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이후 대학생들에겐 모꼬지의 명소로 꼽히는 강촌.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몰려있는 강촌 유원지쪽에서 살짝 떨어진 산자락, 계곡길을 따라 흘러내리는 땅모양위에 부드럽게 올라앉은 이 건물이 있습니다. 서울시립대 수련원입니다.
완만하게 올라가는 경사로 따라 먼저 가로로 길게 뻗은 저 앞 건물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뒤로 자연스런 나무색깔 숙소 건물이 이어집니다.
튀지 않는 색깔, 튀지 않는 모양, 그리고 간결한 디자인이 특징입니다. 아주 최소화한 디자인입니다.
디자인은 언제나 덜어내기 게임입니다. 좋아보이는 것을 모두 섞어버리면 디자인이라고 할 수가 없지요. 좋은 것들 중에서 정말 남겨야할 것만 남기는 것, 그게 디자인입니다.
저 시립대 수련원 건물이 그렇습니다. 아주 간단명료해보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여러가지 재료와 기법이 많이 혼합된 건물입니다. 그럼에도 그리 무언가가 많아보이지 않는 단순함이 느껴집니다. 디자인이 성공적이란 이야깁니다.
우선 집구경부터 하겠습니다. 앞쪽에 가로로 긴 건물은 철판을 붙였군요. 그 뒤 숙소동은 겉을 나무로 꾸며 아늑한 느낌이 먼저 다가옵니다.
앞쪽 강당과 식당 등으로 쓰는 커뮤니티 센터와 뒷쪽 숙소동이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컬러강판으로 마감한 센터 입구와 숙소동 입구가 나무판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숙소동에서 튀어나온 난간부가 나무판 길의 지붕이 되어줍니다.
튀어나온 저 외팔보 난간을 받치고 있는 직선과 사선 기둥이 경쾌합니다. 그냥 직선 기둥으로만 평행하게 배치했으면 아주 단조로웠을 것이 저렇게 펼쳐지는 모양이 되면서 눈길도 끌고 저 난간을 더 가벼워 보이게 합니다.
위쪽으로 올라가 아래쪽을 내려본 모습입니다.
가는 나무 부재를 직선으로 붙인 숙소동 건물이 경사따라 내려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완공된 시립대 강촌 수련원들은 시립대 학생들과 교수, 교직원, 그리고 동문 등이 이용하는 공간입니다. 학생들은 엠티를, 직원들과 동문들은 가족 나들이를 다녀올 수있는 숙박시설입니다.
대학의 수련원은 정말 많은 이들이 이용합니다. 그러나 아주 좋게 짓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상업 숙박시설도 아닌데 고급으로 지을 일은 없지요. 그렇다고 아주 싸게 짓기도 어렵습니다.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을 `배반'하는 수준이 되어선 안되니까요.
그러니까 비용은 그리 많이 책정 안하면서도 점점 높아지는 요즘 취향에 맞춰줘야 하는 그런 건물입니다.
이를 설계하게 될 건축가 처지로 보게 되면 무척 어려운 작업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차라리 비용은 확실하게 책임질테니 정말 좋게 지어라, 도 아니고, 비용이 적으니 수수하게 나와도 상관 않겠다, 도 아닌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 시립대 수련원은 합격점을 받을만한 건물입니다. 알맞은 비용으로 좋은 디자인이 탄생했습니다.
이 크지 않지만 분위기 좋은 건물을 설계한 이는 솔토건축 조남호 소장입니다.
조남호 소장은 국내 건축가 중에서 가장 유명한 목조건축 전문가입니다. 콘크리트 건물 일색인 한국 건축계에서 나무라는 소재를 다뤄온 거의 유일한 유명 건축가입니다.
본인은 자신을 목조건축가로 한정하지 않습니다. 나무만으로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건축을 향해 나아가는데 나무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겠지요.
좌우지간 그는 나무집을 꾸준히 시도해왔고, 그 시도한 작품들은 건축계에서 호평받아왔습니다. 네이버가 꼽은 한국의 건축가들에 들어가기도 했고, 한국 주요건축가들의 작품을 해외에 알린 첫번째 대형 전시회였던 `메가시티' 전에도 포함되었습니다. 목조건축을 시도하는 현대건축가란 희소성 이전에 그의 작품이 그만큼 인정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시립대 수련원은 그의 가장 최신작이라고 하겠습니다. 일단 건물을 좀 더 들여다봅시다.
이 건물을 보면 왼쪽 숙소동은 나무이고 오른쪽 센터는 콘크리트 건물 같지만 둘 다 목조 건물입니다. 센터동에 강판을 씌워 나무가 보이지 않을뿐, 그 뼈대는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목조건물이라고 하면 건물 전체가 나무인 건물, 또는 외부에서 봤을 때 나무가 드러나는 건물이라고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통나무집을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목조건물은 건물 뼈대가 나무이면 목조건물입니다. 건물 안팎의 표면은 꼭 나무로 처리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목조로 집을 짓고, 그 껍데기를 벽돌로 해도 되고, 시멘트 패널을 붙여도 되고, 저렇게 컬러 강판을 붙여도 됩니다.
내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무가 그대로 벽이 되기보다는 도배를 하기도 하고, 또는 다른 마감재로 처리하기도 합니다.
저 오른쪽 센터동의 불빛이 들어온 창문 안쪽으로 나무 기둥들이 보이죠?
목조건물은 나무 기둥이 만들어내는 구조 자체가 아름답습니다. 그 내부를 보시겠습니다.
목조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납니다. 모든 기능적인 것은 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집을 지탱하는 기둥들, 천장과 기둥으로 이어지는 삼각형 모양의 트러스 부분들이 기하학적인 디자인을 절로 만들어냅니다.
때론 강의도 하고, 다같이 놀기도 하고, 행사도 하는 이 센터동은 그 용도에 맞게 공간 내부를 하나로 틔울 수 있도록 내부 구획을 거의 없앴습니다. 물론 미닫이 구조로 공간을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저 안쪽으로 보이는 곳이 식당입니다.
강의와 모임이 가능한 반대쪽 공간입니다. 따듯한 다락방을 연상시키는 나무 천장에 굵은 나무 구조체들이 경쾌하게 튀어나와 있습니다. 저런 부분이 바로 건축가의 디자인이 숨어 있는 곳입니다. 그냥 기능 그대로만 목구조체를 구성하는 듯해도 나름의 디자인을 녹여넣었습니다.
식당과 강의실을 막던 벽을 치우면 이렇게 완전하게 하나로 뚫린 넓은 공간이 펼쳐집니다.
조남호 건축가는 요즘 현대 목조건축의 흐름을 국내에서 보여주는 건축가입니다.
요즘 목조건축은 오로지 나무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을 혼합합니다. 바닥을 콘크리트로 하는 것은 기본이고 구조 자체는 콘크리트로 하면서 벽과 다른 부분을 나무로 하기도 하고, 나무와 철, 나무와 시멘트 등 여러 재료들을 활용해 새로운 느낌의 건물을 만들어냅니다. 일종의 하이브리드 목조건축입니다.
조남호 건축가는 이런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구법(텍토닉)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기둥보 방식과 경골목구조 방식을 공간에 따라 나누고 합치면서 나무로 된 현대건축의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이제 숙소동을 보겠습니다. 1층은 콘크리트 구조입니다. 그 위를 나무로 꾸민 것입니다.
숙소동은 더욱 경제적인 건물입니다. 구조도 단순하고 재료도 간단합니다. 간단해서 미니멀한 느낌이 극대화됩니다.
숙소동 입구이자 1층 부분은 콘크리트 건물 특유의 모습입니다.
넉넉찮은 예산이어서 폼나는 인테리어로 마감하긴 어려웠을 것입니다. 건축가는 형광등을 단 모양 등에 변화를 주어 단조로움을 없애는 위트를 은근하게 구사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계단 공간 구성도 뻔해보이지만 건축가의 내공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일부러 거칠게 콘크리트 굳히는 나무판의 결이 드러나게 마감을 하는 것이야 흔한 것이지만 그 공간감을 풍부하게 하는 비례는 건축가의 솜씨와 직결됩니다.
천장에서 흘러내리는 빛이 표면에 생긴 결을 점점 약해지면서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좋습니다.
가장 싼 규격재 나무로 천장을 마감한 것도 간단하면서도 괜찮은 부분입니다. 노란 빛 나무와 회색빛 콘크리트가 조화로운 대비를 이루고 있고, 그 위에 떨어지는 빛이 시간의 흐름 따라 강약이 바뀌면서 같은 공간인데도 다채로운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건축이란, 언제나 빛으로 만들어내는 공간연출의 예술입니다.
숙소 방은 2가지였는데 정말 단순 간단했습니다. 먼저 좀 작은 방.
하얀 벽과 나무만의 대비로 인테리어 끝. 넉넉치 않을 때는 비우는 것이 방법입니다. 괜히 좋지도 않은 것들을 그러모아 꾸미면 분위기는 촌스러워지는 법입니다. 이것저것 붙이고 싶은 욕심을 버리면 깨끗한 느낌만으로 괜찮은 인테리어가 되는데 그 욕심을 버리기가 쉽지 않지요. 어차피 학교 수련원인데 제대로 꾸미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그래서 아예 과감하게 모든 것을 덜어냈습니다.
좀 더 넓은 방입니다. 천장이 높아 내부에서 복층처럼 구성했습니다. 술먹고 놀 사람은 아래 마루에서 놀고, 일찍 자고 싶은 사람은 올라가서 자면 되겠군요.
시립대 강촌수련원은 그냥 감흥없이 보자면 깔끔한 대학 수련원 건물일 뿐입니다.
그러나 크지 않은 건물임에도 유명 건축가에게 맡긴 점, 그리고 이런 다중이용시설을 친환경 건축인 목조주택으로 시도한 점에서 드문 건물입니다.
조남호 소장이 처음부터 목조건축을 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지금도 대학에서 목조 건축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러니 배우고 싶어도 배울 길이 별로 없습니다. 대학에서 목조를 배우지 않았던 그가 목조주택을 시작한 것은 IMF 외환위기 때문이었습니다.
건축계에도 당시 엄청난 불황이 밀어닥쳤죠. 경기가 추락했는데 건물을 지는 이들이 있을 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경제적인 건물로 위기를 뚫어보려고 그가 공부하고 나선 것이 목조였습니다.
목조를 처음 접한 뒤, 나무의 아름다움과 놀라운 기능성이 그를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가볍고, 콘크리트처럼 굳히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고, 유독물질이 나오지도 않으면서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재료. 그게 나무니까요.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나무로 된 대형 건물들을 시도합니다. 교원그룹 도고연수원, 알즈너 컴플렉스 등이 그의 작품입니다.
이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그가 더욱 원숙해진 디자인과 새로운 시도들을 추구하려 한 건물이 시립대 수련원입니다.
내부 공간을 한옥처럼 용도와 활용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건물이 그가 요즘 관심갖고 시도하는 건축이라고 합니다. 목조 건물은 나무 기둥이 뼈대가 되고 그 기둥과 기둥 사이를 막으면 벽이 됩니다. 이 벽을 자유롭게 채우고 비우는 작업인거죠.
건축가들을 늘 사로잡는 부분은 벽입니다. 벽이란 무엇인가의 문제는 참으로 본질적이면서도 끝이 없는 문제입니다. 이전과 달리 산업재료들이 나와 돌집이나 흙집 나무집에선 할 수 없었던 새로운 디자인의 건물들이 등장하면서 벽도 진화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 건물을 한 번 봅시다. 너무나 유명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입니다.
그런데, 과연 저 건물에서 어디가 벽일까요? 아니, 어디까지가 벽이고 어디까지가 기둥이고, 어디까지가 지붕입니까?
기둥과 벽, 지붕과 기둥, 벽과 지붕의 경계와 개념은 변하고 사라지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중입니다. 건축가들에게 벽이란 늘 끝없는 탐구의 대상이었습니다.
벽이 자라나 위에서 옆으로 뻗으면 지붕인 것인지, 거꾸로 지붕에서 아래로 기둥이 내려오는 것인지...아니면 둘 다 아닌 것인지. 벽이란 도대체 뭘까요?
벽은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추상적이고 철학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건축이란 그래서 어렵습니다.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건축가가 진정 훌륭한 건축가일 것입니다.
조남호 건축가는 다른 건축가들보다 이런 본질적 질문을 좀더 많이 던지는 건축가 같습니다.
그의 건축이 사람 눈길을 확 휘어잡거나 놀라운 파격과 디자인을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눈길이 갑니다.
사족이겠지만 외국 유학파들이 득시글 거리는 한국 건축계에서 홀로 성장한 토종 건축가, 늘 꿋꿋이 자기 작업을 하는 건축가, 대형 설계법인에서 시작해 오히려 작은 아틀리에로 간 건축가란 점도 개인적으론 흥미롭습니다.
늘 새로운 공간을 꿈꾸면서 집을 `디자인한다'는 것 이전의 `만든다'는 문제를 더 고민하는 그가 새로운 공간으로 새로운 목조건축을 만들어나가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