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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평(문학춘하추동 2026 여름호/제14호)
참신한 착상과 새로움에 대한 모색
김 석 철
문학춘하추동 고문
문학은 인간이 창조한 가장 심원한 예술이며, 인간의 갈망을 실현시키는 이상임에 틀림없다. 예전부터 문학은 인간 구원과 사회 정화의 길잡이이며, 영혼을 깨우치는 스승이라고 했다. 문학은 인간의 이성과 감성이 빚어낸 예지의 결정이며, 순연한 영혼이 서식하는 진실의 집합체가 아니던가. 따라서 문학의 향기는 반만년을 넘겼고, 내다보면 문학의 길은 천리만리 영원하다. 그러기에 예술에 대한 문학적 사색과 끊임없는 언어의 연금술사로서 문학예술의 지평을 확대 심화시키는 일은 우리 문인의 사명이라고 할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문학 중에서도 시와 시조는 넓은 의미로는 하나의 장르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법령으로 정하여 각기 독립 장르로 구분하고 있다. 시와 시조는 가장 짧은 운문이며 그 특성 또한 유사한 점이 많지만, 시조는 시인데, 시는 시조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러면 『문학춘하추동』 2026년 봄호(제13호)에서, 먼저 ‘시조 창작의 멋’란에 수록된 작품들에서 골라 보았다. 거론 순서는 책의 편집 순서에 따른다. 시조는 우선 정해진 형식에 따라 창작되어야 하고, 율격을 갖추어야 하며 참신한 시상으로 함축의 묘미를 살려야 한다.
뭐 하다 이제 왔노 어여쁜 나의 사람
꽃답던 그 시절들 별 좇아 허랑허랑
이제사 뒤늦은 사랑 아린 가슴 토닥인다
- 김신아, 「어여쁜 나의 사람」 전문
이 작품은 김신아 시인의 발표작 네 편 중에서 고른 단시조다. 짧은 형식 속에 그리움과 뒤늦은 사랑의 정서가 잘 응축되어 있으며, ‘늦게 돌아온 사랑’에 대한 회한과 따스한 수용을 담고 있다.
초장의 내구(전구) “뭐 하다 이제 왔노”는 원망이 아니라 정겨운 타박으로 들리며, 외구(후구) “어여쁜 나의 사람”으로 이어지며 곧바로 애정의 회복이 이루어지고 있다. 물음의 형식으로 시상를 열어, 오랜 그리움과 기다림을 단번에 드러낸다. 책망인 듯, 반가움인 듯, 그 경계의 감정이 매력적이다.
중장의 “꽃답던 그 시절들”은 젊음의 찬란함을 압축적으로 잘 살린 표현이며, “별 좇아 허랑허랑”은 꿈을 좇던 방황의 세월을 시적으로 잘 형상화하고 있다. 아름다웠던 젊은 날들이 뚜렷한 목적 없이, 혹은 이룰 수 없는 꿈을 좇아 흘러가 버렸음을 담담히 회상한다.
종장에는 시 전체의 감정이 모인 형국이다. "이제사"라는 부사 하나가 늦음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지며, "아린 가슴 토닥인다"는 표현은 스스로를, 혹은 서로를 달래는 행위로 읽히는데, 슬픔을 정면으로 내세우지 않고 어루만지는 방식으로 처리한 점이 절제의 미덕을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한(恨)과 정(情), 체념을 넘어선 수용이 균형 있게 어우러진 장점이 있으며, 정서 전달이 자연스러워, 읽고 난 뒤 가슴 한켠이 은근히 먹먹해지는, 잘 여문 시조다.
개울물 굽이도는 언덕 위 뜨락 앉아
백로 떼 날갯짓에 시 한 수 길어낸다
머물러
피어나는 곳
꽃밭이라 부르리
- 김유영, 「꽃밭」 전문
이 작품은 자연과 시의 합일을 담은 정갈한 서정시조로 여백과 절제가 돋보이는 완숙한 작품이며 ‘머묾’의 미학을 아름답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한마디로 머무는 자리에서 피어나는 삶과 시를 “꽃밭”이라 부른, 깊이 있는 시조다.
초장 “개울물 굽이도는 언덕 위 뜨락”은 이미 한적하고 평화로운 공간이 설정되며,
중장 “백로 떼 날갯짓에 시 한 수 길어낸다”는 자연의 움직임이 곧 시조 창작으로 이어지는 시적 합일의 경지이다.
종장에서는 “머물러/ 피어나는 곳”을 “꽃밭”이라 규정하며 단순한 장소가 아닌 존재의 의미 공간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자연 속 머묾에서 시조의 탄생, 그리고 삶의 깨달음이라는 사상의 흐름을 지닌 현대시조다.
지리산 화개동천 맑기가 한량없고
솔바람 산그늘에 차향기 가득하네
깊은 골
바라만 봐도
별천지를 닮는다.
- 남기철, 「신선이 되어」 전문
「신선이 되어」는 수록된 남 시인의 세 편 중에서 골랐는데, 노년의 관조적 시선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제목 그대로 속세를 벗어난 맑고 고요한 경지를 품격 있게 그려낸 서정시조이며, 자연 속에서 신선(神仙)의 경지를 체험하는 순간을 담고 있다.
초장의 “지리산 화개동천 맑기가 한량없고”는 인간 세계를 넘어선 듯한 청정한 이상향을 제시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영산(靈山)을 배경으로 삼아 시조의 격을 높이고 있는가 하면, “화개동천(洞天)”이라는 말 자체가 신선 세계를 뜻하여 작품의 주제와 절묘하게 잘 맞아떨어진다.
중장의 “솔바람 산그늘”은 바람과 그늘이 어우러진 시각적·촉각적 이미지가 뛰어나며, “차향기 가득하네”에서는 화개 지역의 차 문화를 떠올리게 하면서 동시에 공간의 현실성과 상징성을 확보해주고 있어, 단순한 풍경을 넘어 오감(후각/嗅覺)의 깊이까지 더해지는 느낌이다.
종장에서 “바라만 봐도/ 별천지를 닮는다”는 현실의 공간이 곧 이상세계로 전환되는 깨달음을 보여준다.
이 시는 시인의 순수한 눈에 포착된 소재를 참신한 시상으로 전개하고 있는 바 자연과 감각, 초월의 흐름이 매우 자연스럽다.
회초리에 파닥이다 그물 속에 생포되어
이 세상 모퉁이에 떨고 있는 새 한 마리
그때 그 아픈 기억을 지울 수가 있을까
하필이면 나였나요, 신을 향해 손 모아도
영혼을 옭아맨 듯 그림자로 쫓아오는
고통이 들끓던 바다 심연같이 어두웠다
피멍울 사라지고 한쪽 무릎 세운 오늘
꺾인 날개 힘을 싣고 자유 향해 파닥일 때
여명이
손짓을 한다
동녘으로 길을 튼다
- 라현자, 「여명의 손짓」 전문
「여명의 손짓」은 학교 폭력에 대하여 절절하게 상처와 극복의 서사를 담아낸 연시조다. 특히 ‘학교 폭력’이라는 현실적 주제를 시조로 승화한 의미 있는 작품으로, 폭력의 상처, 절망, 저항, 회복, 희망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서사를 지닌다.
첫수에서는 피해자의 심리와 상황을 매우 선명하게 전달하는데, “그물 속에 생포되어/ 떨고 있는 새 한 마리”는 피해자의 상태를 무력하고 고립된 존재로 상징화한 탁월한 비유이다. 특히 종장의 “그때 그 아픈 기억을 지울 수가 있을까” 는 하찮은 회상이 아니라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드러내고 있다.
둘째 수에서는 감정의 밀도가 가장 높은 부분으로, 절망의 심연을 설득력 있게 구축하고 있다. 초장의 내구 “하필이면 나였나요,”는 피해자의 가장 본질적인 질문, 즉 존재적 부당함에 대한 절규가 잘 드러나며, 외구 “신을 향해 손 모아도”는 구원의 부재, 혹은 응답 없는 기도의 상황을 보이며, 중장에서는 “영혼을 옭아맨 듯 그림자로 쫓아오는”이라 하여 트라우마의 지속성과 집요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종장의 “심연같이 어두웠다”는 고통의 깊이를 단정적으로 마무리하며 강한 여운을 남긴다.
셋째 수에서는 극복과 희망으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초장의 “피멍울 사라지고” 는 치유의 시작을 의미하고, “한쪽 무릎 세운 오늘”은 완전한 회복은 아니지만,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중장 “꺾인 날개 힘을 싣고 자유 향해”는 상처 입은 존재가 다시 비상하려는 강한 이미지의 표현이며, 종장 “여명이/ 손짓을 한다/ 동녘으로 길을 튼다”에서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넘어가는 극적인 전환이 매우 아름답다. 여기서 “여명”은 그냥 아침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 재생(再生)의 상징으로 잘 살아 있다.
이 시조에서는 “새”는 피해자, “그물”은 폭력의 구조, “그림자”는 트라우마, “바다 심연”은 절망의 깊이, “여명”은 희망과 회복 등으로, 상징체계가 일관되고 명확하여 독자가 쉽게 공감하면서도 깊이 있게 읽을 수 있는 강점이 있는 작품이다.
어둠에서 성장하는 동그란 고운 얼굴
삶이, 짧다 해도 머금은 맘 만섬이요
동산에 해 떠오르면
온몸은 해가 된다
- 류숙자, 「이슬」 전문
「이슬」은 짧은 형식 속에 삶의 본질과 존재의 완성을 응축한, 매우 맑고 철학적인 시조로서 간결하면서도 깊은 울림이 있다. 이 작품은 짧은 생(生) 속에서도 충만하게 존재하는 삶의 가치를 노래한다.
초장 “어둠에서 성장하는”은 이슬이 밤 사이 맺히는 자연의 이치를 통해 보이지 않는 시간의 축적을 암시하며, “동그란 고운 얼굴”은 이슬의 형상을 따스하고 사랑스럽게 형상화하여 존재 자체를 귀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드러난다.
중장 “삶이, 짧다 해도 머금은 맘 만섬이요”는 이슬의 덧없음을 인간 삶의 유한성으로 확장하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덧없음 속의 충만함이라는 역설적 미학이 중심을 이룬다. “만섬”은 가득 참, 혹은 넘침의 이미지로 읽히며 작은 이슬 하나가 품은 세계가 무한함에 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종장 “동산에 해 떠오르면/ 온몸은 해가 된다”는 이슬은 해가 뜨면 사라지는 존재이지만 여기에서는 ‘사라짐’을 ‘소멸’이 아니라 빛으로의 전환, 일체화로 승화된다. 이는 불교적 세계관에서 말하는 소멸이 곧 귀의(歸依)이며 합일(合一)이라는 사유와도 통하는 시적 비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이슬 한 방울에 삶의 전부를 담아낸, 맑고 깊은 시조’인데, 특히 “동그란 고운 얼굴”(정감), “만섬”(철학성), “해가 된다”(초월성) 등 이 세 축이 매우 안정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점이 특이하게 여겨진다.
얄궂은 짓이로다
어디 한번 안겨 봐
순결은 아무에게나
베푸는 게 아닌데,
하얗게
까무러치니
은근슬쩍 품는다
- 박무성 / 함박눈
「함박눈」은 짧고 경쾌한 형식 속에 유희적 감각과 은근한 의인화의 묘미가 살아 있으며, 순결과 유혹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그린 작품이다. 화자의 개성이 두드러진다.
초장 “얄궂은 짓이로다/ 어디 한번 안겨 봐”는 함박눈을 의인화하여, 눈을 장난기 있는 존재로 설정하여 유혹과 장난스러움이 동시에 드러난다.
중장 “순결은 아무에게나/ 베푸는 게 아닌데,”는 눈의 ‘하얀 이미지’를 “순결”로 연결하면서 약간의 도덕적 거리두기 또는 망설임을 표현하고 있다. 초·중장은 끌림과 경계가 공존하는 심리를 잘 포착하고 있다.
종장 “하얗게/ 까무러치니/ 은근슬쩍 품는다” 이 부분이 이 작품의 백미이다. “하얗게 까무러치니”는 눈이 쏟아지는 순간을 과장되게 표현하여 시각적 강렬함과 익살을 동시에 살리고 있다. 또 “은근슬쩍 품는다”는 결국 유혹에 응하는 모습으로, 앞선 ‘경계’가 ‘수용’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즉, 거부, 흔들림, 수용의 짧은 드라마가 완성된다.
이 작품은 의인화가 매우 자연스럽고 효과적이며, 언어가 간결하면서도 생동감 있는가 하면 해학과 서정이 절묘하게 결합한다. 이 작품은 단순히 ‘눈’ 이야기로도 읽히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삶 속에서 마주하는 유혹과 그에 대한 인간의 태도, 혹은 순수함과 욕망 사이의 미묘한 관계로도 해석할 수 있다. 짧지만 의인화와 해학이 살아 있는 경쾌한 시조이며, 읽는 재미와 여운을 동시에 주는 다층적 의미를 지닌 장점을 지닌다.
여자만 펄 배 타고 짱뚱어를 낚는 어부
갯벌을 밀치면서 이리저리 미끄러져
홀치기 낚시 어법이 번개처럼 재빠르다.
죽치고 바라보던 서식 굴 쪽 왜가리들
만찬을 즐기려면 참는 법도 상책인데
부리의 날카로움에 철 목어가 걸려든다.
어부와 왜가리는 낚아챔이 사는 방식
잡히면 죽음으로 생사 갈린 갯벌 살이
다양한 삶의 무게로 날것들이 굼틀댄다.
- 송귀영, 「펄 속의 생사」 전문
이 작품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역동적인 현장감'이 돋보이는 연시조다. 생존의 긴장감이 느껴지는 첫수와 둘째 수에서는 여자만 갯벌을 배경으로 짱뚱어를 낚는 어부와 이를 지켜보는 왜가리의 대비가 선명하다. 특히 “번개처럼 재빠른” 어부의 손놀림과 “날카로운 부리”를 가진 왜가리를 통해, 갯벌이 그냥 자연경관이 아니라 치열한 생존의 각축장임을 잘 드러내고 있다. 셋째 수는 철학적 승화 부분이다. 어부와 왜가리의 행위를 “낚아챔이 사는 방식”으로 정의하며, 생과 사가 갈리는 갯벌의 섭리를 “날것들의 굼틀거림”으로 표현한 대목이 압권이다. 삶의 무게를 관조적인 시선으로 품어낸 마무리가 완벽하다.
순간을 예측 못 할 천년의 우리에서
망각의 덫을 밟고 별을 세는 등성이
외로움, 흔적 하나로 외로 가는 미로 속
애써 외면했던 그 모습의 그림자는
누추한 눈빛 조금씩 흐려올 때
쇠잔한 꿈이 남아서 허풍스레 웃었다
속내 모르는 그리움에 밤이 긴 날은
해소기 거친 숨결 그늘진 눈자위에
키 작은 소망으로 해 준비 없는 날은 간다.
- 양점숙, 「시간과 시간 사이」 전문
이 작품은 '시간의 흐름 속에 마모되어 가는 인간의 내면'을 밀도 있게 그렸다. 망각과 소외의 이미지 “망각의 덫”, “외로 가는 미로”와 같은 시구를 통해 현대인이 느끼는 근원적인 고독을 형상화하고 있다. 특히 “쇠잔한 꿈이 남아서 허풍스레 웃었다”는 둘째 수의 종장은 화자의 자조적인 성찰이 느껴져 그 여운이 깊다.
셋째 수에서 감각적 묘사인 “해소기 거친 숨결”, “그늘진 눈자위” 등 신체적 고통이나 쇠락의 징후를 직접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세월의 흐름을 관념이 아닌 실체적인 아픔으로 전달하고 있다. 특히 주제를 암시하는 마지막 결구는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서성이는 인간의 숙명을 보여주며, 제목인 “시간과 시간 사이”가 결국 우리가 살아내야 할 막막하지만 피할 수 없는 공간임을 시사한다. 이 작품은 시간, 즉 내면의 쇠락하는 소망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
화자는 내면의 시간에서 '누추하고 고독한 그림자'를 발견한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그리움을 견디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문장이 유려하고 비유가 적절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삶의 앞면과 뒷면을 동시에 들여다보게 하는 끌림이 있는 작품이다.
청년이 반한 처녀 처녀가 반한 청년
절반씩 보탠 사랑 부부로 뿌듯한 삶
천년을 더 살 것 같던 지난날은 하루였네
- 이광호, 「천년을 더 살 것 같던」 전문
이 시조는 인생의 황금기와 황혼기를 “하루”라는 찰나의 시간으로 압축해낸, 절제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초장과 중장은 인생의 가장 찬란했던 시절을 대칭 구조를 통해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어 완벽한 대칭과 조화의 미학을 보인다.
초장의 “청년이 반한 처녀, 처녀가 반한 청년”은 연애 시절의 설렘과 상호 간의 평등한 사랑을 운율감 있게 표현했다.
중장의 “절반씩 보탠 사랑”이라는 표현도 인상적이다. 결혼과 부부의 삶을 어느 한쪽의 희생이 아닌,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는 '합(合)'으로 정의하며 삶의 충만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조의 백미는 단연 종장에 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사랑의 에너지와 청춘의 기상이 노년에 이르러 돌아보니 결국 “하루”처럼 짧았다는 고백이다. 이는 불교적 무상(無常)의 정서와 맞닿아 있으면서도, 결코 허무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만큼 그 “하루”가 밀도 있고 행복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시간의 압축과 인생의 허무를 담고 있다.
단시조 한 수 짧은 형식 안에 ‘만남과 결합, 회고’라는 인생의 대서사시를 군더더기 없이 담아내며, 시조의 틀을 정확히 지키면서도 구어적인 자연스러움이 살아있어, 독자에게 읽는 맛과 깊은 공감을 동시에 선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사랑의 영원성'과 '시간의 유한성'이라는 모순된 주제를 매끄럽게 연결하고 있으며, 젊은 날의 뜨거웠던 약속(천년)과 황혼기에서 느끼는 시간의 가속도(하루)를 대비시킴으로써, 지금 곁에 있는 인연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담백한 문장 속에 삶의 관조가 깊게 배어 있는 온기 있는 작품이다.
가까워 놓칠세라 멀어지면 못 닿을까
한 발짝 한 걸음씩 나붓이 놓여있다
샛강에
맨발로 엎드린
그대 빈 등 밟고 간다
- 이남순, 「징검돌」 전문
이 「징검돌」은 짧은 시조 형식 속에 관계의 미묘한 거리감과 정서를 섬세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가까워 놓칠세라/ 멀어지면 못 닿을까”라는 초장은 인간관계의 본질적 역설을 잘 짚어내고 있다. 너무 가까우면 오히려 소중함을 잃고, 멀어지면 닿지 못하는 불안의 긴장감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정서이다. “징검돌”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관계의 간격’과 ‘이어짐의 매개’를 상징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중장의 “한 발짝 한 걸음씩 나붓이 놓여있다”는 표현은 징검돌의 배열을 시각적으로 부드럽게 그려내면서, 동시에 관계를 조심스럽게 이어가는 태도를 암시한다. 특히 “나붓이”라는 부사가 특히 돋보이며, 긴장 속에서도 섬세한 정서를 살린다.
종장의 “샛강에/ 맨발로 엎드린/ 그대 빈 등 밟고 간다”는 이 작품의 백미이다. 이 작품에선 특히 이미지와 비유의 새로움을 발견하게 된다. “샛강”은 관계의 흐름, 혹은 감정의 경계, “맨발”은 꾸밈없는 진정성, “엎드린 그대”는 헌신 혹은 낮아짐, “빈 등”은 말 없는 수용, 혹은 희생 등 이러한 이미지들이 겹치면서, 타인의 희생 위를 디디고 관계를 이어가는 인간의 아이러니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시조는 겉으로는 부드럽고 잔잔하지만, 내면에는 다소 아릿한 감정이 깔려 있다. 특히 종장의 후구는 읽는 이로 하여금 윤리적·정서적 울림을 느끼게 하며, “밟고 간다”는 표현은 그냥 이동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의 미안함과 의존을 동시에 환기한다.
이 작품은 상징과 정서를 밀도 있게 응축해낸 점이 돋보이며, “징검돌”이라는 소재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배려, 그리고 보이지 않는 희생을 깊이 있게 형상화하고 있는 점이 특출하다.
어둠을 깨뜨리고
힘차게 솟아오른
병오년 새벽 광채
삼봉을 품었구려
가녀린
소원의 기도
나래 되어 펴소서.
- 이성범, 「삼봉 일출」 전문
「삼봉 일출」은 이 시인의 네 편 중에서 고른 작품으로, 장엄한 자연현상과 개인의 소망을 결합한, 밝고 상승적인 기운이 돋보이는 단시조다.
초장의 “어둠을 깨뜨리고/ 힘차게 솟아오른”은 일출의 역동성을 강하게 포착한다. “깨뜨리고”라는 동사는 그냥 밝음이 아니라 어둠을 극복하는 의지와 힘을 부각시키며, 시 전체의 기조를 힘차게 열어준다.
중장의 “병오년 새벽 광채/ 삼봉을 품었구려”에서는 시간(병오년)과 공간(삼봉)이 결합되며, 특정한 순간의 신성성과 역사성이 더해진다. 특히 “품었구려”라는 표현은 자연과 화자의 감정이 하나로 포개지는 따뜻한 시선을 보여준다.
이미지와 상징을 살펴보면, “일출”은 시작, 희망, 재생(再生)의 상징이며, “삼봉”은 굳건함, 자연의 장엄함, 혹은 정신적 지주, “광채”는 축복, 계시적 순간을 내포하고 있고, 이러한 이미지들이 결합되어, 평범한 풍경 묘사를 넘어 새로운 출발을 향한 축원(祝願)의 시상으로 확장됨을 알 수 있다.
특히 종장의 “가녀린”은 인간 소망의 연약함을 내포하고, “나래”는 비상, 실현, 자유의 의미를 함유하고 있으며, 매우 부드럽고 간절하게 전달된다. 즉, 연약한 소망이지만 날개를 달고 현실로 펼쳐지기를 바라는 염원이 잘 드러난다. 초·중장의 장엄한 자연에 비해 종장은 인간적인 소망으로 내려오면서, 대비 효과도 자연스럽다.
이 작품은 장엄한 자연의 순간을 배경으로 인간의 소망을 겸허하게 담아낸 서정적 시조다. 특히 초장의 역동성과 종장의 간절함이 잘 대비되며, 전체적으로 밝고 희망적인 시상이 안정적으로 흐른다.
밥 내음 그득하게 온 마을에 퍼진다
담 넘어 들려오는 아이들 웃음소리
온전한
저녁 한 끼에
버거운 삶 날린다
= 정미란, 「저녁 풍경」 전문
이 시조는 매우 절제된 언어 속에서 삶의 본질적 따스함을 포착한 작품이다. 짧지만 울림이 깊은, 시조의 전형적인 장점을 잘 살리고 있다.
먼저 초장의 “밥 내음 그득하게 온 마을에 퍼진다”는 시각보다 후각을 앞세운 감각적 접근이 돋보인다. “밥 내음”이라는 소재는 한국적 정서의 근간을 이루는 상징으로, 공동체적 온기와 생존의 안도감을 동시에 환기한다. “온 마을에 퍼진다”는 확장성 또한 개인의 저녁이 아닌 ‘함께 사는 삶’으로 시야를 넓혀 준다.
중장의 “담 넘어 들려오는 아이들 웃음소리”는 공간의 경계를 넘는 생명의 소리이다. “담”이라는 경계가 있지만, 소리는 그것을 넘어 이어진다. 이는 물리적 분리 속에서도 정서적 연대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앞 소절의 “밥 내음”과 자연스럽게 호응하며 마을의 따뜻한 저녁 풍경을 입체적으로 완성한다.
종장의 “온전한/ 저녁 한 끼에/ 버거운 삶 날린다”는 이 작품의 핵심이다. “온전한 저녁 한 끼”라는 소박한 조건이 “버거운 삶”을 날려버릴 수 있다는 인식은, 삶의 구원이나 회복이 거창한 데 있지 않음을 담담하게 드러낸다. 특히 “온전한”이라는 표현이 아주 적절하게 사용되었다. 그냥 식사가 아니라, 정서와 관계까지 포함된 충만한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밥”과 “웃음”이라는 가장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삶의 본질적 위안을 건드린 점에서 매우 세련된 완성도를 보여준다. 삶의 길목에서 느끼는 정감의 폭이 넓어서 좋다. 군더더기 없이 맑고 온기 충만한 시조라고 하겠다.
꼿꼿한 바른 자세 형형한 눈빛으로
나이보다 젊은 기백 총기도 출중하여
아직도 배울 게 많다며
공부하는 노익장.
- 정순량, 「노익장」 전문
이 시조는 자연스럽게 읽히면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며, 세월의 무게에 굴하지 않고 학구열을 불태우는 현대적 노년의 당당함이 잘 느껴지는 작품이다.
초장은 “꼿꼿한 바른 자세”와 “형형한 눈빛”을 통해 외양에서 풍기는 기품을 잘 드러냈다.
중장은 “기백”과 “총기”라는 단어를 사용해 내면의 에너지를 강조하며 초장의 이미지를 구체화한다.
종장은 시조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첫 3음절 “아직도”라는 부사가 주는 여운이, 배움에 대한 끝없는 열망을 효과적으로 강조한다.
내용 및 이미지 면에서 “나이”라는 물리적 시간과 “젊은 기백/ 총기”라는 정신적 태도를 대비시켜 제목인 “노익장”의 의미를 선명하게 부각하며 대조의 묘미를 살리고 있다. 또, 과거의 노익장이 주로 육체적 강건함을 뜻했다면, 이 시조에서는 '공부하는 모습'을 통해 지적인 노익장의 가치를 조명한 점이 참신하다. 끊임없이 자기를 계발하는 현대 노년의 이상향을 보여준다. 그 외에 “형형한”, “총기”, “출중” 등 다소 선이 굵은 한자어들이 사용되어 작품 전체에서 선비 같은 강직함과 힘이 느껴지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외면의 당당함(초장)에서 시작해 내면의 총기(중장)를 거쳐, 배움에 대한 겸손과 열정(종장)으로 이어지는 시상의 흐름이 매우 매끄럽다. 특히 “배울 게 많다”라는 겸허한 자세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건강한 정신이 깃든 시조다.
오르는 듯 내려서고
내리는 듯 비껴올라
등줄기 고운 능선
한 천년이 숨을 쉰다
버선발 새아씨 자태
저보다 더 고우련가
- 진길자, 「고궁의 지붕」 전문
이 작품은 구별 배행의 단시조로 한국적인 곡선미와 정적인 우아함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한 섬세한 표현들이 눈에 띈다. 참신한 감성으로 서정의 세계를 새롭게 열어주고 있는 시조를 만난다는 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첫째, 초장의 대구법으로 "오르는 듯 내려서고/ 내리는 듯 비껴올라"는 시조 특유의 4음보 율격을 완벽하게 살리면서도, 처마 곡선의 역동적인 흐름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냈다.
둘째, 시적 형상화(이미지)가 일품이다. 고궁 지붕의 곡선을 “등줄기”와 “버선발”로 치환한 비유가 곡선의 미학을 보인다. 특히 “버선발 새아씨 자태”라는 표현은 처마 끝의 살짝 들린 곡선을 한국적 여인상에 투영하여, 무생물인 지붕에 생동감과 서정성을 불어넣었다.
셋째, 작품의 깊이가 있다. “한 천년이 숨을 쉰다”라는 구는 단순히 건물의 모양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역사성과 세월의 무게를 '호흡'이라는 생명 현상으로 연결해 작품의 깊이를 더했다.
이 시조의 가장 큰 매력은 '동중정(動中靜)'의 미학이다. 지붕은 가만히 멈춰 서 있지만, 시인은 '오르고', '내리고', '비껴오르는' 움직임을 통해 살아있는 리듬을 찾아냈다. 마지막 구의 "저보다 더 고우련가"라는 설의법적 영탄의 마무리는 고궁 지붕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탄을 극대화하며 독자에게 기분 좋은 여운을 남긴다.
고궁의 지붕이라는 전통적인 소재를 진부하지 않게, 세련된 언어의 조탁(彫琢)으로 빚어낸 훌륭한 시조다.
오늘도 해 지는데
그 여인은 오지 않네
추야장 깊은 밤에
부엉이는 밤새 울고
가림막 들어올 사람
먼 동터도 아니 오네
달 아래 기러기 떼
줄지어 울고 가며
산천은 만산홍엽滿山紅葉
입막지빈入幕之賓 아니 오고
연못 가 수양버들은
기다림에 지쳐있네
- 최귀협, 「입막지빈入幕之賓 아니 오고」 전문
이 작품은 애틋한 연모(戀慕)의 정과 기다림의 미학을 담고 있다. 특히 전통적인 연정가(戀情歌)의 문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마치 고전 시가 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애절함이 느껴진다. 두 수로 이루어진 연시조가 구별 배행으로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각 장의 연결이 자연스럽다. “입막지빈(入幕之賓)”은 '막사 안으로 들어오는 귀한 손님'이라는 뜻의 고사를 활용하여, 단순히 기다리는 대상을 넘어 내 마음 깊은 곳(幕)에 들여놓고 싶은 소중한 인연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점이 돋보인다. 감정이입의 도구인 '밤새 우는 부엉이'와 '줄지어 울고 가는 기러기'는 화자의 외로운 심경을 대변하는 훌륭한 객관적 상관물이다. 주변의 자연(만산홍엽, 수양버들)은 화려하게 변해가거나 늘어져 있는데, 정작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는 대비가 화자의 고립감을 더욱 강조한다.
첫수는 '해 지는 저녁'부터 '먼 동트는 새벽'까지의 시간 흐름을 통해 밤을 지새우는 간절한 기다림을 묘사했다.
둘째 수는 시선을 넓혀 “달 아래 기러기”와 “만산홍엽”의 가을 풍경을 담아내며, 개인의 그리움을 계절의 정취 속에 녹여냈다. 특히 '기다림에 지쳐있는 수양버들'이라는 의인화된 마무리는 화자의 심신이 얼마나 지쳐있는지를 시각적으로 잘 보여준다.
특히 “입막지빈(入幕之賓)”이라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한자어를 제목과 핵심 시어로 배치하여, 가벼운 만남이 아닌 깊고 예우를 갖춘 만남을 고대하는 화자의 진중한 태도를 잘 드러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쓸쓸하면서도 고운 가을밤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산 넘어 찾아온 봄 그리움 담은 편지
내 작은 품에 닿네 그 분의 가르침은
어둠 속
기를 열어준
깨우치는 따뜻함
- 최옥희, 「스승님」 전문
이 「스승님」은 짧은 형식 속에 그리움·은혜·깨달음을 절제된 언어로 담아낸 단시조로, 간결하면서도 정서의 맑음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산 넘어 찾아온 봄”은 자연적인 계절의 도래가 아니라, 스승의 가르침이 시간을 넘어 다시 찾아오는 순간을 상징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이어지는 “그리움 담은 편지”는 직접적인 만남이 아닌 기억과 전승의 매개로서의 스승을 드러낸다. 즉, 이 시조는 부재 속에서도 이어지는 가르침의 지속성을 주제로 삼고 있다.
표현상의 특징은 불필요한 수식 없이 맑고 단정한 어조이며, 상징이 명료하여 독해가 자연스럽고, 초·중·종장이 하나의 정서로 잘 응집되면서 여백이 살아 있어 독자의 사유를 유도한다.
이미지와 상징을 살펴보면, 초장의 “봄”은 새로움, 회복, 배움의 시작, “편지”는 전해지는 마음, 시간의 다리를 나타내고, 중장의 “작은 품”은 겸허한 수용의 자세를 나타낸다. 종장 “어둠 속/ 기를 열어준/ 깨우치는 따뜻함”은 매우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핵심을 정확히 짚고 있다. “어둠”은 무지, 방황, 인생의 고비, “깨우침”은 스승의 본질적 역할, “따뜻함”은 지식이 아닌 인격적 감화라고 느껴진다. 특히 “따뜻함”으로 마무리한 점이 중요하다. 스승의 가르침을 차가운 교훈이 아니라, 체온을 지닌 볕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 작품도 시조의 율격을 잘 갖추고 있다. 시조의 운율은 정서를 움직이는 동력이며 독자들의 가슴을 흔드는 원초적 장치다. 스승의 가르침을 봄볕처럼 부드럽고 따스하게 형상화한 서정적 시조로서, 초·중·종장이 하나의 정서로 잘 응집되고, 여백이 살아 있어 독자의 사유를 유도하는 끌림이 있다.
다음은 시 부문으로 ‘시 창작의 기쁨’ 란에서 골라본 작품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시는 사상이나 개념을 그대로 전달하는 세계가 아니라, 이를 감동적인 정서로 만들어 새롭게 환기해주는 언어예술이다. 시는 가슴 속에 있는 감성에 의식을 불어넣어 형상화 시킨 운문이며, 생각과 느낌이 정서적으로 정화되어 나타나야 한다.
흰 눈이 내린다
회색빛 하늘에서
하늘도 겉과 속이 다르구나
어느 편일까
보이는 겉일까
아니 속일까.
주야를 내린다
잿빛에 잠긴 마을에도 들에도 산에도
하늘이 제 몸을 온통 가루 내어
보이는 대로 덮고 채운다
높고 낮음이 평등을 가늠한다
하얀 충만한 세상이다.
- 강성효, 「눈」 전문
이 작품은 자연현상인 “눈”을 통해 겉과 속, 그리고 평등이라는 사유를 끌어낸 시로 읽히며, 간단한 짜임 안에 철학적 질문을 담아낸 점이 돋보인다.
이 시의 핵심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눠볼 수 있는데, 1연에서 ‘겉과 속의 이중성’이 “하늘도 겉과 속이 다르구나”라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어느 편일까”라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이는 단순한 자연 묘사를 넘어 존재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다. 2연은 ‘평등의 이미지’로, 눈이 “덮고 채운다”는 표현을 통해 높고 낮음을 지우는 힘을 드러낸다. 결국 눈은 차별을 지우는 자연의 질서로 상징화되고 있다.
표현과 이미지 면에서는 1연에서 색채 대비로, “회색빛 하늘”이 “하얀 충만” 즉, 어둠에서 밝음으로의 전환이 효과적이며, 2연의 “마을에도 들에도 산에도”는 공간을 넓혀가며 시각적 확장으로 “눈”의 포괄성을 보여준다. 또, “하늘이 제 몸을 온통 가루 내어”는 매우 효과적인 비유로서 눈을 단순한 기상현상이 아니라, 자기 해체와 나눔, 충만의 과정으로 승화시켜주고 있다.
이 시의 미덕은 짧은 시 안에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으며, 자연, 존재, 사회적 의미(평등)로 이어지는 확장 구조로, 마지막 “하얀 충만한 세상이다”로 마무리되는 정서적 완결성을 보이고 있는 점이다.
이 시는 ‘눈은 덮음이 아니라, 세상을 평등하게 만드는 힘’이라는 통찰을 담은 가편이다.
흙 한 줌 없는
도심의 아스팔트 길
그 틈새에 자란
너를 보고
세상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데
아파도 울지 않는
너에게
사는 법을 배운다.
- 강원산, 「민들레」 전문
이 시 「민들레」는 간결하며 작은 생명 하나를 통해 삶의 태도와 인내를 성찰하는 작품이다. 특히 도시적 배경 속에서 자연을 발견하고, 그것을 인간의 삶과 연결시키는 점이 좋아 보인다. 이 시의 핵심은 분명하다. “민들레”는 고통 속에서도 묵묵히 살아가는 존재이며, ‘화자’는 그 존재에서 삶의 태도를 배우는 사람이다.
“흙 한 줌 없는/ 도심의 아스팔트 길”은 생존이 거의 불가능한 환경 제시이며, “그 틈새에 자란 너”는 존재 자체가 이미 상징이다. 결구의 “사는 법을 배운다”는 관찰에서 성찰로 자연스럽게 이동하며, 구조적으로 발견, 공감, 깨달음의 흐름이 잘 잡혀 있다. “아스팔트 길”과 “틈새”는 매우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이미지로, 독자가 즉시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민들레’는 전통적으로도 끈질김, 생명력, 소박함을 상징하지만 이 시에서도 그 상징을 무리 없이 활용하고 있다. “흙 한 줌 없는”은 척박한 환경을 간결하게 압축하고 있으며, “아파도 울지 않는/ 너에게”는 감정이입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 시는 민들레를 통해 삶을 배우는 교훈성의 시이며, 소박하지만 진정성 있는 ‘삶의 발견형 시’이다. 특히 도시와 자연의 대비와 작은 존재를 통한 큰 깨달음, 이 두 축이 잘 살아 있는 작품이다.
여명은
새로운 시간을 약속하며
고색 깊은 산마루를 흔들고
힘차게
내어 딛는 첫 발자국에
희망의 씨앗을 뿌려주고
벌거벗은 나목 은은하게
미소를 던져주네요
밝은 햇살은
석양빛에 해맑은 금호강물은
고혹적인 빛으로 끌어안으며
뜨거운 정감으로
시작이라는 알찬 시간을
약속하고 있네요
- 고원구, 「사랑의 서곡」 전문
이 시는 ‘여명–햇살–석양’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시작의 설렘과 사랑의 기운을 포착하려는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밝고 긍정적인 정조가 일관되게 흐르며, 자연을 매개로 감정을 확장하는 점이 돋보인다.
이 시에서 ‘하루의 시작’은 ‘사랑의 시작’으로, ‘자연의 변화’는 ‘감정의 상승’으로 읽힌다. 1연에서 “여명”이 시작의 약속, 2연에서 “발자국”이 희망의 구체화, 3연에서 “햇살과 강물”이 감정의 확장, 4연은 “시작”의 재확인으로, 시간의 흐름을 따라 사랑의 서곡을 연주하는 구조로 짜여 있다.
자연 이미지인 “여명”, “산마루”, “나목”, “햇살”, “금호강물” 등 자연을 통해 정서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특히 금호강을 끌어온 점은 현실성과 정서를 연결하는 좋은 장치이며, “희망의 씨앗을 뿌려주고”, “벌거벗은 나목 은은하게/ 미소를 던져주네요” 등에서는 생명과 회복의 이미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밝고 긍정적인 정서의 일관성과 자연과 감정을 연결하는 서정적 흐름이 “사랑의 서곡”이라는 제목에 맞는 출발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 착상이 참신할 뿐더러 승화된 시적 향기를 지니고 있다.
두세 곱절
흙 무게 힘겨웠지만
기죽지 않고
용케도 버텼어
야들야들
파란 새순 다칠세라
영영 눈물일까 봐
눈길 다르게 몸을 푼
너를 다독이면
구만리장천에
덜퍽스레 벙그러질
움찬 몸짓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내 봄의 뜨락에
마주한 사랑
얼쑤! 덩더쿵
그대라는 꽃으로
신명나는 세상
- 권영호, 「그대와 나」 전문
시 「그대와 나」는 고난을 견뎌내고 마침내 꽃을 피워내는 생명력과, 그 과정을 함께한 존재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겨울 같은 인고의 시간’에서 ‘축제 같은 사랑의 결실’로 나아가는 서사가 매우 뚜렷하여 읽는 이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해준다.
1연에서 “두세 곱절/ 흙 무게 힘겨웠지만”의 표현은 삶의 하중을 묵묵히 버텨낸 화자의 단단한 내면을 보여준다. 고난을 대하는 태도가 인고(忍苦)임을 내포하며 단순히 아픔에 매몰되지 않고 “눈길 다르게” 마음을 추스르는 모습에서, 슬픔을 승화시켜 상대(그대)를 돌보는 성숙한 사랑의 자세가 느껴진다.
후반부의 “얼쑤! 덩더쿵”은 이 시의 백미이다. 앞선 연들이 다소 정적인 인내와 보살핌을 노래했다면, 마지막에 국악의 추임새를 빌려와 분위기를 단번에 반전시킨다. 이는 고통 끝에 맞이한 사랑이 단순한 기쁨을 넘어 “신명”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아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이다.
이 작품은 겨울 끝에 만난 봄날의 화답 같은 시라고나 할까.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봄의 뜨락”이 있고, 그곳에 피어나길 기다리는 꽃(그대)이 있다. 이 시는 그 기다림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그리고 그 사랑이 세상을 얼마나 신명나게 만드는지를 아름답게 증명하고 있다. 투박하면서도 섬세한 감성이 공존하는 좋은 시다. 독자들에게도 그 “움찬 몸짓”이 전해져 마음속에 꽃 한 송이를 피워낼 것 같다.
춘향의 뜰, 미래를 꿈꾸며 자라고
당신을 향한 숨결 속에 피어납니다
내 마음의 끝은 언제나 당신입니다
고단한 세상 길, 바람은 매섭지만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 다시 숨이 뜁니다
사랑은 그렇게 나를 일으킵니다
눈물은 흐르되 슬픔은 머물지 않고
당신의 미소에 녹아 사라집니다
그 미소 하나로 나는 다시 살아납니다
하늘도 감동하는 당신의 진심 어린 애정
세상은 당신의 따스함으로 물듭니다
당신의 존재 자체가 이미 축복이랍니다
마가렛 꽃은 천상계의 여인이라
내 삶의 빛, 내 영혼의 노래여
그대라면 어떤 어둠도 봄이 됩니다.
- 김강회, 「마가렛의 여인」 전문
이 시는 전반적으로 서정적이고 헌정적인 사랑의 노래로 읽히며, 사랑의 힘을 찬미하는 순수 서정시로서 따뜻하고 진실한 울림을 준다. 특히 마지막 연 끝 행의 힘이 강해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시 전체가 “당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절대적인 헌신과 찬미로 이어진다. 고단한 현실과 슬픔을 넘어서는 힘을 사랑에서 찾고 있으며, 이는 전형적인 순수 서정시의 구조를 보여준다. 마지막 연에서 “마가렛 꽃”과 “천상계의 여인”을 연결하며, 사랑의 대상이 단순한 인간을 넘어 초월적 존재로 승화됨을 인지할 수 있게 한다.
표현과 이미지에서, “춘향의 뜰, 미래를 꿈꾸며 자라고”는 전통적 한국적 이미지(춘향)와 미래지향적 감각을 결합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눈물은 흐르되 슬픔은 머물지 않고”는 감정의 흐름을 잘 포착한 대구적 표현으로, 정서의 승화 과정을 보여준다. 마지막 연의 끝행 “그대라면 어떤 어둠도 봄이 됩니다”에서는 가장 강렬한 결미로, 시 전체의 메시지를 집약하는 메타포적 선언이다.
이 시의 강점은 반복적인 구조(“당신”으로 시작하는 구절들)가 시의 리듬을 형성하며, 헌정적 분위기를 강화하는 점과, 사랑의 힘을 생명력, 빛, 축복 등 다양한 상징으로 변주하여 단조로움을 피하는 점이다. 마지막 연의 “마가렛”이라는 구체적 상징이 시의 제목과 연결되어, 전체를 하나의 헌정시적 완결성으로 묶어준다.
지난날이 그리우면 눈을 감습니다
그날이 언제였는지 몰라도
파노라마 되어 내 곁에 다가섭니다
그날 그 사람 모습도 표정 없이 다가섭니다
사람이 그리우면 눈을 감습니다
포근한 모습
월등히 잘 생긴 건 아니지만
생글한 미소로 다가옵니다
부모님이 그리우면 눈을 감습니다
엄격한 속 뜻을 몰랐던 우리들
몇만 번 후회해도 이미 늦습니다
부모님은 이제 내 곁으로 오시지 않습니다
보고 싶고 그립고 아쉬운 모든 것들
눈 감으면 내 곁으로 다가옵니다
그립고 보고 싶고 아쉬우면
나는 눈을 감습니다.
- 김동주, 「그리울 땐 눈을 감자」 전문
이 시는 ‘눈을 감는다’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 기억·그리움·회한을 차분히 끌어내는 정서 중심의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평이하면서도 진솔한 울림이 있다.
이 시의 핵심은 ‘그리움은 눈을 감을 때 비로소 살아난다’는 인식이다. 지난날, 사람, 부모님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그리움의 깊이가 점층적으로 깊어지는 흐름을 잘 보여준다. 특히 부모님 대목에서 “몇만 번 후회해도 이미 늦습니다”라는 구절은 일상적 그리움을 넘어 회한(悔恨)의 감정까지 확장되므로, 이 지점에서 시의 정서가 가장 크게 살아난다.
“눈을 감습니다”라는 반복은 이 시의 중심축이다. 각 연의 도입부에서 반복됨으로써
리듬을 형성하고 주제를 강조하는 효과가 있다. 마지막 연에서 다시 한번 반복되며
시 전체를 원형 구조처럼 묶어주는 점도 좋다. 다만, 반복이 다소 설명적으로 이어지는 면이 있어 약간의 변주가 들어가면 더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파노라마 되어 내 곁에 다가섭니다”는 기억의 흐름을 영상처럼 보여주는 효과적인 표현이다.
이 시는 전반적으로 평서형 진술이 많다. “~합니다”의 높임 구어체가 계속 이어지면서 약간 산문적인 흐름이 되어 감정은 충분하지만, 시적 긴장(압축·여백)이 조금 약한 편일 수 있다. 하지만, 3연에서 “부모님은 이제 내 곁으로 오시지 않습니다”라는 삶의 보편적인 후회를 담담하게 드러내며 독자의 공감을 강하게 이끌어낸다. 진솔한 정서와 명확한 주제, 반복 구조의 안정감, 부모님 대목의 깊은 울림도 긍정적이다.
눈 뜨고도 못 읽은 마음이 있다
그대는 내게 까막눈 밝혀 주는
꽃등불 같은 사랑이다.
유리 벽을 보고도 안을 볼 수 없는
가슴앓이 사랑같이 아플 때도
햇살 한 줌 사랑이다, 그대는
시간이 흘러 작은 풀섶도 숲을 이루고
구름과 바람이 쉬어가는 섬이 되었다.
한 번도 비켜설 수 없던 그리움의 공간
어둠이 표백되어 하얗게
무명 빨래처럼 펄럭이고 있다.
기다림이 밝아진 표정으로
날마다 불러 주고 건네준 이름이
깊은 신앙이 되었다.
사랑이란 대양 같은 가슴 앞에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는가!
부르면 달려가 안길 마음 바다에
나는 작은 섬이어도 좋다.
- 박고은, 「꽃등불 같은 사랑」 전문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사랑의 인식과 성장, 헌신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또렷하고 구조가 잘 잡힌 서정시다. 특히 “꽃등불”이라는 중심 이미지가 끝까지 의미를 확장시키며 작품을 안정적으로 끌고 가는 점이 돋보인다. 도입 부분에서 “눈 뜨고도 못 읽은 마음이 있다”는 독자를 바로 사유로 끌어들이는 힘 있는 문장으로 효과적이다.
이 시는 단순한 연애 감정을 넘어, 사랑을 ‘깨우침’이자 ‘신앙’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린 작품이다. “눈 뜨고도 못 읽은 마음”은 인간의 미숙함, “꽃등불 같은 사랑”은 깨달음의 빛, “깊은 신앙이 되었다”는 사랑의 절대화이다. 즉, 사랑이 ‘인식의 빛’에서 ‘존재의 변화’와 ‘정신적 귀의’로 발전하는 구조다.
이 시의 가장 큰 장점은 이미지의 선택과 확장성이다. “꽃등불”은 따뜻함과 아름다움, 밝힘이라는 복합 상징으로 탁월한 시어다. “햇살 한 줌 사랑”은 사랑을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환원하며, “무명 빨래처럼 펄럭이는 어둠”은 다소 난해하지만 시각적으로 강렬한 전환 이미지이다. 마지막 연에선 “대양 같은 가슴”과 “작은 섬”이 관계의 비대칭성과 헌신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감정의 진정성과 이미지의 풍부함, 구조의 완성도를 모두 갖춘 수준 높은 서정시로서, 특이한 점은 사랑을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존재를 밝히는 빛’이자 ‘귀의의 대상’으로 승화시킨 점이다. ‘사랑을 등불에서 신앙으로까지 끌어올린 깊이 있는 시’라고 하겠다.
처음엔 인사처럼 스쳐가는 마음일 뿐
눈길 하나 말 한마디에
정(情)이란 이름도 없이
서로의 하루가 조용히
겹쳐지고 있었습니다.
함께한 시간 속에서
웃음과 침묵을 나누는 사이
언제부터인가 낯설음이 다정함으로
마음이 서서히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지나간 자리마다 설렘이 남아 있어
말없이 안부가 궁금해질 무렵
그의 마음이 내 가슴속에서 정을 흔들어
사랑을 불러내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알았지요 기쁨보다 익숙함으로
열정보다 배려가 이어져 의리의 맹세는 없었으나
사랑은 이미 서로의 삶이 된 것을 말입니다.
- 배원식, 「정(情)에 사랑이 깃들다」 전문
이 시는 정(情)과 사랑의 경계를 섬세하게 탐색한 작품이다. 한국 고유의 정서인 '정'이 사랑으로 무르익는 과정을 조용하고도 절제된 언어로 그려냈으며, 감정의 흐름을 억지스럽지 않게 자연스럽게 담아낸 점이 돋보인다.
연(聯)별로 분석하자면, 1연은 ‘만남의 서사’로 "처음엔 인사처럼 스쳐가는 마음일 뿐"에서 관계의 출발점을 가볍고 우연한 것으로 설정한다. 또, 이름도 없이 겹쳐지는 하루라는 이미지는 정(情)의 본질 즉, 의도 없이 쌓이는 것을 잘 포착했다.
2연은 ‘익어가는 마음’으로, "낯설음이 다정함으로 / 마음이 서서히 익어가고 있었습니다"에서 '낯설음애서 다정함'의 전환이 이 시 전체의 핵심축이다. '익어간다'는 농익은 열매의 이미지는 사랑이 열정이 아닌 시간의 축적임을 암시하며,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잘 구현한 부분이다.
3연은 ‘자각의 순간’으로 "그의 마음이 내 가슴속에서 정을 흔들어/ 사랑을 불러내게 되었습니다"에서 '정을 흔들어 사랑을 불러내다'는 표현이 돋보인다. 사랑이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쌓인 정(情) 속에서 불러내어지는 것이라는 발견으로 이 시의 가장 빛나는 통찰이다.
4연은 ‘깨달음과 정의’로 "열정보다 배려가 이어져 의리의 맹세는 없었으나/ 사랑은 이미 서로의 삶이 된 것"에서 사랑을 기쁨이나 열정이 아닌 익숙함과 배려로 정의한 결말은 성숙하고 단단하다.
이 시의 미덕은 시간의 흐름이 만남, 익어감, 자각, 깨달음의 구조로 자연스러우며, 절제된 언어로 과장 없이 한국적 정서와 감정을 담아냈다. 이 시는 정(情)이 사랑의 뿌리라는 한국적 사랑관을 잔잔하고 진솔하게 풀어낸 작품으로 화려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는 시이다. 감정을 설명하기보다 보여주려는 시인의 태도가 시 전체에서 느껴지며, 읽고 나면 자신의 오래된 인연 하나를 조용히 떠올리게 되는 힘이 있다.
임의 향
멀리멀리
그리움 찾아
울먹인
그날 밤
그리워
그리워라
문자를 치니
답도
그립다는
말뿐이더라
카톡에
그립다, 란 말만
오고 갔을 뿐
정작
보고 싶다는 말 빠진 채
마음으로만
서로를
위로한다
- 안효만, 「지는 해 바라보며」 전문
이 시는 짧고 단순해 보이지만, 그리움의 결핍을 그리움으로 쓴 역설의 시이며, 현대의 디지털 소통 방식과 인간의 감정 사이의 간극을 아주 조용하면서도 정확하게 짚어낸 시이다.
제목 「지는 해 바라보며」는 저물어가는 시간, 하루의 끝, 노을의 이미지를 불러온다. 그런데 시 본문에는 지는 해의 묘사가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제목은 시의 감정적 배경으로만 작동한다. 하루가 저물고, 혼자 남겨진 자리에서,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시간. 그 시간대를 제목이 조용히 지정해줌으로써 본문의 감정이 더 선명하게 살아난다.
1연은 ‘그리움의 발화’를 표출하고 있다. "임의 향/ 멀리멀리/ 그리움 찾아/ 울먹인/ 그날 밤" 간결한 각 행이 아주 짧은 감정의 파편들이다. 문장을 완성하지 않고 쪼개놓음으로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리움의 질감을 형식 자체로 구현하고 있다.
2연은 ‘소통의 시도’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워/ 그리워라/ 문자를 치니/ 답도/ 그립다는/ 말뿐이더라"에서 “그리워, 그리워라”의 반복은 감정의 고조이자 확인이다. 그리고 그 감정을 문자로 전송한다. 현대적 전달 행위이다. 돌아온 답도 “그립다”이다. 같은 감정, 같은 언어. 그런데 시인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무언가 부족함을 느낀다. 그 부족함이 3연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3연의 "정작/ 보고 싶다는 말 빠진 채/ 마음으로만/ 서로를/ 위로한다"가 이 시 전체의 핵심이며 무게중심이다. “그립다”와 “보고 싶다”는 얼핏 같아 보이지만 다르다. “그립다”는 감정의 진술이고, “보고 싶다”는 몸의 언어이다. 그립다는 말은 할 수 있었으나, 보고 싶다는 말, 실제로 만나고 싶다는 말, 몸이 원한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혹은 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카톡이라는 매체, “그립다”라는 안전한 언어, 그리고 “보고 싶다”는 말의 부재, 이 세 가지가 포개지며 현대인의 관계가 지닌 아슬아슬한 거리감이 드러난다. 가깝지만 닿지 못하는, 소통하지만 전달되지 않는 감정의 실루엣이다. “마음으로만/ 서로를/ 위로한다”는 결말은 따스하면서도 쓸쓸하다. 위로는 했으나, 온전한 위로는 아닌 것이다.
이 시는 행을 극단적으로 짧게 쪼갠다. 이것이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의미를 만든다. 말이 끊기고, 멈추고, 이어지지 못하는 형식 자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는 이 시의 주제와 정확히 겹친다. 바로 형식과 내용이 하나가 된 시이다.
“지는 해 바라보며”는 말하지 못한 말에 관한 시이다. 그립다고는 했으나 보고 싶다고는 하지 못한, 그 사이의 얇고 긴 침묵을 이 시는 담담하게 기록한다. 카톡이라는 지극히 현대적인 전달 매체를 통해 지극히 오래된 감정, 그리움, 외로움, 닿고 싶음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이 시는 지금 이 시대를 반영한 시이다. 읽고 나면 오래된 대화창 하나를 조용히 열어보고 싶어지는 시다.
시를 쓴다고
다 시인이 아니여
산 깊이 앉아
파도 소리 들려야 하고
한겨울에
매향梅香 맡을 줄 알아야지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에
가야금 현 울려
눈시울 적실 줄 알면
더 좋지
- 정순영, 「시인」 전문
이 시는 ‘시인이란 누구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짧고 간결한 언어로 제시하면서, 감각과 정서의 깊이를 통해 시인의 자격을 은유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소박하지만 울림이 분명한 시다.
먼저, 첫 연의 “시를 쓴다고/ 다 시인이 아니여”는 단호하면서도 구어체 어조로 독자를 즉시 끌어들인다. “아니여”라는 표현은 다소 옛스러운 듯하면서도 따스한 인간적 숨결을 지니고 있어, 시인의 체험적 진술처럼 들린다.
둘째 연은 ‘시인됨’의 조건을 감각적 이미지로 제시한다. “산 깊이 앉아/ 파도 소리 들려야 하고” 이 부분은 물리적으로는 모순(?)된 상황(산속에서 파도 소리를 듣는다)을 통해, 시인의 상상력과 내면의 공명 능력을 강조한다. 매우 좋은 시적 비약이다.
셋째 연 “한겨울에/ 매향梅香 맡을 줄 알아야지”는 계절을 넘어서는 감각 역시 시인의 본질을 상징한다. 다만 “매향”은 다소 한자어 느낌이 강해, 전체의 구어적 분위기와 약간 어긋날 수 있지만, 의도된 고전미라면 유지해도 좋을 것이다.
넷째 연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에/ 가야금 현 울려”는 청각적 이미지가 매우 아름답다. 자연의 소리를 전통 악기의 울림으로 전환한 점에서 한국적 정서가 잘 살아 있다.
마지막 연의 “눈시울 적실 줄 알면/ 더 좋지”는 시인의 조건을 ‘공감과 눈물’로 귀결시키며 여운을 남긴다.
이 시의 가장 큰 장점은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시인의 본질을 정확히 짚는 통찰과 감각적 이미지의 조화이다. 특히 “산속의 파도 소리”, “겨울의 매향” 같은 역설적 이미지가 시의 중심을 잘 지탱하고 있다.
아침나절인데 높이 재보고 있나,
가늘어진 손 저어가며
담벼락 덮고도 올라서려 하고 있다.
꿈이라 하여,
해가 재 넘어가도 몸을 흔들며,
담 넘겨다 보고 오르려는 데에 열중이다.
몸 말라가는 것 모른 채
사는 것 여기여도
오르는 일에 매달려 있다.
- 조홍규, 「담쟁이덩굴」 전문
시 「담쟁이덩굴」은 미약한 존재가 지닌 집요한 생의 의지와 상승 욕망을 담담한 관찰의 시선으로 포착한 작품이다. 자연 대상 하나를 통해 인간의 삶을 비추는 서정의 미덕이 잘 살아 있다.
첫 연의 “아침나절인데 높이 재보고 있나,”는 다소 독특한 시적 발화이다. 담쟁이를 의인화하여 ‘높이를 재본다’는 표현으로 시작한 점은 참신하다. 이어서 “가늘어진 손 저어가며/ 담벼락 덮고도 올라서려 하고 있다.”에서 “가늘어진 손”은 담쟁이의 덩굴손을 잘 포착한 표현으로, 생명력이 약해 보이면서도 집요한 움직임을 동시에 보여준다. 반복적 상승 의지가 분명히 드러나는 좋은 구절이다.
둘째 연은 시의 중심 의미를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담 넘겨다 보고 오르려는 데에 열중이다.”는 담쟁이의 집요함을 잘 드러낸 문장이다. “넘겨다보고”라는 표현이 시각적 긴장을 만들어 주며, “열중이다”로 마무리되면서 의지의 지속성이 강조된다.
마지막 연은 이 시의 주제를 집약하고 있다. “몸 말라가는 것 모른 채/ 사는 것 여기여도/ 오르는 일에 매달려 있다.” 여기서는 생의 역설이 드러난다. 현재의 자리(“사는 것 여기여도”)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위를 향하는 존재, 이는 인간의 욕망, 혹은 삶의 본능을 은유하는 것으로 읽힌다.
이 시는 담쟁이덩굴이라는 작은 자연물을 통해 ‘상승하려는 생의 의지’와 ‘자기 소모적 집착’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잘 포착하고 있다. 관찰에서 출발해 사유로 나아가는 흐름이 안정적이며, 전체적으로 잔잔하면서 지속적인 긴장감을 유지한다. 말라가면서도 오르기를 멈추지 않는 존재, 그 집요한 생의 본능을 조용히 응시한 성찰적 시이다.
이상으로 2026년 봄호(제13호)에 수록된 시조와 시 부문의 작품들에서 골라 살펴보았다. 시조 작품은 대부분이 그 구성법과 율격도 잘 갖추고 있었다. 시조의 운율은 정서를 움직이는 동력이며 독자들의 가슴을 흔드는 원초적 장치다. 시 부문의 작품들도 좋은 시의 요건을 지니고, 나름대로 전개와 표현의 특성을 드러내며 승화된 시적 향기를 지니고 있었다. 시조와 시에서는 시상 포착의 주체가 마음이고, 대상에 대한 인식의 주체도 마음이다. 직관이든 관조든 마음에 따라 시상이 파악되고 결정된다. 시인이 대상을 어떻게 보고 인식하느냐에 따라 대상은 얼마든지 달리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이번에는 주로 표현면에 치중해 살펴보았는데, 참신한 착상과 새로움에 대한 모색을 발견하면서 흐뭇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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