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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불공
불공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 불공은 단순히 물질을 공급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귀의 , 참회 , 공양 , 발원 , 회향이 여법하게 갖추어지는 의식을 통틀어서 말하는 것이다 .
불공은 우리의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 괴로움과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이를 소멸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서 올리기도 하고 , 혹은 원하는 일들이 뜻대로 되었을 때 부처님께 감사의 뜻으로 올리기도 한다 . 그러나 무엇보다도 일의 성패나 행운 , 일상적 일에 관계없이 항상 진리 속에 살면서 삶의 눈을 뜨게 해준 고마움과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을 믿고 존경하며 본받기 위한 수행의 일환으로 불공을 올려야 한다 .
불공의 핵심은 베품이다 . 공양은 음식이나 의복 , 혹은 그 밖의 물건을 삼보님과 부모님 , 스승과 망자에게 공급하는 것으로서 , 특히 삼보님께 공양하는 것은 선업을 쌓는 일로 크게 장려하고 있다 .
공양하는 물건이나 공양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 세간의 재물이나 향 , 꽃 혹은 생활용구를 공양할 수도 있고 , 보리심을 일으켜 자리이타의 행을 닦는 공양도 있다 .
몸 (身 )으로 하는 예배 공경과 입 (口 )으로 하는 찬탄과 뜻 (意 )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존중하는 삼업 (三業 )공양 , 음식 , 의복 , 탕약 , 방사 (房舍 ) 등을 올리는 것을 사사 (四事 )공양이라고 한다 . 또한 공양은 중생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 부처님께서도 중생들의 깨달음을 위해 늘 법 (法 )공양을 베푸신다 . 부처님께서는 공양 중에서도 법공양이 으뜸이라 하셨다 .
3 불교의 명절의례
1 5 대 명절
<부처님 오신 날 >
음력 4 월 8 일은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날이다 . 이 날은 전국의 사찰에서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하며 법요식을 봉행 한다 . 법요식 가운데는 욕불 의식이 있는데 부처님이 탄생하신 것을 축복하며 향탕수로 목욕시키는 의식이다 .
이 의식은 아기 부처님이 탄생하셨을 때 아홉 마리 용이공중에서 향기로운 물을 솟아나게 하여 신체를 목욕시켰다는 데서 유래한다 . 그 순서를 보면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 탄생불을 불단에 모시고 룸비니 동산의 화원을 상징하는 꽃바구니를 만들고 향탕수 즉 , 감로다를 준비해서 비밀스럽게 목욕시킨다 . 이 의식은 큰스님을 증명법사로 모시고 비밀스럽게 행했던 것인데 요즘은 대중화 되어 스님과 신도가 함께 욕불식에 참석해서 정수리에 향탕수를 부으며 공덕을 쌓는 풍속으로 변하고있다 .
또 연등회는 부처님 당시에 빔비사라왕이 불전에 1 만 등을 켜서 공양한 예가 있고 , 가난한 여인이 한 등을 켜서 1 만 등을 능가하는 정성을 보이기도 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 촛불이 자기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듯이 등을 켜는 이유도 가정과 사회 , 세계를 밝히겠다는 서원의 발로인 것이다 .
이 연등법회는 ≪삼국유사≫ 김현감호조에 초파일부터 보름까지 경주의 남녀가 다투어 탑돌이를 한 기록에서 전통문화행사로 치루어 졌음을 알 수 있다 . 스님을 따라 염주를 들고 탑을 돌면서 염불을 하고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고 자신의 소원을 빌며 등을 밝히고 극락왕생을 기원하였다 . 이 의식은 꼭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국태 민안과 개인의 평안을 바라는 뜻에서 일반 민속화 되었던 것이다 .
<출가하신 날 - 출가절 >
음력 2 월 8 일은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날이다 . 모든 중생을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건지시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이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버리고 왕궁을 떠나 출가하신 날로서 , 불자들은 부처님을 본받아 상구보리하화 중생의 보살이 되겠다는 서원을 세우며 기념법회를 가진다 .
<깨달음을 이루신 날 - 성도절 >
음력 12 월 8 일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성취하신 날이다 . 이날을 기념해 선방의 수행자들은 일주일간 철야 용맹정진을 하며 , 일반 사찰에서도 발심 정진하는 철야법회를 갖는다 . 부처님께서 행하신 수행을 본받아 불자들은 부처님처럼 생사의 고해에서 벗어나 열반을 얻어 일체중생을 교화하고 불국정토를 건설하겠다는 서원을 세우며 기념법회를 가진다 .
<열반에 드신 날 - 열반절 >
음력 2 월 15 일은 부처님께서 일체의 번뇌를 끊어 열반에 드신 날이다 . 부처님의 열반은 이 세상의 모든 번뇌를 확실히 끊었다는 점에서 반열반이라고도 한다 . 즉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교화하시던 시기는 아직도 인연의 꺼풀인 육체를 지니신 단계이지만 , 그 꺼풀조차 벗었다는 점에서 깨달음의 큰 완성으로 보는 것이다 . 불자들 또한 몸을 바르게 하고 노여움을 참고 악심을 버리고 탐욕을 버리고 열반의 경지를 성취겠다 는 서원을 세우며 기념법회를 가진다 .
<우란분절 - 백중 >
음력 7 월 15 일은 여름안거 해제일이며 백중날이다 . 백중은 과일과 음식 등 백 가지를 공양한 백종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 선방에서는 하안거 동안 정진하면서 생긴 스스로의 허물을 대중 앞에 사뢰고 참회하는 자자 (自恣 )를 행하며 , 불자들은 선망부모를 천도하는 우란분절 법회를 가진다 .
이 우란분절 법회는 안거수행 대중에게 공양을 올린 공덕으로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제한 목련존자의 효행에서 비롯되었다 . 목련존자가 신통력을 얻은 후천안으로 어머니를 찾아보았더니 어머니가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 그래서 어머니를 구제할 방법을 부처님께 여쭈었더니 그때에 부처님은 지금 살아 있는 부모나 7 대의 선망부모를 위하여 하안거 해제일에 음식 , 의복 ,등촉 , 평상 등을 갖추어 시방의 고승 대덕들에게 공양하면 그 공덕으로 지옥의 고통에서 구할 수 있다고 하여 그대로 행한 데서 유래한다 . 조선시대에도 음력 4 월 초파일과 백중을 일년 중 가장 큰 행사로 여겼다 .
민간에서는 이 날이 고된 농사를 끝내고 , 벌이는 칠월의 세시명절이다 . 세벌 김매기인 만두레를 끝낸 다음 벌이는 농민 및 머슴들의 대동 굿으로서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최대 축제일이었다 . 불자들은 한여름의 풍성한 과일이나 햇곡식을 들고 절을 찾아 스님들께 공양하거나 조상천도를 위한 기도를 한다 .
2 그 밖의 명절의례
불교가 이 땅에 전래된 지 1, 600 여년이 넘었다 . 그 기간동안 불교는 민족과 영욕을 함께해 왔으며 , 민속의 많은 부분을 불교의식 속에 받아들였다 . 그래서 어떤 경우는 전통민속과 불교행사가 서로 구별되지 않을 정도다 .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민속명절을 하나의 의례로 정리하여 지켜가고 있다 .
정월은 새해의 풍요와 안정을 희구하는 새로운 출발의 시기이면서 동시에 쉬면서 다가올 농사일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
정월에 사찰에서는 마을 주민들과 더불어 여러 가지 행사를 했다 . 즉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어온 장승이나 서낭당 , 당산 거목 , 국사당의 제사에 참여하거나 , 절 입구의 서낭이나 장승 앞에서 원앙재 (연말 ),성황제 (연초 )를 지내 질병을 막고 절의 융성을 기원하기도 했다 . 또는 신년 첫 법회를 사찰의 대중스님들과 불자들이 함께 지내며 일년의 평안을 발원하기도 한다 . 이 법회를 통알 (通謁 ) 혹은 세알 (歲謁 )이라고 하는데 , 석가모니부처님을 비롯하여 삼보와 호법신중 , 그리고 인연 있는 일체 대중에게 세배 드리는 의식이다 .
2 월에는 연등놀이가 유명했으나 요즘은 4 월 초파일 연등행사로 바뀌었다 . 등은 각종 동식물의 형상을 본떠 만든 것 이외에도 일월등 , 종등 , 북등 , 칠성등 , 오행등 등의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이 연등행사를 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 될 정도로 장엄했다고 한다 .
이 외에도 양력 2 월 4 일이나 5 일에 돌아오는 입춘에는 홍수 , 태풍 , 화재의 세 가지 재난인 삼재 (三災 )를 벗어나게 하는 삼재풀이를 하고 일년 내내 풍요로움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 그 외에도 삼월 삼짇날 불공 , 단오 , 칠석 등 각종 민속절기마다 절에서는 불공과 기도를 올리며 , 양력 12 월 22 일이나 23 일 돌아오는 동지에는 붉은 팥죽을 쑤어 먹으며 기원하기도 한다 .
민족의 세시풍속을 불교가 받아들여 불교 명절화 된 것은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민중들의 소망을 받아들여 고통을 함께 나누는 뜻이 담겨 있다 . 그러므로 불교가 민간신앙을 수용 , 전승하며 발전시켰기 때문에 민중과 함께 가꾸어 나가는 민족종교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
4 가정신행
가정은 우리들이 태어나고 성장하며 인격이 성숙해가는 곳이고 , 인류사회에 봉사하기 위한 기초적인 장소이다 .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조건 없이 베풀고 돕는 기본적인 보살의 생활을 배우는 곳이며 ,가족에서 출발하여 일가 친척과 이웃에게 연결되는 출발점으로 최상의 교육장이기도 하다 . 사회생활을 위한 기능과 지식은 학교에서 얻을지라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덕성과 지혜 품성은 가정교육에서 길러지게 된다 . 진리의 가르침에 기초한 훌륭한 가정에서 재능과 인격의 원만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 그러므로 불자의 가정은 항상 부처님의 크신 자비를 생각하는 곳이어야 한다 . 자식은 부모님을 부처님처럼 받들고 , 부모는 자녀들이 지극히 높은 덕성과 아름답고 밝은 지혜와 큰 복을 가지고 태어난 것을 믿으며 사랑하고 존중하며 키워야 한다 .
그리고 가정은 수행 도량이 되어야 한다 . 자기 생명을 참답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수행이라면 살아 있는 모든 시간은 바로 수행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 재가신자들이 오로지 수행만을 위해 출가한 스님들처럼 수행하기는 어렵다고 할지라도 하루 하루를 경건하게 보내고 수행자와 같은 정신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
물론 사람마다 자질과 성품이 다르다 . 상근기에게는 참선 , 중근기에게는 경전을 읽는 간경 , 하근기에게는 불보살의 명호를 지성으로 외우는 염불을 각기 적합한 수행으로 권한다 . 수행법은 자신의 성품에 맞게 선택하여야 하며 , 무엇보다 꾸준히 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좋다 . 혹은 기도와 절 , 참회와 발원도 불자들이 가정에서 행할 수 있는 좋은 수행법이라 하겠다 .
하루 중의 수행법으로는 단순하게 일정한 시간을 정해 108 배를 한다든지 , 염불을 한다든지 , 경전을 읽는다든지 하는 것도 좋지만 , 이러한 수행 자체가 초심자에게는 맹목적 , 의무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일정한 순서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 좋다 .
대략 집에서는 입정 , 삼귀의 , 독경 , 기도발원 , 사홍서원의 순서에 따라 진행하면 된다 . 하루를 시작하기 전인 새벽의 수행은 그날 하루를 즐겁고 보람되게 하며 , 하루를 정리하는 저녁의 수행은 하루를 돌이켜 반성하며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
또한 수행시간만이 아니라 평소의 모든 일 , 모든 사람에 대해 언제나 육바라밀행을 실천하도록 자신의 생활을 가다듬는다면 매일매일의 생활은 복된 생활로 바뀔 것이다 .
불자들의 가정신행은 항상 기도하는 것이어야 한다 . 중생들은 지은 업장이 두텁고 복덕이 엷어 하는 일이 뜻대로 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온갖 장애와 역경을 당하기도 한다 .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혜와 복덕이 구족한 불 보살님께 의지해 가피력을 얻는 것이다 . 그러나 기도는 일방적으로 어떤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기만 하는 기원이 아니라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스스로 어떻게 하겠다는 서원적 발원이어야 한다 . 기도는 찬탄과 참회 , 감사와 발원을 구체화시키는 고도의 수행 방법인 것이다 .
5 역경을 이겨내는 불자의 자세
세상을 살다 보면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 그 때 중생은 어쩔 수 없이 불 보살님의 가피력에 의지하게 된다 . 불 보살의 가피는 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원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생을 두고 자신을 희생해온 공덕으로 성취된 것이기 때문에 중생들이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모두를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 . 지옥중생조차 모두 구원하겠다는 지장보살의 서원이 있고 , 자신의 이름을 한번이라도 부르면 모두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하겠다는 아미타부처님의 서원도 있다 . 항상 자애로운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중생을 위로하는 관세음보살과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을 치유하는 약사여래도 있다 . 이러한 제불 보살님의 가피력에 의지하여 중생 하나하나는 스스로가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 그러나 자기 자신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에서 끝난다면 불교인이 세상 사람들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 . 그러므로 바른 불교인은 불 보살님의 본원 가피력에 힘입어 스스로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듯이 스스로 중생구제의 큰 서원을 세워 일체중생에게 그 공덕을 회향해야 한다 .
또 세상 사람들은 모든 어려움과 역경을 자기 탓이 아닌 남의 탓으로 돌린다 . 그래서 남을 원망하고 세상을 한탄한다 . 그러나 불교인은 우리 몸에 나타나는 재난이나 환경이 모두 내 마음의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 고난을 당하면 무엇보다도 자기자신이 지은 허물임을 알고 깊이 참회해야 한다 . 그 허물은 금생의 것일 수도 있고 전생의 것일 수도 있다 .
또한 고난을 당해서도 절망에 빠질 필요가 없다 . 역경은 과거에 지은 잘못의 과보가 현재에 나타남으로써 소멸되는 것이니 잠복 중에 있던 나쁜 원인이 소멸되면 다행스러운 일이며 새로운 희망이 싹틀 전조가 되기도 한다 . 그러므로 불자는 고난 앞에서도 오히려 감사하고 불평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용기를 잃지 않으며 극복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 지은 바 원인이 있어서 고난이 나타나는 것처럼 ,희망은 오늘 새롭게 씨를 뿌림으로써 커 가는 것이므로 고난을 당해서도 새 희망을 일으키고 용맹 정진하여 새로운 전환의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 불자들은 고난과 역경을 당해서도 좌절하지 않고 당당하게 일어서 끊임없이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켜 운명 그 자체를 바꿔 나가야 한다 . 왜냐하면 운명은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1 보왕삼매론
불자의 마음 자세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 .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되나니 ,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 하셨느니라 .
수행하는데 마 (魔 ) 없기를 바라지 말라 .
수행하는데 마가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지지 못하나니 ,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모든 마군을 수행의 벗으로 삼으라' 하셨느니라 .
일을 도모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
일이 쉽게 되면 뜻이 경솔해지니 ,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여러 겁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라' 하셨느니라 .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
내가 이롭고자 하면 의리를 상하게 되나니 ,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순결로써 사귐을 길게 하라' 하셨느니라 .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기를 바라지 말라 .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 지나니 ,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써 원림 (園林 )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
공덕을 베풀려면 과보를 바라지 말라 .
과보를 바라면 도모하는 뜻을 가지게 되나니 ,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덕 베푸는 것을 헌신처럼 버리라' 하셨느니라 .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이 생기기 쉽나니 ,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적은 이익으로써 부자가 되라' 하셨느니라 .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써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
이와 같이 막히는 데서 도리어 통하는 것이요 ,
행함을 구하는 것이 도리어 막히는 것이니 , 이래서
부처님께서는 저 장애 가운데서 보리도를 얻으셨느니라 .
저 앙굴마라와 제바달다의 무리가 모두 반역의 짓을 했지만 우리 부처님께서는 모두 수기를 주셔서 성불하게 하셨으니 , 어찌 저의 거슬리는 것이 나를 순종함이 아니며 제가 방해한 것이 오히려 나를 성취하게 함이 아니리요 .
요즘 세상에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만일 먼저 역경에서 견디어 보지 못하면 장애에 부딪칠 때 능히 이겨내지 못해서 법왕의 큰 보배를 잃어버리게 되나니 , 이 어찌 슬프지 아니하랴 .
2 병자를 위하여
구병시식 (救病施食 )
구병시식은 병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사찰에서 행하는 일종의 재례의식이다 . 시식이란 업력에 의하여 고통 받는 영가 (영혼 )들에게 법식을 베풀어 천도하는 의식을 말한다 .
불교에서는 우리 몸에 발생하는 병의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보는데 , 하나는 현세실조병 (現世失調病 )이라 하여 음식이나 몸과 마음가짐을 조절하지 못해 생기는 병이고 , 두 번째는 선세행업병 (先世行業病 )이라 하여 과거에 저지른 온갖 악업의 결과가 현세의 질병이라는 과보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 특히 누군가를 몹시 괴롭히거나 미워할 경우 그 업의 힘이 잠복해 있다가 현세에 자기 몸의 병으로 나타난다 . 그래서 우리 몸이 병들었을 때 육체적인 원인을 찾아 물리적으로 다스리는 현대의학적 처방도 당장은 중요하지만 , 자신의 업에 대한 참회와 더불어 주변의 모든 원한관계를 해소하고 고통 받는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그 공덕으로 병고의 원인을 해소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이라 하겠다 . 그러므로 구병시식은 육체와 정신이 따로 떨어져 있는 별개의 실체가 아니라 서로 유기적인 연관관계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현상이라는 연기론적 사고를 바탕으로 복덕을 지어 병고와 액운을 이겨내려는 데에 본래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 아난존자에 의해 비롯된 불교의 시식은 배고픈 귀신들을 법식을 통해 굶주림을 채우고 불법에 귀의하여 법문을 듣고 하루 속히 안락국에 태어나라는 천도 의식이지 , 굿이나 귀신을 겁주어 쫓아내려는 미신적 행위가 아니다 . 오히려 그들을 만족시켜 원한의 마음을 풀게 하는데 있다 .
구병시식의 절차는 먼저 삼귀의를 하고 ,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께 귀의하여 그의 위신력으로 책주귀신영가를 천도한다 .
≪천수경≫을 외우고 멸악취진언을 하여 악취로부터 아귀들을 불러내어 병자의 내력을 유치 (由致 )로 설명한다 . 설단에는 말 마 (馬 )자 와 금은전 (金 銀錢 )각 일곱 글자와 남귀여귀 (男鬼 女 鬼 ) 2 개를 써서 붙이고 책주귀신영가 위패를 모신 다음 , 일곱 접시의 밥과 찬 , 그리고 삼색 과일 등 제반 음식을 차려놓고 간절하게 시식을 베푼 다음 문 밖에 나가서 봉송한다
영혼에게 드리는 향화청가영 (香花請歌詠 )을 살펴보면 ,
빚진 사람 원수가 되어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 그치지 못해
지금 시식을 베풀어 법식을 제공하니
무릇 깨달아 원한을 푸소서
로 되어 있어 구병시식이 전생의 빚을 갚고 원한을 풀어 현재의 병고를 이겨내는 의식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불자들이 지켜야 할 것은 시식 , 특히 구병시식은 일반 불자들이 행할 수 있는 의식이 아니다 . 수행공덕이 높으신 스님에 의하여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6 이 세상의 인연이 다하여
사람을 육체로만 판단할 때 사후에는 아무 것도 없는 듯이 보인다 . 그러나 지수화풍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진 이 육체는 미혹한 중생의 마음 상태가 인연이 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비록 인연이 다하여 육체는 없어진다고 해도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하는 한 여전히 미혹한 상태는 남는 것이다 . 그렇지만 미혹한 마음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절대적인 깨달음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또한 없는 것이다 . 중생은 미혹 상태에 집착하여 육체를 잃은 후에도 여전히 어리석게도 미혹의 세상을 헤매이다 미혹된 몸을 받는다 .이것이 윤회 (輪 廻 )다 . 생전이냐 생후냐 하는 것은 오직 육체를 보느냐 안 보느냐의 차이뿐이다 .
윤회하는 영혼 (識 )을 중유 (中有 또는 中陰 )라고 부르는데 , 아직 다음 생을 받지 못한 상태를 말하며 , 부처님의 법을 설하여 극락으로 인도하는 천도의식은 바로 이 단계에서 행해진다 .
1 불교의 장례
죽은 이를 위해 장례 전에 행하는 의식을 시다림 (尸陀林 )이라고 한다 . 원래 인도의 시타림 (sita-vana)에서 유래한 말로 , 시체를 버리는 추운 숲 (寒林 )이라는 뜻이다 .
이 말이 우리 나라에서는 망자를 위해 설법하는 것으로 뜻이 변했다 . 시다림 법문은 신라시대 이후로 관습화 되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성행하였고 오늘날은 불교장례법으로 일반화되었다 .
사람이 죽으면 망자에게 <무상게 >를 일러주고 입관하기 전에 목욕의식을 행한다 . 경은 보통 <<아미타경 >>, ≪금강경≫, ≪반야심경≫ 등을 독경하고 서방 극락세계에 계시는 아미타 부처님을 부르며 발원한다 . 발원의 대상은 동 て 서 て 남 て 북 て 중앙에 있는 화장세계 노사나불과 동방 만월세계 약사불 ,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 남방 환희세계 보승불 , 북방 무우세계 부동존불이다 . 목욕을 시키고 수의를 입히는매 단계마다 영가를 위한 법문이 있게 되는데 , 이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좋은 곳으로 인도하여 천도하는 의미가 있다 . 장례절차가 끝나면 발인을 하게 되는데 , 임시로 단을 만들고 제물을 정돈한 후 영구를 모시고 나와 제단 앞에 모신다 . 법주가 거불과 청혼을 한 다음제문을 낭독한다 . 법주의 법문이 끝나면 대중이 다함께≪반야심경≫을 독송한 뒤 추도문을 낭독하고 동참자들이 순서대로 분향한다 . 발인이 끝나면 인로왕번을 든 사람이 앞장서고 명정 , 사진 , 법주 , 상제 , 일가친척 , 조문객의 순으로 진행한다 .
불교의 전통적인 장례법은 화장이다 . 이를 다비 (茶毘 )의식이라고도 한다 . 나무와 숯 , 가마니 등으로 화장장을 만들고 관을 올려놓은 후 거화편을 외우고 불을 붙인다 . 불이 붙은 다음에는 미타단을 신설해서 불공을 올리고 영가를 일단 봉송한 뒤에 위패를 만들어 창의 (唱衣 )한다 . 시신이 어느 정도 타면 뼈를 뒤집으며 기골편 (起骨篇 )을 하고 완전히 다 타서 불이 꺼지면 재 속에서 뼈를 수습하며 습골편 (拾骨篇 )을 한다 . 뼈를 부수면서는 쇄골편 (碎骨篇 )을 하고 , 마지막 재를 날리면서는 산골편 (散骨篇 )을 한다 .
유교 풍습의 여파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화장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부모로부터 받은 사대 (육체 )는물질 (흙 , 물 , 불 , 바람 )의 인연이 화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 그러므로 죽은 후에까지 육체에 집착하여 화장보다 매장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 진정으로 고인을 위한다면 화장 후 납골을 수습해서 본처 (본래 고향 )로 흩어주고 절에 모셔서 천도재를 잘 지내드리면 좋을 것이다 . 천도재를 올리고 난 다음에는 위패를 납골당에 모시든지 아니면 가까운 곳에 성스러운 가족탑을 세워서 모시는 것이 좋다 .
요즘은 의학이 발달하여 병들어 아픈 사람도 다른 사람의 건강한 장기를 이식 받으면 생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되었다 . 보살은 중생을 위해 피와 살을 모두 다 준다고 하였는데 , 하물며 죽은 이후에 이 육신에 대해 무엇을 아끼고 소중히 여길 것인가 . 살아 생전에 장기기증 서약을 하고 다른 이의 생명을 살리는데 나의 장기가 쓰여진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 불자들은 자신과 남이 더불어 사는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 .
2 나와 남을 위한 공덕 -재 (齋 )
재 (齋 )는 깨끗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며 공덕을 닦는 의식이다 . 재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어인 우포사다 (uposadha)에서 유래되었는데 스님들의 공양의식을 뜻한다 . 대개 스님들에 대한 공양은 집안의 경사나 상사 (喪事 ), 제사 때에 이루어졌으므로 나중에는 제사의식으로까지 전환되었다 . ≪목련경≫에는 공양을 받는 스님들의 숫자에 따라 오백승재의 명칭이 나오고 , 중국에서는 양 무제가 사람의 숫자에 제한하지 않고 누구나 자유로이 동참할 수 있는 무차대회 (無遮大會 )를 열었다고 한다 .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반승 (飯僧 )이라는 명칭으로 행해졌다 .
원래 이 재는 스님들에게 공양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간단히 불전의식을 집행하고 공양에 임했으나 그것이 점차 큰 법회의식으로 되어 호국법회의 형식으로까지 발전했다 . 나중에는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을 위해 베풀어지는 일체의 행사를 통칭하는 말로 되었다 . 요즈음은 스님들에 대한 공양부터 기도 , 불공 , 시식 , 제사 , 낙성 , 기타 법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재라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
3 천도재
자손이 조상을 돌보는 것은 인간의 근본을 귀중히 여기는 아름다운 풍습이다 . 천도재는 망자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한 의식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이 지극한 정성으로 재를 지내 죽은 사람이 생전에 지었던 모든 업을 소멸하고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의식이다 . 그 내용은 영가에게 <무상게 >를 일러주어 죽음이라는 현실을 만물 변화의 자연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 영가로 하여금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라 원래의 청정한 마음을 되찾도록 인도하고 극락세계에 왕생할 것을 권하는 내용이다 . 또한 영가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재에 참석하여 공덕을 짓는 이들에게도 생사의 슬픔을 승화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 또한 이 재의 공덕은 7 분공덕이라고 하여 망자와 동시에 재를 올린 이에게도 회향된다 .
재의 진행은 주로 도량장엄을 하고 시련 대령 관욕 불공시식 등으로 행해지며 , 그 종류도 49 재 , 100 일재 , 기제 (忌祭 ), 소상 , 대상 등의 정기적인 천도재와 수륙재 , 필요에 따라 시설하는 부정기적인 천도재 등이 있다 . 정기적인 재의 경우 돌아가신 날부터 시작하여 매 7 일마다 계속하여 49 일 되는 날까지의 7 번과 100 일재 , 소상 , 대상을 합하여 10 번을 하는데 , 이는 명부의 시왕 (十王 )에게 심판을 받는다는 명부신앙에 근거한 것이다 .
의식을 행하는 절차에 따라 상주권공재 (常住勸供齋 ), 각배재 (各拜齋 ), 영산재 (靈 山齋 ) 등의 몇 가지로 나뉜다 . 가장 일반적인 것이 상주권공재이고 여기에 명부신앙의례를 첨가한 것이 각배재이며 , 법화신앙을 가미한 것이 영산재이다 . 절차는 시련 (侍輦 )에서 영가를 맞아들이고 , 대령 (對靈 )에서는 영가를 간단히 대접하여 예배케 한다 . 관욕에서는 불보살님을 맞이하기 위하여영가를 목욕시키고 신중작법으로 모든 신중을 맞아들인다 . 상단권공에서 불단에 공양 드리고 법식을 베풀어 받게 한다 . 그리고 봉송편에서 불보살을 모시고 영가를 봉송하고 마치는데 불자는 망자를 위한 기도로서 최소한 49 재만이라도 지내야 할 것이다 .
4 수륙재
수륙재 (水陸齋 )란 물이나 육지에 있는 외로운 귀신이나 배고파 굶주리는 아귀에게 공양하는 법회이다 .양나라 무제의 꿈에 어떤 스님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사생육도 (四生 六 道 )의 중생들이 한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데 어찌하여 수륙재를 베풀어 그들을 제도하지 않는가 ? 이들을 제도하는 것이 모든 공덕 중에서 으뜸이 된다'고 하자 지공선사에게 부탁하여 수륙재를 행한 것이 그 시초라 한다 .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광종 22 년 수원 갈양사에서 혜거국사가 처음 시행하였다 .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정책으로 불사에 어려움이 많았으나 태조는 진관사 (津寬寺 )를 나라의 수륙재를 여는 사사 (寺社 )로 지정하고 견암사 , 석왕사 , 관음굴 등에서 고려 왕씨들을 위한 수륙재를 베풀었다 . 이 수륙재는 많은 물자와 인원이 동원되는 행사로서 국행 (國行 )수륙대재라고 할 정도로 국가적인 지원으로 진행되었다 .
5 영산재
영산재 (靈 山齋 )란 영축산에서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의 모습을 이 세상에 재현한 의식이다 . 즉 온 세계 모든 성현들과 온 세계 스님들을 청하여 봉양하며 법문을 듣고 시방의 외로운 혼령들을 천도하고 무주고혼 영가들에게 장엄한 법식을 베풀어 극락왕생하도록 하는 의식이다 .
먼저 도량을 장엄하는데 영산회상을 상징화하여 법당밖에 괘불을 시설하고 의식 도중에 범패 등의 불교음악을 공양하여 장엄한다 . 단의 구성은 법당과 같이 상단은 괘불 앞에 설치하고 향 , 차 , 꽃 , 과일 ,등불 , 쌀 등을 공양하고 , 중단은 신중단으로 , 하단은 그날의 영혼에게 제사 드리는 영단으로 구성한다 .절차는 49 재 때와 마찬가지로 시련에서 시작하여 의식단 앞에 이르고 잠시정좌한 다음 각단마다 권공예배를 하고 축원을 하고 영단에 이르러 시식을 하고 회향하게 되는데 의식을 맡은 스님들을 선두로 참가한 대중이 도량을 돌면서 회향한다 . 이 의식은 자작자수 (自作自修 )라는 수행과 기원 , 회향 , 추선공양이라고 하는 교리적 발전과 함께 발전된 의식이며 , 우리 나라 전통음악과 무용이 한데 어우러져 있고 또한 민간신앙까지 수용한 불교의식이자 국가가 지정한 무형문화재 (영산회상곡 )이기도 하다 .
6 예수재
예수재 (豫修齋 )란 살아 생전에 미리 수행과 공덕을 닦아두는 재의식로서 , 속설에는 자신의 49 재를 미리지내는 것이라고 한다 . 그래서 다른 말로는 역수 (逆修 )라고도 한다 . 49 재는 순수하게 죽은 이를 위한 재이나 , 예수재는 살아 있는 이가 자신의 사후를 위해 미리 준비함으로써 살아서나 죽어 행복을 함께 추구하는 아름다운 의례이다 .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참회의 공덕으로 업장을 소멸하고 , 지계와 보시로써 스스로 내생의 복락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경전을 독송하여 해탈과 열반의 길에 들어서고자하는 것이며 , 불보살님과 명부시왕을 비롯한 많은 성현들에게 공양을 올려 은혜를 갚고자 하는 것이다 .
불보살님과 호법신중의 가피력 아래 스스로의 참된 수행과 공덕으로 자신의 미래를 닦아나가는 의례인 예수재는 불교신앙의 전통을 대중과 함께 구현하고있다는 점에서 뜻 깊은 의례라 하겠다 .
제 5 장 함께 사는 세상
1 공동체 생활
어리석게 살지 말라 .
남의 흉내를 내면서
살지 말라 .
잘못된 생각에 끌려
가지 말라 .
그리고 물질에 너무
탐닉하지도 말라 .
《법구경》
매순간 우리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간다 . 가정에서는 가족과 친척 , 학교에서는 스승과 친구 , 그리고 직장에서는 동료와 상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 자신과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과 함께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 사람 사이의 갈등은 언제나 사소한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나중에는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곤 한다 .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너'와 '나'라는 입장에서 자기 것을 집착하는 어리석음에서 시작된다 . 함께 살아가면서도 '너'와 '나'로 나뉜 채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에게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끼곤 한다 .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너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라고 말씀하셨다 . 우리가 무지에서 벗어나 진리를 발견하게 되면 결국 '너'와 '내'가 서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라는 하나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 우리라는 공동체의 의식을 가질 때 사람들과의 관계는 한층 가깝고 따뜻한 사이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수행이 필요하고 , 자신보다 나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배우려는 자세로 나아가야 하며 ,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 자신도 과거에 그러했음을 반성하며 친절하게 일러주는 태도로 나아가야 한다 .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얕잡아 보는 행동은 어디서나 문제의 화근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물대는 사람은 물길을 바로잡고
활 만드는 사람은 화살을 바로잡고
저 목수는 나무를 다루고
현명한 이는 지혜롭게 자신을 다스린다 .
《법구경》
1 수행과 화합의 공동체
거대한 댐이 작은 구멍 하나로 무너지듯이 사회라는 큰 틀도 개인의 변화에 크게 좌우된다 . 특히 도시화 되고 문명의 이기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있어 개인의 깨달음과 바른 삶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 개인의 변화는 이 시대 개혁의 출발점이자 완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공동체에는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도덕과 최소한의 규범이 있다 . 부처님께서는 불자들이 지켜야 할 생활규범의 원칙으로 다음의 열 가지를 말씀하셨다 . 이 열 가지 원칙들은 몸 (身 )과 입 (口 )과 생각 (意 )에 바탕을 둔 것으로 , 몸과 관련된 것이 세 가지 , 입은 네 가지 , 생각과 관련된 것이 세 가지이다 .
첫째로 몸과 관련된 규칙으로는 , 남의 것을 훔치기 보다는 남에게 베풀 것 (不 偸盜 ), 다른 사람과 삿된 관계를 갖지 말고 정숙한 생활을 할 것 (不 邪游 ), 술에 탐닉하지 말 것 (不 飮酒 )을 강조하셨다 . 이것은 자신에게도 해로울 뿐 아니라 다른 이를 고통에 빠뜨리는 근원이 된다 .
둘째로 입으로는 먼저 , 남에게 거짓말보다는 정직한 말을 해야 한다 . 이것이 불망어 (不 妄語 )이다 . 거짓말을 하는 것은 자신의 조그마한 이익을 생각하기 때문인데 그러나 그것은 자신감을 상실한 사람들이나 하는 행위이다 . 그러므로 스스로 당당한 사람이 되어 거짓말에 쏟는 정열과 노력을 돌려 정직하게 살아가야 함은 물론 , 욕설보다는 부드러운 말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안온한 상태에서 서로 흉금을 털어놓고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이것이 불악구 (不 惡口 )이다 . 남을 속이는 일은 나를 속이는 일이고 이런 행동이 점점 심해지면 나중에는 습관적으로 남을 속이는 행위를 하게 된다 . 그러나 인간의 자의식은 언제나 잠재하고 있어 나중에는 스스로 항상 누가 나를 속이지나 않나 의심하게 된다 . 그리고 이것이 깊어지면 심리적 변화를 유발하기도 한다 . 따라서 바른 말을 하여 신뢰의 바탕을 쌓아야 한다 .이것이 불기어 (不 綺語 )이다 .
우리 속담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 이것은 남이 잘 되는 것을 못 봐주는 의식에서 나온 속담일 것이다 . 이러한 현상이 지속될 경우 믿음보다는 불신이 심화될 것이다 . 불자들은 진실한 말과 행동으로 남들을 이간시키거나 불신의 소지를 남겨서는 안될 것이다 . 그리고 이간질이 깊어지면 사회가 혼란스러워진다 . 이것을 피하는 길이 불양설 (不兩 舌 )이다 .
셋째는 생각과 관련된 규칙들이다 . 우리들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속에서 살아간다 .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 뿐이다 . 사실 잘못된 행동을 돌아보면 탐욕이 그 근원이다 .따라서 탐욕을 버리는 정신수양이 필요하다 . 부처님께서는 늘 무욕의 경지를 설하셨다 . 한편 , 잘못된 생각 한번으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게 되는 때가 많은데 그 중에서도 특히 성냄이 그 으뜸이다 .따라서 자신의 성격을 잘 다스리는 일이 중요하며 , 그것은 수행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 성냄이 없는 경지를 무에 (無 )라고 한다 .
2 보시 (布施 )
인색한 사람은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 .
어리석은 사람은
베풀 줄을 모른다 .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베푸는 걸 좋아 하나니
그는 그 선행으로 인하여
보다 높은 세상에서 축복을 누리게 된다 .
《법구경》
옛날 인도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 무엇이든지 베풀어 주면 그 공덕으로 자신에게 좋은 과보가 돌아온다고 믿었다 . 그래서 가난한 사람과 수행자 등을 만나면 자신의 복을 짓게 해준다고 믿고 의지하며 기쁜 마음으로 베풀어주었다 . 까닭에 도움을 받는 사람을 복전 또는 복밭이라고 했다 .
불교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을 보시라 한다 . 부처님은 깨달음에 이르신 후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이 땅에 머무르셨다 . 부처님께서 보이신 연민과 사랑을 본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항상 연민과 사랑의 마음인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 보시이다 . 보시에는 재물을 베풀어 주는 재시 (財施 ), 두려움을 없애 주는 무외시 (無畏施 ),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주는 법시 (法施 )가 있다 .
자기 것을 다른 이에게 주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 소유에 대한 강한 집착과 욕심으로부터 벗어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 보시는 자신의 것을 남에게 기쁜 마음으로 베풀어 주는 것이다 . 보시는 우리의 집착과 그로 인해 생긴 모든 번뇌를 없애주는 길이기도 하다 . 탐욕을 버리는 가장 좋은 길은 첫째 ,지혜의 눈을 뜨는 것이요 . 둘째 , 행동으로 나의 것을 남에게 베풀어 주는 마음이라 한다 .
어떤 마을에 두 거부가 있었다 . 갑 (甲 )은 주위로부터 존경을 받는 반면 을 (乙 )은 그렇지 못했다 . 많은 보시와 좋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을은 존경을 받지 못하자 항상 그것을 궁금하게 여겨왔다 . 그러던 어느 날 , 을이 집 근처의 숲을 거닐고 있을 때 거지가 앉아 있었다 . 을은 그에게 돈을 주고 돌아왔다 . 다음날 을이 산책을 하고 있을 때 전날 보았던 거지가 또 그 자리에 앉아 있자 , 을은 그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 그에게 돈을 주었다 . 그리고 을은 거지에게 갑도 돈을 주더냐고 물었다 . 그러자 거지는 을을 바라보면서 갑 또한 자신에게 돈을 주지만 을처럼 자신의 얼굴을 바라본적은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 그때에 을 (乙 )은 자신이 존경 받지 못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
이처럼 보시를 행할 때에는 주는 이와 받는 이가 따로 있다는 생각을 내서는 안된다 . 물질의 소유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 모든 사람은 불성을 지닌 평등한 존재이다 . 부처님은 보시할 때 어떠한 보답을 바래서는 안되며 심지어 자신이 남에게 보시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
3 지계 (持戒 )
부처님이 생존해 계실 때 , 전생에 옷을 꿰매다가 이 (옷이나 머리 속에 사는 벌레 )의 등을 찔러 죽인 대가로 열반에 들기 전에 등창이 생겨 고생했다고 하는 내용이 전생담에 실려있다 . 이것은 깨달음에 이른 사람조차도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과보를 받게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즉 알게 모르게 행하는 우리의 행동은 결국 다시 본인에게로 되돌아 온다는 법칙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행위를 하더라도 조심하지 않으면 나중에 가서 후회하게 될 것이다 . 동기나 과정이 어찌 되었든 결과만 좋으면 되지않겠느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원인 없는 결과가 있을 수 없듯 , 악한 행위에 좋은 결과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
오늘의 행동은 내일의 모습을 결정한다 . 부처님은 우리가 행한 모든 행동은 결국 우리자신에게로 돌아온다고 하셨다 . 한 방울의 물이 모여 큰 항아리를 채우는 것과 같이 , 우리가 '별거 아니겠지'라고 가볍게 생각하면서 저지른 악행이 결국 재앙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 성인이 되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 . 잠시라도 한눈을 팔게 되면 ,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행에 물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좋은 행위는 쉽게 몸에 배이지 않지만 , 나쁜 행위는 그렇지 못하다 . 항상 자신의 마음과 말과 행동을 관찰하고 자신을 다스리는데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열반경에서 제자들에게 계를 스승 삼아 열심히 정진하라고 하셨던 것이다 .
이미 저질렀거나 아직
저지르지 않았거나를 막론하고
다른 사람의 결점은
일체 보지 말라 .
이미 저질렀거나 아직
저지르지 않았거나를 막론하고
그대 자신의 잘못은
반드시 되돌아 보라
《수타니파타》
4 인욕 (忍辱 )
불교를 흔히 수행의 종교라 한다 . 수행을 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참아가며 참사람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 즉 참는다는 것은 탐내는 마음과 성내는 마음을 자제하는 것을 말하며 , 탐내는 마음을 잘 참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고 , 성내는 마음을 잘 참기 위해서는 자신을 화나게 하는 사물이나 조건 혹은 상대방을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 나로 하여금 분한 마음이 솟아오르게 하는 상대방이 있을 때에는 ,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이해하거나 , 혹은 그가 잘못된 지식으로 인해 그와 같이 행동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도 생기고 저절로 참을성이 생겨나기도 할 것이다
마치 초보 운전자가 길과 교통체계를 알지 못해 방황하는 모습 (행동 )을 보고 경멸할 것이 아니라 자신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을 떠올리며 살며시 웃어 넘길 수 있는 여유와 이해하는 참을성을 길러야 하겠다 .
5 정진 (精進 )
과거의 버릇이 얼마나 오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주는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바르게 실천하는 삶을 살려고 해도 과거의 탐욕에 길들여진 버릇을 하루 아침에 털어버리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 몸과 말과 마음의 수행이 어느 정도 되는가 싶다가도 금방 그것을 흔들고 허물어 버리는 삼독심이 솟구치곤 한다 . 그러므로 보다 굳건한 마음으로 생활하면서 과거의 습관을 바꾸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 투철하게 깨달음을 이루어 다시는 어제의 생활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커다란 서원을 세우고 그 길을 용감하게 가는 일이 중요하다 . 반복하여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그 보다 더 끈질기게 다시 떨치고 일어나는 용맹한 정진심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깨달음을 이루고 못 이루는 것도 정진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 그리고 무엇보다 행위의 결과를 미리 예측해 보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 결과에 어떤 과보를 받을지를 안다면 정진에 많은 장애를 극복하게 될 것이다 . 더욱 열심히 깨달음의 길을 향해 정진해야만 어제와 다른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
6 선정 (禪定 )
앞에서 본 것처럼 선정은 개인의 수행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싸움도 상대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내가 먼저 인욕하고 깊이 있는 생각으로 모든 행동을 차분하게 처리한다면 상대방도 다투려는 마음보다는 평온한 마음으로 상대할 것이다 . 그렇기 때문에 깊이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수행인 선정을 닦아야 한다 .
선정은 지혜로 나아가는 길이다 . 그 길은 머리가 좋은 사람만이 가는 것도 아니고 학벌과 학위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 그것은 누구든지 어떤 것에 대한 관심을 갖고 깊이 생각함으로써 자신이 그 동안 보지도 알지도 못했던 전체의 모습과 나와 남으로 나눌 수 없는 하나로 연결된 삶의 전과정이 드러나고 , 그 속에서 지킬 것과 얻을 것 , 버릴 것 등을 바르게 판단하는 것이다 .
7 지혜 (智慧 )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삶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꽃피울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좋은 향기를 준다 . 마치 언덕에 곱게 핀 꽃이 그윽한 향기를 바람에 실어 그 향기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듯이 , 지혜로운 이를 곁에 사는 삶은 나와 이웃 그리고 자연의 세계를 정화시키는 감로의 물줄기가 될 것이다 .
스스로 깨끗한 사람이
되고 , 서로 동정심을
가지고
청정한 사람들과 함께
살도록 하라 .
그곳에서 서로 사이 좋게
총명하게
그리고 고뇌를
없애도록 하라 .
《수타니파타》
2 사람과 사람사이
부처님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길을 제시해 주셨다 . 그 길을 가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 부처님께서 밝혀 놓으신 길을 통해 우리들의 삶의 방식을 비추어 보도록 한다 .
1 부모와 자식
바다와 같이 넓고 끝없는 사랑을 우리는 흔히 부모의 사랑이라 한다 . 하나의 생명을 잉태하여 스스로 독립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부모는 자식을 위해 물질적 , 정신적으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존재이다 . 자식은 부모에게 있어 분신과 같은 소중한 존재이며 활기와 희로애락의 원천이기도 하다 . 그래서 예로부터 부모와 자식 사이는 인륜이 아니라 천륜 , 즉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했다 .
부처님께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해야 할 일과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할 일을 다음과 같이 설하셨다 .
첫째 , 부모는 자식을 사랑해야 한다 .
둘째 , 자식이 악행을 멀리하고 착한 일을 하게 해야 한다 .
셋째 , 적절한 교육과 생계의 수단인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뒷바라지해 주어야 한다 .
넷째 , 결혼할 때가 되어 배우자가 정해지면 가정을 이루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
시간이 흐르면 부모는 어느새 나이가 들어 자식들에게 의지하여 살게 된다 . 이것은 자식이 어렸을 때 부모에게 의지해 사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 부처님께서는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효도라고 하셨다 . 부모가 자식에게 베풀어준 은혜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할 일은
첫째 , 늙으신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고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이 항상 보살펴 드려야 한다 .
둘째 , 부모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집안 일을 이어받아 바르게 처리해야 한다 .
셋째 , 조상님께 제사를 올리며 그 뜻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부모와 자식간의 세대차이를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 그러나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자신들의 생각을 고집하기보다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 어느 세대나 장단점은 있기 마련이다 . 자기 것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할 줄 아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 다정 다감한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 , 부모를 인생의 선배로서 존경할 줄 아는 자식이 되면 , 소위 세대간의 벽도 허물 수 있게 될 것이다 .
2 스승과 제자
서당에서 양쪽으로 댕기를 맨 아이가 종아리를 드러내고 스승 앞에 서있는 모습을 그린 옛 그림은 보는 이의 마음에 훈훈한 정감을 불러 일으킨다 . 매를 맞으면서도 익살맞은 표정을 짓는 학동 , 엄한 얼굴이지만 친근감이 느껴지는 스승의 모습에서 우리는 사제지간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 우리 시대에서 이러한 모습을 요구하기는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 그러나 스승은 자신에게 있는 모든 지식을 제자에게 가르치고 ,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제자를 격려하고 직접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하고 , 제자는 열심히 스승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며 , 스승을 존경하고 받들면서 살아야 한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
3 부부
불교에서는 전생부터 지금까지 5 백 생의 인연이 있어야만 부부가 된다고 한다 . 그만큼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남녀의 만남은 소중한 것이다 . 사랑하는 것은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가 부부라고 했다 . 부부는 흐르는 물과 공기처럼 늘 가까이 있기 때문에 서로의 그 소중함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 . 그러나 어느 한 쪽을 잃게 된다면 , 그 빈자리는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 하나의 가족이라는 사회를 형성한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며 의지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해하지 않으면 자식들은 그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될 것이다 . 문제 있는 부모로부터 문제아가 생긴다는 말이 있다 .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수많은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부모에게 문제가 생겨서 집에 들어가기 싫다고 말한다 . 부모의 불화로 인해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 것은 자식들이다 . 순간의 기분에 이끌려 남편으로서 아내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내던져 버린다면 ,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 그러므로 부부는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 하셨다 .
부모를 섬기는 것 ,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 ,
일에 질서가 있어
혼란하지 않는 것 ,
이것이 더 없는
행복이다 .
《수타니파타》
4 친구
친구는 제 2 의 '자신'이라 한다 . 성실하게 살아가던 사람도 친구를 잘못 만나면 나쁜 길로 빠지는 경우를 본다 . 친구를 사귈 때는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 자신을 목숨처럼 소중하게 생각해 주는 친구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성공했다고 말한다 . 얼마나 많은 친구가 있느냐 ?하는 양이 아니라 진정한 친구가 있느냐 ?하는 질이 중요한 것이다 . 부처님의 10 대 제자 가운데 사리불 존자와 목건련존자가 있었다 . 이들은 한 스승 밑에서 함께 수행하던 친구였다 . 좋은 스승을 만나면 서로 연락해 주기로 약속을 하고 살다가 어느날 부처님을 만나게 되었다 . 그러자 그들은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 부처님께서는 가까이 하면 유익한 친구와 멀리 해야 할 친구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가까이할 친구 >
첫째 , 친구가 취했을 때 재산을 지켜주고 두려워할 때 보호자가 되어 주며 , 필요한 때는 내가 필요로 하는 두 배 이상의 재산이라도 줄 수 있는 친구이다 .
둘째 , 즐거우나 괴로우나 항상 변하지 않는 벗이란 자기의 비밀을 말해주고 또한 나의 비밀을 지켜준다 . 재산을 잃어 가난해졌을 때도 버리지 않고 , 친구의 이익을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버리는 친구이다 .
셋째 , 착한 말만 하는 친구는 악한 일을 멀리하게 하고 선한 일을 행하게 한다 . 새로운 정보를 말해주고 성인의 가르침을 말해주고 인도해 주는 친구이다 .
넷째 , 동정 있는 벗은 친구가 약해졌을 때 기뻐하지 않고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도 기뻐한다 . 비난하고 험담하는 사람을 멀리하고 찬양하는 사람을 칭찬하는 친구이다 .
나의 결점을
일러주는 친구 ,
나의 결점을
꾸짖어 주는 친구 ,
이런 사람 만나거든
그를 따르라 .
그는 나에게
보물이 감추어진 곳을 일러주는
사람 같나니
그를 따르면
많은 이익이 있다 .
《법구경》
<멀리할 친구 >
첫째 , 무엇이나 눈에 띠는 것은 가져가고 , 작은 것을 주고 큰 것을 얻으려 한다 . 자발적이 아닌 두려움에서 일을 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일한다 .
둘째 , 교묘한 말로 우정이 있는 것처럼 가장하고 필요 없는 애교를 부린다 . 해야 할 일이 눈 앞에 닥치면 태도가 달라진다 .
셋째 , 감언이설로 상대방의 나쁜 일에만 보조를 맞추고 좋은 일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 그 사람 앞에서는 칭찬하고 돌아서면 비웃고 험담한다 .
넷째 , 생활이 문란하고 술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같이 즐길 때는 좋지만 , 결국 무기력하고 사회에서 쓸모 없는 사람으로 몰아간다 .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친구마저 파멸시키므로 멀리해야 한다 .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그릇되고 굽은 것에 사로잡힌
나쁜 벗을 멀리하라 .
탐욕에 빠져 게으른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고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5 직장에서
현대인의 스트레스는 절반 이상이 직장에서 받는 것이라고 한다 . 과다한 업무와 직장 동료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받는 심리적 압박감은 대단히 심각하다 . 그러나 이것은 서로에게 배려하는 마음을 조금씩 내기만 한다면 서서히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 앞에서 말했듯이 내가 먼저 달라지면 전체 사회가 달라지게 될 것이다 . 서로에 대한 작은 관심과 격려 , 그리고 이해를 통해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곳을 만들어 가야 한다 . 상사는 부하 직원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 일에 대한 흥미와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 . 또 적당한 여가를 주어 생활의 활기를 찾도록 해주고 , 잘못이 있을 경우엔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잘 타일러준다 . 반대로 부하 직원은 직장과 인생의 선배인 상사를 존중해야 한다 .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 상사가 없는 곳에서 험담을 해서는 안된다 . 직장은 가정 다음으로 중요한 삶의 터전이다 . 직장을 통해 개인의 능력을 발휘하고 그에 따른 보수로 생활을 한다 . 서로 존중하고 , 선의의 경쟁을 통해 자기 성취를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
6 타종교인과의 관계
우리가 사는 사회는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문화와 더불어 사는 곳이다 . 그리고 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종교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 그 중에서 다른 종교에서는 나 이외에 다른 신을 믿지 말라고 가르치고 만약 그 가르침을 믿지 않을 경우 끝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영생하지 못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 그러나 불교에서는 타종교의 역사와 교리가 서로 다르다고 하여 타종교인을 무시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타종교인에게도 깨달음을 전해주어 함께 진리의 세계에 나아가 참다운 삶을 살도록 가르치고 있다 . 그들도 모두 청정한 삶의 세계인 불국토를 만들어갈 수 있는 동지적인 동시에 그 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무엇보다도 한국문화에 살아 숨쉬는 불교의 사상은 다른 민족이 갖고 있는 사상과 문화를 섭수하여 우리민족의 문화로 승화시킨 아름다운 전통을 갖고 있다 . 따라서 타종교인에 대한 관계도 그들과 함께 우리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형성하고 보존 한다는 입장에서 상호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
3 청정한 세상을 위하여
한때 우리나라는 삼천리 금수강산이라 하여 물 맑고 공기 깨끗하며 경치 좋기로 유명하였다 . 그러나 일제의 수탈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난 뒤의 경제발전의 대가로 우리는 금수강산을 잃어버렸다 . 그 대신에 공해 , 폐수 , 생태계 파괴 등의 용어에 익숙해졌다 . 그래서 요즘은 주위에서 환경보호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게 되었는데 아마도 이것은 우리 모두가 환경문제에 좀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긍정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나 이를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이 환경문제가 우리의 생활과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심해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 최근의 몇 차례 물 파동을 겪으면서 우리들은 수돗물이 마음대로 마실 게 못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산 좋고 물 좋기로 이름난 우리나라에서 이제는 마실 물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 그래서 시중에는 생수를 만들어 파는 업체들이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 심지어 외국의 물을 수입 해다 팔기도 한다 . 웬만한 가정에서는 깨끗한 약수 물을 구하러 산에 오르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그나마 약수 물도 믿지 못해서 전문 생수업체에서 생수를 사서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 공기는 또한 어떠한가 ? 도시 근방의 산에라도 올라 보면 탁 트인 풍경이 우리를 반기는 것이 아니라 희뿌연 먼지로 덮인 회색 도시만이 나타난다 . 비라도 오면 이 비가 산성비는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서고 그래서 함부로 비 맞을 엄두를 낼 수 없다 . 자동차들이 내뿜는 매연 속의 도심을 걸어가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는 누구라도 느껴보았을 것이다 . 또한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실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오존층이 파괴되는 현상도 지구 전체로 본다면 인류 생존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 물과 공기의 문제만이 아니다 . 쓰레기 , 중금속 , 방사능등등 이외에도 환경과 관련된 수많은 문제들이 우리들을 위협하고 있다 . 이러한 심각한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 아마도 오래 전 옛날에는 환경오염이라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 인간의 행동은 자연 속에서 너무나 미미했으며 그나마 자연은 인간이 행하는 모든 행동들도 포용할 수 있는 순탄한 재생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자연의 재생력이 둔화되었고 , 이제는 그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 이렇게 된 것은 17 ~18 세기 이후부터 서양의 과학문명이 발달하면서 산업화가 이루어진 시기부터 였으며 우리 나라로 한정해서 본다면 60 ~70 년대의 경제개발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리고 이러한 환경에 대한 훼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들은 태양에너지로부터 에너지를 공급 받아 자라고 있으며 이 동식물들은 서로간에 다양한 먹이사슬을 유지하며 하나의 균형 있는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욕망 때문에 자연환경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나무를 베고 물을 끌어당기고 도시를 건설하고 전기를 만들어냈다 .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알아냈으며 여러 생활 용품들을 만들어서 물질적 풍요를 누리기 시작했다 . 늘어나는 인구와 이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다양한 생산활동 , 그리고 물질적 생활은 어느새 자연 생태계의 원활한 흐름을 위협하게 되었다 . 과학문명과 경제개발만으로 이러한 상태가 된 것은 아닐 것이다 . 과학문명과 결합된 인간의 자기 중심적인 욕심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 인간은 자신이 자연의 생태계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자연을 그저 개발하고 이용할 대상으로만 보았으며 자연이 인간과 하나라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 그래서 자연을 개발하는 것이 우리를 변형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으며 늘어가는 물질적 풍요가 자연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개발의 훌륭한 성과라고 생각하는 착각 속에 빠졌던 것이다 . 일찍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식량은 산술 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말한 서양의 학자가 있었다 . 그러나 이 사람은 그러한 인구증가가 일으키는 문제보다 사람의 욕심이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은 미처 생각치 못한 것 같다 . 간디는 “자연의 자원은 인류가 생존하기에 충분한 양을 가지고 있다 . 그러나 인간의 욕심을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 그러한 인류의 탐욕으로 마침내 자연은 돌아올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문제를 두고 우리 불자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부처님의 연기의 가르침은 이러한 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 자연과 우리는 원래 둘이 아니며 서로 의지하면서 조화롭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 동체대비라는 말이 있다 . 이는 환경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을 교정 시켜주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리라고 본다 . 자신과 환경이 둘이 아니라면 스스로 자신의 몸을 망치는 일을 하지않듯이 자연을 훼손하지 않을 것이다 . 인간의 생활에서 기본적 요소는 아무래도 의식주 생활일 것이며 현대의 물질 문명 역시 의식주 생활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것이 사실이다 . 부처님 당시의 의식주 생활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모범이 될 것이다 . 만족을 아는 생활 , 무소유와 근검절약이라는 생활원리는 환경을 살리는 길이며 자신을 살리는 길이다 . 예를 들어 발우 공양을 하는 경우 음식쓰레기를 줄이고 , 수질오염을 막을 수 있는 대안이 된다 . 나 하나의 실천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소극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나부터 바뀌면 세계가 바뀐다는 적극적인 사명감으로 생활해야 할 것이다 .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찰 주변은 그나마 청정한 지역에 속하며 이를 계속 지켜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절에 갈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 만약 차를 가져갔을 경우에는 절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하고 가급적 걸어서 참배를 하도록 함이 좋겠다 . 또한 계곡을 올라가면서 계곡 주변에서 취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지정된 장소에서 취사하도록 권유하고 청정구역을 보존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 가정에서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반드시 분리수거를 하고 , 합성세제 , 1 회 용품 등 환경오염의 소지가 있는 제품의 사용은 자제하며 , 절제된 소비로 지나친 자원낭비를 줄여가야 하겠다 . 불자들이 생활에서 구현하는 이 실천은 개인적으로 다소 번거로운 점도 있을 것이지만 환경보호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명심하고 지켜나가야 한다 . 또한 개개인은 사회 속에서 환경보호의 파수꾼이 되어 환경을 지켜나가도록 해야 한다 . 기업가는 자신의 상품생산이 자연을 파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 정치가는 정치가대로 , 과학자는 과학자대로 자신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환경보호활동을 펼쳐야 한다 . 환경보전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각종 노력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의식 전환이다 .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여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만 보고 그래서 자연의 파괴를 부추기는 인간 중심적 사고를 벗어나야 한다 .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여기에도 해당되는 진리이다 . 자연이 파괴되면 인간 또한 그 삶을 지속할 수 없는 것이다 . 자연의 아픔이 곧 우리의 아픔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자연을 살리고 우리를 살리기 위해 다같이 노력해야 하겠다 .
4 통일을 준비하는 불교
우리 민족은 일제로부터 해방되어 그 기쁨을 누려 보기도전에 분단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으며 그 고통의 시간도 어언 50 여 년에 이르게 되었다 . 수많은 사람들이 분단으로 인해 이산가족이 되는 고통을 겪었으며 그 아픈 사연들을 속으로만 갈무리해야 했다 .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지난 시절 동안 국내외적인 여건이 통일에 대해 마음대로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반세기 동안에 통일을 향한 진전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 그러나 정치 이데올로기와 관계없이 불자들은 불자들 나름대로 통일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 독일의 통일에서 보여지듯이 갑자기 통일이 실현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시대는 변한다 .탈냉전시대를 맞으면서 세계는 이데올로기적 대립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이 붕괴되었으며 우리와 같은 분단국이었던 동서독은 통일의 감격을 이루게 되는 등 대외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 이러한 여건 속에서 우리나라의 내부상황도 상당히 개선되어서 대내외적으로 남북간의 접촉이 빈번해지고 있는 등 우리민족은 다시 금 통일을 향한 꿈을 키울 수가 있게 되었다 . 남북간에 쌀이 교환되고 기업인들과 과학자들이 교류하고 있는 등 이전 같지않은 상당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 그렇긴 하지만 아직도 통일을 향한 길은 그리 쉽지 만은 않아 보인다 . 현재 이산가족의 상봉은 고사하고 생사 확인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이고 보면 우리 불자들 아니 우리 국민 모두에게 통일은 여전히 민족의 커다란 소원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민족 분단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민족의 동질성 회복은 자꾸만 어려워져 가는 것이 사실이다 . 민족의 통일은 정치적으로 한 나라가 되는 것에 앞서 정신적으로 한 나라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 독일 통일에서 보듯이 통일 후의 동서독 국민간의 사회적 괴리감과 정신적 갈등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음을 교훈으로 삼아 , 우리민족의 통일에서는 그러한 장애가 없도록 해야 한다 . 그리하여 우리민족의 통일은 정치적 측면만이 아니라 경제 , 사회 , 문화 등의 전 영역에 걸친 모든 여건을 고려함으로써 독일 통일 후에 나타난 혼란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은 남북의 동질성회복과 연관되어 있으며 동질성의 회복은 정부 당국자 몇몇의 정책을 통해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온 국민이 담당해야 할 부분이다 . 우리국민 모두가 사회 각 분야에서 통일에 대한 지속적이고 다양한 논의를 일으키고 관심을 가진다면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통일정책과 어울리면서 민족통일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위해서 경제 , 예술 , 스포츠 , 학술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의 노력이 시도되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은 종교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 불교 역시 민족 동질성 회복과 통일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과 역할을 수행해나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불교계의 이러한 역할은 이미 삼국통일 시대부터 전통적으로 자리잡아 왔다 . 일찍이 삼국을 통일한 신라에서 원효스님이 전쟁의 상처로 신음하는 민중에게 불교 사상으로 동질감을 회복시켰고 , 화쟁 정신으로 갈등을 푸는 실마리를 제공한 역사가 있었다 . 고려시대 몽고의 침입 때에도 대장경을 조판하면서 꿋꿋이 국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역시 불교의 힘이 적지 않았다 . 유교사상을 중심으로 하던 조선시대에서 조차도 임진왜란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 민중과 고통을 함께 나누기 위해 애쓴 사실은 불교가 우리 민족사에서 어떤 역할을 하여 왔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 통일을 준비하는 불자들은 우선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그러면서도 쉽지 않은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 민족의 동질성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북한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을 풀어야 한다 . 증오와 미움을 갖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 미움을 간직한 채로는 다른 한쪽과 손을 맞잡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설사 그런 식으로 통일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미움으로 인한 또 다른 갈등이 생기게 된다 . 미움과 증오를 버리는 것이 민족 화해의 첫걸음 이기도 하며 민족 동질성 회복의 초석이 된다 . 불교계가 민족통일에 기여하기 위해선 남북간의 불교교류를 활발히 전개해야 할 것이다 .교류를 통한 남북간의 다양한 접촉이 서로의 이해를 도와주는 계기가 될 것이며 분단의 아픔을 어느 정도나마 해소 시킬 수 있는 자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남북한 각 사찰에 대한 상호방문 및 서신교류 ,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 등 다채로운 교류의 길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 북한의 사찰을 복원하거나 신축하는데 같이 참여하거나 불교병원 등의 복지사업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 한편 민족통일을 위한 노력은 불교도만이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타 종단과의 통일을 위한 교류를 함께할 필요도 있다 . 통일을 위한 다양한 노력에 불교가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통일 대안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 우리민족에게 있어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동질성의 회복이다 . 더욱이 불교는 인간 내면적 심성의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므로 , 불교인들도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업에서 담당할 역할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
제 6 장 절을 찾아서
절은 불자의 귀의처이다 . 절에서 속세의 때를 말끔히 씻고 삶에 대한 경건함과 무욕의 삶에 대한 가르침을 배워야 한다 . 절에 참배하는 것만으로 불자라 하지 말고 , 법회에 정기적으로 동참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참회와 발원을 하며 , 사회에 봉사하는 신행공동체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 그리고 이와 같은 삶의 시작은 불교의 예절을 잘 배워 행하는 것이다 .
1 불자의 자세와 행동
불교에는 불교만의 예절과 의례가 있다 . 처음 불교를 접하는 불자들은 불교의 예절을 잘 알아 두면 편한 마음으로 불교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불교 예절의 근본정신은 늘 부처님을 생각하고 가르침을 되새기며 행하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 그러므로 예절을 아는 것은 깨달음의 첫걸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잘못을 반성하고 삶 속에서 다가오는 삿된 유혹을 물리치며 , 우환이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하거나 스님을 찾아 뵙고 상의하는 것이 좋다 . 개인의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식사를 할 때에 먼저 합장한 뒤에 감사한 마음으로 먹으며 , 맛에 탐닉하거나 욕심을 부려서는 안된다 .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하루 일과를 무사히 마쳤음을 부처님께 감사 드리고 , 행여 언짢은 일 때문에 걱정하거나 원망하는 마음 , 미워하는 마음을 품은 채 잠들지 말아야 한다 . 아침에 일어나서는 하루를 참되게 살아가도록 기도하거나 수행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
삼보에 귀의한 불자로서 평상시 모든 행이 겸허해야 하겠지만 , 특히 수행 도량인 절에서는 더욱 정숙하고 경건한 자세가 기본이다 .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몸가짐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 그러나 수행의 길에 수행자의 자세는 마음이 표현된 모습이므로 항상 경건하고 겸허한 자세가 기본이라 하겠다 .
지금부터 불자들이 취해야 할 자세와 행동 , 서있는 자세 , 앉아있는 자세 , 걷는 동작 , 앉고 서는 동작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 또한 손 모양의 기본 자세인 합장과 차수 (叉手 ), 그리고 그 밖의 수행과 신행생활 (信行生活 )에 대하여 살펴보자 .
1 차수 (叉手 )와 합장 (合掌 )
차수는 손을 교차한다는 말 그대로 도량에서 평상시 손을 쓰지 않을 때 하는 자세이다 . 손에 힘을 주지 말고 자연스럽게 손가락 부분이 서로 교차되게 하여 왼손의 손가락 부분을 오른손으로 가볍게 잡고 단전 부분에 가볍게 대고 있는 자세이다 .
<차수 >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손을 바꾸어서 왼손으로 오른손을 잡아도 무관한데 , 어느 손이 위로 가는가 하는 문제는 사람마다 편하게 느끼는 상태에 따라 하면 된다 .
합장은 부처님이 태어나신 인도의 전통적인 인사 법으로서 인사 및 예불 , 법회 등 불교생활 전반에 걸쳐 가장 많이 쓰이는 예법이다 . 합장은 손바닥을 마주 합하는 자세인데 손바닥이 밀착하여 빈틈이 없어야 하며 손가락 사이가 벌어져서도 안된다 . 두 손을 통해서 마음을 모으고 , 나아가서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 하나의 진리 위에 합쳐진 한 생명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
<합장 >
차수와 합장은 서 있을 때 뿐만 아니라 앉아 있을 때에도 같은 요령으로 자세를 취할 수가 있다 . 다만 차수인 경우에는 마주잡은 두 손을 단정하게 무릎 위에 놓으면 된다 . 동작의 측면에서 볼 때는 차수에서 합장 , 또는 합장에서 차수로 동작이 연결되어야 부드러운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
2 앉아 있는 자세
1 ① 좌선 (坐禪 )
불자의 자세는 불자가 아닌 사람과 비교할 때 여러 가지 다른 점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앉는 자세에 가장 큰 특징이 있다 . 불자의 앉는 자세는 참선 할 때의 좌선자세를 기본으로 한다 . 이는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앉으셨고 , 역대의 위대한 스님들은 물론 오늘날의 수행자들도 그렇게 앉아 용맹 정진하는 자세인 것이다 .
좌선의 대표적인 자세는 결가부좌 (結跏趺坐 )이다 (제 3 장의 참선 자세 참조 ).
2 ② 꿇어앉은 자세
독경이나 염불 시에는 꿇어앉는 자세가 좋다 . 장시간 동안 지속하기 어려운 자세이나 예경 , 축원을 할 때는 건강에 이상이 없는 한 반드시 취해야 할 자세이다 . 무릎을 꿇고 앉아 있을 때의 눌린 발은 절할 때의 발과 같이 오른발을 밑에 두고 그 위에 왼발을 'times '자로 교차 시켜서 앉는 것이 보통인데 , 자세의 어려움을 감안하여 본인의 습관대로 오른발과 왼발을 바꾸든지 또는 두발을 일자로 나란히 놓아 힘들지 않고 오래 앉아있기에 적합한 자세를 취해도 좋다 . 꿇어앉는 경우에도 허리를 곧바로 세우고 몸의 평형을 유지하여야 한다 .
3 절의 의미와 공덕
불교의식에는 절을 하는 경우가 많다 . 절은 삼보에 대한 예경과 상대방에 대한 존경을 의미하며 , 자신에게는 스스로를 낮추는 하심 (下心 )의 수행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 절은 그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수행 방법이기도 한데 , 참회나 기도의 방법으로 108 배 , 1080 배 , 3000 배등이 활용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
예로부터 불교에서는 절을 많이 하면 아름다움과 건강을 유지하고 , 남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으며 , 스스로 두려움이 없어지고 , 부처님께서 항상 보호해 주시며 , 훌륭한 위엄을 갖추게 되고 ,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주며 , 죽어서는 극락에 태어나고 , 마침내는 깨달음을 이루게 된다고 한다 .
1 ① 반배 (半拜 )
삼보에 예경을 올리는 절은 큰 절이 원칙이지만 사정으로 할 수 없는 경우에는 반배를 한다 . 반배는 이를 때 한다 .
㉠ 절 입구에서 법당을 향하여 절할 때
㉡ 길에서 스님이나 법우 (法友 )를 만났을 때
㉢ 옥외에서 불탑에 절을 할 때
<반배 >
㉣ 야외에서 법회를 할 때
㉤ 옥내 법회라 하더라도 동참 대중이 많아서 큰 절을 올리기 적합치 않을 경우
㉥ 3 배나 108 배 , 1080 배 , 3000 배 등의 오체투지 하기 전과 마친 후
㉦ 부처님 앞에 헌화를 하거나 , 향 , 초 그 밖의 공양물을 올리기 직전과 올린 후
㉧ 법당에 들어가거나 나오기 전
㉨ 기타 필요 시
2 ② 오체투지 (五體投地 )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삼보님께 하는 절은 오체투지의 큰 절을 원칙으로 한다 . 이때 오체란 몸의 다섯 부분인 왼쪽 팔꿈치 , 오른쪽 팔꿈치 (양 팔꿈치 ), 왼쪽 무릎 , 오른쪽 무릎 (양 무릎 ), 이마를 말한다 . 이것은 인도 (印度 )의 예절로 몸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도록 납작하게 엎드려 하는 절인데 인도에서는 접족례 (接足禮 )라 하여 온몸을 땅에 던져 절을 하면서 공경하는 이의 발을 두 손으로 떠받들었다고 한다 .
<오체투지 1>
오체투지의 절은 우리나라 재래 예법인 큰절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되 반드시 몸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아야 한다 . 이와 같은 오체투지의 예는 자신을 무한히 낮추면서 상대방에게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몸의 동작으로서 가장 경건한 예법이다 .
오체투지의 큰절을 할 때 두 팔꿈치와 두 무릎은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더라도 동작의 절차상 땅에 닿는 것이 비교적 수월하나 반드시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여야 한다 . 큰절하는 동작을 순서대로 구분하면 먼저 서 있는 자세에서 합장하고 공손히 머리를 숙여 합장 반배를 한다 . 그런 다음 합장한 자세에서 그대로 두 무릎을 굽혀 반듯하게 앉는다 .
<오체투지 2>
왼손을 가슴에 가볍게 대고 , 오른손을 뻗어 몸을 굽히면서 이마가 닿을 지점을 짚는다 . 이어 왼손을 오른손과 나란히 놓고 윗몸을 숙여 이마가 바닥에 닿도록 완전히 엎드린다 . 엎드린 상태에서 두 손을 가볍게 뒤집어서 무언가 받들어 올리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 이때 왼발은 오른발의 발바닥 위에 가볍게 포개어 놓아야 한다 .
<오체투지 3>
일어설 때는 엎드릴 때와 정반대의 순서를 따르는데 , 먼저 펼쳤던 손을 다시 뒤집어 왼손을 가슴 부근에 갖다 댄 다음 오른손을 거두어 합장하면서 다리를 풀고 본래의 자세로 일어선다 .
<오체투지 4>
3 ③ 고두배 (叩頭拜
불자는 신구의 (身口意 ) 삼업을 정화시키기 위해서 몸을 던져 절을 하는 것이므로 기본적으로 3 배를 올린다 . 그러나 아무리 무수한 절을 한다 해도 부처님에 대한 지극한 예경의 뜻을 모두 표현할 수는 없다 . 따라서 3 번째 절을 하고 일어서기 전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을 생각하며 지극한 마음을 더욱 더 간절하게 표현하기 위하여 예배의 마지막 끝에 머리를 땅에 두드리는 고두 (叩頭 )를 한다 . 이는 또 유원반배 (惟願半拜 )라고도 하는데 , 무수히 예경하고픈 간절한 심정을 여기서 마치게 되는 아쉬움을 표하는 예법이라 할 수 있다 . 고두배는 삼배 뿐 아니라 1 배 , 7 배 , 108 배를 비롯 모든 절의 마지막째 절을 마치고 일어서기 전에 한다 .
고두배하는 법은 마지막 절을 마치고 몸이 오체투지의 상태에서 두 손바닥이 부처님을 받들기 위하여 위로 향한 자세에서 팔 굽을 펴지 말고 머리와 어깨를 들고 손은 얼굴 아래서 합장을 하였다가 손을 풀고 이마를 땅에 댄다 . 머리를 들었을 때에 시선은 그대로 땅에 두어야 하며 고개를 들고 전방을 주시해서는 안된다 . 머리와 어깨만을 잠깐 들었다 다시 이마를 땅에 대는 단순한 동작으로 할 수도 있고 머리와 어깨를 약간 들고 팔 굽을 땅에서 떼지 않은 채 그대로 손으로 합장 자세를 취하였다가 즉시 손을 풀고 다시 두 손과 이마를 땅에 대는 방법도 있다 .
<고두배 >
4 사찰 예절
사찰은 거룩한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신성하고도 장엄한 곳이다 . 속세의 때를 씻어 마음을 깨끗이 하는 곳이며 , 스스로의 잘못을 참회하고 올바른 삶을 다짐하는 곳이기도 하다 . 그리고 또한 스님들이 상주하면서 공부하는 수행 도량이기도 하다 .
사찰에 가면 일반적으로 일주문 (一柱門 ), 불이문 (不 二門 ), 천왕문 (天王門 ), 금강문 (金 剛門 ), 해탈문 (解脫門 )을 지나게 되는 것이 통례이다 . 이외에도 사찰의 중심인 큰 법당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개가 있다 .그러나 반드시 정해진 출입문을 통해 들어가야 한다 .
일주문은 사찰 입구이다 . 세속의 미혹에 젖어 자신의 참모습을 잠시 잊고 살았더라도 여기서부터는 부처님도량에 발을 들여놓기 때문에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 이곳 일주문에서 합장하고 법당 쪽을 향해 공손하게 반배를 올리면서 사찰 예절이 시작된다 . 일주문에 들어서면 집에 돌아갈 때까지 계속 조심스럽게 행동하여야 하는데 , 사찰에서의 행동은 이렇게 한다 .
법당 문에 들어갈 때에는 가운데 문으로 다니지 말고 , 왼쪽 혹은 오른쪽 옆 문으로 출입하여야 하며 볼일 없이 법당에 들어간다든지 탑에 올라가서는 아니된다 . 법당 앞이나 탑에 침을 뱉지 못하며 , 모자나 지팡이를 법당 벽에 걸거나 기대지 아니하여야 한다 . 그리고 불상이나 탑을 돌 때 먼저 합장 반배를 한 다음 합장한 채 시계방향으로 돌면 된다 .
사찰에서는 항상 가운데를 피하는 것이 좋다 . 부처님을 믿고 수행하는 이는 자기를 가장 낮은 위치에 두어야 하며 모든 이를 공경하여야 한다 . 그러므로 일주문에서 법당을 향하여 반배를 올리고 자세를 바로 한 다음에 뒷짐을 지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지 말고 신발이 끌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길 한쪽을 택하여 걷는데 일반적으로 보행자의 방향인 좌측 통행이 무난하다 .
><일주문 >
다음으로 천왕문에 들어서면 좌우에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다 . 사천왕은 불교의 가르침에 감동한 나머지 스스로 불교를 보호하는 신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기로 원을 세운 하늘 신이다 . 따라서 불자들은 원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반배의 예를 올린다 . 아직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께 예배를 드리지는 않았어도 경의를 표할 대상을 만나는 경우에는 반배를 한다 . 법당에 이르기 전에 역대 조사 스님의 부도 (浮屠 )를 지나게 되면 합장 반배하며 길에서 스님이나 법우 (法友 )를 만나는 경우에도 합장하고 반배를 하여야 한다 .
법당 앞의 탑은 부처님 사리를 봉안한 신성한 곳이며 , 실제로 사리가 모셔져 있지 않더라도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반배로 삼배를 올린다 . 그리고 탑을 도는 경우가 있는데 , 공경하는 대상인 탑을 가운데 두고 자기의 오른 쪽에 탑이 위치하도록 하고 그 주위를 돈다 . 이것은 왼쪽보다 오른쪽을 중요시하는 인도의 전통예법을 따른 것이다 .
<법당전경 >
몸이 불편하여 지팡이를 소지하거나 비오는 날에 우산을 가지고 사찰에 갔을 때에는 우산을 법당 벽에 기대어놓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사찰에 와서는 화급을 다투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먼저 법당에 들어가서 부처님께 참배하여야 한다 . 대개의 경우 일주문 , 천왕문 , 해탈문을 지나서 곧바로 올라가면 사찰의 대웅전 마당에 이르고 마당에 설치된 탑 전에 예배를 드리고 계단을 올라가서 법당에 이르게 된다 . 법당에 올라가는 계단은 중앙계단과 좌우의 계단이 별개로 있는 경우도 있고 넓은 중앙계단 하나만 있는 경우도 있는데 중앙계단을 피하여 오른쪽 또는 왼쪽 계단을 이용하여 올라가야 하며 계단이 하나만 있는 경우에는 중앙을 피하고 측면으로 올라가야 한다 . 법당 문 앞에서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는데 이때 신발은 잘 정돈하여야 한다 . 정갈한 마음의 표현이 신발 벗는 데서도 나타나야 한다 .
5 법당 예절
법당으로 들어가는 문은 여러 개가 있는데 법당의 정면에 중앙 문이 있고 양쪽 옆에 각기 하나씩 문이 있다 . 그리고 법당 좌우의 측면에 또 문이 하나씩 있는 것이 우리나라 법당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 법당 안을 보면 가운데 상단이 마련되어 불보살님을 모시고 그 좌우에 신중단이 설치되어 있는데 상단의 주좌 (主座 )를 기준으로 가운데 통로를 어간 (御間 )이라 하고 법당의 정면으로 난 가운데 문을 어간 문이라고 한다 . 법당에 출입할 때에는 어간 문을 이용해서는 안되며 측면으로 난 문이나 좌 middot 우측의 문을 이용하여야 한다 .
법당은 부처님을 모시고 스님과 불자들이 정진하는 신성한 장소이므로 항상 정숙을 요한다 . 문을 열 때에 요란한 소리를 내게 되면 다른 불자들의 기도 정진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동시에 문을 조용히 여는 행동 하나에서도 절제하는 수행을 실천하는 것이다 .
법당 문을 열 때는 왼손으로 오른손의 손목을 받쳐 잡고 오른손으로 문고리를 잡은 다음 약간 들어올려서 문을 열어야 한다 . 법당의 왼쪽 문으로 들어 갈 때에는 왼쪽 발을 먼저 들여 놓아야 하고 오른쪽 문으로 들어갈 때에는 오른쪽 발을 먼저 들여 놓아야 하는데 , 왼쪽이나 오른쪽의 방향은 부처님을 중심으로 하여 정하면 된다 . 부처님의 오른쪽에 서 있을 경우 만일 부처님을 향하여 왼쪽 발을 먼저 내딛게 되면 신체의 구조상 자연히 부처님을 등지게 되므로 옳은 방법이 아니다 . 그러나 오른발을 먼저 내딛게 되면 가슴 쪽이 부처님을 향하게 된다 . 그러므로 오른발 또는 왼발을 먼저 들여 놓는다는 것은 결국 자세에 있어서 부처님을 등지지 않고 잘 모시고자 하는 불자의 자세이다 .
법당에 들어서면 상단 (上壇 )의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반배 한다 . 다음에는 법당에 들어간 목적에 맞는 행동을 하는데 공양을 올리기 위하여 불전으로 나아가거나 또는 예배를 하기 위하여 적당한 자리를 찾아간다 . 이때는 합장한 자세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용히 걸어서 가야 한다 . 또 부처님께 절하고 있는 다른 불자의 머리맡을 지나지 않고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하고 또 상단을 중심으로 하여 가운데 통로인 어간은 사용해서는 안되며 , 부득이 어간을 지나갈 때에는 합장한 자세로 허리를 굽히고 경건하게 통과 하여야 한다 .
부처님께 향이나 초를 올리기 위하여 준비하였더라도 이미 촛불이 켜져 있거나 향이 피워져 있으면 준비한 향과 초를 그대로 부처님 전에 올려놓는 것으로 공양을 대신하여야 한다 . 다른 사람이 켜 놓은 촛불을 끄고 자기가 준비한 초에 다시 불을 붙여 올린다든지 이미 촛불과 향불이 피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옆에 다시 촛불과 향불을 켜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
향을 올리는 방법은 합장한 자세 그대로 부처님 전으로 조용히 걸어서 나아간다 . 부처님께서 계신 탁자 앞에 이르게 되면 그 자리에서 반배를 올린다 . 그리고 향합에 있는 향이나 또는 준비한 향 한대를 오른손으로 집되 , 향의 중심부를 오른 손으로 잡고 촛불에 향불을 붙인다 . 향에 붙은 불을 입김으로 끄지 말고 손을 이용하거나 기타 다른 방법으로 경건하게 꺼야 한다 . 불 붙은 쪽이 위로 가도록 두 손으로 받쳐 잡되 오른손은 향의 가운데를 잡고 왼손은 오른 손목을 받쳐 잡는다 . 다음에는 향 든 손을 이마 높이로 올려 경건한 마음으로 예를 표한 다음 향로 중앙에 똑바로 꽂는다 . 그리고 합장한 자세로 반배하고 제자리로 돌아가서 참배를 드리면 된다 .
<향 올리는 법 >
부처님께 향 공양을 올린 다음에는 신중단 (神衆壇 )에 나아가서 순서에 의하여 향을 올리고 참배한다 .혹 자리가 복잡할 때에는 자리를 옮기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방향만 틀어서 참배해도 된다 .
법당에서 밖으로 나올 때에는 먼저 법당 안에 다른 법우님이 남아 있는지를 확인한다 . 자기가 마지막으로 법당을 나오게 되는 경우에는 촛불을 끄고 각 기물들을 정돈한 후 나온다 . 법당은 거의가 목조 건물이므로 불조심에 항상 유의하여야 한다 . 따라서 촛불을 끌 때도 불전으로 나아가 반배 후 손으로 불을 끄거나 별도의 기구를 사용하여야 하며 , 촛불을 끈 다음 다시 뒤로 물러서서 합장 반배하고 법당을 나온다 . 나올 때에도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합장한 자세로 법당의 옆 문으로 와서 상단의 부처님 전에 합장 반배 한 후 뒷걸음으로 법당 문을 나온다 . 법당을 나와서는 먼저 신발을 신고 뒷사람은 앞 사람이 신발을 다 신을 때까지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기다린다 . 또한 자기 신발을 다 신은 후에는 다른 법우들의 신을 좋은 위치로 가져 다 주든가 흐트러진 신발이 있으면 가지런하게 놓는다 .
6 법회와 예불에 동참할 때
법회는 불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는 자리로서 , 생활을 점검하고 올바른 삶의 자세를 가다듬는 중요한 기회이다 . 또한 예불은 아침 저녁으로 부처님께 공경하는 마음으로 예를 올리는 의식이다 . 그러므로 불자들은 법회와 예불이 있을 때는 반드시 참석하여 부처님께 정성스런 마음으로 참배를 하고 법사의 설법에 귀 기울여야 한다 .
법회장에 들어갈 때에는 법당 예절에 어긋남이 없도록 행동해야 하며 , 특히 어간에 앉지 않도록 해야 한다 . 그리고 법회장에서는 특정한 사람을 위하여 자리를 잡아놓고 다른 사람이 앉지 못하게 하거나 ,좌복을 서로 먼저 차지하려는 행위 , 풀썩거리며 던지듯 깔아놓는 행위 , 좌복을 제자리에 갖다 놓을 때도 한 손으로 휙 갖다 놓는 행위 , 깔아져 있는 좌복을 밟고 다니는 행위 , 자기가 쓰던 좌복을 정리하지 않고 나가거나 또는 타인에게 미루는 행위 등이 있어서는 안된다 .
법회는 일정한 의식에 의해 진행되므로 법문만을 듣기위해 의식진행을 귀찮게 여기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 또 법문만 듣기 위해서 늦게 입장했다가 법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의식에는 동참치 않고 가는 일이 있어서도 안된다 .
법문 시 설법의 내용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하여 가볍게 여기거나 너무 어렵다고 포기해서는 안되며 , 아는 것은 다시 한번 새겨서 듣고 모르는 것은 더 공부해서 이해토록 해야 한다 . 아울러 이렇게 공부하고 수행한 내용은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널리 전해야 한다 . 그리고 사찰에서 숙박하게 되는 경우 새벽에 도량석의 목탁소리와 종소리가 울리면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자리를 정돈한 후에 법당에 나아가 예불에 참여해야 한다 .
다음은 일반적으로 사찰에서 행하는 법회 식순이다 . 그러나 법회 식순은 각 사찰의 전통과 특성에 따라 다를 수 있다 .
① 삼귀의례 - 삼보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하는 노래 .
② 찬불가 - 부처님을 찬탄하는 노래 .
③ 반야심경 봉독 - 모두 지혜의 완성을 염원하며
④ 청법가 - 법사님을 청하는 노래
⑤ 입정 - 법문 듣기에 앞서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는 의식
⑥ 법문 - 부처님의 교법을 간절히 들음
⑦ 발 원 문 - 부처님의 교법을 듣고 수행 원력을 다지고 중생에게 회향하고자 원을 세움
⑧ 사홍서원 - 네 가지 큰 서원을 실천할 것을 다짐하며 부르는 노래 .
⑨ 기 타 - 공지사항 등
7 스님에 대한 예절
스님은 스승님을 의미하며 재가불자들이 받들고 존경하며 항상 가까이에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친근한 분이다 . 그렇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스님을 뵈면 공경하는 마음으로 합장 배례해야 한다 . 그리고 불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재적사찰의 주지스님이나 평소 존경하는 스님을 찾아가 법문을 듣고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
밖에서 스님을 만나면 그 자리에 서서 합장 반배하고 , 실내에서는 1 배의 예를 올려야 한다 (어떤 경우 3 배를 하는 경우도 있다 ). 그러나 스님께서 좌선할 때 , 경행할 때 , 공양하실 때 , 경전에 대한 말씀을 하실 때 , 양치질할 때 , 목욕할 때 , 누웠을 때에는 절하지 않아도 된다 .
스님을 모실 때에는 스님과 마주서거나 스님보다 높은데 서면 안되고 작은 말소리도 잘 들리도록 가까이에서 모시되 스님께서 불편하시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
또 스님이 앉으라고 하기 전에는 앉지 않으며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고 , 스님께 절을 하고자 할 때에 스님이 그만 두라고 하면 그만 두면 된다 . 큰스님을 찾아 뵙고 가르침을 받고자 할 때에는 먼저 시자 (侍者 )를 통하여 허락을 받고 해야 한다 . 그리고 스님 방에 들어갈 때에는 법당에 들어갈 때와 똑 같이 행동해야 하며 , 큰스님께는 부처님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합장하고 삼배를 드려야 한다 .
그러므로 스님은 재가불자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 정진하고 계시기에 재가불자들은 수행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의복이나 음식 , 약 등을 공양해야 한다 . 이와 같이 잘 모셨을 때 스님은 더욱 정진하여 참다운 스님이 될 것이고 불자는 참다운 불자가 될 것이다 .
8 공양 예절
불교에서는 밥 먹는 것을 '공양'이라 한다 . 이는 불교에서 공양하는 것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 특히 출가한 스님들에게 공양하는 것은 단지 굶주림을 면하거나 맛을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삼보와 사중 (四重 :국가 , 부모 , 스승 , 시주 )의 은혜를 갚고 삼도 (三途 :지옥 , 아귀 , 축생 ) 중생의 고통을 건지기 위한 수행의 방편이다 . 즉 안으로는 부처님의 진리를 체득하고 밖으로는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먹는 것이다
또한 재가불자도 공양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 한 알의 쌀이 내 입에 들어오기까지는 무수한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 하나하나의 노력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며 기꺼이 먹는다 .
불교의 공양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상공양과 발우공양이다 . 상 (床 )공양은 일반 가정에서의 경우처럼 밥상 혹은 식탁에서 공양하는 것으로 공양인원이 소수일 때나 편의상 쓰여지고 , 발우 (鉢盂 ) 공양은 불교의 전통으로 많은 대중이 동시에 공양하거나 수련 및 수행 시에 쓰여진다 . 대중이 함께 모여 정진하는 스님들은 공양 시에 발우 공양을 하는데 여러 사람이 함께 한다고 해서 이를 대중 (大衆 )공양이라고도 한다 .
발우 (鉢盂 )란 스님들의 밥그릇인데 '발 (鉢 )'은 범어로서 응량기 (應量器 )라 번역하고 수행자에 합당한 크기의 그릇이란 뜻이다 . '우 (盂 )'는 중국말로 밥그릇이라는 뜻이다 .
발우 공양의 절차를 살펴보면 , 부처님과 음식의 은혜에 감사하며 중생의 고통을 생각하고 , 음식과 물을 아끼며 공양을 통해 얻은 힘을 일체 중생에게 회향한다는 생각을 한시도 놓지 않도록 하고 있다 .
<발우 >
발우 공양의 유래는 부처님께서 당시 인도의 수행 풍습대로 매일 사시 (巳時 : 오전 10 시~12 시 )에 한끼 공양을 하셨는데 커다란 그릇 하나에 시주 받은 음식을 드신데서 연유한다 . 발우 공양법은 현재의 음식쓰레기 문제 즉 ,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므로 가정에서도 널리 실용화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
9 공양의 공덕
공양이란 향과 초 , 공양미 , 감로차 등의 시물 (施物 )을 부처님께 공양함으로써 목마르고 배고픈 중생에게 회향하며 , 중생의 고통을 여의케 해주며 , 참된 즐거움을 심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
공양 (供養 )이란 자양분을 기른다는 뜻이며 , 삼보님께 올리는 정성스러운 모든 것은 다 공양이라고 할 수 있다 . 특히 마음을 다해 바치는 정성스러운 공양은 삼륜 (三輪 )이 청정할 때 , 즉 받는 자 , 받는 물건 ,주는 자가 청정할 때 크나큰 공덕이 뒤따른다고 한다 .
10 재가불자의 예절
재가불자 사이의 호칭은 보살님 , 거사님 , 법우님 등으로 부르고 , 법명이 있으면 꼭 법명을 불러줘야 한다 . 그리고 마을이나 사찰에서 만났을 때는 반배로 정중히 인사하고 , 법회 중일 때는 목례로 하면 된다 . 가까운 불자가 경조사를 당했을 경우는 즉시 찾아 보아야 하며 , 불자 사이에 상부상조하여 함께 돕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 .
재가불자 사이에 좋지 못한 시비거리가 있을 때는 잘 해결해야 하며 , 또한 신심 있는 불자를 모함해서도 안된다 . 그리고 불자를 사칭하여 불교를 비방하거나 삼보를 헐뜯는 사람을 보면 잘 타일러 구업 (口業 )을 짓지않고 정법의 세계에 동참하도록 다 함께 노력해야 한다 .
2 사찰의 구조
1 사찰의 의미
사찰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불도 (佛道 )를 닦는 수행도량이자 불법 (佛法 )을 널리 펴서 중생을 제도하는 전법 (傳法 )의 장이다 . 스님들은 사찰에서 수행 정진하며 부처님을 대신해 중생을 교화 제도하며 ,재가자들은 보시로 스님들을 외호하고 사찰을 보호함과 아울러 속진을 씻고 올바른 진리의 생활을 하게 된다 .
사찰은 많은 대중들이 모여 살며 집회를 하고 여러 행사를 하는 곳이라 하여 가람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 부처님이 계시며 불법의 도를 선양하고 구현하는 곳이라 하여 도량 (道場 )이라 하기도 한다 . 우리 나라에서는 흔히 절이라 부른다 . 또한 깨끗한 집이라 하여 정사 (精舍 ), 혹은 청정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하여 청정원 (淸淨院 )이라 부르기도 한다 .
최초의 사찰은 부처님과 제자들이 기거하며 수행하고 설법하시던 죽림정사이며 ,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에 세운 이불란사와 초문사이다 .
2 사찰의 구조
전체적인 사찰의 가람배치는 기본적으로 일탑일금당식 (一塔一 金 堂式 ), 일탑삼금당식 , 쌍탑일금당식 (雙塔一 金 堂式 ) 사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일탑일금당식의 가람배치는 주로 백제의 사찰에서 많이 나타난다 . 이들 백제 사찰 중에는 군수리사지 (軍守里寺址 ), 정림사지 (定林寺址 ), 금강사지 (金 剛寺址 ) 등에서 정연한 일탑일금당식의 가람배치를 볼 수 있다 .
일탑삼금당식의 가람배치는 고구려 사찰에서 볼 수 있다 . 현재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 평양의 청암리사지 (靑岩里寺址 ), 정릉사지 (貞陵寺址 ) 등에서 그 유형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
쌍탑일금당식은 신라의 전형적인 가람배치를 말한다 . 대표적 사찰인 경주 불국사를 살펴보면 중문인 자하문을 지나 좌우에 석가탑과 다보탑이 자리잡고 있다 . 그리고 두 탑의 중앙 후편에는 대웅전이 자리잡고 있는 쌍탑일금당식을 보여주고 있다 .
위의 세 가지 전형적인 가람배치 양식에서 변형 발전한 것이 단불전형 (單佛殿形 ) 또는 다불전형 (多佛殿形 ) 사찰이다 . 이는 삼국시대 사찰의 중심불전이 단일 건물이며 , 명칭도 금 빛나는 불상을 봉안한 건물이라는 뜻에서 금당 (金 堂 )으로 통칭되었던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세분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종파불교가 성행하면서 각각의 소의경전에 따라 주불전의 명칭이 분화되기 시작했고 , 그 중에서도 단일신앙 (單一信仰 ) 사찰의 성격을 유지해 단불전의 가람배치를 고수한 사찰들이 있고 , 조선시대에는 비록 종파의 개념은 희박해져 통불교 (通佛敎 )적 성격을 띄었으나 , 신앙체계의 법통은 희미하게 남아있어 다양한 형식의 불전이 한 사찰 내에 조성되었다 . 즉 이전의 단불전형 사찰에서 다불전형 사찰로 변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
한편 큰 가람이 갖추고 있는 일곱 종류의 당우 (堂宇 )를 칠당 (七堂 )이라 하고 , 이 칠당을 모두 구비하고 있는 가람을 칠당가람이라 한다 . 그러나 칠당의 명칭과 배치 등은 시대와 종파에 따라 다르다 . 백제시대에는 칠당가람제가 유행하였다고 하며 , 현존하는 유적지로는 익산의 미륵사지와 군수리사지가 대표적이다 .
1) 전각 (殿閣 )
사찰의 건축물은 안에 모셔진 불상에 따라 그 이름이 다르다 . 부처님이 모셔진 곳은 전 (殿 )이라 하며 ,그 외는 각 (閣 )이라 한다 .
1 ① 대웅전 (大雄殿 )
대웅전은 거룩한 석가모니부처님을 주불로 모신 법당이란 뜻이다 . 자연히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불상이 봉안의 주대상이 된다 . 한편으로는 사바세계의 교주이신 석가모니 부처님 외에 여러 불보살들이 함께 모셔지기도 하는데 그 모시는 상징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
첫째 석가모니불의 좌우에 염화시중의 미소로 대변되는 가섭과 다문제일의 제자인 아난이 각각 선법과 교법을 상징하며 봉안된다 .
둘째 부처님의 반야지 (般 若 智 )를 상징하는 문수보살과 수행과 행원이 원대함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이 협시하여 , 모든 구도자들이 지혜와 행원에 의지하여 해탈의 길로 나가야 함을 보여 준다 .
셋째 과거의 연등불인 갈라보살 , 현세의 석가모니 부처님 , 미래의 미륵보살이 봉안되어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를 통하여 시간을 달리하면서 불법으로 교화함을 나타낸다 .
넷째 석가모니 부처님의 좌우에 조상의 극락왕생과 내생의 행복이 직결되는 아미타불과 고통 받는 병자나 가난한 사람을 구원하는 자비의 약사여래를 모시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에는 대웅전의 격을 높여 대웅보전 (大雄寶殿 )이라고 부른다 . 이외에도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대신 관세음보살 및 지장보살 또는 대세지보살을 협시보살로 봉안하는 경우도 있다 .
<대웅전 >
2 ② 대적광전 (大寂光殿 )
대적광전은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연꽃으로 장엄 된 세계인 연화장세계 (蓮 華藏世界 )의 교주인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신 건물이다 . 주로 화엄종 계통의 사찰에서 대적광전을 본전으로 건립하며 , 소의경전인 <<화엄경 >>에 근거하여 화엄전 , 비로자나불을 봉안한다는 의미에서 비로전 , 연화장세계가 진리의 빛이 가득한 대적정의 세계란 의미에서 대적광전이라고도 부른다 . 대적광전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한 삼신불 (三身佛 )을 봉안한다 . 따라서 대적광전 내에는 비로자나불 , 아미타불 , 석가모니불을 봉안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 다만 우리나라의 선종사찰에서는 선종의 삼신설에 따라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 원만보신 노사나불 , 천백억 화신 석가모니불의 삼신을 봉안하며 또한 해인사 , 금산사 대적광전 등에는 삼신불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다 .
3 ③ 극락전 (極 樂 殿 )
극락전은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이다 . 아미타불은 한 나라의 임금의 지위와 부귀를 버리고 출가한 법장 비구로서 , 여래의 덕을 칭송하고 보살이 닦는 온갖 행을 닦아 중생을 제도하려는 원을 세웠으며 마침내 아미타불이 되었다 . 아미타불은 그 광명이 끝이 없어 백 천억 불국토를 비추고 , 그 수명이 한량없어 백 천억 겁으로 셀 수 없다 하여 극락전을 무량수전 (無量壽殿 )이라고도 한다 .한편 주불의 이름을 좇아 미타전 (彌陀殿 )이라고도 한다 . 부석사 무량수전이 유명하다 .
4 ④ 미륵전 (彌勒殿 )
미륵전은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불을 모신 법당의 이름이다 . 이 미륵전은 미륵불에 의해 정화되고 펼쳐지는 새로운 불국토 '용화세계'를 상징한다고도 하여 용화전 (龍 華殿 )이라고도 한다 . 또는 '미륵'의 한문 의역인 '자씨'를 취하여 자씨전 (慈氏殿 )이라고도 부른다 . 미륵전의 대표적 건물로는 전북 김제의 금산사 미륵전을 들 수 있으며 , 미륵불은 현재 오시고 계시기 때문에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대부분 옥외에 크게 조성하여 모시는 것이 우리나라의 관례이나 금산사 등에서는 법당 안에 모신 곳도 있다 .
5 ⑤ 원통전 (圓通殿 )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곳이다 . 관세음보살을 모신 법당의 명칭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 한 사찰의 주불전일 경우에는 원통전이라 한다 . 원통전이란 명칭은 관세음보살이 모든 곳에 두루 원융통 (圓融通 )을 갖추고 중생의 고뇌를 소멸해 주기 때문에 그 권능과 구제의 측면을 강조하여 원통전이라 한 것이다 . 반면에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이 부불전의 성격을 띌 경우에는 관음전 (觀音殿 )이라 한다 . 중국에서는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강조하여 대비전 (大悲殿 )이라는 현판을 걸기도 한다 .
6 ⑥ 약사전 (藥師殿 )
이 건물은 약사유리광여래의 불상을 모신 곳이다 . 약사여래는 동방 유리광 세계의 교주로서 대의왕불 (大醫王佛 )이며 , 만월보전 , 유리광전 , 보광전이라고도 한다 . 약사여래 부처님은 현세중생의 모든 재난이나 질병을 없애고 고통을 구제하는 부처님이며 , 일광보살 (日光菩薩 ), 월광보살 (月光菩薩 )은 약사여래 좌우에서 진리광명을 두루 비추어 중생의 모든 고통을 제거한다고 한다 .
약사여래 불상의 형상은 큰 연화 위에 왼손에 약병을 들고 , 오른손은 시무외인을 맺고 있다 . 약사여래의 좌우에는 각각 일광변조보살 및 월광변조보살이 협시해 있다 . 불상 뒤에는 약사회상도가 탱화로서 걸려 있기도 한다 .
7 ⑦ 팔상전 (八相殿 )
팔상전은 석가모니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가지로 나누어 그린 그림을 봉안한 곳이다 . 여덟 폭의 그림에서 연유하여 팔상전 혹은 부처님의 설법 회상인 영산회상에서 유래한 영산전 (靈 山殿 )이란 명칭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
<팔상전 >
팔상전이나 영상전에는 내부에 큰 불단을 조성하지 않고 벽에 팔상도를 봉안하는 것이 보통이다 . 팔상전에는 주불을 석가모니부처님 , 좌우협시로 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봉안한다 . 법주사 팔상전이 그 예다 .
8 ⑧ 나한전 (羅 漢殿 )
나한전은 석가모니부처님의 제자로 아라한과를 성취한 성인 즉 , 나한을 모신 건물이다 . 부처님에게는 열 여섯의 뛰어난 제자들이 있었다 . 나한은 아라한의 약칭으로 그 뜻은 성자를 의미한다 . 영산회상의 모습을 재현했다 해서 영산전 (靈 山殿 ) 또는 응진전 (應眞殿 )이라고도 한다 .
나한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주불로 봉안되어 있으며 , 좌우에 가섭과 아난이 봉안되어 있다 . 그 좌우에 열 여섯분의 나한이 웃고 , 졸고 , 등을 긁기도 하는 자유자재한 형상이 배치되어 있다 . 경우에 따라서는 나한의 숫자가 500 명인 경우가 있다 . 500 이란 숫자는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에 마하가섭이 부처님 생전에 설법하신 내용을 모아 정리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 (결집 )했을 때 모인 비구가 500 명인 데서 유래하였다 .
9 ⑨ 명부전 (冥府殿 )
명부전 안에는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기 때문에 지장전 (地藏殿 )이라고도 하며 , 지옥계의 심판관인 시왕을 봉안하기 때문에 시왕전 (十王殿 )이라고도 한다 . 시왕은 지옥에서 죄의 경중을 정하는 10 위의 왕으로 진관왕 , 초강왕 , 송제왕 , 오관왕 , 염라왕 , 변성왕 , 태산왕 , 평등왕 , 도시왕 , 오도전륜왕을 말한다 .고려 말까지는 지장전과 시왕전이 독립된 전각으로 각각 분리 독립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10 ⑩ 대장전 (大藏殿 )
대장전은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축조한 전각을 말한다 . 대장전이란 편액을 단 건물로는 경북 예천군 소재의 용문사 대장전과 전북 김제군 소재의 금산사 대장전을 예로 들 수 있다 .
예천의 용문사 대장전은 인도의 고승이 대장경을 용궁에 소장 하였다는 고사와 용이 나타났다는 창건설화 등에 의해 이곳에 대장전을 짓고 부처님의 힘으로 호국을 축원하기 위하여 조성한 전각이다 . 전각 내에는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한 용도로 쓰인 윤장대를 좌우에 각각 1 기씩 설치하고 있다 .
11 ⑪ 적멸보궁 (寂滅寶宮 )
석가모니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불전을 지칭하여 적멸보궁이라 한다 .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심으로써 부처님이 항상 그곳에서 적멸의 낙을 누리고 있음을 상징하게 된다 . 부처님 생존시는 인도 마가다국 가야성의 남쪽 보리수 아래로 , <<화엄경 >>을 설파한 적멸도량 임을 뜻한다 .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곧 법신불 (法身佛 )로 부처님의 진신이 상주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 여기에는 예불의 대상으로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만 있는 것이 다른 불전과의 차이점이다 .
우리나라에는 5 대 적멸보궁이라 하여 신앙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양산 통도사 , 오대산 월정사 ,설악산 봉정암 , 태백산 정암사 , 사자산 법흥사가 그곳이다 .
12 ⑫ 조사당 (祖師堂 )
조사에 대한 존중의 방법으로는 사리를 봉안하는 사리탑을 세우고 행장을 남기기 위한 탑비를 건립하는 것 외에 사찰경내에 조사전을 짓고 조사의 영정을 봉안하여 제의 (祭儀 )를 받들기도 한다 . 국사가 배출된 절에서는 조사전대신 국사전이 있다 . 대표적인 것으로는 전남 송광사의 국사전을 들 수 있다 . 이 건물 내에는 고려의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하여 송광사에 머물렀던 16 분 국사들의 영정을 보관하고 있다 . 조사전이 없는 사찰에서는 영각 (影閣 )이라는 이름으로 편액을 걸기도 한다 .
13 ⑬ 삼성각 (三聖閣 )
법당의 뒤쪽 한켠에는 보통 사방 한 칸 혹은 정면 3 칸 측면 1 칸 규모의 전각이 있다 . 이 전각 내에는 우리 민족고유의 토속신들을 불교적으로 수용해서 모시고 있다 . 즉 산신 독성 칠성 등을 모신 곳이 삼성각이다 . 그 신상을각기 다른 건물에 모실 때에는 그 전각의 이름도 신상에 따라 각기 달라 산신을 모시면 산신각이라고 부른다 .
14 ⑭ 범종각 (梵鐘閣 )
일주문 , 천왕문을 거쳐 불이문을 통과하여 사찰경내에 들어서면 불이문 근처에 범종각이 자리잡고 있다 . 범종각은 범종을 달아 놓는 보호각 기능을 한다 . 간혹 규모가 큰 사찰에서는 범종 외에 법고 (法鼓 )운판 (雲板 )목어 (木魚 ) 등의 불전사물 (四物 )을 함께 놓기도 한다 .
15 ⑮ 누각 (樓閣 )
사찰의 주불전과 마주하는 곳에는 보통 누각이 세워져 있다 . 누각의 좌우에는 마당을 둘러싸고 요사채가 배치되어 있다 . 즉 뜨락을 중심으로 폐쇄적인 구조를 이루고있는 것이 보통이다 . 그러나 사찰의 배치는 원래부터 이러한 형식이 아니었다 .
고대의 절터를 발굴하여 보면 금당이 사찰의 중심에 자리잡고 , 뒤로는 강당이 앞에는 출입문인 중문 (中門 )이 자리하고 있다 . 이들 건물은 회랑으로 빙 둘러 연결되어 있다 . 오늘날의 가람배치와는 달라 주불전인 금당을 중심으로 회랑에 의해 폐쇄되어 있다 . 고대 절터는 주로 평지에 위치해서 회랑으로 구획된 경역을 이루었다 . 고대 절터에서의 중문은 구산선문 (九山禪門 )등의 개창을 시발로 절이 산속에 입지하면서 누각의 형태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 누각은 글자 그대로 이층의 다락집 형태이다 . 누각의 기둥은 출입통로로서의 역할 , 불전사물의 봉안장소 , 수장고 및 대법회가 있을 경우 불전에서 행할 행사를 준비하게 된다 .
2) 문 (門 )
1 ① 일주문 (一柱門 )
사찰에 들어서기 위해 첫번째로 통과하는 문이 일주문이다 . 일주문의 명칭은 기둥이 한 줄로 늘어서 있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다 . 4 개의 기둥을 사방에 세우고 지붕을 얹는 일반 건축물의 형식과는 다른 특별한 모습이다 .
여러 개의 산문 중에서 유독 일주문의 기둥이 한 줄로 늘어선 것은 세속의 번뇌로 흩어진 마음을 사찰에 들어섬으로써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상징적 의미 , 즉 일심 (一心 )을 의미함에서 연유한다 . 바꾸어 말하면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가는 첫번째 관문인 것이다 .
일주문의 규모는 일주삼간 (一柱三間 )을 원칙으로 삼고있다 . 일주삼간이 뜻하는 바는 <<법화경 >>의 회삼귀일사상 (會三歸一思想 )과 연관된다 . 즉 중생의 바탕과 능력에 따라 성문 (聲聞 ) 연각 (緣覺 ) 보살 (菩薩 )로 나뉘어진 불교의 수행자들을 오직 성불을 지향하는 일불승 (一佛乘 )의 길로 향하게 한다는 사상적 의미가 담겨있다 . 이 문을 경계로 문 밖을 속계 (俗界 )라 하고 문안을 진계 (眞界 )라 하며 , 일주문을 들어설 때 일심에 귀의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
일주문에는 사찰의 현판을 걸어 놓게 되는데 '영축산 통도사'라는 식으로 산의 이름과 사찰의 명칭을 표기하고있다 . 또 좌우의 기둥에는 불지종가 (佛之宗家 ), 국지대찰 (國之大刹 ) 등의 주련 (柱聯 )을 붙여서 사찰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
2 ② 천왕문 (天王門 )
천왕문은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 (外護神 )인 사천왕 (四天王 )을 모신 건물이다 . 사천왕은 고대인도 종교에서 숭앙했던 신들의 왕이었으나 , 석가모니부처님께 귀의하여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 사천왕들은 수미산 중턱의 동서남북 4 방향을 지키면서 불법을 수호한다고 한다 . 일주문을 지나 불이문 (不 二門 )과의 중간 위치에 천왕문이 자리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일주문을 통과하면서 지닌 일심 (一心 )이 구도자 앞을 가로막는 숱한 역경에 의하여 한풀 꺾이게 되는 것이다 . 이때에 수미산 중턱에 자리한 사천왕은 사찰을 청정도량 (淸淨道場 )으로 만들려는 목적 외에도 역경을 거쳐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구도자에게 다시 한번 힘을 내서 수미산 정상에까지 오를 것을 독려하는 것이다 .
사천왕을 모신 건물인 천왕문의 좌우에는 금강역사 (金 剛 力 士 )가 지키고 있다 .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일반적으로 천왕문 대문에 금강역사의 모습을 그려 놓는 경우가 많다 . 천왕문은 보통 정면 3 칸 측면 1 칸의 평면형태를 지니고 있는데 , 좌우 1 칸에는 천왕을 2 분씩 봉안하고 중앙에는 출입통로를 만든다 .
사천왕 중에서 동쪽을 수호하는 왕은 지국천왕 (持國天王 )으로 온몸에 동방을 표방하는 오행색 (五行色 )인 청색을 띠고 있으며 , 왼손에는 칼을 쥐고 오른손은 주먹을 쥐어 허리에 대고 있거나 보석을 손바닥 위에 올려 놓은 형상을 취하고 있다 .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 (增長天王 )은 붉은 기운이 도는 적육색의 몸에 노한 눈을 가지고 있다 . 오른손에는 용을 꽉 움켜쥐고 있으며 왼손은 위로 들어 엄지와 중지로 여의주를 살짝 쥐고 있다 .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 (廣目天王 )의 몸은 백색이며 , 웅변을 통하여 온갖 나쁜 이야기를 물리쳐 입을 벌리고 눈을 부릅뜨고 있다 . 손에는 삼지창과 보탑을 들고 있다 .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 (多聞天王 )의 몸은 흑색이며 , 비파 (琵琶 )를 잡고 비파줄을 튕기는 모습을 하고 있다 .
3 ③ 불이문 (不 二門 )
천왕문을 지나면 불이 (不 二 )의 경지를 상징하는 불이문이 서 있다 . 불이문은 곧 해탈문 (解脫門 )이다 .
불교적 우주관에 의하면 수미산 정상에는 제석천왕 (帝釋天王 )이 다스리는 도리천이 있고 , 그곳에 불이문이 해탈의 경지를 상징하며 서 있다 . 도리천은 불교의 28 천 (天 )중 욕계 (欲界 ) 6 천의 제 2 천에 해당된다 . 그 위계는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이며 , 하늘 세계로는 아래에서 두 번째 되는 곳이다 .
경주 불국사를 살펴보면 불이문의 조성과 이에 따른 사상적 투영을 극명하게 알 수 있다 . 불국사의 불이문에 해당되는 자하문에 도달하려면 청운교와 백운교의 33 계단을 거치게 되는데 , 이 다리들은 도리천의 33 천을 상징적으로 조형화 한 것이라고 한다 .
3) 요사 (寮 舍 )
요사는 사찰 내의 전각과 문 외에 스님들의 생활과 관련되는 건물을 총괄하는 명칭으로 통용된다 . 흔히 요사채라 불린다 . 그 구성요소를 살펴보면 큰방 , 선방 , 사무실 , 후원 (부엌 ), 창고 외에 수각 (水閣 )과 해우소 (解優所 -화장실 )까지 포함된다 .
요사는 그 기능에 따라 다양한 명칭을 가지고 있다 . 지혜의 칼을 찾아 무명의 풀을 벤다는 뜻으로 심검당 (尋劍堂 ), 말없이 명상한다는 뜻에서 적묵당 (寂黙堂 ), 참선과 강설의 의미가 복합된 설선당 (說禪堂 ),올바른 행과 참선하는 장소라는 의미의 해행당 수선당 (解行堂 修禪堂 ) 등이 대표적인 명칭이다 . 또 공양간의 명칭은 불전에 올리는 공양미는 향나무를 때서 밥을 짓는다는 고사 (古事 )에 따라 향적전 (香積殿 ), 그리고 조실스님이나 노장 , 대덕스님의 처소는 염화실 또는 반야실 (般 若 室 ) 등의 이름을 많이 붙였다 .
4) 탑 (塔 )
탑은 산스크리트어로 스투파 (Stupa), 또는 팔리어로 투파 (Thupa)라 한다 . 원래는 부처님의 사리 (舍利 )를 봉안하고 그 위에 흙이나 돌을 높이 쌓아 만들었던 것이 최초의 기원이며 , 이것을 번역하면 무덤 ,묘 (廟 ), 영지 (靈 地 )를 의미한다 . 경전에 의하면 부처님이 입멸하신 이후 여덟 나라 국왕이 부처님의 사리를 8 등분하여 각기 자기 나라에 탑을 세우고 봉안했다고 하며 , 이것이 불교에서의 탑의 기원이다 .후세에는 사리 (舍利 )가 들지 않은 경우에도 쌓아올려 탑이라 부르게 되었다 .
중국에서는 전탑 (塼塔 ), 우리나라에서는 석탑 (石塔 ), 일본에서는 목탑 (木塔 )이 특수하게 발달되었다 .
탑은 초기불교에 있어서 신앙대상의 중심이 되었으나 제한 된 사리 수와 유물 , 유품의 한계로 탑의 건립이 어려워지자 예배의 대상으로 불상이 조성되었고 , 그 불상으로 신앙대상의 중심이 바뀌었다 . 하지만 여전히 탑은 부처님의 진신에 귀의하는 신앙의 위대한 대상으로서 도량을 장엄하고 있다 . 탑은 양식상으로 3 층 , 5 층 , 9 층 , 13 층 등으로 분류된다 .
탑과 그 조성의 의미가 유사한 조형물은 다음과 같다 .
1 ① 금강계단 (金 剛戒壇 )
계단의 본래 목적은 수계의식을 집행하는 장소로서 , 수계자를 중앙에 앉히고 삼사 (三師 )와 칠증 (七證 )이 둘러앉아서 계법을 전수하는 곳이다 . 따라서 단순한 묘탑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 그러나 현존하는 계단은 대승계단이라는 신앙표현의 한 조형물로 사부대중의 호계를 위해 조성되었다 . 이러한 예로는 통도사 , 개성의 불일사 , 대구의 용연사 , 금산사 등에 있었으나 , 현재는 통도사의 금강계단과 금산사의 방등계단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
2 ② 석등 (石燈 )
석등은 등불을 밝히는 시설물로서 연등의 의미를 상징화한 것인데 , 후대에 이르러서는 불전 앞이나 탑 등에 설치하는 가람배치상의 기본 건축물로 변천하였다 .
3 ③ 부도 (浮屠 )
고승의 사리를 모신 조형물로 '붓다 (Buddha)'가 어원이다 . 가람배치 구조와는 별도로 건립되었으며 ,조상숭배를 중시하는 선종의 발달과 더불어 성행하였다 .
부도와 탑을 비교해 보면 양자가 사리를 봉안한다는 면에서는 같지만 그 형태는 매우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 또 건립 위치도 탑이 사찰의 중심 위치인 법당 앞에 세워지는데 반해 , 부도는 사찰 경내의 변두리나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세워지며 이를 부도전이라 일컫는다 .
3 법당내의 구조
법당에는 통상 상단 , 중단 , 영단의 삼단구조로 되어있다 . 부처님상과 보살상을 모신 상단 ,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선신들을 모신 중단 , 그리고 영가를 모신 영단이 그것이다 .
1 ① 상단 (上壇 )
법당의 어간문에서 바라볼 때 정면에 가장 높은 단상을 설치하고 그 중앙에 부처님상을 모시는데 이 단상을 상단이라 하며 , 부처님과 보살상을 모셨기 때문에 불보살단 (佛菩薩壇 )이라고도 한다 . 혹은 줄여서 불단 (佛壇 )이라 한다 . 이 상단에는 그 절의 주존불 불상과 후불탱화를 모시는 것이 통례이다 .
2 ② 중단 (中壇 )
호법을 발원한 선신들을 모신 신장단 (神將壇 )을 중단이라 한다 . 여러 신장님들을 모신 단상이기 때문에 신중단 (神中壇 )이라고도 한다 . 제석천이나 사천왕 , 대범천 등의 천상 성중과 천 , 용 , 야차 , 건달바 ,아수라 , 긴나라 , 가루마 , 마후라 등 팔부신장 등을 모신 곳이다 . 또한 우리의 민속신앙에 의해 칠성과 산신도 모셔져 있기도 하다 .
3 ③ 영단 (靈 壇 )
영가 (靈 駕 )의 위패가 모셔진 단상이며 , 후불탱화로서 아미타여래 래영도와 감로탱화가 통상 모셔져 있으며 이곳을 하단 (下壇 )이라고도 한다 .
3 불상의 종류
한 종파나 사찰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예배의 대상이 되는 불상을 본존불이라 한다 . 예를 들면 석가모니불 , 아미타불 (정토종 ), 비로자나불 (화엄종 ), 미륵불 , 대일여래 (밀교계통 ), 약사여래 등을 들 수 있다 .
1 불상의 구분
불상은 일반적으로 여래상 , 보살상 , 신장상 , 나한 및 조사상으로 구분을 한다 . 여래상은 나발형태를 하고 있으며 , 보살상은 머리에 보관 (寶冠 )을 쓰고 있으며 (지장보살은 예외 ), 천의 (天依 )와 목걸이 , 귀걸이 등 장엄구를 지니고 있다 . 또한 신장상은 주로 무장한 모습을 하고 있고 , 조사상은 스님의 모습이다 .
여래상은 부처님의 상이다 . 역사적으로 인도의 북쪽 카필라국의 태자로 태어나 출가하여 35 세에 부처님이 된 석가모니불을 말한다 . 불교가 발전함에 따라 특히 대승불교시대가 되면 수많은 부처님이 등장하게 되고 따라서 다양한 불상이 조성된다 . 이들 무수한 불상들은 비록 그 명칭은 다양하지만 그 모습은 손이나 세부 모습의 약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 그것은 불격 (佛格 )이 그 모습에 그대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 불의 격은 착한 일을 한 공덕이며 , 보통 32 상 (相 ) 80 종호 (種好 )라는 기본 되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 즉 상이 원만해야 하고 육계와 백호가 있어야 하며 , 옷은 법의 (法依 )를 입고 장엄구 (莊嚴具 )가 없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
이것을 조각으로 나타내면 대좌 (臺座 )에 앉거나 서서 등뒤에는 광배 (光背 )를 두게 된다 . 이것은 불교의 3 부 구성이라 할 수 있는데 불상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이다 . 불신의 머리에는 머리칼 , 라계 또는 소계의 육계가 있으며 , 이마에는 백호 (白毫 ), 목에는 삼도 (三道 )가 표현되며 , 옷은 삼의 (三依 )를 입고 , 손은 여러 가지 인상 (印相 )을 짓고 있다 .
이 불상들은 형식에 따라 단독상 , 삼존상 (三尊像 ), 병좌상 (竝座像 ), 자세에 따라 입상 , 좌상 , 와상 , 유행상 (遊行像 ) 등으로 나누어지고 , 좌상에서도 결가부좌 , 반가부좌 , 의좌 (倚座 ) 등 다양하다 .
불상은 무수하리 만치 많고 , 매우 다양하게 분류된다 . 법신 , 보신 , 화신의 삼신불상 (三身佛像 )과 과거 ,현재 , 미래의 3 세불 (三世佛 )이 있으며 , 이것이 확대되어 각각 천불이 되어 모두 3 천불이 되기도 한다 .또는 사방불 , 49 불 , 53 불 등이 있다 . 이러한 불상 중에 가장 유명하고 많이 조성된 것이 석가여래 , 아미타 , 미륵 , 비로자나 , 약사여래상 등이다
2 부처님상
부처님상은 수인과 가사 그리고 좌보처 우보처 협신보살에 의해서 구분하며 각 사찰의 법당 명칭에 의해서 구분하기도 한다 .
1 ①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의 수인은 항마촉지인 , 선정인 , 전법륜인 등을 하고 있고 , 또 가사를 걸친 우견 편단의 모습으로 앉아있다 . 보처로는 문수보살 보현보살 또는 가섭존자 아난존자로 되어 있다 .
2 ② 아미타불
아미타불의 수인은 구품인을 하고 있으며 가사를 걸친 모습은 통견의 모습이고 , 좌우보처로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로 되어 있다 .
3 ③ 비로자나불
비로자나불은 진리를 표현하는 법신불로서 지권인을 하고 있다 . 좌우 보처로는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 , 또는 아미타불 , 약사여래 , 미륵불 등 삼존불과 함께 다섯 부처님을 협시로 하고 있으며 또는 문수 ,보현보살을 보처로 모시기도 한다 .
4 ④ 미륵불
미륵불은 미래불로 전각 밖에 따로 모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 시무외인 또는 여원인 등의 수인을 취하고 있다 .
5 ⑤ 약사여래
약사여래는 중생의 질병치료 , 수명연장 , 재화소멸 , 의복과 음식 등을 구족 시키고자 하는 부처님으로서 왼손에는 약병 또는 약함 , 오른손은 시무외인을 하고 있으며 , 신장을 거느리고 있다 . 좌우 보처은 일광변조 소재보살과 월광변조 식재보살로 되어 있다 .
3 보살상
보살상은 대체로 머리에 보관 (寶冠 )을 쓰고 머리칼을 드리우며 몸에는 장신구를 갖고 옷은 천의를 걸친 온화한 모습을 하고 있다 . 보살은 부처님의 경지를 깨달은 분이지만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아직까지 부처님의 경지에 오르지 않고 중생과 함께 있는 분이다 .
보통 보살상에는 단독상도 있지만 거의 협시상이며 자세는 입상 , 좌상 등이 있고 좌상 가운데도 가부좌상 , 의상 , 반가부좌상 등 그 형태도 다양하게 되어 있다 . 보살은 여래상의 좌우 보처로 나타나기 때문에 여래상을 보고 알 수 있으며 , 손에 든 물건에 따라 구분하기도 하고 관 (冠 )의 형태에 따라서도 구분할 수 있다 .
1 ①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상징하는 보살로서 보관의 정수리에 아미타불의 화현을 모시고 다니며 , 연꽃 , 감로수병 등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다 . 십일면 또는 천수천안의 모습도 있다 .
2 ② 문수보살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로서 주로 왼손에 연꽃을 들고 사자를 탄 모습으로 되어 있다 .
3 ③ 보현보살
보현보살은 실천 행을 상징하는 보살로서 코끼리를 탄 모양이나 또는 연화대에 올라선 모습으로 되어 있다 .
4 ④ 지장보살
지장보살은 대비원력을 상징하는 보살로서 스님과 같은 모습으로 삭발한 머리에 두건을 둘렀으며 , 육환장을 들고 있다 . 이 육환장 정수리 부분에는 아미타불의 화현을 모시고 있다 .
4 천부신장상 (天部神將像 )
인도 재래의 신들이 불교에 귀의하여 부처님이나 불교를 지켜주는 호법신장 (護法神將 )이 되었다고 한다 . 그들 의상은 귀족 또는 장군의 모습 , 온화한 모습 , 진노하는 모습 등 갖가지의 형상을 하고 있다 .
천부신장상 가운데 유명한 것으로는 인왕상 (仁王像 ), 사천왕상 (四天王像 ), 제석천상 (帝釋天像 ) 등이 있고 각종명왕상 (明王像 )도 있다
5 나한상 (羅 漢像 ) 및 조사상 (祖師像 )
부처님의 상수제자인 가섭존자와 아난존자 같이 훌륭한 분들의 상을 표현한 것이 나한상이고 , 한 종파의 큰스님 같은 분을 조각한 것을 조사상이라고 한다 .
그러므로 모두 스님상을 하고 있다 . 나한상은 가섭존자 아난존자 등 십대제자를 중심으로 5 백 나한 , 천 2 백 아라한 등 많은 나한상이 있고 , 조사상은 용수 , 무착 , 세친 , 현장 , 원효 , 의상 , 자장 등 인도 , 중국 ,우리나라의 고승상이다 .
6 수인 (手印 )의 종류
불상의 손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 부처님의 덕을 나타내기 위하여 열 손가락으로 여러 모양을 만들어 표현한 것이다 .
인계 (印契 ), 인상 (印相 ), 밀인 (密印 ), 계인 (契印 )이라고도 하며 , 교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으므로 불상을 만들 때 함부로 형태를 바꾸거나 다른 부처님의 수인을 취해서도 안된다 . 따라서 수인은 여러 종류의 불상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
수인의 종류는 석가모니부처님의 근본 5 인에서부터 아미타 부처님의 구품인 (九品印 ), 비로자나 부처님의 지권인 (智拳印 )등 매우 다양하다 . 석가모니부처님의 근본 5 인을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
1 ① 선정인 (禪定印 )
결가부좌 상태로 참선 즉 선정에 들 때의 수인이다 . 왼쪽 손의 손바닥을 위로 해서 배꼽 앞에 놓고 , 오른손도 손바닥을 위로 해서 그 위에 겹쳐 놓으면서 두 엄지손가락을 서로 맞대어 놓는 형식이다 .
2 ② 항마촉지인 (降 魔觸地印 )
부처님이 마귀를 항복시키고 성도한 뒤 자신의 깨달음을 지신 (地神 )에게 증명해 보라고 말하면서 지은 수인이다 . 선정인에서 왼손은 그대로 두고 위에 얹은 오른손을 풀어 손바닥을 무릎에 대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이다 .
3 ③ 전법륜인 (轉法輪印 )
부처님이 성도 후 다섯 비구에게 첫 설법을 하며 취한수인으로 , 시대에 따라 약간씩 다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예가 많지 않다 .
4 ④ 여원인 (與願印 )
부처님이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고 중생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게 하는 덕을 표시한 수인이다 . 손의 모습은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손가락은 펴서 밑으로 향하며 , 손 전체를 아래로 늘어뜨리는 모습이다 .
5 ⑤ 시무외인 (施無畏印 )
중생에게 무외를 베풀어 우환과 고난을 해소 시키는 덕을 보이는 수인이다 . 손의 모습은 다섯 손가락이 가지런히 위로 뻗치고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어깨 높이까지 올린 형태이다 . 이 시무외인과 여원인은 부처님마다 두루 취하는 수인으로 통인 (通印 )이라고도 하며 , 석가모니불 입상 (立 像 )의 경우 오른손은 시무외인 , 왼손은 여원인을 취하고 있다 .
6 ⑥ 광배 (光背 )와 대좌 (臺座 )
광배는 부처님의 몸에서 나는 신령스럽고 밝은 빛을 상징화한 불상의 한 구성요소로 불신의 뒤 쪽에 표현한 것을 일컫는다 . 그 형태는 시대와 지역 , 혹은 불보살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빛이 머리에만 비추는 두광 (頭光 , 圓光 )과 몸 전체에 두루 비추는 거신광 (擧身光 , 全身光 )이 있다 .
대좌는 불보살상 및 조사상이 앉는 자리를 말한다 . 대좌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자좌 (獅子座 )와 연화좌 (蓮 花座 )가 가장 보편적이다 .
4 불교 회화
모든 그림이 다 그러하겠지만 특히 불화는 단순한 아름다움이나 선을 추구하는 예술이 아니며 , 불교적 이념에 입각한 주제를 그리는 성스러운 예술이다 . 따라서 좋은 불화는 기법이나 양식의 획기적인 업적보다 불교적인 이념이 얼마만큼 성공적으로 표현되었느냐가 중요하다 . 가령 불교가 모든 괴로움에서 해탈하는 것이 주목적이라면 가장 성공적인 불화는 이 괴로움에서 해탈할 수 있는 장면을 가장 멋지게 그린 그림이 가장 명작이라 할 수 있다 .
1 탱화와 경화 (經畵 )
탱화는 비단 또는 베 바탕에 불보살의 모습이나 경전내용을 그려 벽 같은 데다 걸도록 그린 그림을 말한다 . 흔히 일반 그림에서 족자로 불리는 양식을 말한다 . 고려나 조선조 때는 가장 보편적이고 애용되었던 양식이다 .
탱화의 종류는 그려진 주제의 내용에 따라서 상단 , 중단 , 하단탱화로 구분된다 . 상단탱화는 전각의 상단 , 즉 불전의 중앙에 모셔진 불보살상의 뒷면에 거는 탱화로서 석가모니불 , 아미타불 , 비로자나불 , 약사불탱화 등이 있다 . 중단탱화는 불단의 좌우측에 있는 영가단 (靈 駕壇 )에 모시는 탱화로서 주로 신중 (神衆 )이나 호법신 (護法神 ) 등을 그린다 . 하단탱화는 명부전의 지장보살 , 시왕상 뒤에 모시는 탱화이다 .
경화는 불경에 그린 그림을 말하는데 그 경에 설하고 있는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다 . 따라서 보통 변상도 (變相圖 )라고도 부른다 . 이 경화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직접 그린 사경화 (寫經畵 )와 나무나 금속의 판으로 인쇄한 판화 (版畵 ) 등이 있다 .
2 심우도 (尋牛圖 )
수행자가 정진을 통해 본성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해서 그린 선화 (禪畵 )로 , 그 과정을 10 단계로 구분하고 있어 십우도 또는 목우도 (牧牛圖 )라고도 한다 .
3 감로도 (甘露圖 )
조상숭배 신앙이나 영혼숭배 신앙의 내용을 표현한 그림이다 . ≪불설우란분경≫을 그 근본경전으로 삼기 때문에 우란분경 변상도 또는 하단인 영가단에 봉안하는 그림이기 때문에 영가단탱화 혹은 감로탱화 , 감로왕도라고도 한다 .
4 괘불 (卦佛 )
법당 밖에서 불교의식을 행할 때 걸어 놓는 예배용 그림이다 . 법당 바깥에 있는 당간지주 등에 내걸고 법회나 의식을 베푸는 것을 괘불재 (卦佛齋 )라고 하며 , 괘불을 거는 것을 괘불이운 (移運 )이라고 한다 .
큰 재를 올릴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그 법회의 성격에 맞는 내용의 괘불을 걸게 된다 . 따라서 죽은 사람의 극락왕생을 비는 영산재를 올릴 때는 영산회상도를 , 그리고 예수재나 수륙재 때에는 지장회상도나 명부시왕도를 내걸게 된다 .
5 변상도 (變相圖 )
부처님의 일대기 또는 불교설화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 변상도는 일반적으로 부처님의 전생을 묘사한 본생도 (本生圖 )와 일대기를 나타낸 불전도 (佛傳圖 ), 그리고 서방정토의 장엄도가 그 기본을 이루고 있다 .
이들 변상도의 특징은 복잡한 경전의 내용이나 심오한 교리의 내용을 한 폭의 그림에 압축함으로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뜻을 이해하고 불심을 일으키는 중생교화의 한 방편으로 사용했다 .
5 법구 (法具 )
법구는 즉 불구 (佛具 )라고도 하는데 , 불법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모든 도구를 의미하며 , 또한 불전을 장엄하는 여러 가지 사물을 뜻하기도 한다 . 이러한 법구는 법답게 다루어야 하며 필요할 때만 법식에 맞춰 사용해야 한다 .
법구 중에서도 조석예불 때 치는 법고 , 운판 , 목어 , 범종이 있다 . 이것을 불교의 사물 (四物 )이라고 한다 .
법고 (法鼓 )는 법을 전하는 북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 법고는 보통 쇠가죽으로 만드는데 짐승을 비롯한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하여 친다 .
운판 (雲板 )은 청동 또는 철로 만든 넓은 판으로 원래 중국의 선종사찰에서 부엌이나 재당 (齋堂 )에 달아 놓고 대중에게 끼니 때를 알리기 위해 쳤다고 하나 차츰 불전사물로 바뀌었다 . 운판이 울리면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생을 제도하고 허공을 헤매며 떠도는 영혼을 제도하기 위하여 친다 .
목어 (木魚 )는 나무를 깎아서 물고기 모양을 만들고 배 부분을 파내어 두 개의 나무막대기로 두드려 소리를 낸다 . 목어를 치는 이유는 수중에 사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친다 . 물고기는 언제나 눈을 뜨고 살기 때문에 , 수행자는 늘 깨어있는 상태에서 부지런히 정진해야 된다고 하는 의미이다 .
범종 (梵鍾 )은 일명 대종 (大鍾 ), 경종 (鯨鍾 )이라고 하며 조석 예불과 사찰에 큰 행사가 있을 때 사용한다 . 아침에는 28 번을 , 저녁에는 33 번을 친다 . 범종을 치는 근본 뜻은 천상과 지옥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이다 . 그 밖의 법구는 다음과 같다 .
1 목탁 (木鐸 )
목어와 같은 뜻으로 주로 깨우침의 의미가 있다 . 목탁은 대중을 모으는데 사용하는 신호이기도 하며 모든 의식집행에 있어서 가장 많이 쓰이는 법구이다 . 처음에는 쇠로 만들어 사용했으나 나중에는 나무로 만든 것이 쓰이기 시작했다 . 이 법구들은 거의 전부가 중국에 와서 선종이 왕성하여 선종 사찰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한다 .
2 죽비
죽비란 중국 선원에서부터 대나무 통이나 뿌리로 만들어 쓴 것인데 , 목탁과 같이 선방에서 앉고 일어서고 입선과 방선 , 그리고 공양할 때 행동 통일을 알리는 도구로 쓴다 . 선방에서는 언제나 정숙을 중요시 하기 때문에 목탁보다는 조용하고 간편한 법구를 사용하는 것이다 .
3 발우 (鉢盂 )
발우는 부처님 당시부터 불가에서 공양할 때 쓰던 밥 그릇인데 , 오늘날에도 스님들의 소중한 유물로 쓰이는 법구이다 . 즉 불기 (佛器 )와 같이 소중한 그릇이다 .
4 요령 (搖鈴 )
요령은 남방계통에서는 볼 수 없는 법구이다 . 본래 밀교계통에서 사용하던 도구로서 북방계통의 사찰에 전해져서 지금은 모든 의식집전에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법구이다 .
5 염주 (念珠 )
염주는 부처님께 기도하거나 절을 하면서 참회할 때 그 수를 헤아리기 위해서 사용하는 법구인데 보통 108 개로 되어 있다 . 본래 부처님의 깨달음의 상징으로 신앙 되고있는 보리수 열매로 만들어서 사용했으나 , 지역에 따라 독특한 나무나 그 밖의 재료 (율무열매 , 용안주 , 금강주 , 다양한 보석 등 )로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는 법구이다 . 요즘 천주교에서 쓰고 있는 묵주도 원래 불교의 염주에서 파생한 것이다 .
6 사리장엄과 복장물
사리장엄 (舍利莊嚴 )이란 부처님이나 스님의 법구 (法身 )를 다비하고 나온 사리를 봉안하는 갖가지 장엄으로 , 사리를 담는 사리구와 이 사리구를 탑 속에 봉안하는 사리장치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
사리는 진신 (眞身 )사리와 법신 (法身 )사리로 구분된다 . 진신사리는 부처님의 육신에서 나온 것을 말하고 , 법신사리는 부처님이 설하신 가르침 즉 대 소승불교의 모든 경전을 말한다 . 일반적인 사리장엄으로는 사리를 담는 사리병이 있고 다시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바깥에 합 (盒 )이 있다 . 사리병은 신라시대에는 유리와 수정으로 만들었으나 고려시대에 와서는 금속재가 많이 쓰여졌다 .
복장물 (腹藏物 )이란 불상을 조성하면서 불상의 배 안에 사리 , 불경 등을 넣는 것으로 , 넓은 의미로는 불상 , 보살상 , 나한상 등의 여러 존상 내부에 봉안되는 갖가지 불교적 상징물 또는 그것을 넣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
사리는 처음에는 탑에만 봉안해 오다 불경이나 불화 , 불상 안에도 봉안하게 되었다 . 복장물은 사리함 ,진신사리 , 다섯 가지 보석 , 오곡 , 오약 , 오색실 , 의복 등이 있으며 , 조상기 (造像記 )나 복장기 (腹藏記 )등도 장치한다 . 보통은 불상을 처음 조성할 때 복장을 넣지만 , 후대에 와서는 불상을 수리하는 개비 (改備 ) 때나 금칠을 다시 하는 개금 때에도 복장을 넣는 경우가 있다 . 따라서 복장 유물은 해당 불상 조성 또는 개비 (개금 ) 당시 불교신앙의 경향 , 사경미술 , 불상조성의 유래 , 그것을 만든 장인 , 발원자의 신분 등을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
7 기타 불교 조형
1 당간지주 (幢竿支柱 )
당 (幢 )을 거는 장대인 당간을 지탱하며 세우기 위해 당간 좌우에 세우는 기둥이다 . 대개는 사찰 입구에 세워진다 . 재질은 금동 등의 금속재도 있지만 대부분 돌로 만들어졌다 .
당간지주는 당간을 지탱하기 위한 구조물이면서 아울러 그곳이 신성한 사찰이 있는 지역이라는 것을 나타내며 선사시대의 '솟대'신앙과도 연결시켜 생각해 볼 수 있다 .
2 업경대 (業鏡臺 )
지옥의 염라대왕이 갖고 있다는 거울로 , 여기에 비추어보면 죽은 이가 생전에 지었던 선악의 행적이 그대로 나타난다고 한다 . 보통 업경대는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금속으로 된 것도 있다 .
3 윤장대 (輪 藏臺 )
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회전하도록 만든 나무로 된 책장이다 . 이것을 돌리기만 하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한다 . 우리나라에는 예천 용문사에 윤장대 2 좌가 있으며 , 고려 명종 3 년 (1173)에 자엄대사가 세운 것이다 .
8 불교 성보의 이해
1600 여년이 넘는 한국불교의 역사와 전통은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어 마침내 민족문화의 근간이 되었다 . 우리 나라의 어디를 가나 불교성지가 있고 문화재가 있다 . 현재 국보와 보물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대다수의 민족문화재가 불교의 성보 (聖寶 )이다 .
1995 년 유엔 기구인 유네스코 (UNESCO)가 해인사 팔만대장경과 불국사 석굴암 , 그리고 종묘를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는데 이는 불교의 성보문화재를 세계적인 차원에서도 인정 받고 있다는 증거이다 .
한편 불교 문화재는 민족 문화유산이면서도 성보라는 두 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다 . 일부 국민들은 여기에 대하여 단지 민족 문화유산의 성격만을 보고 지금도 불자들이 신앙의 상징으로 삼고 있는 불교 성보문화재의 본질을 모르는 경향이 있다 . 일부 국민은 산자 수려한 사찰을 단순한 관광지로 , 성보문화재를 관광 대상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
하지만 다시 한번 상기하여야 할 것은 불교 문화재는 민족문화 유산이기 전에 신심이 지극했던 조상들이 신심과 지혜와 기술을 융화하여 구현한 신앙의 상징이었다는 것이다 . 때문에 일부 국민의 사찰과 성보문화재에 대한 몰이해를 잘 깨우쳐 주고 이들이 민족 문화재이자 성보를 통해 불교 문화와 사상에 대한 이해를 드높여 나가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
성보와 민족문화 유산에 대한 바른 이해와 보존은 바로 우리 민족의 전통과 역사 그리고 사상 문화 창달의 기초이다 . 어느 민족이던 전통 문화와 사상을 잘 보존하지 못한 민족은 패망하였다 . 오늘날과 같은 세계화 , 국제화시대에도 민족 고유의 전통과 문화에 바탕한 세계화가 가장 바람직한 것이다 . 가장 한국적인 것 , 가장 불교적인 것이 국제적이고 세계적인 것이다 . 우리는 이것을 해인사 팔만대장경과 불국사 석굴암의 세계 문화유산 지정에서도 새삼 확인한 바가 있다 .
민족의 전통 문화와 정수를 간직하고 있는 우리 한국불교는 세계화 시대에 발맞추어 민족문화를 잘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켜야 할 역사적 사명이 있다 . 우리 불자들은 한국불교의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명심하면서 바른 신행생활을 통해 불교와 민족의 중흥을 위해 정진해 나가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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