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흥길 2 길 : 천보산 길(역사 인물 이야기를 찾아가는 길)
경기옛길 가이드북 경흥길에서 “천보산은 하늘 아래 가장 보배로운 산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 토박이는 빽빽산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는 일전에 큰 큰 화재로 나무가 없어서 빡빡머리 같다하여 붙여졌더고 합니다.
천보산에는 조선 선조의 후궁인 정빈 민씨를 비롯해서 인성군, 화룡군, 화창군, 화춘군, 능창군 등 왕손들의 묘가 곳곳에 있습니다. 특히 의순공주의 한맻힌 이야기는 우리를 안타깝게 하기도 합니다.
천보산길은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산재된 길입니다. 숨겨진 이야기를 찾으며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 걸어온 길이 새롭게 보이는 길이기도 합니다. ” 라고 적고 있다.
천보산길의 출발지는 의정부역 5번 출구 앞 의정부 관광 안내소 이다. 이곳에서 의정부역 지하상가 5-1번 출구로 진입하여 계단을 내려서 좌측으로 진행하여 지하상가 5-3반 출구로 나오면 ‘행복로’에 이르고
말을타고 활을 쏘는 형싱을한 태조 이성계의 동상이 눈에 띤다. 경흥길이 함경도 지방으로 가는 길이고 함경도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연를 지닌 이성계의 동상에서 불현 듯 함흥차사의 고사가 스쳐 지나간다.
행복로에는 남녀가 하나가 되는 입맞춤을 하는 조각상이 있고, 중년 부부상, 어린 시절의 말타기를 하는 조형물 등을 설치하여 놓았다. 자연과 예술 그리고 인간의 삶이 숨쉬는 공간을 걷다가 행복로가 다하는 지점에 이르면(경전철 고가 도로가 놓여 있음) 경흥길은 우측으로 방향을 바꾼다.
곧바로 횡단보도가 있고 그곳에 축석고개 3거리 9.44km를 알리는 표지목이 세워져 있디. 횡단보도를 건너 좌측의 보도 블록길로 진행한다. 의정부 시내를 걸어간다. 중앙에는 자동차가 빠르게 달리고 좌, 우에는 상가가 들어서있다. 이 띵의 어디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도시의 모습이다.
다소 반잡한 우리의 일상인 공간에서 자동차 소리를 들으며 진행하여 양주교에 이르니 양지공원을 알리는 돌비석1(0시30분)이 세워져 있고 발아래에 냇물이 흘러간다.
천변으로 내려서 우측으로 진행하여 다리를 건너 부용교에 이른다. 냇물이 많이 흘러가지 않지만 물가에는 믈고기들이 떼를 지어 놀고 있고, 이름모를 키높이 자란풀과 작은 풀들이 반가운듯 온몸을 흔들어 댄다.
이에 질세라 천변에는 음악을 틀어 놓고 걸어가는 사람, 자전거를 신나게 달리는 사람, 홀로 걸어가는 사람도 있고, 두손을 꼬옥 잡고 걸어가는 젊은 청춘 남녀 그리고 중년 부부들의 모습도 눈에 띠었다.
일상의 번잡한 도심속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언제든지 자연속으로 들어가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바로 경흥길이었다. 다소 멀리 철탑이 세워져 있는 천보산이 눈에 띠어 마음이 설레였다.
새말 인도교에 이르니 경흥길은 천변에서 좌측의 계단으로 진입하여 부용천과 아쉬운 직별을한다. 이곳에서 축석3거리까지 8km이다. 그린빌 아파트 107동에 이르러 경흥길은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호국로(43번 국도)에 이른다.
호국로띠라 걸어가면 축석고개 3거리까지 직선으로 손쉽게 갈 수 있는 직선길을 선택하지 않고 무엇 때문에 가파르게 오르고 내리는 험한 산길로 걸어가려하는가 ?
돌고돌아 가는길이 좋고 산길을 걷고 싶어 10리길이 20리길이 되어도 자연의 향기에 파묻히고 싶은 마음 어찌 할거냐 ? 매사를 이렇게 미련하게 살아왔다. 이익이 있더라도 가야할 길아니라면 신념을 버리고 야합하며 따라기지 않았으니 힘이든다고 경흥길을 벗어나서 지름길로 걸어갈 수있겠는가?
호국로에서 사라졌던 천보산이 다시 나티닜디. 천보산은 요술쟁이가 보다. 사라졌다 이내 나타나고, 나타나면 바로 사라지기를 반복하니 보배로운 산이라기보다는 요술 방망이의 산이라고 하야 될 것 같다.
호국로를 건너 꽃동네를 지나 천보산 소림사 입구에 이르렀다. 소림사, 중국 숭산에 있는 소림사가 천보산에도 있다. 소림사는 중국 무술의 본산이지만 중국 선종의 초조인 달마대사가 9년간 면벽 수행으로 유명힌 곳이다.
선禪은 수행자에게 견성見性을 통해 부처(佛)의 경지를 체득하게 하여 주고 범부 중생들에게는 언제, 어디에서나 조연이 아닌 주연이되어 떳떳하고 당당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지혜를 충만하게 하여 주는 위대한 불타의 가르침이다.
이곳에서 현충탑까지 6.2km이다. 천보산 산자락을 자연의 향기를 마시며 걸어가는 길이라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에 더운 날씨에 오르고 내리는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
뜨거운 포장도로의 열기속에서 산길로 접어드니 서늘한 바람이 가슴을 파고 든다. 냉수 한 모금을 마신 것처럼 시원바다. ‘산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바운 바람’ 이란 동요에 더위가 날아간다.
그러나 산길은 오르고 내리는 길이 반복되어 숨을 헐떡이게 하였다. 가는길은 산기슭의 둘레길로 여기었는데 예상을 넘는 가파른 오르막길로 게속되어 지친 몸이되어 되돌아 가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하지만 산은 입산한 사람들을 저버리지 않는다. 포정도로에서 산길로 접어들었을 때 시원한 바람을 선사했듯이 이번에는 계곡물을 흘러내리 주어 가던 걸음을 멈추고 손을 씻었다.
계곡물에 손을 씻으니 새로운 힘이 솟는다. 더운 날씨는 천첱히 보폭을 반으로 줄이고 뚜벅이 걸음으로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것이 더위를 물리치고 걸어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젖는다는 속담처럼 계속되는 오르고 내리는 길에서 새로히 솟구친 힘도 무력해지어 잠시 배낭을 내리고 비운의 의순 공주의 한맺힌 설화를 상기하였다.
<기구한 삶을 살아간 의순공주>
금오동 천보산에는 일명 족두리 산소가 있습니다. 주택가 뒤의 작은 묘입니다. 효죵때 청나라에서 조선 공주와 혼인을 맺고자 합니다. 당연히 조선 입장에서는 공주를 보내기 싫어했지요.
평범한 백성을 보내려고 하나 혹시 발각될까 두려워 어찌할바를 모르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종실인 금란군 이개윤이 자기 딸을 보낼 것을 자청하고 나서자 조정에서는 그녀를 의순공주라 칭하고 사신과 함께 보냈습니다.
의순공주는 청나라로 가는 도중 평안도 정주에 다다르자 짐승만도 못한 오랑캐 놈들에게 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 가마를 멈추고 볼일이 있다고 속인 다음 가파른 벼랑아래 푸른 물에 몸을 던져 정절을 지켰다고 합니다.
물에 빠진 공주는 찾을 수 없었고 쓰고 있던 족두리만 건져 올려 천보산에 의관장을 해서 지금도 족두리 산소라 불립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전설일뿐 의순공주는 청나라로 시집갔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청나라에서 의순공주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남편 도르곤이 혼인후 1년만에 낙마사고로 목숨을 잃은데다가 역모죄로 몰리며 의순공주는 부하 장군에게 넘겨집니다. 1년후에 또 남편을 잃게된 의순공주는 청나라에서 궁핍하게 살아 갑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딸을 데려오는데 조선에서도 환향년이란 손가락질을 받고 살아가게 됩니다. 게다가 왕의 명을 받지 않고 데려 왔다고 하여 아버지는 관직을 잃습니다.
의순공주는 공주라는 이름도 빼앗기고 젊은 나이에 죽고 맙니다. 이런 의순공주의 넋을 기리기 위해 ‘의순공주 대제’란 굿이 매년 이른 봄에 열린다고 합니다. <경기옛길 안내문에서 퍼옴>
위정자들은 백성의 피에 맺힌 삶은 외면한채 오직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위해 정절을 지키고자 푸른 물에 몸을던져 다고 날조하고 싷었을 것이고, 국란을 초래한 원인은 외면한채 그 책임을 백성에게 돌리고자 환향년이라고 손가락질하여 죽음으로 몰아 가고자 했을 것이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위를 담보하지 못하다면 그 어찌 나라라고 말할 수 있으며 국왕이라고 존숭할 수 있을까 ? 마땅히 당시의 국왕은 조선의 왕이 아니요,. 인仁을 헤치고 의義를 저버린 일부一夫에 블과할 뿐이다. 그렇다면 백성의 힘으로 왕의 자리를 빼앗고 추방함이 마땅할 것이다.
가는비가 내린다. 이직은 옷을 적시는 정도가 아니지민 소나기로 변하지 않을까 염려되어 마을 다지고자 “이제 산에 드니 산에 정이드는구나/ 오르고 내리는 길 온갖 괴로움 다잊고 / 저절로 산이 되어 비도 맞아 가노라/ “라는 가람 선생의 시조를 읊조리고 걷는다.
인성군 묘를 지나 자동차 도로와 잠시 만났다가 또다시 산길로 접어들어 축석고개 밑마을을 지나 호국로에 이르렀다. 호국로를 건너 현충탑을 향하여 진행한다. 정오가 지난 뜨거운 햇볕이 온몸에 내리쬐는 아스팔트 길이다.
방금전 걸어온 천보산 산기슭을 걸을때가 그리울 뿐이었다. 항상 좋을 수는 없는 것이 인생이기에 흥진비래興振悲來이지만 이제 종착지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 곳에 이르면 고진감래苦盡甘來를 외칠 것이라고 미리 자축을 하며 현충탑에 이르러 순국 선혈 열사를 향한 묵념을 하고 고갯마루를 내려서니 또다시 43번 국도인 호국로를 만났다.
로견을 따라 진행하여 축석 3거리에 도착하니 호국로를 알리는 돌비석이 세워져 있다. 의정부에서 포천시에 이른 것이다. 이곳에서 경흥길 3길인 축석고갯길이 시작된다.
경흥길 2길인 천보산길 걸어온 인증 도장을 찍고 횡단보도를 건너 버스 정류장에서 의정부행 버스를 탔다.
● 일자 : 2022년 7월22일 금요일 맑음
● 동행 : 나홀로
● 행선지
- 10시05분 : 의정부역 5번 출입구
- 10시35분 : 부용교
- 11시05분 : 천보산 소림사 입구
- 11시50분 : 인성군 묘
- 12시20분 : 호국로
- 12시45분 : 축석고개 밑마을
- 13시05분 : 현충탑
- 13시40분 : 축석고개 3거리
● 소요시간 및 거리
- 거리 : 10km
- 시간 : 3시간3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