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봄 송년회에서 김동규 이사장께서 제가 스벅에서 읽었던 혹은 읽었다고 주장하는 책 중에서 올해의 책을 뽑아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뭐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뭔가 있어 보이려고 발악하듯이 읽은 한 해였고,
고치기 힘든 못된 버릇 중의 하나가 스트레스를 책 사는 것으로 풀다 보니, 엉겁결에 그만큼 읽는 책도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네, 알라딘, 리디북스, 아마존은 모두 제 스트레스로 크는 서점들입니다.)
올해는 제 성질 못 이기고 오타/오역 찾느라 같은 책을 몇 번씩 곱씹어 읽은 경우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제 맘대로 뽑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순위에 상관없는 올해 읽은 척 한 책들로 다섯 권을 꼽습니다.
"사피엔스", "면역에 관하여", "생각에 관한 생각", "숨결이 바람될 때", "사소한 것들의 과학"
너무 좋았는데 아쉽게 탈락한 책, Honorable mention을 꼽자면,
"1913년 세기의 여름"(플로리안 일리스, 한경희, 문학동네, 2013)을 들 수가 있겠습니다. (번역가 한경희 선생이랑 같이 읽다 보니 너무 좋아서 내친김에 읽으려고 1913:In Search of the World Before the Great War by Charles Emmerson도 충동구매하고 끝내 다 읽진 못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토마스 만이나 마르셀 프루스트의 책들을 만지작거리게 되었습니다.
은둔형 외톨이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저를 아직까지는 공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붙들어 매주는 소설 부문은 별도로 언급해야겠습니다.
소설에서는
"종의 기원", "우리의 소원은 전쟁","소년이 온다", , "제3인류", "삼체" 의 저자들을 꼽습니다.
1.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조현욱, 김영사, 2015)
연초에 북코에서 함께 읽은 "사피엔스"를 순위와 상관없이 1번으로 꼽습니다.
말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인류의 역사를 다 같이 돌아보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농업은 사기"라는 말도 있었고, 책의 맨 뒷부분 아래 인용까지 곰곰이 생각할 것들을 던져줍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스스로의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일 것이다. 이 질문이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총균쇠(제레드 다이아몬드, 김진준,문학사상사,2013)
#금융의 지배 (니얼 퍼거슨,김선영,민음사,2010)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스티븐 핑커, 김명남,사이언스북스,2014) - 제가 읽은 인생 최고로 두꺼운 벽돌책, 이 책을 읽고 나면 책 자체의 우리 본성에 관한 낙관주의자에 대한 이해보다 두꺼운 책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특이점이 온다(레이 커즈와일, 장시형,김명남,김영사,2007)
#인간 등정의 발자취(제이콥 브로노우스키,김현숙/김은국,바다출판사,2009)
-개인적으로는 사피엔스 덕분에 "인간 등정의 발자취"를 발견한 것이 조금 더 좋았습니다.
#인류의 기원(이상희/윤신영, 사이언스북스, 2015) - 이 책 우리는 원서로 읽었습니다만,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번역판이 나온다고 합니다. 참고로 영어로 번역하신 분이 원저자의 의도를 제일 잘 살릴 이상희 교수 본인이랍니다.
#사피엔스의 미래(알랭 드 보통 외, 전병근, 모던아카이브, 2016) - 4명의 석학들이 링 위에 올라 난투전을 벌립니다. 번역을 맡은 전병근씨가 북클럽 오리진을 운영하면서 아침마다 카톡으로 책 얘기를 보내주시죠.
#가치관의 탄생(이언 모리스, 이재경, 반니, 2016) - 에너지를 획득하는 방식이 사회 체계와 가치를 결정한다고 주장한다는 저자의 주장도 흥미롭지만, 이재경이라는 분의 매끄러운 번역에 놀랐습니다.
2. "면역에 관하여"(율라 비스, 김명남, 열린책들, 2016)
북코에서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게다가 너무 늦게 나와버린 책입니다만(원래 8월에 나오기로 얘기가 나왔었는데 말이죠),
저커버그랑 빌 게이츠 아저씨의 추천으로 작년에 후다닥 일독은 했던 책입니다.
제가 애정하는 아툴 가완디가 올해 칼텍 졸업식 축사에서 홍역백신에 대해서 언급을 하여 더 읽고 싶었는데, 11월에 마침내 한글판이 나와서 다시 읽었습니다.
'백신을 의무 접종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개인의 선택에 맡긴 미국과 영국에서 방역의 구멍이 생기고, 이런 개인적인 선택의 결과가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 특히 어린아이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걸 다룬 책이었습니다.'라고만 얘기하면 무지 건조한데, 이 책은 한글판으로 다시 읽고서야 저자의 의도가 이런 것이었나 정도로 느낌이 팍! 왔습니다.
밑에 같이 읽으면 좋은 책은 모두 한두 번은 "면역에 관해서"에 언급이 된 책들입니다.
겉표지의 분홍색이 말해주듯 자연과학과 엄마와 페미니스트를 함께 이해하게 해주는 책이었습니다.
#"Illness as Metaphor and AIDS and Its Metaphors" by Susan Sontag
#바이러스 행성(칼 짐머, 이한음, 위즈덤하우스, 2013)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 김은령, 에코리브르, 2011)
#암 : 만병의 황제의 역사(싯다르타 무케르지, 이한음, 까치, 2011)
#콜레라는 어떻게 문명을 구했나(존 퀘이조, 황상익등, 메디치미디어, 2012)
#가슴이야기(플로렌스 윌리엄스, 강석기, Mid, 2014) - 에로틱할뻔한 주제를 과학적으로 제대로 다룬 책입니다.
#드라큘라(상,하), (브램 스토커, 이세욱, 열린책들, 2009)
#Heart of Darkness by Joesph Conrad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볼테르, 이봉지, 열린책들, 2009)
#온 삶을 먹다(웬델 베리, 이한중, 낮은산, 2011) - "면역에 관하여"로 발견한 책
# 나쁜 페미니스트(록산 게이, 노지양, 사이행성, 2016)
#. 생각에 관한 생각(대니얼 카너먼, 이진원, 김영사, 2012)
# 어떻게 죽을 것인가(아툴 가완디, 김희정, 부키, 2015)
3. 생각에 관한 생각(대니얼 카너먼, 이진원, 김영사, 2012)
이 책도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고마운 책입니다. 번역이 하도 문제가 많아서 김영사가 양심 있는 출판사라면
지금이라도 판매 중단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꼼꼼하게 읽은 건 뭐 부인할 수 없습니다만...
연필을 가로로 물어서 사진 찍기 전에 '치즈'를 할 때처럼 일부러라도 사람을 웃게 하면 같은 만화를 보고도 훨씬 더 재미있다고 '생각'한다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책의 원서 표지가 참 마음에 듭니다.
한글판에는 표지에 '깻잎 깡통'이 갑자기 등장하지만(도대체 왜?) 원서에는 연필을 가로로 이로 물었던 연필이 등장하지요. 자세히 보면, 이로 문 자국도 보입니다.
아래 "머니볼"을 쓴 마이클 루이스가 "넛지"를 쓴 카스 선스타인과 리처드 탈러의 리뷰에 놀라 "생각에 관한 생각"을 뒤늦게 읽었다는 인연이 참 묘하고, 카스 선스타인이 쓴 "루머"와 '이것은 자서전이 아니다'라고 밝힌 리처드 탈러의 자서전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도 함께 읽으면 더 재미있습니다.
#머니볼(마이클 루이스, 김찬별, 노은아, 비즈니스맵, 2011)
Moneyball: The Art of Winning on Unfair Game by Michael Lewis
#체크! 체크리스트(아툴 가완디, 박산호, 21세기북스, 2010)
#넛지(카스 선스타인, 리처드 탈러, 안진환, 리더스북, 2009)
Nudge: Improving Decisions About Health, Wealth, and...by Richard H. Thaler, Cass R. Sunstein
#루머(카스 선스타인, 이기동, 프리뷰, 2009)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리처드 탈러, 박세연, 리더스북, 2016)
#블랙 스완(나심 탈레브, 차익종, 동녘 사이언스, 2008)
#보이지 않는 고릴라(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외, 김명철, 김영사, 2011)
#프레임(최인철, 21세기북스,2016) - 10주년 개정판으로 새로 나왔는데, 2007년판만 읽었습니다.
#행복의 기원(서은국, 21세기북스, 2014) - 인류의 기원이라는 책과 나란히 놓을려고 고른 것이 아니라 "생각에 관한 생각" 이후의 대니얼 카너먼 교수의 연구 주제여서 읽어보았습니다.
#인튜이션(게리 클라인, 이유진, 한국경제신문, 2012) - 시회님 말씀하신 Fast Thinking만 고집하는 양반입니다.
Sources of Power: How People Make Decisions by Gary Klein
#대중의 지혜(제임스 서로위키, 홍대운/이창근, 랜덤하우스코리아, 2005)
The Wisdom of Crowds by James Surowiecki
4. 숨결이 바람될 때 (폴 칼라니티, 이종인, 흐름출판, 2016)
지하철에서 읽다가 쪽팔릴 정도로 눈물 질질 코 훌쩍거렸던 책입니다. 살아있음에 감사해야 하고, 성질부리는 중1 딸내미한테 감사해야 하고, 큰 딸처럼 덤벙거리는 아내도 감사해야 합니다. 원래 그래야 되지만...^^
서른여섯, 전문의를 코앞에 두고 레지던트 마지막 해를 보내다 폐암 4기 판정을 받고, 의사에서 환자로 바뀐 2년의 삶을 기록한 책입니다. 옮긴이의 말도 좋고, 남겨진 그의 아내의 마지막 마무리도 좋습니다. 목차며 추천의 글로 몸을 데우시고, 옮긴이의 글과 아내가 쓴 마무리를 보고 본문으로 입장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싯다르타 무케르지, 이한음, 까치글방, 2011) - 요새 나오는 웬만한 책 추천사에 꼭 들어가는 분.
#어떻게 죽을 것인가(아툴 가완디, 김희정, 부키, 2015) - 이걸 언제고 북코에서 한번 읽어야 되는데 말이죠.
#참 괜찮은 죽음(헨리 마시,김미선, 더퀘스트,2016) - 번역이 좀 불편하긴 합니다만, 좋은 책임에는 틀림없습니다.
Do No Harm:Stories of Life, Death, and Brain Surgery by Henry Marsh
#해피...엔딩, 우리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최철주, 궁리출판, 2008)
#미 비포 유(조조 모예스, 김선형, 살림출판사, 2013)
5. 사소한 것들의 과학(마크 미오도닉, 윤신영, MID, 2016)
Stuff Matters:Exploring the Marvelous Materials That Shape our Man-Made World by mark Miodownik
"인류의 기원"을 이상희 교수와 같이 만든 과학동아 편집장 윤신영씨의 첫 번역서입니다.
저자인 마크 미오도닉 교수한테 메일 보내서 답장을 몇 번 받아봤는데, 메일 끝에 보통 'sincerely yours'로 붙이는 자리에 'materially yours'를 쓰는 것을 보고, 뼛속까지 재료과학자(라고 쓰고 덕후라고 읽습니다)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녹(조나단 월드먼, 박병철, 반니, 2016) - 번역이 좀 불편하지만, 미오도닉 교수가 추천해서 원서도 사고야 말았습니다.
#위험한 과학책(랜들 먼로, 이지연, 시공사, 2015)
#기발한 과학책(미첼 모피트/그레그 브라운, 임지원, 사이언스북스,2016)
#김상욱의 과학공부(김상욱, 동아시아, 2016) - 부산대 교수님이라 예를 들어 지구와 태양, 화성 거리를 부산역 중심으로 설명합니다. 번역을 신경 쓰지 않고 마음 놓고 책 읽을 수 있도록 그래서 이런 분들이 책을 주저 없이 낼 수 있도록 이런 책은 무조건 초판을 사드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쪽에서는 "종의 기원", "우리의 소원은 전쟁","소년이 온다", , "제3인류", "삼체"의 저자들을 꼽았습니다.
1. "종의 기원"(정유정, 은행나무, 2016) - 호불호도 있지만, 저는 아마존 여전사 같은 정유정 씨 책은 무조건!입니다. 요즘 여행을 다니며 차기작을 고민하고 있다는데, 제 기다림에 비해서는 작품이 늦지만, 그래서인지 늘 기다린 이상의 감동을 받습니다.
2. "우리의 소원은 전쟁"(장강명, 예담, 2016) - 박진감 넘치는 호흡이 전성기의 최인호 선생의 분위기도 있고(앗, 그러고 보니 최인호 선생의 적통이라(고 제가 맘대로 얘기하)는 김영하 씨의 책이 리스트에 빠졌군요), 기자 생활을 해서 인지 김훈 선생의 분위기도 있습니다. 올해 헌법에 대해서 공부를 하면서 "헌법 14조" 관련한 이 책도 헌법 공부 삼아 읽어봤다는 헛소리를 해봅니다. 모든 책이 다 마음에 들기 힘든데, 아직까지는 모두 좋았습니다.
3. "소년이 온다"(한강, 창비, 2014)
맨 부커 인터내셔널에 오르면서 화제가 되어서 올해 읽었습니다. 저는 "채식주의자"보다 이 작품이 더 좋았습니다.
"표현의 기술"(유시민, 정훈이, 생각의 글, 2016)에서 정훈이 씨가 얘기하는 것처럼 광주 얘기를 묻어두고 세월을 보낸 저 같은 사람에게는 "표현의 기술"과 비슷한 시기에 읽으면서 한강이라는 사람을 다시 보게 했습니다.
4. 제3인류 5,6(베르나르 베르베르, 이세욱, 전미연, 열린책들, 2016)
13년에 1권이 나온 이후에 6권짜리 책이 드디어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5권까지는 베르베르 전문 이세욱 씨가, 6권은 기욤 뮈소 전문 전미연 씨가 했네요. ^^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대한 호불호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저는 이 양반의 끝없는 상상력에 매번 지갑을 열게 됩니다.
5. "삼체:2부 암흑의 숲"(류츠신, 허유영, 단숨, 2016)
류츠신은 발전소 컴퓨터 관리를 담당하던 엔지니어 출신의 소설가로 삼체로 2015년 휴고상(장편 소설 부문)을 받았습니다. 휴고상은 SF 부문의 노벨 문학상이라고들 하지요. 이런 탄탄한 SF 소설을 내어놓는 바탕 위에 시진핑의 GDP의 2.5%까지 확대하겠다는, "과교 흥국", "과학굴기"로 기초 과학 분야에 더 과감한 투자까지 하겠다는 중국 공산당의 지원이 더해지면 아마도 중국이 최초로 화성을 밟을 가능성은 점점 높아질 것 같습니다.
삼체가 3부작이어서 마지막 3부작도 기대됩니다.
아쉽게 리스트에 들지 못한 책 첫 번째로 "나의 눈부신 친구"(엘레나 페란테, 김지우, 한길사, 2016)를 꼽습니다. 번역을 하신 김지우씨가 본인도 긴장을 늦추지 않기 위해 시리즈 세 권을 다 읽지 않고 번역을 해가면서 읽는다고 해서 3권까지 다 나오면 읽으려다가 참을성 없이 읽어버렸습니다. 뭐라 말하기 힘들 정도로 참 묘한 책입니다. 이문열 씨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느낌도 있고, 나폴리 지도를 펼쳐놓고 읽으면 좋습니다. 전 세계가 빠져든 이유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2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가 12월에 나와버렸네요. 올해안에 읽을 수 있을려나요.)
죽여 마땅한 사람들(피테 스완슨, 노진선, 푸른숲 2016) - '죽어 마땅한' 이 아니라 '죽여 마땅한'입니다. 좋습니다.
지적자본론(마스다 무네아키, 이정환, 민음사, 2016) - 일본 '츠타야서점'의 경영철학에 관한 내용으로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같으면서도 참 쉽지 않은 얘기들로 공감이 갔습니다.
오리지널스(애덤 그랜트, 홍지수, 한국경제신문, 2016) - 애덤 그랜트의 책은 말콤 글래드웰보다 가볍지 않고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 좋습니다. 이 책도 한번 북코에서 다뤘으면 합니다.
......
아, 올해도 읽고 기분 좋은 책이 참 많았습니다.
책을 꼽다 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나면서도 황희 정승 일화에 나오는 농부 얘기처럼 리스트에 안 올렸다고 몇몇 책들이 섭섭해할까 걱정도 됩니다.
내년에는 책 읽다 보니 다른 짓 할 시간이 없다가 아니라 저도 남들처럼 책 읽을 시간이 없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도 해봅니다.
첫댓글 우와와와......띠용띠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