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작년 여름, 15번째 성당을 다녀오고 나서 순례기를 올렸는데 홍보부에서 2탄을 올려 달라고 한다. 이제 40 여 곳을 돌며 부산 교구 성당을 반쯤 다녔다. 매주 한 번씩 찾아나서는 성당 순례에서 그날그날 느끼는 감동은 경건하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하고, 은혜로움이 확 밀려와서 가슴 저릴 때도 많았다. 성당에 가서 열심히 그 성당만의 특별함을 찾아보며 눈에 담아두려 했고, 미사 때도 신부님 모습부터 말씀까지 가슴에 담아두려 마음을 다했다.
가는 성당마다 새롭고, 신부님의 말씀도 다 다르며 느낌도 달랐다.
하지만 돌아보니 큰 틀에서의 기억은 성당 모습도 비슷하고, 미사전례도 비슷하고, 신부님의 말씀을 들으며 느끼는 감동도 시간이 지나며 비슷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성당을 돌며 그날 하루는 즐거운 여행자로 인근 곳곳을 다녔는데 그 추억이 더 많이 기억되니 어째 주객이 전도된 것 같기도 하다.
가을이 되면서 먼 곳의 성당을 찾았다. 가을의 정취도 좋고 하여 단풍 구경을 겸하여 가자 싶어서 기장 성당에 갔다. 부산역에서 한 시간 30분 정도 시간이 걸렸다. 작은 성당에서 미사를 보는데 본당 신부님은 휴가 가시고, 외부에서 오셨다는 머리를 빡빡 밀어 스님처럼 보이는 키 작은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 하였다. 외모도 특별 하시고 강론도 특이하게 개그를 섞어 많이 웃게 하며 열성적으로 하셨다.
항상 감사하며 긍정적인 마인드로 화를 삭이며 살란다. 그래도 화가 날 때는,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촛불 하나 켜고, 심호흡을 네 번 들이 마시고, 1분 쉬었다 큰 숨을 내쉬며 오장육부 안을 다 비우라며 열변을 토하셨다. 그러고도 화가 안 풀리면 빤스(신부님 표현)가 젖도록 몸을 흔들며 예수님께 대들어 보라고 하였다. 신나게 많이 웃었는데 울기도 한 것 같이 가슴이 뻥 뚫리는 체험을 하였다. 성당을 나와 시장 구경을 하고, 기장의 명물이라는 꼼장어 구이를 먹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한참을 더 달려 [장안사]라는 사찰을 찾았다. 깊은 계곡과 빨갛게 불타고 있는 단풍 산을 즐겼다. 절 뒤 대숲의 향기와 솔바람이 좋아서 스님들의 명상하는 모습을 생각하며 천천히 걸었었다.
남산 성당에 갔다가는 범어사를 찾고, 금곡 성당에 갔다가는 [가람낙조길]을 걸었다. 가람낙조 길은 멀리 바라보는 낙동강 전경만 환상적이고, 산책길은 데크로 된 계단이 많고 이름만큼 근사하지 않았다.
성지 성당을 다녀서는 초읍 수원지를 찾았다.
예전에는 부산 유일의 어린이 대공원이었는데 놀이시설은 작아지고, 저수지를 감싸고도는 편백나무 숲길이 운치 있고 그윽하였다. [녹담길] 이름도 어여쁘고 숲도 깊고 향기로웠다.
작고 예쁜 명지 성당에 갔다가는 바로 옆에 있는 부산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호산나 교회]와 그 주변 공원 돌아보고 을숙도에 갔다. 화창한 햇빛에 은빛으로 물결치는 갈대밭과 [에코 새 기념관]을 구경 하였다. 하구언 다리를 걸어서 건너 하단에서 지하철을 탔다. 어디서든 언제 다시 이 길을 걸을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무조건 많이 걷는다.
교우 분들이 유별나게 친절하여 기억에 남는 달맞이 성당이 생각난다. 교우 분들 모두 상냥하게 어디서 왔냐며 인사 챙겨 주고, 신부님께서는 순례 다닌다고 하였더니 선물까지 주셨다. 작은 탁상용 성화 액자이다. 신부님께 받은 선물은 그림도 성화지만 그냥 그 자체로도 성물인 것 같아 고이 간직하고 있다. 또 남산 성당 교우 분들도 참 친절하였다. 마주치는 분마다 해맑게 웃으며 반겨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겨울에는 해가 짧고 추워서 영도에서 가까운 성당을 돌며 주로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수영성당은 지난 5월에 축성하여 반짝반짝 깨끗하게 빛나고, 중앙 외벽의 예수님과 마당의 성모님상이 백색의 간결하고 단순한 곡선으로 조형되어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모던한 조각미술품을 연상하게 하였다. 미사 후에 수영천 다리를 건너서 Knn 방송국 아트센터에서 전시하는 [지오그래픽 사진전]을 보았다. 경이로움이 느껴지는 바닷속 풍경, 사막풍경, 무리지은 동물들의 여러 모습과 사람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들이었다. 멋진 안목의 앵글로 찍은 많은 사진을 정말 잘 보았다.
못골 성당에 갔다가는 시립 박물관에서 하는 [터키 이슬람 유물전]을 보았다.
서면 성당, 영주동 성당, 초량 성당, 사직 성당, 아미 성당, 문현 성당을 찾은 날에는 가까운 극장을 찾아서 영화를 보았다. 친구와 난 영화도 같이 좋아해서 여러 편을 보았다.
주로 힘들게 제작하였다는 다큐멘터리와 독립 영화를 사명감(?)을 가지고 보았다.
[부러진 화살][26년][두 개의 문][화차][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등등.....
또 우리 신부님께서 강론 중에 스토리를 다 이야기 해주시며 꼭 보라 하였던 [레미제라불]도 보았다.
부곡성당은 나의 영세 대모님이 계셔서 연락을 하고 갔다.
산중턱에 있으며 규모가 상당히 컸다. 동산도 있고 마당에 [십자가의 길] 14개처도 꾸며져 있었다. 성전 안은 천장이 높고 둥글게 되어 있으며, 창문이 작고 어두워서 중세의 성당을 떠올리게 하였다. 대모님을 따라 노인대학 종강식에도 참석하고 점심까지 같이 먹었다.그날 신부님은 조곤조곤한 음성으로 말씀하였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시선으로 사물을 보아야 하고, 자세히 정확하게 잘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내가 갖지 않은 상대방이 가진 많은 것을 보라.”
겨울이 지나고 꽃망울이 열리는 봄이 오며 꽃구경을 테마로 하는 순례를 하였다.
안락성당 갔다가 충렬사에 갔는데 큰 매화나무에 꽃망울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장관이었다. 숲이 좋고, 산수유, 목련, 매화, 명자꽃들이 꽃봉오리만 달고 있고 피기 전이어서 아쉬워하며 나왔다. 2주 뒤에 연산성당을 갔다가 다시 충렬사를 찾아 흠뻑 꽃구경 하고 왔다. 성당에도 갖가지 봄꽃들이 피어서 열심히 보아주었다.
온천성당에 갔다가는 금강원에 갔다. 예전에 여러 번 갔던 곳인데 많이 변해 있었다. 식물원도 없어지고, 앞으로 도로가 넓게 나며 금강원 안의 평지는 없어지고 산을 타며 등산만 하고 왔다.
벚꽃놀이는 초장성당에 갔다가 일부러 마을버스 타고 간 감천 문화마을에서 하고 왔다. 문화마을은 기대보다 동네가 작고 볼거리가 별로였는데 안쪽에 벚꽃길이 근사했다. 꽃이 질 때라서 바람에 휘날리는 꽃비가 무슨 하늘의 축제 같았다. 주민들이 갈아놓은 텃밭 밭두렁에는 화사한 금낭화가 줄줄이 붉게 피어 있었다.
감천 문화마을 입구에 있는 아미 성당은 산만딩에 있어서인지 내가 다닌 성당 중에서 제일 작고 가난한 성당 같았다. 창고식인 낡은 성전도 볼품없고, 보기 좋은 나무 한 그루 없는 작은 시멘트바닥 마당도 초라했다. 주보를 찾아서 보니 일요일 미사도 단 2대(교중미사와 밤 미사)이고, 일주일 총 봉헌금과 교무금이 200만 원이 안 되었다.
신부님의 말씀은 간단했는데도 울림이 있어 감동스러웠다. 나올 때 인사해주시는 신부님 얼굴이 미사 때와 달리 유난히 환하게 빛나서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친구와 서로 가슴이 울컥하는 감동은 받았는데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다며 마주보고 고개를 갸웃했었다.
지난주에는 해운대 성당을 찾았다.
박혁(스테파노) 신부님도 뵙고, 해운대 달맞이 길도 걷고, 친구가 안 가 본 추리문학관에도 가서 커피를 마시며 대문호들의 사진을 많이 보았다.
해운대 성전은 좀 특별했다.
제단 중앙에 십자가상 대신 타일 모자이크로 성화가 있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많이 보았던 모자이크 그림으로 두 팔 벌린 예수님과 성모님과 여인들이 화사한 색체로 꾸며진 벽화였다. 친구는 예수님이 춤추는 모습 같다 하고, 난 두 팔 벌려 ‘나에게 오너라!’ 하는 모습 같았다.
미사 후에 박신부님께 인사드리며 여쭈어봤더니 각자 느낌대로 보라고 하였다.
힘드신지 수염도 깍지 않아 부스스 하고, 입술도 부풀어 있는 모습이 우리성당에 계실 때보다 나이 들어보였다. 허기야 강산이 변한다는 십 년 세월이 흘렀는데, 난 지나간 시간은 잊고 젊고 싱그러웠던 예전모습만 그렸었나보다.
압축해서 쓰려하니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고, 글솜씨는 부족하고 뒤죽박죽 나열 한 것 같다. 하루를 기쁘게 신나게 다녔더니, 일주일이 빠르게 지내졌다. 어느 성당을 어떻게 갔다가 어디를 돌아보고 올까 궁리하는 시간도 흥겨웠고, 바쁘지 않게 느긋한 마음으로 버스타고 다니며 차창 밖으로 풍경 바라보는 것도 여유를 느끼며 즐거웠다.
하루만은 일상을 벗어나서 하느님을 찾는 착한 순례자가 되고, 내가 사는 지역의 아름다움을 찾는 행복한 여행자가 된다. 무한 자유와 평화 누리며, 호강하며 사는 것 같다. 호호호호......
그리고 같이 즐거워하며 다니는 마음 꼭 맞는 친구가 항상 곁에 있어서 고맙다. 하느님이 내게 특별히 인복을 많이 주신 것에 늘 감사드린다.
첫댓글 순례기는 누군가 많이 읽어주네요. 댓글도 남겨주면 더 고맙겠는데......
이방에 들와 주시는 분,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