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지 2주가 지난 소설을 아직 옆에 끼고 있습니다. '미애'가 밟히고 '선우'가 자꾸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활자로 그들을 정리해 두고 보내주려 합니다. 그녀들을 보내기 이리 어려웠던 이유는 그녀들이 내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탈출구가 없어 보이는 미애를 보면서 영화 "숨바꼭질"이 생각난 건 그녀의 생활이 점점 극으로 치닫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버팀목이 되어주진 못 하더라도 힘든 그녀에게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 주어야 하는 엄마와 언니는 오랜만에 통화하게 된 그녀에게 하소연과 푸념만 해댑니다.
그런 그녀이기에 지방으로 가게 된 친구에게 어렵게 부탁해서 3개월간 머물게 된 아파트에서 만난 선우는 구세주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녀에게 찍힌(?) 선우는 그녀의 "선우언니'가 되었고, "일 년 전 이혼하고 혼자 해민을 키우는"(p.196) 개인사를 듣고 수시로 미애의 딸 해민이를 돌봐 주어야 했습니다.
선우는 어려운 사람은 돕는 선한 의도로 시작했을테지만 선을 넘고 들어오는 미애가 버겁게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해민이가 세아를 데리고 아파트 주차장으로 나가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 일로 선우는 미애와 해민이에 대한 선을 긋기 시작합니다.
미애는 "어느 순간엔 선우 부부가 해민과 자신의 처지를 안쓰러워하는 것을 넘어 동정하고 있다는 걸 분명히"(p.197) 알고 있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에서 느끼는 부끄러움보다는 "그들을 둘러싼 집안 분위기가 어린 해민에게 끼칠 좋은 영향"(p.198)을 생각해야 했으니까요. 그녀의 절박함은 문을 닫아건 미애의 현관문을 수시로 두드리게 합니다.
눈치빠른 해민이가 세아에게 카드를 쓰겠다고 하고 둘이 카드를 사러 마트로 가며 손을 잡는 모습은 미애의 생존의지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에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고, 그렇게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 그 확신을 지켜나갈 여유가 있었다."(p.199)
"삶에 기대를 품는 것이 번번이 자신을 망친다는 결론에 이른 뒤로 미애는 가능한 한 희망을 가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다. 노력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다만 자신의 삶은 언제나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야만 했고, 그래서 희망을 부풀리는 능력이 불필요하게 발달한 거라고, 자칫하다간 다시금 눈덩이처럼 커진 희망 아래 깔려 죽을지도 모른다고 자신에게 수시로 경고하는 것만은 잊지 않으려고 했다. "(p.201)
"미애는 어떻게든 선우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썼지만 선우는 미애를 모르는 사람 대하는 듯 했고, 데면데면하게 굴다가 모든 게 자신이 부족한 탓이고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뒤 집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미애가 몇 번 더 문을 두드려봤지만 소용없었다. 미애는 웃기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하지 못하다는 생각, 비겁하다는 생각, 끝까지 좋은 사람인 척 구는 게 역겹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니, 이런 말을 듣고서도 도저히 포기가 되지 않고,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지긋지긋했다."(p.218)
자신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 한 타인을 생각할 삶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과 희망같은 건 품지 않으려고 자신에게 수시로 경고하는 사람의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