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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유토리 교육
일본은 1976년 중앙교육심의회가 ‘유토리 교육’을 처음으로 제창한 후 교과 내용과 수업시간을 점차 줄여왔으며, 그 흐름에 따라 2002년부터는 초중고에 주5일제 수업을 전면 도입하였다. ‘유토리 교육’이란 학생들에게 ‘여유 있는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정서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1970∼80년대의 지나친 경쟁과 주입식 교육에 대한 반발이 집대성된 교육 노선이라 할 수 있다.
1. 유토리 교육의 개념
‘유토리(여유) 교육’에서의 ‘여유’는 학생, 학교, 가정, 교사, 부모, 사회 전체의 여유를 총괄적으로 나타내는 용어이다. 즉, 지식 주입 교육에서 벗어나 자연체험과 자원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학생의 여유, 슬림화로 대표되는 학교의 여유, 자녀의 교육을 학교에만 맡기지 않고 생활습관이나 윤리관의 육성을 행할 수 있는 부모의 여유, 사회체험 등을 통해서 아동들의 교육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사회의 여유 등 이들을 모두 망라하는 포괄적인 의미이다.
일본 중앙교육심의회는 1996년 제1차 보고서에서 ‘여유’의 필요성과 의미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일본 교육개혁위원회,1996; 남경희,1999 재인용).
“우리들은 살아가는 힘을 길러가기 위하여 학습자에게도, 학교에도, 가정이나 지역사회를 포함한 사회 전체에도 여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학습자들은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살아가는 힘을 기르기는 어렵다. 학습자들에게 여유를 갖게 함으로써 비로소 학습자들은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또 가정이나 지역사회에서 여러 가지 생활체험이나 사회체험을 풍부하게 쌓아가는 것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학습자들이 가정이나 지역사회에서 보내는 시간, 즉 학습자들이 주체적, 자발적으로 사용하는 시간을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할 필요가 있다.”
‘여유 교육’에서의 여유는 단순히 시간적 여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여유나 생각하는 여유가 보다 더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여유 교육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여유는 학습자가 주체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발견하는 시간이나 여유, 생각하는 시간이나 여유가 주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여유가 없는 바쁜 생활 가운데에는 자신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살아가는 힘을 길러가는 것이 곤란하기 때문이다.
둘째, 여유는 학생의 학교생활뿐만이 아니라 가정이나 지역사회 생활에도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여유교육에서는 학습자의 체험 회복이 강조되는데, 이는 가정이나 지역사회 생활에서 여유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셋째, 여유는 학습자들이 자기 스스로의 시간과 활동을 지배하고 자주적,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학습자에게 주어지는 여유가 의미있게 활용되려면 학습자 스스로가 시간과 활동을 지배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주적,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남경희, 1999).
이런 뜻의 ‘여유’는 교육과정의 영역에 국한되었던 초기의 ‘여유’의 의미를 더욱 확장한 것이라 하겠다.
2. 유토리 교육의 흐름
일본에서는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에 걸쳐 청소년들의 심신장애, 이지메, 등교거부 등 각종 병리 현상이 현저하게 증가하여 교육의 황폐화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었다. 일본 교육계는 그 원인을 입시위주의 주입식 교육에 주력하면서 학력을 지나치게 중시한 결과 지적으로는 우수하나 인성에 문제가 있는 인간을 양산하였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에 따라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이전의 학력 중심 교육에서 인간성과 개성을 중시하는 교육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미국의 열린교육(open education)과 영국의 비형식 교육(informal education)을 도입하였다. 개성화를 지향한 교육과정이 구상되고 열린교육이 전국적으로 전개되는 등 교육 전반에 걸쳐 인간화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와 같은 동향이 구체화된 것이 1977년의 학습지도요령의 개정이다. 이 개정에서는 ‘여유와 충실’을 목표로 여유 있는 학교생활을 실현하기 위해 각 교과의 수업시수를 삭감하고, 학교자유재량시간을 신설하여 지역이나 학교의 실태에 맞게 수업시수의 운영에 창의적 변경을 가할 수 있도록 하였다. 초등학교 및 중학교에서는 기초․기본적인 내용을 공통으로 이수하고, 고등학교에서는 다양한 내용을 개인의 능력과 적성에 따라 선택 이수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편성하였다. 이에 의해 전후 처음으로 교과 시간수가 줄어들었으며, 교과 외 교육의 강화를 도모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2002년까지 이어져 ‘여유교육’의 실현 노력이 장기간 지속되었다.
1983년 중앙교육심의회는 일본 교육의 가장 심각한 당면 문제로 비행학생의 증가, 과열된 입시경쟁, 교육의 획일화와 경직성 등 세 가지를 지적하면서 교육개혁의 필요성을 촉구하였다. 나까소네 수상은 1983년 6월 ‘세기를 향해 참된 인간형성을 꾀하기 위하여 교육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수상 자문기관인 ‘문화와 교육에 대한 간담회’를 발족해 입시제도의 개혁, 교육제도의 개혁, 교육의 기본문제 연구를 요청하였으며, 1984년 1월에는 ‘임시교육심의회’를 설치해 ‘제3차 교육개혁’에 박차를 가하였다. 임시교육심의회는 ‘개성의 중시’, ‘생애학습 체계에의 이행’, ‘변화에의 대응’을 기본 원칙으로, 자유화(개성존중), 다양화, 국제화, 정보화의 4개 키워드로 집약되는 개혁안을 내놓았다.
1989년 개정된 학습지도요령에서는 과열된 학력경쟁 개선을 위해 경쟁질서의 재편을 과제로 제기하면서, ‘주체적인 학습체험’을 도모하고 ‘즐거운 학교’ 만들기 및 ‘마음의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체험학습 방식의 ‘생활과’를 신설하였다. 또한 문부성의 교사용 해설서에는 ‘아동중심주의’의 사고를 도입하였다.
1990년대 초반에는 ‘자기교육력’을 강조하는 새로운 학력관(신학력관)’이 제창되어 교육현장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것은 종래의 지식편중형 교육을 개선하기 위해 ‘스스로 학습하는 의욕과 사회의 변화에 주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육성하는 동시에 기초․기본적 내용을 중시하고, 개성을 살리는 교육을 충실히 하는 것’을 뜻한다. 이를 위해 교사는 주입식 지도자가 아니라 아이들이 학습하는 데 있어 ‘지원자’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으며, 아이들의 주체적인 학습을 촉진하는 체험학습, 테마학습 등이 전국적으로 장려되었다. 학습성과 평가도 이전의 상대평가 대신 ‘관심, 의욕, 태도’라고 하는 관점별 절대평가를 채택하였다(이지원, 2004).
1995년 4월 발족된 제15기 중앙교육심의회는 1996년 7월 1차 보고서에서 ‘여유 속에서 살아가는 힘의 육성’을 기본 방향으로 정하고, ‘교육 내용의 엄선’, ‘학교의 슬림화와 가정․ 지역사회에서의 교육 충실’, ‘21세기 초 학교 주5일제 완전 실시’, ‘횡단적․종합학습 신설’ 등을 제언하였다. ‘횡단적․종합학습’은 1998년 7월 교육과정심의회에서 ‘총합학습시간’으로 명명되고 그해 12월 개정된 학습지도요령에 포함됨으로써 일본 여유교육의 상징적 개념이 되었다. 개정된 학습지도요령(신학습지도요령)은 2002년부터 실시될 완전 학교 주5일제 하에서 여유 있고 특색 있는 교육을 전개해 아이들에게 풍부한 인간성과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 기본 방침은 첫째, 풍부한 인간성과 사회성, 국제 사회의 일본인으로서의 자각 육성, 둘째,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 육성, 셋째, 여유교육을 전개하는 가운데 기초․기본을 확실히 하고 개성 살린 교육 충실, 넷째, 각 학교가 노력하여 특색 있는 교육, 특색 있는 학교 만들기 추진, 등이었다. 구체적 방안은 교육내용의 엄선, 수업시수의 삭감, 선택학습의 폭 확대, 총합학습시간의 신설, 도덕교육의 충실, 국제화에 대응하는 외국어 교육 강화, 정보화의 대응, 체육․건강교육 강화 등 총 8 가지였다. 그중 총합학습시간은 이제까지의 획일적인 학교수업을 바꿔, 각 교과에서 얻은 다양한 지식을 종합적으로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공부하는 법과 필요한 자료를 조사하는 법을 익혀 스스로 과제를 선정하고 풀어가는 학습과 미래를 헤쳐 나가는 법을 생각하는 시간이다. 초등학교에서는 3학년 이상부터 주당 3시간 정도, 중학교에서는 주당 2 시간 정도, 고등학교에서는 졸업까지 3∼6단위가 총합학습시간으로 배당되었다.
1999년부터 3년간은 학교 주5일제의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 ‘전국아동플랜’을 긴급과제로 추진하였으며, 이후 신아동플랜이 이를 계승하였다. 신아동플랜은 학교 주5일제 실시를 위해 지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환경 정비를 목적으로, 관계부처의 협력을 통해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체험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시책이다(김지은, 2008).
2001년 1월에는 문부과학성이 ‘교육개혁 국민회의’의 교육개혁 권고안을 수용하여 소위 ‘레인보우플랜’이라 칭하는 ‘21세기 교육신생플랜’을 발표하였는데, 목표는 확실한 학력과 풍부한 마음의 육성, 즐겁고 안심할 수 있는 학습 환경의 정비, 신뢰받는 학교 만들기, 봉사활동과 체험활동의 추진, 세계 수준의 대학 만들기 등이었다.
2002부터는 완전 학교 주5일제가 실시되었으며, 주 2시간의 수업 시간과 30% 정도의 교육내용이 삭감되었다. 초등학교에서는 주요 4과목(국어,산수,과학,사회)의 수업시간이 이전과 비교했을 때 년 1000시간 감소하였고, 중학교의 주 5과목(초등 주요 4과목 + 영어)은 675시간이 감소되었다. 시간 수와 함께 교과내용도 상당히 삭감되었기 때문에 이전과 비교해보면 교과내용이 40% 정도 줄어들었다(김지은,2008). 이에 대해 문부과학성은 ‘신학습지도요령에서 대폭 수업내용을 삭감하고 여유를 가지고 학습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 수업내용을 이해 못하는 학생의 수가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학력이 향상된다’는 입장을 밝혔다(김지은, 2008).
2004년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3 고교 1학년(15세)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에서 일본은 2000년 평가에서 8위였던 ‘독해력’이 14위로, 1위였던 ‘수학적 응용력’이 6위로 떨어져, ‘여유 교육’을 표방한 주5일제 수업과 교과과정의 난이도 하향조정 등이 학력저하를 불러왔다는 논란이 일었다.
2005년 1월 문부과학상은 국어,수학,사회,과학 등 기본 과목의 수업 시간 확보를 과제로 대대적인 교육과정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주5일제 수업은 토요일에 수업을 절대로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며 학교 재량에 따라 토요 수업 부활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으며, 그간 주로 체험학습으로 이루어진 총합학습 시간을 주요 교과 수업에 할애하도록 권장하였다. 또한 학생들에게 경쟁의식을 심어 주기 위해, 학교 서열화를 이유로 40년 전 폐지됐던 전국 학력 테스트를 2007년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다시 도입하기로 하였다.
2006년부터 문부과학성은 ‘확실한 학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학력향상액션플랜’을 실시하였다. 이것은 첫째, 확고한 기초․기본, 둘째, 사고력, 표현력, 문제해결력, 셋째, 평생에 걸쳐 계속 배우려고 하는 의욕, 넷째, 자신 있는 분야의 신장, 다섯째, 왕성한 지적 호기심, 탐구심 등을 키우는 것을 목적으로, 학생들의 학력 향상 뿐 아니라 교원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제도를 포함하고 있다.
2006년 12월, 새로운 교육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하여 12월 22일 공시․시행되었다. 개정된 교육기본법에서는 일본의 교육이 개인의 존엄성, 진리와 정의의 추구와 함께 공공정신을 존중하고 인간성과 창조성을 지닌 인간을 육성하며 전통을 계승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으나, 이전에 비해 현저히 국가를 중시하고 애국심 교육을 강조하여 일본 안의 진보권과 주변국에서는 군국주의의 기반이 됐던 메이지 일왕의 ‘교육칙어’를 되살리려는 것으로 우려하였다(한겨레신문, 2007. 1.13.).
2008년 문부과학성은 학습지도요령을 개정하여 30여 년만에 수업 시수를 늘림으로써 이제까지의 ‘여유 교육’ 노선을 전환하였다. 초․중학교의 국어,수학,과학 시수는 증가하였고, 총합학습시간은 주 1시간 정도 감소하였다. 이는 PISA 조사에서 초기 상위권이었던 독해력, 수학적 능력, 과학적 능력이 2003년 저조한 순위를 기록한 것에 대한 대응으로, 여유교육에 대한 반발의 근원이 PISA 성적이었던 만큼 개정된 지도요령에서는 이 과목들의 수업시수를 크게 늘린 것이다.
이처럼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중기까지 30년 가까이 지속된 일본의 유토리 교육 개혁은 단순히 국가의 필요와 요구에 수동적으로 따르고 맞추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더 근본적으로 이상적인 공교육을 실현하겠다는 의지에 의해 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유토리 교육 개혁의 핵심이 교과 내용과 수업 시간을 줄임으로써 입시경쟁에 시달리는 학생들에게 여유를 주고 기초와 기본을 확실히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1998년 개정된 학습지도요령도 단지 사회의 주5일 근무제에 대응하여 학교도 주5일제를 시행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학생들의 학습 의욕에 깊숙이 파고들어가고자 하는 시도로서, ‘여유 있는 가운데 살아가는 힘’을 목표로 ‘풍요로운 인간성’을 갖추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교육 목적 역시 이전 교육에는 개인 외부의 것, 즉 지위나 부, 명예를 위한 측면이 컸으나 여유 교육에서는 무엇보다도 개인의 자아실현이라는 측면이 부각되었다. 이러한 논리의 기초에는 종래의 교육은, 입시 위주 = 주입식 = 경쟁적 = 획일적 교육이라는 80년대 초 임시교육심의회 이래의 견해가 지배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이지원, 2004). 따라서 적어도 2000년대 초기까지의 일본의 교육개혁은 교육의 외재적, 수단적 기능보다는 학생 각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면서 여유와 자유 속에서 자아를 실현하게 하는 교육의 본래적 목적에 더 충실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이후 애초 유토리 교육의 구상과는 달리 학력 저하 및 학습 의욕의 저하 등이 지적되면서 교육개혁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2003년 PISA의 발표에 의해 일본의 학력 저하가 드러나면서 결국은 2008년 유토리 교육의 폐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실제로는 단순히 학력 저하 때문이라기보다 유토리 교육에 대해 불만이 있으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국가주의 신보수집단이 PISA의 발표를 계기로 반전을 시작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한용진, 박은미, 2007).
미국의 인성교육(문용린,1995.철학과 현실 2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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