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7일
이제는 해발 고도가 낮아 그런지 그런대로 잠을 잘 수 있었다. 아침 08;30분 산티아고에서 ‘발파라이소’ 시티 투어를 위해 12명이 버스를 대절하여 출발하였다. 산티아고 시내를 벗어나니 포도밭이 많이 보인다. 기사가 와이너리 투어를 할거냐고 묻기에 다들 좋다고 하여 와이너리에 들어간다.
전부 포도밭이고 넓이가 엄청나다.

포도원 입구.

‘베라몬테’ 포도원에 들어가니 포도밭 넓이가 상당히 크다. 이 베라몬테 포도원은 이곳 말고도 칠레에 다른 포도원이 있고, 미국 나파벨리에도 포도원을 운영하고 있는 상당히 큰 와이너리에 속한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프리미엄급 와인 ‘프리무스’ 2007년산 한병을 구입하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들어간 곳은 포도원과 와인 판매장을 본 것이다.
포도원에는 포도가 달려 있었고 포도 송이가 내가 생각 했던것 보다는 적게 달려있고 크기도 작았다.

포도 송이가 적은것은 아마도 포도송이를 쏙아서 품질을 높일려고 한게 아닐까.

베라몬테 와이너리 전시장 입구 모습.

이곳에 들어가면서 입장료가 없었기에 시음은 당연 없었고 판매만 하는 것 같다.

구입하자마자 포장을 뜯고 시음 할려다 돈을 지불(12,500페소)하니 뜯지 않은 새것으로 줄려는 걸 아니라고 이것을 달랬다.

포도밭 면적이 넓어 다른 와이너리도 많았다.

발파라이소는 항구 도시로 우리로 치면 인천항에 비교될 수 있는 항구 도시다. 예전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기 전에는 남아메리카의 관문 역할을 한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등 다양한 민족들이 자기 나라의 양식으로 도시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다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고 부터는 서서히 쇠락하는 도시로 가고 있었다고 한다.
오전인데도 시장에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시내에 있는 대형 조형물.

전차도 보이고.

그러니까 우리가 처음 버스에서 내린 광장에서 조금 이동, 언덕으로 올라가기 위해 ‘아센쏘르(야외 엘리베이터) 콘셉시온’(지명)이 발파라이소에서 처음으로 도시를 살리기 위해 거리에 벽화를 그린 지역이란다. 1969년 가톨릭 대학 미대 학생들이 콘셉시온 지역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버스에서 내려 둘러본 광장.

마차도 보였다.

소매치기가 많다고 하니 배낭도 앞으로 메었다.

콘셉시온에 있는 아센쏘르 레일.

콘셉시온에 있는 벽화.

다양한 벽화.

그러면서 시작된 벽화운동이 발파라이소 전 지역으로 확산되고, 1990년 명망있는 작가들이 나서면서 많은 지역에 벽화를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무지한 여행자인 내가 이런 사실을 모르고 보았지만, 그림들이 예사롭지 않다고 보았다. 그러다 시대가 변했는지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가 갔을때, 벽화가 너무 난잡해 벽화를 지우자는 그룹들이 시위하는 모습을 보았다.
낚서를 지우자고 켐페인 하는 시위대들.

지우자는 그룹의 세력이 상당한 듯, 방송국에서 취재를 하고 시위대들은 하얀 방제복을 입고 벽화를 지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행자들이 발파라이소의 벽화와 낚서를 보러 오는데, 반대론자들로 보면 아름다움으로 보는게 아니라, 낚서로 볼수도 있을 것이다. 여행자의 생각으로는 낚서와 아름다운 벽화를 잘 구분하여 슬기롭게 타협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리가 보았던 콘셉시온과 같은 벽화가 그려진 곳이 44곳이라고 한다. 벽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발파라이소 벽화가 지워지기 전에 한번 가보기 바란다. 발파라이소에 보듯이 사람 사는 곳에는 의례히 갈등에 있기 마련이고, 갈등이 있는 곳에 조정 역할을 할 수 있는 집단이 정치인들이다. 어느 나라나 정치인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현실이 문제지만.
아센쏘르를 타고 언덕을 오른다. 이런 아센쏘르가 시내에 15군데가 있다고 한다. 아센쏘르의 역사가 100년이 넘었다고 한다. 아센쏘르를 타고 올라가면 항구와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와 발파라이소 조망하기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발파라이소는 항구 근처와 달동내가 펼쳐저 있고 멀리 도시속의 도시인 ‘비나 델 마르’ 도 조망할 수 있다.
아센쏘를 타고 올라간 콘셉시온 언덕위에서 본 발파라이소 모습.

아마도 서민들은 달동네에 사는 듯.

항구에 해군 배도 보인다.

차로 골목을 이리저리 들어가 바닷가에 있는 재미있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간판이나 집들이 깔끔하고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팔고 있는 언덕위의 멋진 곳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점심 먹으러 레스토랑에 들어가 식사를 하면서 와이너리에서 구입한 프리무스를 꺼내 시음을 하였다. 역시 좋은 와인은 어는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발란스가 좋은 것 같다.
이 언덕위에는 레스토랑과 까페가 보이고 예술가들이 그림을 팔고 그리는 장소로 유명한듯.

레스토랑이 깔끔하다.

이 레스토랑이 아센쏘르가 만들어진 년도(1883년)와 같은 모양.

이런 모습은 유럽 사람들의 영향이 아닐까.

이런 레스토랑에 들어가면 음식도 맛이 있을 듯.

음식을 주문하기 전, 우리가 갖고간 와인을 마시기로 미리 양해를 구했다.

이런 음식도 있다고 자랑 할려는 듯 보여주고는 갖고 가버린 맛있어 보이는 음식.

좋은 와인은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음식과 함께 하는게 예의가 아닐까.

큼지막한 생선살 요리.

와인 몇병과 함께 만찬이였다.

식사를 끝내고 비나 델 마르로 가서 비치도 보고 시가지를 둘러보고 바닷가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가 보았다. 발파라이소 시티 투어를 끝내고 산티아고 돌아와 아르마스 광장에 들렀다가 걸어서 중앙시장에 들러보고 길 건너편 현대식 건물로 된 시장에 들러 보았다. 이곳에서도 카메라를 꺼내 있으니 경고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카메라를 가방에 넣었다.
도시속의 또 다른 도시 비나 델 마르의 꽃 시계.

고산 증세가 없고 와인과 맛나는 음식을 먹으니 생기가 돈다.

비나 델 마르 거리 풍경.

비나 델 마르에는 산티아고 부자들의 휴양지라 달동네와 차원이 다르게 보였다.

해변가 거리 풍경.

해변가 레스토랑안에 와인으로 도배를 해놓은 모습.

부자들이 선호하는 언덕위의 집들, 지금도 공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추세고 빈부의 격차는 점점 심해지고 있는 모습을 발파라이소에서 극명하게 볼수있다.

이스터 섬에서 가져온 모아이 상.(500년전 만들어 졌다고 함)

산티아고 아르마스 광장.

산티아고 중앙 시장.

처음 들어간 시장 건너편에 독특하게 지어진 건물도 시장이였다.

시장 내부 모습.

밤에 버스속에서 먹을 과일도 구입하고.

시장에서 걸어 한국식당 ‘대장금’에 가서 4명이 삼겹살과 해물탕 소주 2병을 겻 들여 마시니 너무너무 행복하다. 이곳 대장금 음식은 서비스와 반찬과 음식 모두 좋았다. 오랜만에 익숙한 음식을 먹었더니, 힘이 쏫아나는 거 같다. 장기 여행자가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면 후반부에 체력이 고갈되어 힘들게 보내기 때문이다.
대장금은 한국의 젊은 친구가 운영하고 있었다.

반찬이 부족하다 싶어 더 달라고 하면 얼른 갖다 주었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 죽여 주더이다.

해물탕도 겻 들이고 따끈따끈한 밥에....

호텔에 돌아와 조금 있다가 버스터미널로 택시를 타고 이동하였다. 우리 보다 앞서 타신분들이 택시비 10,000페소를 기사에게 주었더니, 1,000페소를 받았다고 우기고 있었다. 이 수법은 여행자가 많이 당하는 흔한 수법이다. 2분은 택시에서 내리지 않고, 우리도 합류 경찰을 부른다고 난리를 치면서 욕을 하는데도 꿋꿋하게 버티다 5,000페소만 준다.
우리가 지급한 택시비는 3,000페소였다. 이렇듯 남미에는 관광객들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돈을 바꿔치기 하고 강도와 소매치기로 인해 다들 긴장해서 다녀야 한다. 특히 여성들만 택시를 탈때는 항상 잔돈을 준비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여행지에서 이런 일을 당하면 나라 이미지와 도시 이미지가 상당히 나빠지는데 안타깝다.
21:10분 산티아고 출발 ‘뿌에르토 몬트’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오늘 우리가 탄 버스는 까마라 1~2번을 배정받았다. 까마도 9석 짜리고 우리 일행이 나머지 7석도 차지해 여유롭게 갈수 있었다. 남미에서 버스로 이동시 까마만 타고 이동할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앞으로 12시간을 가야하기에 이리뒤척 저리뒤척 하면서 긴밤을 보낸다.
마눌은 누우면 잔다, 벼개와 담요도 주지 밥도 주지 까마는 장시간이라도 탈만하다.

첫댓글 재밋게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