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시 충렬사(사236호)(통영시 명정동)1
조선 선조의 명에 따라 7대 통제사 이운룡에 의해 1606년에 세워져서 봄.가을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현종(1663년)은 홍살문(紅箭門)을 다시 세우고 하고 충렬사의 이름을 내려 현판으로 걸게 하였다.
1695년 최숙(70대)이 경충재를 세워 서당을 열고 충무공정신을 계승하였다.1719년 김중기(92대)는
숭무당을 짓고 1795년 정조는 충무공전서를 발간하여 이곳에 보관했다.1895년 통제영이 폐지되었다.
홍살문은 홍전문(紅煎門).홍문(紅門)으로도 부르며 정2품 이상의 신위를 모신 사당에 세워졌다.
충렬사 현판은
1663년(현종4년) 김시성(45대) 통제사가 계청하여 사액을 받았으며 글씨는 문정공 송준길이 썼다.
충렬사 동백나무(기74호)(통영시 명정동)2
동백나무는 차나무과에 속하는 늘푸른 작은키 나무로 7m까지 자란다.통영의 시목은
동백나무.시화는 동백꽃이다.동백꽃이 필무렵 풍신제를 지낸다.그 때가 되면 처녀들
은 물동이 안에 동백나무의 꽃잎은 띄워 바쳤다고 한다.
강한루(江漢樓)3
강한은 중국 호북성의 성도 무한에 있는 지명이다.강한은 무한을 가로지르는 장강(양자강)과
지류인 한수가 합하는 지점으로 장강에서 강.한수에서 한을 따서 강한이라부르며 삼국지의
무대인 동시에 경승지이다.강한의 대안에는 이백의 시에 등장하는 황학루.항주의 서호와 비견
되는 동호가 있다.고대 주 때에는 召虎가 적의 항복을 받아 우환을 씻었다는 고사가 있다.
1840년 이승권(172대)통제사가 누각을 지을 때 姜偉가 강한의 고사에 연관지어 강한루로 이름
을 붙였다.조선의 팔작지붕으로 1988년 복원하였다.
영모문(永慕門)4
1840년 건립되었던 것을 1988년 다시 복원하였다.전면에는 강한루로
뒷쪽은 영모문이라 붙였다. 사찰의 樓下進入과 같은 형식이다.
장대석 기단에 원형초석으로 된 외삼문인 충렬사(忠烈祠)5
정문에서 사당에 이르는 삼문 중 바깥문으로 좌.우에 위치한 비각과 조화를 이루어 조선후기
건축의 조형미가 빼어난 건축물로 손꼽히며 광복후에 대한민국 우표도안으로 사용되었다.
충렬묘비명(忠烈廟碑銘)(유113호)(통영시 명정동)6
충무공(1545년-1598년)의 자는 汝諧.시호는 忠武公.위는 선무공신1등.덕풍부원군 영의정 이시다.
묘는 사당.비명은 비에새긴 글을 말한다.광해군이 백사 이항복에게 명을 내려 글을 짓게 하고
(1614년)숙종7년(1681년) 민섬(60대)통제사가 비와 비각을 세웠다.효종의 스승인 우암 송시열이
끝부분에 묘비를 세우게 된 경위의 글을 쓰게하고 숙종조 영의정을 지낸 문곡 김수항은 윗쪽에
통제사충무이공 충렬묘비명이라는 전서체를 썼다.
이언상 사적비(111대 통제사)(1681년-1775년)7
이충무공의 5세손이며 위는 가선대부(종2품)였다.이분은 청렴결백해 의복은 좋은 겉옷2벌이
없고 음식은 거친음식을 마다하지 않았다.이충무공 이후 덕수이씨 후손통제사가 없더니 통제
사 형제세분과 아래 직계삼대로 세분.이어서 또 여섯분의 통제사가 배출되어 가문을 빛내었다.
德水李氏 후손통제사 공적비(가선대부삼도통제사이공태상)8
이태상(121대).이한창(138대).이한풍(143대).이항권(167대).이승권(172대)
충무공 이순신 초대 삼도수군통제사
이후 열두명의 후손통제사 가운데 위에 적은 다섯분의 공적비이다.
외삼문안 서편 경충재(景忠齋)9
1695년(숙종21년) 최숙(70대) 건립한 팔작지붕의 건물로
서당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현재에도 서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외삼문안 동편 숭무당(崇武堂)10
1695년(숙종21년) 최숙(70대) 통제사에 의해 건립된 팔작지붕 건물이다.
정당의 출입문인 내삼문11
가장 안쪽의 문으로 단아하고 정교한 건축양식으로 조선중기 삼문조형의 정화이다.
통용문인 양쪽 협문을 낮게 만든것은 몸을 낮추고 삼가는 몸가짐을 하라는 뜻이다.
정당마당에는 탄신일 때 매년 승전무가 시연되고 있다.
正堂인 충렬사(忠烈祠)12
정당(충렬사)은 이운룡(7대)통제사가 명을 받아 세웠다.이곳은 이충무공 한분의
위패를 모시고 역대 통제사가 300여년간 제향을 받들어 온 가장 신성한 장소이다.
이 충무공 영정13
1978년 정형모가 그렸으며 1991년 이곳에 봉안하였다.
동재는 헌관과 집사들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제복을 차려입는 곳이며 마친후에 음복도 이곳에서 한다.
서재는
향사에 쓰이는 제물을 장만하고 제기와 제구를 보관하는 곳이다.
김경(51대) 통제사가 동재와 서재를 1670년경에 건축했다.
정당을 향하여 중앙좌측주련은
명나라 진린도독이 충무공을 찬양한 어록의 한구절인
경천위지지재(經天緯地之才)천지창조 때 혼돈된 천지를 씨줄 날줄로 짜세운 능력
욕일보천지공(浴日補天之功)하늘에 뚫린 구멍을 메우고 해를 씻어 빛을 낸 공적
우측주련(예서체 대가 신관호-187대 통제사)
맹산초목지(盟山草木知)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알고
서해어룡동(誓海漁龍動)바다에 맹세하니 고기와 용이 감동한다.
달아탐방지원센터14
관해정15
달아전망대로 오르는 일일회원16
달아전망대 지명유래-이곳 지형이 코끼리 어금니와 닮아
유래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달구경하기에 좋은 곳이란 뜻으로 쓰인다.
역사적 유래-임진왜란 당시 아기-깃대끝을 상아로 장식-(牙旗)를
꽂은 전선이 당포에 도착하였다고 하여 유래되었다.
한려해상 바다백리길(한려해상국립공원)(사인보드)17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미륵도 달아길.연대도 지겟길.비진도 산호길.한산도 역사길.소매물도 등대길.매물도 해풍길)
한려해상국립공원(아름다운 섬)(사인보드)18
왼쪽에서 오른쪽으로-두미도.추도.소장두도.남해.가마섬.대장두도.곤리도.사량도.쑥섬
미륵도 달아길19
한려해상국립공원(아름다운 섬)(사인보드)20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통영수산과학관.대매물도.비진도.학림도.오곡도.소지도.송도.국도.연대도.저도.연화도.만지도
일일회원과 You21
22석 리무진과 일일회원22
통영수산과학관23
수산과학관24
수산과학관(어항)25
수산과학관(축양채롱)26
장어를 이동할 때 장어를 살려서 보관하는 축양채롱 어구이다.
수산과학관(해양실)27
수산과학관(씨토피아-미래해양도시)28
수산과학관(미래해양도시)29
수산과학관(무시무시한 상어를 가리키며)30
수산과학관(미래의 바다목장)31
수산과학관(일일회원)32
수산과학관(옛 권현망선단)33
어로와 가공과정을 한 선단 안에서 처리하기 위해서
어람선.본선(망선).가공선.운반선 등 5-6척의 배가 한선단을 이룬다.
수산과학관(옛 해녀옷-물소중이)34
규화목(인도네시아.신생대말기(500만년-1000만년.나무화석)35
산양일주도로(통영의 대표신목 걸망개숲-걸망개 당산제)36
한산대첩 길(걸망개 숲)(산양읍 신전리 신정마을)
걸망개 숲이 들어서 있는 이곳은 임란전부터 김.여.백 세성씨가 처음 들어와 살았다.
임란 때 뜸(풀띠거적)을 만들어 삼천진에 납품했다고 전한다.이 숲은 약400년전에
방풍림으로 심었다고 하는데,지금도 팽나무를 비롯하여 많은 거목이 줄지어 서있어
여름철에 주민은 물론 관광객의 휴식처로 안성맞춤이다.
칠서휴게소에서 휴식을 한후 여행을 마무리했다.
(2017.07.08)
첫댓글 지난 7월에 부부동반 관광을 통영에 간 모양이네. 나도 오래 전 현직에 있을 때 이곳에 들려 충렬사를 본 기억이 있다네. 달아탐방지원센터, 수산과학관, 걸망개당산제 등을 사진으로나마 처음 잘 보았네.
달아전망대에서 점점이 흩어진
섬들을 보니,아름답고 멋지게 느껴졌고, 또한 달아의 유래도 알면서 여행을 하니 더욱 재미가 있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