 팀분위기가 좋았구요. 중압감 속에서도 즐겁게 축구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오랜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지성 선수의 주장선임도 좋았고 잉여자원으로 볼수도 있겠지만 김보경, 이승렬 선수도 좋은 경험이 됐겠죠. 정성룡 투입도 좋았구요. 전술적인 착오는 있었지만 잘갖춘 팀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우승청부사 같은 외국감독-남아공의 경우가 대표적 실패 사례라고 봅니다-보다는 이제는 국내파 감독이 국가대표팀을 맡아도 된다고 보구요. 확실한 대안으로 누구라도 인정해줄수 있는 '지장'의 면모를 갖춘 감독이 아니라면 허정무 감독
의 유임은 '악수'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허정무 감독보다 더 유능한 감독을 선임한다면 유임이 불필요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