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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형제, 자매님들에게 혹시나 참고가 될 것같아 세계의 유명한 성당들의 사진과 기행문을 올립니다.
저희가 여행을 좋아해 유럽의 여기 저기를 유목민처럼 다녔는데 그 중에서 특히 성당이 많았습니다.
그때 여러 성당을 두루 다녀서 아마도 하느님이 저희를 부르신 것같습니다. 그냥 재미있게 보시고 하느님의 은총을 느끼신다면 더 없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대 로마의 중심이 포로 로마노와 그 주변이라면, 기독교가 지배했던 중세 세계의 중심은 산 피에트로(San Pietro) 대성당을 비롯한 바티칸이다. 예수의 12사도 중 수석사도인 피에트로가 순교한 자리에 세운 성당이기 때문이다. 원래는 로마의 공동묘지였던 곳이다. 피에트로가 순교하여 그 곳에 묻히고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 묘위에 교회를 설립하면서 성스러운 장소가 되었다. 그 뒤 16세기에 이르러 여러 차례에 걸쳐 재건되어 지금의 모습으로 조성된 것이다. 마지막에는 미켈란젤로가 그 일을 맡았지만 나이가 너무 많아 그의 사후에 다른 사람에 의해 완성되었다 한다. 중세에는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절대권위를 상징하는 ‘하나님의 대리자’ 교황이 거주했으며, 지금도 가톨릭의 총본산으로 자리한 곳이다.
하지만 이곳보다 더 볼만한 곳이 바티칸 미술관이다. 로마에 가면 반드시 하루 온종일 날을 잡아 바티칸을 둘러보아야 한다. 엄청난 미술품을 소장한 바티칸 미술관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다. 우선 아침 일찍 미술관으로 가서 줄을 서야 하는데 적어도 8시 이전에는 도착해야 한다. 그리고서도 1~2시간 기다리는 것은 예사다. 지하철 A선 치프로(Cipro)역에 가면 이른 아침부터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바티칸 미술관에 일찍 줄을 서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다. 그 사람들을 따라 같이 뛰면 된다. 안내 가이드를 미리 섭외하면 표를 끊어놓기에 기다리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좋은 것을 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면 된다. 다른 방법은 없다. 오로지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 그 것만이 ‘천국의 입구’인 바티칸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도 아침 일찍 일어나 치프로 역에서 달리기를 해야 했다. 8시 전에 갔지만 그래도 줄은 바티칸 성벽을 돌아 있었다. 그 정도면 2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점심으로 먹을 빵과 물도 미리 준비했다. 사실 바티칸 미술관을 온종일 보기 위해서는 물과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식당이 붐비고 게다가 마땅하게 먹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빵이나 샌드위치를 사가지고 거대한 솔방울이 장식된 피냐 정원의 벤치에 앉아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면서 느긋하게 점심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바티칸 미술관은 역대 교황들이 수집했던 수많은 미술품들이 즐비한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과 시스티나 예배당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대작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다. <아테네 학당>은 하늘(이상)을 가리키는 플라톤과 땅(현실)을 지시하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당시의 수많은 철학자와 과학자가 등장한다. 수많은 인물들이 번잡스럽지 않고 웅장한 건물의 구도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어 안정감을 준다.
그런데 가톨릭의 총본산에서 그리스 철학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니? 당연히 신성을 중시하는 교황청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여기에는 인간의 이성을 존중하는 르네상스의 정신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파엘로는 그리스 철학자들을 등장시켜 바티칸의 한가운데서 신의 영광이 아닌 인간의 이성의 위대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 르네상스 정신은 저 유명한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와 벽화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다. 사실 이 그림만 보더라도 바티칸에 온 보람은 충분히 있다. 게다가 아침 일찍 서둘러 몇 시간씩 기다리며 갖은 고생을 하고 들어왔더라도 이 그림을 보는 순간 그 불만은 눈 녹듯이 사라진다. 정말 감동, 그 자체다. 시스티나 예배당에 들어오는 순간 이 그림은 사람들을 압도한다. ‘원본의 아우라’가 무엇인지를 진정 느낄 수 있다. 작은 화집의 도판으로는 느낄 수 없는 살아있는 그림의 생동감이 느껴진다. 방에 들어서면 빼곡하게 서있는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쳐들고 천장과 벽면을 주시하고 있다. 여기서 적어도 30분 이상은 느긋하게 그림을 감상하면서 보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건 그 위대한 그림에 대한 모독이다.
천장화의 중앙에는 비스듬하게 기대어 막 잠에서 깨어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아담과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신의 형상이 그려진 그 유명한 <아담의 창조>가 있다. 1508년에 그리기 시작하여 무려 12년이나 걸려 완성된 작품이다. 그런데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아담에게 배꼽이 선명하다. 배꼽은 생물학적으로 어머니의 태반을 통해 나왔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들었다.”는 창조론에 대한 도전인 셈이다. 미켈란젤로는 이른바 '인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그린 것이지만 이 그림을 처음으로 본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신성모독'이라 하여 사람들이 그림을 보지 못하도록 덮어두었다 한다. 그래서 그 위대한 그림은 상당 기간 유폐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미켈란젤로의 반역은 이것뿐이 아니다. <아담의 창조> 주위에는 구약시대의 예언자와 페르시아, 구마, 델포이, 에리트레아 등 이방인 무녀들이 등장하는 ‘신성모독’의 그림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적어도 태초에는 정통과 이단, 중심과 주변, 유대와 이방이 나눠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 그림을 자세히 보노라면 기독교와 이슬람 세계가 구별되지 않는 코스모폴리탄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가장 압권은 중앙 제단 위에 있는 <최후의 심판>이다. 미켈란젤로가 66세 되던 1541년에야 완성된 그림이다. 그러기에 인생의 말년에 느끼는 신과 인간, 종교와 예술, 성과 속, 천국과 지옥, 죄와 벌 등 인간사에 대한 모든 생각들이 그 속에 녹아있다. 그림의 중앙에는 회오리를 일으키는 젊고 카리스마 넘치는 예수가 위치하고 있다.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처럼 죄 많은 인간들을 위해 고뇌하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심판자로서의 당당함과 위엄이 모두를 압도한다. ‘인간의 아들’ 예수가 아니라 신으로서 이들을 심판하기에 그럴 것이리라. 심지어는 성모조차도 수줍은 여인처럼 예수의 등 뒤에서 다소곳이 죄 많은 인간들을 내려다볼 뿐이다.
예수와 성모의 주변에 이른바 성인들이 위치하고 있는데 대부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다. 게다가 성인으로서의 위엄과 권위는 보이지 않고 모두 고뇌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 범속한 인간의 모습 그대로다. 그 이전의 어떤 그림에서도 볼 수 없었던 특이한 형상이다. 아마도 미켈란젤로는 신 앞에 인간은 죄의 경중은 있을지언정 모두가 죄 많은 인간들임을 보이고자 했을 것이다. 그래서 위대한 성인들도 모두 벌거벗겨 두려움에 떨도록 하지 않았던가. 자기 자신도 로마도 수호성인인 바르톨로메오가 살가죽을 벗겨 들고 있도록 그렸다.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살갗을 벗김으로써 죄 씻김을 바라는 간절한 소망에서일 것이다.
이 <최후의 심판>은 상당히 디스토피아적인데 미켈란젤로는 이를 통해서도 신성이 아닌 인간성, 그 죄 많은 인간들의 고뇌하는 모습들을 솔직하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 예수조차도 젊고 건장한 모습으로 그렸으며 성인들은 그대로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젊은 시절의 미켈란젤로가 힘차게 약동하는 젊은 육신을 주로 표현했다면 말년에는 죄 많은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그림으로써 한 없이 나약한 인간성을 부각시켰던 것이다. 여기에는 자신도 예외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의 몰골을 가장 추악한 모습으로 그림으로써 자기비판을 감행하고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린 조카들이 그림에는 관심이 없고 몸을 비비꼬며 지겨워하는 것이 아닌가. 그도 그럴 것이 하루 온종일 바티칸 미술관을 돌아다녔으니 게임이나 하고 뛰어놀던 초등학생들로는 여간 고역이 아닌 셈이다. 우리는 그 꼬마 조카들 때문에 신경이 거슬렸지만 집사람은 지겨워하는 조카들에게 일일이 그림 설명까지 해주며 데리고 다녔다. 언젠가 예술적 감성이 드러나리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그래, 이 아이들은 지금은 지겨워 하지만 이모가 얼마나 큰 선물을 자신들에게 주었는지 언젠가 환기할 날이 있을 것이다.
시스티나 예배당을 나서면 산 피에트로 대성당으로 이어진다. 세계 가톨릭의 총본산으로 모든 성당의 모델이 됐던 곳이다. 둥근 돔과 긴 회랑은 로마네스크라는 하나의 양식을 만들었다. 그래서 세계의 주요 성당들은 이 성당을 본떠 돔의 형태로 지었고, 중앙 성당을 뜻하는 이름도 돔(Dome) 혹은 둠(Dum)이나 두오모(Duomo)라 불렀다. 그래서 산 피에트로 성당의 바닥에는 전 세계 대성당의 넓이를 나타내는 표지석이 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그 장엄하고 화려한 분위기는 정말 천국을 방불케 하는데 위대한 조각가 베르니니가 청동으로 만든 닫집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다. 닫집은 말하자면 무덤의 덮개인 셈인데 여기가 바로 피에트로가 묻힌 곳이다. 담장이 덩굴이 휘감긴 바로크 양식의 청동 기둥이 화려하면서도 힘찬 약동감을 주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성당의 벽면은 마치 천을 씌어놓은 것 같은 섬세한 대리석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는데 그 중 백미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이다.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비탄에 잠긴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놀라울 만큼 섬세하게 조각되어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다. 아들의 죽음을 대하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떨까?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가장 슬픈 일이 바로 자식의 죽음이라 한다. 그래서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극한의 고통을 이 <피에타>는 핍진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피에타>는 가슴 뭉클함을 넘어서, 너무 아름다워 무서운 작품이다. 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훼손되어 지금은 방탄유리로 보호되고 있어 이제는 그 생동감을 가까이서 감상하기는 어렵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당시 고등학생이던 아들이 이곳의 아름다운 조각들을 보고는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라면 신앙을 가지고 성당에 다니겠다.”고 하여 웃은 적이 있다. 그렇다. 예술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켜 신성한 곳으로 인도하지 않겠는가. 바티칸 성당이 바로 그런 곳이다.
성당의 꼭대기 큐폴라에 올라서면 성당과 바티칸 시가지가 한 눈에 시원스레 내려다보인다. 그 모양이 산 피에트로 대성당을 중심으로 하여 베드로의 문장인 열쇠 모양을 하고 있다. 예수가 그 수제자인 피에트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이곳이 바로 천국으로 들어가는 열쇠인 셈이다. 그 끝에는 아름다운 천사의 성, 산탄젤로(Sant' Angelo) 성이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교황의 거처에서 요새로, 감옥으로, 그 용도가 다양하게 변했는데, 그곳에서 산 피에트로 대성당까지 지하 비밀통로로 연결된다고 한다. 영화 <천사와 악마>에서 그 산탄젤로 성의 지하통로를 무대로 천사와 악마의 대결이 긴박하게 펼쳐져 그 사실을 화면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카페를 운영하시느라 번다하고 힘드실 텐데 이렇게 댓글까지 달아주셔서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유럽에서 저희 부부가 1년 살면서 많은 나라의 많은 성당을 다녔고 그때 느낀 것이 많아 이렇게 사진과 글을 올리게 됐습니다. 괜히 눈을 피곤하게 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