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는 것
시와 소금166 박해림(2023. 봄호)
성당 한쪽에 앉은 한 여성의 어깨가 오래 흔들립니다. 흐린 조명 아래 어머니 품속같은 실내가 포근합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좋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그 여성을 위한 자리이니까요. 평일 한낮의 시간, 개방된 성당에서 종종 기도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가끔 어깨가 흔들리는 사람들도 봅니다. 마냥 앉았다가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두 손을 모아 머리를 숙이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모두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미워할 수 없는 이들을 껴안기 위해 오늘도 자신과 화해를 청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친엄마가 미워서 기도하는 한 여성이 떠오릅니다. 어릴 때 친적에게 양녀로 맡겨진 이 여성은 성장한 후, 자신의 내력을 알고 친엄마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이해되기보다 원망과 미움이 점점 더해 갑니다. 기도하면서 이겨내려 애를 써보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몰랐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하느님을 원망해 봅니다.
친엄마와 키워준 엄마는 다 같은 엄마이지만 친엄마라서 밉고, 양엄마 또는 새엄마라서 모든 것을 밀어내고 모든 것이 싫고 미운 것이 세상 인심입니다. 친엄마가 야단치고 혼을 내는 것은 원망스러워도 넘어가지만, 양엄마나 새엄마가 그리했다가는 세상의 지탄을 받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제 새끼면 그리하지 않겠지? 라고 쉽게 말합니다. 친엄마가 훈계할 때 도가 넘어가도 친엄마니까 자식 사랑과 기대가 좀 지나쳐서 그렇다고 너그럽게 이해합니다.하지만 양엄마나 새엄마는 단지 친엄마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실과 진실은 자주 왜곡됩니다. 경우에 따라 마구 부풀려집니다. 진실을 알면서도 자신을 향한 연민이 지나쳐서 스스로 그렇게 피해자가 된 것처럼 착각하고 믿게 됩니다.
질곡의 시대, 험한 시절을 살아오신 보모님이 아직 많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많은 형제 중에 한사람입니다. 젊은 날 혼자된 어머니를 떠올리며 새삼 고마워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살기가 힘들어서 허리가 휘는데도 그 많은 자식들을 한명도 고아원에 보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부모가 제 자식을 고아원이나 남의 살이나 입양을 보내는 것을 원하겠습니까, 하지만 아직도 입학도 하지 않은 자식과 채 스무살도 되지않은 큰 아이까지 많은 자식들을 다 끌어안고 천신만고의 길을 걸어간 어머니를 떠올리면 그저 고맙고 또 고마운 마음 뿐이라 합니다. 좋은 것, 비싼 것 다 필 요 없었습니다. 그저 형제들이 헤어지지 않고 홀어머니와 함께 끝까지 한울타리에서 살 수 있었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어머니!
산소에 절을 하면서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기도하는 내용을 이제 바꿉니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고맙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이 고마움을 몰랐습니다. 늘 모든 것이 불만이었고, 늘 모든 것이 부족했기에 허기졌습니다.남과 비교되는 자신의 처지가 정말 싫었습니다. 원망도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부모님을 잘못 만난 운명을 타고 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의 아이가 말합니다. 아빠는 왜 돈이 없어요? 왜 제가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나요? 라고 말입니다. 아주 잘하지는 못했어요 웬만큼은 했다고 생각했는데 자식이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예전의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식을 보며 그 사람은 비로소 자신을 돌아봅니다. 다 잊었다고 생각한 지난날이 떠오릅니다. 자식과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성장하지 못한 내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정말 미안하다. 남들처럼 잘해주지 못해서, 부모 잘 못 만나 이렇게 되었구나.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자주 미안해했습니다. 남편의 죽음까지 미안해했습니다. 많은 자식을 호강시켜주지 못한 것을 내내 미안해했습니다.뼛속 깊이 미안해했습니다. 더 많이 가져야만 행복하다고 믿는 요즘 세태에서 미안하다는 말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무능함을 증명하는 말로 비칠 뿐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여전히 미안해 합니다.잘 해주지 못해서, 더 잘해주지 못해서 자식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못해서, 남들보다 더 잘해주지 못해서 끊임없이 미안해합니다.
고맙다는 말의 의미는 그 어느 말보다 단단하고 가치있는 말입니다. 인사치레일지라도 듣기에도 하기에도 참 좋은 말입니다. 입춘 지나 살 에이는 봄눈을 녹이는 말입니다. 마음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는 말입니다. 무엇이 고마운지 굳이 찾아내지 않아도 됩니다. 조금이라도 내게 잘한 것이 있다면 그것 고마운 일입니다. 나를 오해하지 않고 이해해 준 것도 고마운 일입니다. 내가 미쳐 알지 못했던 고마움이 보이는 고마움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행각해 봅니다. 그 많은 자식들을 한번도 끼니를 거르는 일 없이 끼고 살았다는 것, 먹고 입히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그 분은 어느 날, 죽고 싶었다는 말을 먼 훗날에 들었을 때는 한 번도 어머니의 입장을 생각해본 적 없는 자신을 처음으로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부모니까 자식이니까 마땅히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살이 문드러져 헤어져도, 죽어도 내 자식들은 한 명도 고아원에 보낼 수 없다는 혀를 깨무는 단말마의 비명 같은 말엔 마땅히라는 책무는 없습니다. 사람이나 마땅히 살려고 애를 쓸 뿐 입니다. 사람이란 얼마나 약한 존재입니까 또한 얼마나 강한 존재입니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 말을 지나가는 말처럼 툭 내뱉는 어머니, 병석에 누어 지나가는 말처럼 툭툭 내던지는 어머니의 그 말에 고마움이 뭔지 처음으로 깨달았다는 그 사람은 메마르고 팍팍한 자본주의 시대의 행운아입니다.
깨닫는 것은 아는 것보다 더 큰 축복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고마움이 뭔지 깨닫는 것보다 팍팍하고 건조한 우리의 삶에 고맙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놓쳤던 마음과 말은 나이가 들었다고 느낄 때 꽉 붇들어야 합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고맙나는 의미를 점점 더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