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여 시인의 언어여
낙타는 어째서 눈썹이 긴가? 낙타는 사막을 가기 때문이다. 허허벌판에 모래바람이 분다. 불타는 사자의 눈이라 해도 혹은 그것이 아름다운 사슴의 눈이라 해도 사막의 지평을 바라볼 수는 없다. 모래 언덕에서 뜨거운 모래바람이 앞을 가릴 때 오직 길을 잃지 않고 앞으로 갈 수 있는 것은 낙타뿐이다.
낙타는 어째서 등에 커다란 혹을 짊어지고 다니는가?
낙타는 사막을 지나가기 때문이다. 가도 가도 목이 타는 모래밭이다. 한 포기 풀도 없고 한 뼘의 그늘도 없다. 땅을 파도 물 한 방울 솟지 않는 죽음의 땅, 이 갈증의 길을 가려면 자신의 육신 속에 물을 저장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표범은 날쌔지만 갈증을 이길 수 없고, 침팬지는 영리하지만 그 뙤약볕을 이겨내지 못한다.
낙타는 가끔 운다. 낙타는 왜 슬퍼 보이는가? 사막의 길을 가기 때문이다. 표지판도 방향도 없는 모래 한복판에서 낙타는 긴 목을 빼고 가야할 먼 지평의 구름을 본다. 모래바람이 부는 목 타는 길이다. 쉬어갈 녹지는 너무나도 멀다. 그러나 선인장처럼 가시 같은 의지가 인도한다. 해도 달도 말을 것은 못 된다.
낙타 같은 언어를 갖고 싶다. 사자의 눈이나 사치한 사슴의 뿔 같은 언어보다도 사막을 건너가는 그런 낙타의 언어로 시를 쓰고 싶다. 지평을 바라볼 수 있는 기다란 목으로, 사풍(砂風) 속에서도 앞을 내다볼 수 있는 긴 눈썹으로 그리고 혀을 말리는 갈증을 제 스스로 적셔가는 등 위의 혹으로 내 생의 길을 걷고 싶다.
시는 푸른 초원에서만 살 수 있는 양떼가 아니다. 시는 맑은 호수에서만 살 수 있는 백조도 아니다. 더더구나 늪에서 뒹굴며 사는 하마는 아니다.
시인의 언어는 낙타이다. 멀고 먼 푸른 녹지를 향해서, 오늘의 모랫길을 걷는 낙타이다. 목 타는 생의 모래밭, 우물이 없어도 비가 내리지 않아도, 그늘이 없어도 제 몸으로 목을 적시며 살아가는 낙타이다.
낙타여! 시인의 언어여, 다시 무거운 생의 짐을 지고 일어나라. 아무리 지평이 멀어도, 너는 갈 수가 있다. 갈증을 일기고 모래바람을 막으며 너는 저 생명의 녹지를 향해 갈 수가 있다.
지은이: 이어령
출 처 : 『문학사상』197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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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몰아치는 모래바람을 긴 속눈썹으로 방어하며 눈썹 사이로 먼 지평을 바라보는 낙타, 숨통을 조여오는 사막의 갈증을 육신 속에 저장한 물로 목을 추기며 사막을 건너가는 낙타, 낙타의 이야기를 들으면, 언제였던가 사막지대에서 낙타를 타고 여행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쏟아져 내리는 태양 아래서 낙타 등에 올라 앉아 꺼덕거릴 때, 눈속에서 피어나던 동백꽃, 산수유 꽃을 생각했었습니다.
설도 지나고 이월입니다. 남도에서는 이미 동백꽃이 피었고 섬에서는 쑥들이 쑥쑥 자라고 있을 것입니다.
이월입니다.
그리고 곧 봄입니다. 아직은 두어 차례의 한파가 시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을 터, 그런들 어찌하겠습니까. 봄은 이미 우리들을 향하여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을, 우리 가슴에 봄꽃들이 하나 둘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을.
건강하십시오.
다시 뵙는 날, 유쾌한 웃음으로, 또 풍성한 이야기꺼리들 풀어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5.02.02 강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