幽禽知(유금지) 無事猶成事(무사유성사) 掩關白日眠(엄관백일면) 幽禽知我獨(유금지아독) 影影過窓前(영영과창전)
산새는 아는가 일이 없어져야만 오히려 일을 이루게 되나니 사립문 닫아걸고 한낮에 졸고 있다네. 깊은 곳에 사는 새들이 나의 외로움을 알아차렸는지 그림자와 그림자가 이어지면서 창문 앞을 지나가는구나. |
위 '우음삼(偶吟三: 우연히 읊은 세 번째 시)' 선시는 경허 대선사가 읊은 선시 266편 중에 하나이며, 작가 최인호가 4권짜리 경허 일대기를 소설로 담아낸 '길 없는 길'의 집필 동기가 된 선시(禪時)이다. ‘길 없는 길’은 150만부 이상 판매고를 기록했다. 작가는 ‘일 없음이 오히려 나의 할 일(無事猶成事)’이라는 구절에 머리를 한 방망이 두들겨 맞고 불교의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고 한다.
경허 선사는 한국 근대 불교의 중흥조(中興祖)로 불리는 대선사다. 꺼져가던 조선 불교의 불씨를 되살려 한암(漢岩), 만공(滿空), 수월(水月), 혜월(慧月) 등의 선사들에게 이어지게 한 선사이다.
이조말엽 부패한 관리와 외세의 침탈로 국권과 주권이 사라지던 시절 백성들은 초근목피로 살아가던 어려운 시대에 경허 대선사는 국민의 정신적 의지처였던 한국불교의 불씨는 되살렸다. 그만큼 경허 선사의 존재는 불세출의 인물이다. 경허는 기인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을 조롱하는 달인 또한 아니었다. 일제말기 꺼져가던 한국 선맥의 중흥조이자 당대 최고의 스님이자 석학이었다.
허지만, 경허의 삶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파격을 통해 깨달음의 자유를 실천했고, 명분과 사상의 틀에 안주하기를 거부한 초인이자 대시인이었다. 그렇다고 경허의 허물이 감춰지지는 않고 비판과 비방을 낳았다. 그의 무애행각을 비난하기 전에 경허 대선사 일생 전체 행적을 꿰뚫어 보아야 할 일이다. 기행의 깊은 속뜻을 알아야 한다. 빙산의 일각인 기행을 보고 대사 전체를 평가 할 수 없다.
최근 경허 선사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천석꾼 거부였던 스님의 아버지 송두옥(宋斗玉)은 무능하고 부패한 관리들의 수탈로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화병으로 돌아가면서 가족은 해체되었다. 경허스님은 동학농민 운동 지도자 녹두 전봉준 장군과는 매제지간으로 동학혁명과 관련이 있는 증거가 수많은 선시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또 북쪽 강계와 삼수갑산에서는 머리를 기르고 유가적으로 생활하며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드러나 경허 선사가 자신의 기행을 감추기 위해 북으로 도피했다는 주장은 망상으로 지어낸 유언비어로 논할 가치가 없어졌다.
한국 근대 불교의 중흥조(中興祖) 경허 선사의 진면목을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선사를 비방하고 비판하는 글을 쓰지 말아야 할이다. 증거도 없는 소설 같은 비판은 글쓴이 자신과 한국 불교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 : 조현TV <홍현지 경허 연구소장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