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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성가의 축복을 받은 이삭
자동적으로 출석을 잘 하시는 성도들과 잘 못하는 성도들과 장기결석하신 성도들에 대해 생각나면서 장기결석하신 분들이 신앙을 다 잃어 버리고 마귀에게 사로잡혀 끌려 다니면 어떻하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참 잘 나오셨습니다. 이삭과 같이 신수성가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태어난 이삭은 아버지의 신앙을 그대로 이어 받았습니다.
신수성가의 축복을 받은 이삭과 같은 복을 받으려면 이삭에게 복을 주시려고 임재하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도 임재하시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본문23-24상반절에“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복 주리시려고 여러분에게 임재하시기만 하면 신수성가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임재 하셨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이 자리에 임재하셔서 여러분의 찬양을 받으시고 기도를 들으시고 예물을 받으시고 하늘 문을 여시기고 큰 복을 내려 주시는 자애로우신 아버지이십니다.
시70:5“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니 여호와여 지체치 마소서”우리 하나님께서 속히 이 자리에 임재 하셔서 여러분들을 도우시고 건지시고 은혜 주시고 복을 자시기를 바랍니다.
시90:17“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 이 시간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 임재 하셔서 우리가 하는 해피데이629를 진행하는 행사를 견고케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신28:2“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이렇게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신수성가의 축복을 주실 때 그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란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순종하며 충성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일들을 책임져 주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여러분이 교회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다 봉사한다는 개념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충성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헌신이나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주님을 도와 주고 있다. 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엄청난 사랑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죄와 저주와 정죄와
심판과 지옥형벌을 면하고 구원받았습니다. 죽어야 마땅한 우리를 살려 주셨으니 그냥 충성해야 합니다. 죽을 죄를 지은 신하를 임금이 용서해 주고 살려 주었으면 충성밖에 없지 내가 임금님께 헌신하고 봉사한다고 생각하고 말하고 다닌다면 그 사람이 어찌 임금이 살려준
은혜를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신수성가의 축복을 받은 이삭과 같은 사람이 되려면 언약하신 언약의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믿어야 합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언약의 신수성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한번 언약하시면 믿는 자들에게 절대 변개치 아니하십니다. 본문24절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에게 주신 이 축복의 말씀은 이삭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삭만을 위한 것이었으면 성경에 기록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삭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신수성가의 축복을 받을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언약의 말씀인 것입니다.
신수성가의 축복을 받는 성도들은 이삭과 같이 예배생활을 즐겁게 합니다. 본문25절에“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라고 말씀했습니다.
단을 쌓았다는 것은 예배를 말씀합니다. 신수성가의 축복을 받으려면 예배의 제단을 많이 쌓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여러분들이 예배의 제단을 얼마만큼 쌓았는가?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예배하는 생활을 어떻게 했는가가 자신의 생애를 결산할 때 나오는 결과가 됩
니다. 그리고 신수성가의 축복의 가늠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을 즐겁게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사43:21에“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예배하는 존재로 지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예배하면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영혼이 잘 됩니다.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 됩니다. 범사가 잘 되면서 강건하게 됩니다. 요삼1:2“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할렐루야!
영혼이 잘 되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죄 사함 받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사38:17“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이삭과 같이 신수성가의 축복을 받은 성도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역사들이 일어납니다. 본문26 이하를 보십시오. "블레셋 왕 아비멜렉과 그의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을 데리고 이삭에게 화해를 신청하러" 왔습니다. 그들은 이삭을 자기 지역에서 추방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왕도 아니요, 두려워 할 만한 특별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
는 사람도 아닌 이삭에게 화해를 신청하러 왔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 계심을 그들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2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음으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그리고 29절에서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할렐루야!
이것이 이삭을 두려워하며 부러워하며 화해를 신청한 이유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소리를 듣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권사님, 집사님 당신들을 보니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분명히 함께 하시는군요, 우리와 가까이 해주세요, 우리 한번 깊이 사귀어 봅시다,
당신들은 하나님께 복을 받은 분들입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행복하게 기쁘게 사십니까?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세요. 당신들과 같은 복을 받게 해주세요." 여러분 이삭은 하나님을 보여 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방 나라 불레셋의 왕과 군대 장관이 알 정도로 그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소문이 그리고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보여졌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총입니까? 그러면 이삭은 어떻게 믿었기에 하나님을 보여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그와 우리의 신앙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한가지입니다. 그는 매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과 그의 행동을 같이 하였습니다. 무슨 일을 할 때마다 하나님과 동역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의심치 않고 굳게 믿으면서 어떠한 일이 발생 할 때
마다 자기와 함께 동역 하시는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두 가지 사건만을 찾아보시겠습니다. 첫째로 창26:1-13에 보면 이삭이 사는 지역에 흉년이 찾아 왔습니다. 이 때에 이삭은 일단 1차 남방의 그랄 땅으로 내러 갑니다.
그 다음은 자기 아버지가 흉년 만났을 때 찾아갔던 애굽으로 내려갈 참입니다. 그런데 2절 이하에서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한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 내가 복을 준다, 그것도 자손 대까지 그리고 그 자손으로 인하여 천하 만민도 복을 받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때 이삭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흉년든 그 땅을 그대로 고수하며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냥 버팁니다. 그리고 양을 치던 목자인데 12절에 보면 그 흉년이든 땅에서 농사를 집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해에 백배나 얻었더라"고 하였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삭은 어떻게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심을 보여 드렸습니까? 하나님께 대한 순종입니다. 신수성가의 축복을 받으려면 이삭과 같이 하나님께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애굽으로 내려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하나님도 예배도 진리도 없는 타협주의 세상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분부를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는 비결은 흉년의 때가 더 좋은 법입니다.
어떤 분이 성도들을 콩으로 비유했습니다. 개개인이 다 구원받아서 생명을 가지고 있는데 문제는 반질 반질 거리면서 융합이 안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이나 목장이나 공동체라고 하는 콩 자루 속에 들어갈 때는 하나가 되는데 자루 밖으로 나오면 따로 굴러
다닌 다는 것입니다. 참 일리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생콩을 하나로 만들려면 가마솥에 넣어서 푹 삶아서 짓이겨야 합니다. 그려면 한 덩어리 매주가 됩니다. 우리 모두 따로 굴러다니는 콩이 되지 말고 한 덩어리 매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려울 때 말씀을 순종하면서 "하나님 아버지, 순종합니다. 명령대로 살렵니다. 메주 덩어리로 살렵니다. 이 어려움을 통하여 하나님이 나와, 우리와 함께 계심을 저 세상의 사람들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들어내시사 저들도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하옵소서"하며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결과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어느 큰 병원의 유명한 한 외과 의사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항상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의 놀라운 의술과 수술에 대한 꼭 필요한 침착성은 많은 젊은 의사들로 하여금 '이 외
과 의사의 성공적인 수술과 어떤 관련이 있지 않나'하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 한 수련의가 용기를 내어 그 외과 의사에게 이 사실에 대하여 물어 보았습니다. 그 외과 의사는 "그렇다네. 이 두 가지 사이엔 분명한 관계가 있다네. 내가 아주 까다로운 수술을
집도 할 때도 많고, 수술 후에도 환자의 상태가 예상 못할 지경에 빠질때도 수없이 많은데, 이럴 때 나는 어찌해야 될지를 모른다네. 그렇지만, 나는 곧 주님의 도움을 간구하게 되며 주님께서는 내게 수술을 성공하도록 필요한 지혜를 주신다네. 나는 먼저 주님의 도움을 간구
하지 않고 수술 칼을 손에 들어본 적이 없다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후부터 "주님과 함께 수술하는 의사"라는 말이 이 병원 직원들과 환자들 사이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겸손한 순종과 기도와 노력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보여 드리는 길입니다.
다음에 신수성가의 축복을 이삭은 창26:12-24절의 말씀을 보면 이삭의 희생적인 삶이 나옵니다. 12절과 13절에서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심으로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가 나서 이삭을 그 땅에서 축출하였습니다.
이삭은 순순히 그 땅을 떠났고 가는 곳마다 목축을 하는 그는 우물을 파서 물을 공급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물을 팔 때마다 블레셋 사람들이 달려들어 우물을 빼앗습니다. 그때마다 이삭은 그들과 다투거나 분노하거나 그 어떤 시시비비를 가리지 아니하고 손해
곧 희생을 하고 맙니다. 그런데 그렇게 계속하여 희생하며 양보하는 이삭에게 다시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것이 24절입니다.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을 번성케하리라"
블레셋사람들은 이삭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삭의 아버지가 아브라함인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창21장에서는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찾아와 화친을 한 사실이 있습니다. 21:22절을 보면 그 때에도 그들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
심을 알고 두려워서 화해를 신청한 것입니다. 그들은 '설마 이삭에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랴'하는 식으로 이삭을 무시하며 내어쫓고 우물을 빼앗고 야단입니다. 그런데 여기 24절에서 "하나님은 두려워 말라 너는 희생을 당한다 그러나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복을 준다."
하시며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블레셋 왕이 화해를 신청하러 왔고 아브라함 때보다 더 강력한 표현 "너에게 하나님이 함께 함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라는 "분명히"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삭은 아브라함보다 더욱 더 분명하게 하나님이 자신에게 함께 하심을 보여 주었다. 라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신앙입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와 이삭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이삭은 어떠한 어려움에도 순종과 노력의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역 하였고 일마다 사
건마다 희생을 당하면서 하나님의 이름과 아버지 아브라함의 신앙의
줄기를 지켜 왔습니다. 즐거울 때나 어려울 때나 제단을 쌓고 감격적
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다시한번 26:25를 보세요. "이삭이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라"고 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에게 함께 하심을 모든 사람이 보게 된 것입니다. 성도들이여 우리는 어떠합니까? 순종과 희생과 예배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을 행복으로 아십니까? 이러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다른 사람이 보도록 할 수 있습니다.
중앙 아프리카에서 선교를 하던 죠지 아틀레이라고 하는 젊은 선교
사는 원주민들의 창과 몽둥이에 맞아 죽어 가면서도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영국 제윈체스트 연발총의 방아쇠를 끝까지 당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대로 쏘면 저들을 죽이고 자기는 살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젊은 선교사는 자기를 죽이러 오는 사람들인 줄을 알면서도 끝까지 총을 쏘지 않았습니다. 손가락 하나로 방아쇠 한번 잡아당기면 끝날 일이겠으나 그는 결코 그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내가 저 사람들을 죽이게 되면 이 마을에서의 하나님의 선교는
교는 영영 끝이 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을 죽인 자가 전하는 예수를 누구인들 믿고자 하겠느냐 말입니다. 그 때문에 그는 끝까지 방아쇠를 당기지 않고 총을 든 그대로 개처럼 끌려가서 사지를 찢기며 비참하게 죽게 됩니다.
이렇게 죽은 다음에 보니 그에게는 그런 놀라운 총이 있었고 탄환도 열 발이나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된 그 원주민들은 뒤늦게나마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삭처럼 순종과 희생과 기도로 예비신자들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교회 안에서 그리고 저 세상의 요소 요소에서 보여 주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며 이웃들을 바라보았던 우리의 신앙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불순종하며 거역하며 살던 마귀의 습성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저는 하나님께 주의 종에게 순종하고 혼자 잘 난체 굴러다니는 콩이 아니라 이웃에 대하여 내가 희생적으로 사랑하고 녹아지고 뭉쳐져서 메주 덩어리로 살겠사오니 도와주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보여주게 하실 것 입니다.
열~씨~미 ~한 영혼을 위해 뛰어다니시여 신수성가 축복 받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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