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를 <아니의 호수>로 쓰겠다고 은향쌤께 약속한게 있어서… 이제야 리뷰를 올려요.
책을 더 깊게 보다가 쓰다가 쓴걸 다시 읽어보다가 그렇게 시간을 느리게 갖고 그림책을 다시 읽고 리뷰를 썼어요.
<아니의 호수>는… 뭔가 제안의 심연의 목소리와 조우하는 그런 책이어서 글을 쓰면서도 자꾸 제마음을 다독이면서 글을 썼던것 같아요.
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쓰고…
그래서인지 원래 글을 쓰는걸 어렵게 생각하는 편이 아닌데도 자꾸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며 썼구요.
이 책에 대한 감상은 미완이고
제 마음속의 아니와의 조우는 이제 시작했을뿐 여정은 아직 마무리 되지 않은것 같아서 글이 미완인것 같다는 다소 엉뚱한 결론을 내리면서…
미완이어도 일단은 이 글을 마무리 해야할것 같아 미루다 오늘 올립니다.
글을쓰면서 받았던 선물 하나는…
책에 대한 감상의 완성은 역시 글쓰기였나… 하는 생각이었어요.
생각의 단상을 공유하는게 쉽지 않은 저로서는 공유하는 글쓰기는 오랜만이라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아니의 호수>때 나누었던 책모임에서의 좋은 기운을 힘껏 받아 힘내서 리뷰글을 쓰고 올립니다.
후기를 쓰면서 알게 된건데… 후기는 마음에 드는 상대에 대한 애프터신청 같은 거더라구요.
좋았으니까 앞으로를 더 자주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 대해 더 알아가는 것 같은….
후기를 쓰는 동안 계속 만나게되는 ‘아니’와의 만남은 즐겁고 더 깊은 대화를 나눈듯해서 나중엔 아니와 친해진 기분까지 들더라는…ㅎㅎ
허브향 그림책방 회원님들도 각자의 후기를 써보시면서 그림책을 감상하시는 분들도 계신다면 이미 알고 있으시겠네요…
저도 그런의미에서 좋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감사하구요.
그럼.
후기 아래에 붙입니다.
2023.May.02
작성자: 영주
사람은 아무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이다.
흙 한 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가면, 유럽은 그만큼 작아진다.
그건 곶이 씻겨 나가도 마찬가지이고, 네 친구의 영지나 너 자신의 영지가 씻겨 나가도 마찬가지이다.
누구의 죽음이든 그것은 나를 줄어들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해서 저 종이 울리는지 알아보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그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 – 존 던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는 존 던의 시에서 따온 것으로 유명하다. 헤밍웨이가 존던의 시를 제목에 인용한것이 시안의 울림에서 자신이 쓰고자 했던 작품과 공명의 연결성을 찾았던것처럼 , <아니의 호수>역시 존던의 시와 연결성이 높은 작품이다. 인간은 섬과 같은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연결성에 존재에 답이 있으며 섬처럼 보일뿐 우리는결국 대륙의 일부이자 연결된 존재임을 존던의 시에서, <아니의 호수>에서… 그렇게 우리는 존재의 이유를 찾을수 있다
.
아니의 호수에는 세개의 검은섬이 있다. 이 그림책의 주인공인 아니역시 그녀가 매일같이 바라보는 ’섬‘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호수위 부표처럼 떠있는 섬이 되어 홀로 ’살아가는 시간’을 견디듯 살아가고 있는 아니에게 지난 그녀 어머니의 죽음은 더이상 아니의 눈을 바라봐주고 그녀의 눈이 호수처럼 아름다워보인다고 말을 건내주는 이의 부재를, 심연속으로 가라앉은듯한 일상속 적막을 의미한다. 그래서 호수 너머에 자신과 비슷한 누군가를 찾아나서는 기대조차 그에 대한 실망이두려운 상태의 아니의 표정은 늘 그녀가 입고 있는 옷처럼 짙은 어두움이 서려있다. 또한 그녀는 완전히 혼자 인것처럼 주위에 아무도 없다. 창백하게 푸르스름한 호수와 검은 숲만 있을뿐.
어느 폭풍우 치는 밤, 아니는 철저하게 고립된 자신과 세상의 간극에서 오는 극한의 우울이 공포스럽게 찾아오고 그 순간을 더는 견딜 수 없게 되었을때 아니는 고립을 끝내는 방법을 죽음이라는 생의 단절로 찾으려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단절의 시도끝에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존재가 이미 곁에 있었음을 발견하며 이 이야기는 드라마틱한 전환을 시작한다. 감정이라는 수면의 바닥까지 가서야 발견하게 되는 내면적 자아의힘과 조우 한듯한 아니는 이 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이너머의 존재와의 조우를 통해 확장과 성장을 보여준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 우리는 섬이 아니기에 우리에게 (모든 관계속에 있는)누군가의 죽음은 나의 세상에서의 누군가와의 공유했던 영역의 현재진행의 중단됨을 뜻하는 것이고 (관계의)죽음으로 인한 그와의 연결의 중단은 나의 세상의 일부가 줄어드는 것이기에 누군가의 (관계의)죽음을알리는 그 종소리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연결된 나 자신을 위해 울리는 것임을 아니와 호수와 섬의 관계성에서 읽어낼수 있다. 이 작품의 핵심적 이미지인 검은숲과 푸르스름한 호수와 고립된 듯한 아니의 이미지는 사실은 세상의 존재들이 불가피하게 연결되어 있음의 역설을 강조하고있으며 이러한 의미를 이해하며 <아니의 호수>를 보는 순간 시선의 확장을 경험할수 있게된다.
<아니의 호수>의 작가 키티 크라우더는 4살때까지 말을 하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선천적 난청의문제가 있었는데 부모가 장애를 인지하고 보청기를 달아준 6세까지 고요한 그녀의 세상과의 현실의 간극을 그녀는 상상 이너머의 세계로, 그녀 안으로의 침잠이 아닌 이너머를 보는 시선의 이동과확장으로 성장한 작가이다. 키티 크라우더는 그녀 안의 내면적 자아의 힘과 확장성을 작품속에서 구현하고 있으며 이러한 키티 크라우더의 확장과 성장은 독자들의내면과 강렬하게 조우하며 심상의 강한 치유력을 선물한다.
우리는 섬을 보며 존재의 고독과 홀로됨을 느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섬은 대륙의 한조각, 본토의 일부이며 수면아래로 내려가야만 섬이 대륙과 연결되어 있음을, 섬은 홀로 떠있는듯이 보일뿐 사실은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닳을수 있는 작품이다. <아니의 호수>속 아니와 작가 키티 크라우더는 그렇게 또한 연결되어 있다. 나와 키티 크라우더의 세계와의 연결성역시 이 작품을 보는 나의 감상안에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첫댓글 "후기는 마음에 드는 상대에 대한 애프터 신청"~ 설레며 읽었습니다. 나의 연결을 생각하며 신나하는 저는 아니와는 좀 다릅니다. 나는 누구와 누구?, 그(그녀)와 무엇으로, 나는 무엇과 무엇으로? 또 표면은?^^ 이러쿵저러쿵 갸우뚱 업 된 _까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