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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도협회 부산.경남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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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김삿갓과 함께하는 해학의 세계 (3)
소정 추천 0 조회 41 18.10.22 15:3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김삿갓과 함께하는 해학의 세계 (3)

 

 

연광정(練光亭)은 덕암(德岩)이라는 수백 척 절벽위에

날아 갈듯 솟아 있는 정자이다.

연광정은 성종(成宗)때 평안감사 허굉(許굉)이 지었다는데

규모나 건축미가 크고 뒤어난 걸작품이다.

 

일찌기 임란(壬亂)때 명나라 장수 심유경(沈惟敬)이

왜장(倭將) 소서행장(小西行長)과 강화담판(講和談判) 한 장소가 여기며

나라가 위급지경에 처하자 일개 기생의 몸으로 적진 속으로  숨어 들어가

왜장을 죽이고 순국절사(殉國節死) 한 평양명기 계월향(桂月香)이

평소 즐겨 찾던곳이 바로 여기다.

 

그 연광정 다락에서 굽어 보는 풍광이야 어찌 다 필설로 다하랴 !

능라도와 백은탄이 한눈에 들어 오고 왼편으론 대동루(大同樓)요

오른편엔 읍호루(읍濠樓)가 지호지간(指呼之間)인데

밤낮없이 용용한 대동감 위에는 사시장철 놀잇배가 무수히 떠 있다.

그러기에 그곳 정자에는 연광정을 찬양하는 수많은 시가 걸려 있었는데

숙종때  시인 김창업(金昌業)의 시에 이르기를

 

   普通門外草靑靑 (보통문외초청청) 보통 문밖 벌판엔 풀빛 푸른데

   浮碧樓前春水生 (부벽루전춘수생) 부벽루 앞 강엔 봄물결 이네

   誰道吾行歸未晩 (수도오행귀미만) 일찍 돌아오라 그 누가 말했던고

   杏花如雪滿江城 (행화여설만강성) 강마을엔 살구꽃이 눈발처럼 날리네.

 

또 정조때의 시인 조의겸(曺義謙)의 시에는 이렇게 읊었으니

그 아름다움이 어떠 했는가 ?

 

    江樓四月已無花 (강루사원이무화) 사월이라 첫여름 꽃은 이미 져버리고

    簾幕薰風燕子斜 (렴막훈풍연자사) 주렴 바깥 훈풍에 제비가 날아드네

    一色綠波連碧草 (일색록파연벽초) 언덕 위 푸른 풀에 강물도 푸르니

    不知別恨在誰家 (부지별한재수가) 이즈음 어느 누가 헤어지고 애태울꼬

 

역시 대동강은 사랑의 대동강이요 이별의 대동강이었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인간지사를 외면한체 용용히 흘러만 간다.

연광정에서 조금 떨어진 넓은 잔디밭에 때마침 진달래는 붉게  피었는데

그곳에서 10 여명의 노기(老妓)들이 둘러 앉아 화전놀이를 하고 있었다.

 

화전이란 소금물로 반죽한 찹쌀가루로 전병을 만들어 부칠때

진달래꽃을 넣어 익혀내는 매우 풍류적인 음식으로 꽃시절이면 의례히

시인 묵객들이 시회(詩會)를 이렇게 열기를 많이 했다.

 

김삿갓이 그 곳을 지나치려니 시장하던차에 고소한 기름냄새를 맡고

도저히 그냥 갈수가 없어 체면불구 하고 머리를 숙이며

지나가던 과객에게도 전병 몇장만 얻어 먹게 해 주십시요 하니

50쯤 되어 보이는 노기가 지금 시회가 막 끝나서 일어 나려던 참이었는데

남은 전병이 석장뿐이니 허물치 말고 자셔 주시요, 하는데 그 말품이 제법 공손 하다.

 

전병 석장을 게눈 감추듯 모두 먹어치운 김삿갓은 고마움에 이렇게 수작을 걸었다.

즐거운 시회에 불청객이 훼방을 놓아 죄송 하게 되었습니다.

고마운 뜻에 답례로 시 한수를 적어놓고 가겠습니다,

하며 일필휘지로 써 갈기니 내용인즉 이러하다.

 

   鼎冠撑石小溪邊  (정관탱석소계변)  솥을 돌로 괴어 놓은 개울가에서

   白粉淸油煮杜鵑  (백분청유자두견)  흰 가루를 기름에 튀겨 전병을 부치네

   雙箸挾來香滿口  (쌍저협래향만구)  저로 집어 넣으니 입에는 향기가 가득하고

   一年春信腹中傳  (일년충신복중전)  한 해의 봄소식이 뱃속에 전해 오네

 

이렇게 써놓고 일어 서려는데 기생들이 모두 눈이 휘둥그래 가지고

그 필적과 내용에 감탄하며 이 시를 선생이 지으신겁니까 하며 난리를 친다,

이에 김삿갓이 짐짓 손사래를 치며 아니올시다.

이 시는 명종때 풍류객 임백호(林白湖)가 지은 시입니다 하니,

모두들 일찌기 평양에 도사(都事)로 와 있던 백호(白湖) 임제(林悌)에 관하여

이야기 해 달라 졸라대는것이었다.

 

해서 김삿갓은 백호 임제의 이야기를 하였다.

원체 풍류를 타고난 임제는 평안도 도사(종5품관:관찰사의 부사격) 로

평양에 부임했는데 색향(色鄕) 평양에는 수천명 기생이 있건만

유독 마음속에 둔 여인은 한우(寒雨) 라는 기생뿐이었다.

 

한우는 외모도 출중 했거니와 시문과 풍류에도 능통하여

임백호의 마음을 사로 잡았지만 지조 높은 그녀는 좀체로

임백호에게 잠자리를 함께해 주지 않았다.

 

어느 초겨울 밤 단둘이 밤늦도록 술을 마시다가 임백호가 그녀와 잠자리를 하고싶어

시조 한수 를 읊으니 <찬비>는 기생 한우(寒雨)요 은근히 동침을 요구한 내용이다.

 

   북창(北窓)이 맑다기에

   우장(雨裝) 없이 길을 가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

 

이에 기생 한우가 어찌 임백호가 부른 시조의 뜻을 모르랴 !

즉석에서 다음과 같은 시조로 응수 하고 그야말로 달콤한 밤의 역사를 열어 젖히니 

그 이상의 이야기를 어찌 다 하리요.

 

     어이 얼어 자리 무삼 일 얼어 자리

     비단이불 원앙베개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으셨다니 녹여 드릴까 하노라.

 

김삿갓이 능란한 입담으로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자  

기생들은 박장대소를 하는중에 더러는 한숨을 쉬면서

어쩌면 옛날분들은 그렇게도 멋진 사랑을 했을까 ?

과연 요즘 세상에도 그런 풍류남아가 있을까?하면서

날이 저물었는데도 내려갈 생각들은 않고 한가지만 더 들려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하여 한가지를 더 들려주고 일어 서려는데 여러 기생들이

이제는 김삿갓을 존경 하는 눈빛으로 처다 보면서 선생도 필경

시인 아니냐고 물어 대는데 김삿갓은 그저 떠돌이 걸객이라고 대답 하였다.

 

그런데 조금 전부터 몇몇 기생들이 한편 쪽에서 무엇인가 쑥덕거리더니

드디어 김삿갓에게로 몰려와 서는, 맞다!  그분이 아니라면

이토록 옛시와 역사에 능통한 사람이 없어요 ... 아마도 선생은 김삿갓 !

그분이 맞으시죠? 하면서 난리법석이 나고 말았다. 

     

김삿갓은 졸지에 신분이 밝혀지자 겸연쩍어 어쩔줄 몰라 하면서

그저 걸객에 불과한 소생이 김립,김삿갓이올시다! 하자

좌중의 기생들 모두가 그를 향하여 손뼉을 치며 정중히 머리숙여 예를 올리며 말하기를 존귀하신 어른을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하며 정중히 술을 따라 올린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 가는데 그들은 도무지 내려갈 생각은 안하고

낮에 자기들이 지은 시를 가져와 김삿갓에게 강평을 해달라고 졸라댄다. 

 

어쩔수 없이 시문을 적은 종이 뭉치를 받아든 김삿갓은

시는 짓는데 뜻이 깊은것이지 잘짓고 못짓는게 문제가 아니라며

미리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설명해 놓고서는 한장 한장 넘겨 보니

시의 수준은 보잘것 없는 수준의 졸작들 뿐이었다.

 

그런데... 아까 부터 저만치서 새초롬해 보이는 제법 예쁜 기생 하나가 이런 말을 해준다.

저희들은 오늘 <門>, <村>,<昏> 세글자를 운자(韻字) 로 썼사옵니다.

아 ~ 그래요?... 하면서 넘겨 보니 영 아니다...

그러면 그렇지 제까짓것들이 무슨 시를 쓴다고.... 이렇게 속으로 중얼대며

넘겨 보다가 깜짝 놀랄만한 대작(大作) 의 명시(名詩)를 하나 발견 하였다.

거기에는 강촌모경(江村暮景) 이란 제하의 시가 아름다운 글씨로 적혀 있었으니

 

   千絲萬樓柳垂門  (천사만루유수문)  실버들 천만 가지 문 앞에 휘늘어져

   綠暗如雲不見村  (록암여운불견촌)  구름인양 눈을 가려 마을을 볼수 없네

   忽有牧童吹笛過  (홀유목동취적과)  목동의 피리 소리 그윽이 들리는데

   一江烟雨白黃昏  (일강연우백황혼)  보슬비 내리는 강촌에 날이 저무네.

 

김삿갓은 두번세번 읽어 보고 나서

이처럼 기가 막힌 시를 누가 썼습니까? 거듭 물어도 대답이 없다.

필경 이것은 누군가 남의 시를 베껴쓴것 이라라 여기면서

거듭 다그처 물었더니 아까부터 새초롬 하니 앉아 있던 기생이

얼굴을 반짝들며 선생님! 그 시는 제가 쓴 시입니다, 저는 죽향(竹香)이라 하옵니다.

 

바라보니 참으로 어여뿐 32,3세의 기생이었다.

거듭 김삿갓이 그녀의 시를 칭찬하자 다른 기생들이 기분이 언짢은지

선생이 우리들의 시를 모두 보셨으니 이번에는 선생이 우리들에게

시를 지어 달라는 주문을 한다.

 

김삿갓은 좌중의 어색한 분위기를 둘러보고 나서 이를 가라 앉히려면

도리없이 시를 지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일필휘지로 종이에다 먹을 듬뿍 먹여 연광정(練光亭)이란 제하의

시 한수를 똑같이 <門,村,昏> 세글자를 운자로 하여 써 갈기니

 

   截然乎屹立高門 (절연호흘입고문) 깎아지른 절벽 위엔 높은 문이 서 있고

   碧萬頃蒼波直番 (벽만경창파직번) 만경창파 대동강엔 푸른물결 굽이치네  

   一斗酒三春過客 (일두주삼춘과객) 지나가는 봄 나그네 말술에 취햇는데

   千絲柳十里江村 (천사유십리강촌) 천만 가닥 수양버들 십리 강촌에 늘어졌구나

 

   孤舟鷺帶來霞色 (고주노대래하색) 외로운 따오기 노을빛 끼고 날아들고

   雙白鷗飛去雪痕 (쌍백구비거설흔) 짝지은 갈매기 눈발처럼 휘나르네

   波上之亭亭上我 (파상지정정상아) 물결 위에 정자 있고 정자 위에 내가 있어

   坐初更夜月黃昏 (좌초경야월황혼) 초저녁에 앉았는데 밤이 깊자 달이 뜨네

 

이 시는 연광정 위에서 저물어 가는 대동강을 굽어 보며 즉흥적으로 읊은 시로써

죽향(竹香)의 강촌모경(江村暮景) 시에대한 화답으로 읊었지만 그 깊은 뜻을

제대로 아는이 없었다. 다만 죽향만이 의미심장 하게 고개를 끄덕일뿐이었다.

 

날이 저물어 오므로 김삿갓은 여러 기생들에게 그동안 잘 얻어먹고 잘 놀았다며

인사를 하고 돌아 서다가 문득 예곤옥 에 대하여 알아보아 달라고 청하여 놓고

그자리를 떠나 버렸다.

 

그리하여 임진사댁으로 돌아오니 임진사가 반갑게 맞이하며

오늘 어디를 다녀 오셨냐며 영명사의 벽암(碧巖)대사가 여태껏

선생을 기다리다 조금전에 돌아 갔다 한다.

 

사실인즉 벽암대사와도 모르는 사이건만 벌써 김삿갓의 명성을 들어 알고 시를 논하고싶어 만나고져 한다는 이야기였다.그러면서 아마도 내일 아침 찾아 오실거란 말을 덧붙인다.

그 영명사 벽암스님은 도가 매우높은 스님으로 시문에 능통 할뿐만 아니라

술도 잘해서 인근에 미치광이 스님이라 정평이 나 있다 하는데

술을 곡차(穀茶)라 부른단다.

 

김삿갓은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부벽루 서쪽 기린굴(麒麟窟)위에

영명사로 벽암대사를 찾아 갔다.

영명사 누각에 걸린 시 한수가 반긴다.

 

   永明寺中僧不見 (영명사중승불견) 영명사 절에 중은 보이지 않고

   永明寺前江自流 (영명사전강자류) 영명사 절 앞엔 강물만 흐르네

   山空孤塔立庭際 (산공고탑입정제) 산은 비고 뜰에는 탑만 홀로 섯는데

   人斷小舟橫渡頭 (인단소주횡도두) 사람 없는 나루터엔 조각배만 떠도네

 

김삿갓은 무아정적(無我靜寂)의 경지에 들어온 느낌을 받으며 경내로 들어가

상좌에게 벽암대사를 만나러 왔다고 전하니 선실(禪室)로 인도하여 들어가니

80을 넘긴듯한 백발이 성성한 노승이 반기는데 첫눈에 거룩한 모습이 완연하다.

 

하여, 김삿갓이 어제 자리를 비워 대사께서 헛걸음 하신것을 사과 하니

벽암대사 김삿갓을 크게 칭찬하며 반갑게 맞이해 준다.

삿갓이 방안을 둘러 보니 벽에 족자 하나가 걸려 있으니 내용이 이러하다.

 

   白雲千里萬里猶是同雲(백운천리만리유시동운)

   구름은 천만리에 덮여 있어도 구름일 뿐이요

   明月前溪後溪嘗無異月 (명월전계후계상무이월)

   달은 앞내 뒷내 모두 비추나 다른 달이 아니로다.

 

김삿갓이 크게 감동해서 벽암대사에게 저 글은 대사께서 지으신 글입니까

하고 물으니 고승이 답하기를 저 글은 신라적 진경(眞鏡)선사 께서 읊으신

게송(偈頌)이라 한다.

 

두 사람이 마주앉아 한담을 나누고 있는데

밖에서 벽암대사를 만나러 온 사람이 있다고 상좌가 전한다.

문을 열고 밖을 보니 80이 넘어 보이는 쪼그랑 노인인데 벽암대사는

서슴없이 그 노인을 방으로 안내 하고는 그 연유를 물으니

내 나이 90 이올시다, 대사께서 영험 하시다 하니 더 오래 살게 해 주십시요 한다.

 

벽암대사 서슴없이 백살, 이백살 살아도 결국은 언젠간 죽는 이치를 말하며

타이르니 90 노인이 눈물을 흘리며 불교에 귀의하고 만다.

김삿갓은 이 광경을 보고는 역시 대사의 고매한 인품에 감격했다.

 

이윽고 노인이 돌아 가고 선방엔 벽암대사와 김삿갓만이 남았다.

방문 너머로 대동강에 떠 있는 수많은 놀잇배들이 한눈에 삼삼하다.

삿갓어른 ! 저기 보이는 놀잇배들을 여기 앉아서 멈추게 하려면 어찌 하면 되겠소이까?

김삿갓 조용히 창문을 닫는다. 물론 선문답(禪問答)의 정답이었다.

 

허면, 삿갓선생 ! 문을 닫지 않고도 배를 멈출 방법은 없겠소이까?

김삿갓 눈을 슬며시 감아 버리자 .... 벽암대사 크게 웃으며 좋아 한다.

대사와 삿갓이 시간 가는줄 모르고 고금의 명시와 고승대덕들의 게송을 논하며

곡차(穀茶:술)를 내오게 하여 취하도록 마셨다.

역시 벽암대사는 취해도 자세 하나 허트리지 않는다.

 

또 몇수의 시를 짓고 게송을 암송하며 술을 서로 권하며 환담중인데

또 밖에서 상좌가 이르기를 일영(一影)이란 보살이 김삿갓을 찾아 왔노라고 고하자

벽암대사 빙그래 웃으며 참으로 삿갓선생은 염복도 많으시구려 ~

타고난 미인에다 시도 잘 하는 일영보살이 이렇게 찾을정도면 말이외다.

하며 방안으로 들어 오게 하여 합장하는 모습을 보니 ...

 

아 ! 그녀는 다름 아닌 일전에 연광정에서 만났던 기생 죽향(竹香)이가 아닌가?

죽향이 조용히 앉아 저간의 일들을 이야기 하는데 자신이 어느 평양기생의

양녀로 끌려온 이후 예곤옥(芮崑玉)이란 이름을 버리게 하고 죽향(竹香)으로

개명 하였으며 기생교육을 강제로 시켜 거부하면 수도 없이 매질을 당했고

오매불망 보고싶은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도 무서운 양모는 철저하게 가로 막으며

오로지 기생으로 살아가기를 종용했다 한다.

 

하기야 어차피 양모가 기생이니 그 양녀가 제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어도

장성 해서는 남의집 첩실이나 소실 밖에 더 되랴 !

그럴바엔 차라리 이름 있는 기생이 되는게 낫겟다는 양모의 판단이 옳았던건 사실인데 ..그 어린 나이에 견뎌 내기엔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었던건 사실이다.

 

이제 그 양모도 죽고 아버지 살아 생전에 만나 뵙고싶은 마음을 가눌길 없어

이렇게 어른들께 결례를 범하고야 말았나이다 한다.

이에 김삿갓은 그녀의 아버지 이름은 예동철(芮東哲)이며

이미 나이가 80을 넘겼다는 이야기와 사시는곳은 이곳 평양에서 50리 떨어진

중화고을 어느 산속의 길가에 성인주막(聖人酒幕)에 사신다고 했다.

 

죽향은 아니... 예곤옥은 슬프게 통곡하며 아버지를 뵙게해 달라며 꼭 수고스럽지만

김삿갓에게 그곳을 안내해 달라고 두번 세번 간곡하게 청하는게 아닌가...

 

예곤옥은 아예 벽암대사에게 자기가 삿갓선생을 지금 모시고 집으로 가겠다며 청하였다.

벽암대사는 흔쾌히 승락하며 일영보살(예곤옥)은 자신이 불가에 입문시킨 불제자이니

삿갓선생께서 잘 좀 도와 주시기 바라오 하며 일영보살에게 어서 모시고 가게 한다.

 

이리하여 김삿갓은 대동문 그처에 있는 죽향의 집에 오니 집은 작으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데 벽에 걸린 한폭의 족자에 눈이 멈춘다.

 

   妾身倫落屬娼家 (첩신윤락속창가) 이 몸이 윤락하여 기생이 됐을망정

   願得賢郞送歲華 (원득현랑송세화) 어진 낭군 만나 길이 섬기고 싶었소

   不識郞心磐石固 (불식낭심반석고) 임의 마음 반석처럼 굳지가 못해

   暫時移向別園花 (잠시이향별원화) 오래지 않아 딴 여자로 옮겨 갔구료

 

이 시를 보노라니 과연 죽향의 성품이 어느정도로 갈끔하고

여성다운 풍모인가를 짐작 할수가 있다. 

죽향은 김삿갓을 모셔 오고는 정성을 다하여 술과 음식을 대접 하기를 최고의

수준으로 하면서 거듭 아버지 만날 일을 상의 함에 내일 당장 떠나기로 약속을 하였다.

그러자 죽향은 아버지께 드릴 예물을 사야 한다며 출타를 하고 김삿갓에게 먼저

주무시라며 나가니 쓸쓸한 객고에 허전한 마음 한량 없으나 어쩔수가 없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두사람이 말을 타고 길을 떠나는데 마치 한쌍의 연인이

유람을 다니는 기분이라 김삿갓이 짐짓 죽향에게 백년가약을 맺고

신행(新行)을 가는 기분이라 하니 죽향이 눈을 곱게 흘기며 부끄러워 한다.

산은 첩첩하고 물은 맑은데 어디선가 두견새 울음 소리가 영절스럽게 들려옴에

김삿갓은 즉흥시를 한수 읊는다.

 

   春去無如老客何  (춘거무여노객하)  봄은 갔는데 늙으신 몸 어떠 하실까

   出門時少閉門多  (출문시소폐문다)  방에 앉아 나들이도 안 하셨다니

   杜鵑空有繁華戀  (두견공유번화련)  두견새야 뭐가 그리워 애타게 우느냐

   啼在靑山未落花  (제재청산미락화)  울음 소리에 못다 핀 꽃 떨어질세라

 

김삿갓은 이렇게 예노인을 생각 하며 읊으니 죽향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어 삿갓에게 어서 길을 서둘자고 간청을 했다.

죽향이 감삿갓에게 그 성인주막은 아직 멀었느냐고 물으며 애타게 보고싶은 아버지를

그리는 마음을 시로 지어 보겠노라 하므로 삿갓이 즉석에서 어서 지어보라 권한다.

 

    相思人在山中村  (상사인재산중촌)  간절히 그리운 임은 산속에 계시건만

    消息天涯久未聞  (소식천애구미문)  소식 모르는지 너무도 오래였소

    今日獨涯芳草路  (금일독애방초로)  오늘은 오솔길 밟으며 찾아오건만

    夕陽何處掩柴門  (석양하처암시문)  석양에 사립문 닫힌 집은 어디에 있는고  

 

이렇게 두사람은 시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예노인의 집 성인주막에 다다랐는데

성인주막 이라는 주기가 거꾸로 매달린채 바람에 흩날리고 있고

집이고 근처고 아무런 기척이 없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죽향을 밖에 세워두고 삿갓이 방으로 들어가 보니

아무도 없는데 다만 방 아랫목에 제삿상이 차려져 있고

거긴엔 다음과 같은 지방(紙榜)이 붙어 있는게 아닌가?

 

   顯考學生府君 芮東哲神位    돌아가신 선비 예동철의 신주

 

이 지방을 보고 죽향은 엎드러져 대성통곡을 한다.

그동안 참고 살아온 온갖 서러움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모두가 쏟아져 나오는듯

그녀의 통곡소리는 너무나도 애닮아 듣는이도 함께 울 정도로 섧게 운다.

 

가까스로 죽향을 진정시킨 김삿갓은 그녀에게 그 마을 풍헌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알아 보기로 했다.

풍헌(風憲) 영감을 찾아가자 예노인이 운명 하던날

<곤옥아 너는 애비가 죽어도 찾아올 줄을 모르느냐>고 외치고는 돌아 가셨다 하며

동네 사람들이 집뒤 양지바른 곳에 묻어 묘소를 지었다는 말을 해주는데

죽향이 울면서 거듭거듭 감사의 절을 한다.

 

이어 성인주점 뒷산에 가 보니 예노인의 묘소가 있는지라

죽향이 또 다시 곡하고 예를 다 하였다.

그날밤 삿갓과 죽향은 예노인의 빈집에서 자게 되었다.

 

죽향이 삿갓에게 아버님의 상중(喪中)이라

만부득 선생님을 잠자리로 모실수 없사옵니다.

어찌 김삿갓인들 이런 마당에 그녀를 품어 그 정성을 망가트릴 생각인들 가졌겠는가?

염려 마시게 내 아무리 천하를 주유하는 걸객 이기로서니

자네의 그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

 

그러자 죽향이 결심한듯 이렇게 말한다.

저는 내일중으로 평양으로 올라가 모든걸 청산 하고

이곳에 와서 3년간을 시묘살이를 할것입니다.

그녀의 다짐은 철석 같이 굳어 보였고 때마침 두견새 울음 소리는

처량하게 들려 오고 있었다.

 

다음날 죽향이 평양으로 가는 길에 김삿갓도 함께 동행했다.

이제 대동강의 아름다운 모습도 엊그제 바라보던 풍류의 강으로 보이질 않았다.

삿갓 선생님 ! 이제 어디로 가시렵니까 ?

어허 ~ 그렇군 평양에 자네가 없는데 내가 무슨 연유로 이곳에 더 있겠는가 ...

이제 자네가 떠나는걸 보고 나면 나도 이곳을 떠나 관서지방으로 갈것이네.

 

드디어 대동강가에 이르러 눈물을 펑펑 쏟는 죽향이 차마 배에 오르지 못하고

삿갓을 바라보며 울먹인다....

선생님 언제 또 뵈오려는지요 ~

소녀 꼭 다시 뵈옵고 모시기를 원하옵니다 ! 하며 시 한수를 읊는다.

 

   大同江上別情人 (대동강상별정인) 대동강에서 정든 님과 헤어지는데

   楊柳千絲未繫人 (양류천사미계인) 천만가닥 실버들도 잡아 매지 못하오

   含淚眼看含淚眼 (함루안간함루안) 눈물어린 눈으로 눈물 젖은 눈 바라보니

   斷腸人對斷腸人 (단장인데단장인) 님도 애가 타는가 나도 애가 끊기오!

 

그야말로 간장이 녹아 내리는듯 한 죽향의 시를 들으니

어찌 김삿갓이 화답을 않겠는가...

도도히 넘실대는 대동강을 바라보고 한수 읊기를

 

    翠禽暖戱對沈浮 (취금난희대심부) 푸른 새는 강물에 정답게 노닐어

    晴景欄珊也未收 (청경난산야미수) 난간에서 바라보니 풍경은 아름답건만

    人遠曼愁山北立 (인원만수산북립) 임 보내는 시름 북쪽 산에 어리고     

    路長惟見水東流 (로장유견수동류) 멀리 떠나는 길에 강물은 동으로 흐르네.

 

    垂楊多在鶯啼驛 (수양다재앵제역) 꾀꼴새는 버드나무 숲에서 울어 대고

    芳草無邊客倚樓 (방초무변객의루) 나는 다락에 기대어 풀밭만 바라 보노라

    召長送君自崖返 (초창송군자애반) 그대 보내고 나 홀로 언덕에 남으면

    那堪落月下汀州 (나감낙월하정주) 달이 질때 설움을 어이 달래리

                  

이렇듯 애타는 마음을 표현한 시를 읊으니

죽향은 소매로 얼굴을 감싸고 울면서 마치 오래도록

부부로 살아오다 헤어지는 연인들 처럼 차마 떨어지질 못한다.

 

선생님 이제 어디로 가시옵니까?

내야 정처 없이 떠도는 몸 이제 헤어지면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걸세...

어서 배에 오르게나 ....

죽향은 설움이 북바처 올라 입술을 지긋이 깨물며 이별의 시를 읊조리는데

그 모습이 불쌍 하면서도 고혹적이다.

 

   去去平安去  (거거평안거)  부디 평안히 가시옵소서

   長長萬里多  (장장만리다)  끝없이 머나먼 만리길

   江天無月夜  (강천무월야)  하늘에 달 없는 밤이면

   孤叫雁聲何  (고규안성하)  외기러기 슬피 울으오리다!

   

이 시 속의 외로운 기러기는 물론 죽향 자신을 말함이다.

눈물로 얼룩진  그녀... 단 한번도 잠자리를 한적도 없건만

이미 그녀의 마음에 김삿갓은 남이 아니었다.

언제고 다시 만나면 평생을 모시며 섬길 어른이라 여기며

가슴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어 사랑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삿갓에게 건넨다.

 

돈이었다.

아니 되네 ~ 자네가 더 어렵지 아니한가 ~

이 험한 세상을 여인네가 홀로 살자면 ...

아니옵니다 ~  선생님...  당장 오늘밤은 어느집에 무슨 끼니로 ...

목이 메인 어조로 애원하는 죽향의 어여쁜 마음을 더이상 뿌리치지 못하고

허리춤에 받아 넣는 김삿갓 ....

 

더 이상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 볼수없어 울면서 돌아 서야만 했다.

죽향아 ! 부디 잘 가거라 ! 오늘의 우리들 이별은 처음이요 마지막이니라 !

 

죽향이 오른 나룻배도 떠나가고 정처없는 나그네 김삿갓은

소리없는 눈물을 훔치며 관서지방을 향하여 떠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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