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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선생송수첩은 1939년 8월 29일 청량리 밖 청량사에서 지인들이 마련한 회갑연에서 기념으로 휘호한 필첩이다. 이 수첩이 6·25 동란 때 분실되었다가 고서점으로 유명한 인사동 통문관에 매물로 나왔다. 이것을 바로 알아본 통문관 이겸노 선생께서 매입을 하시게 되었다. 이에 이겸노 선생께서는 젊어서 심우장에서 만해 스님을 곁에서 모시고 평생을 만해 스님 바로 알리기에 전념해 온 해오 김관호 선생이 보관해야 하신다고 생각하고는, 즉시 김관호 선생께 연락하여 양도하였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
모든 것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되새깁니다. 이렇게 지켜졌던 만해선생송수첩을 김관호 선생을 따르고 가르침을 받았던 본인이 한동안 보관하게 되었다. 당시에 김관호 선생께 말씀을 드리고, 만해 스님을 기억하는 많은 분들을 위하여 보지(保持)하였기에 여기에 소개할 수가 있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 곁에서 지켜졌던 송수첩은 모인의 주선으로 모겔러리에 팔리게 되었다. 얼마 전 TV쇼 프로 진품명품에 감정품으로 나와서 좀 씁쓸한 감정이 들었다. 본인 생각에 김관호 선생이 연로하셔서 당시 김관호 선생과 만해기념회를 같이 할 때이므로, 만해기념회에서 공적으로 보존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여 김관호 선생께 여러 차례 말씀드렸는데, 선생께서 그때마다 누군가에게 빌려줬다는 답변을 듣던 차에 팔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많이 서운한 감정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때 차라리 내가 계속 보관할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만해선생송수첩 표갑과 화첩 제자는 이당 김은호 화백이 썼는데, 그것은 휘호 당시나 만해 스님 생전에 쓴 것은 아니다. 화첩 첫 장은 비워 두는 것이 통례인데, 송수만년(松壽萬年)이라는 축화도 제자를 쓸 때에 이당이 그린 것이다. 그리게 된 연유는 소장하고 있던 김관호 선생이 이당 화백에게 부탁하여 그리게 되었다.
참고로 해오 김관호 선생은 한학과 보학에 밝으셨다.
끝 표지 안 쪽의 석주 스님의 글도 해방 이후에 쓴 것임을 밝혀둔다.
이병교
축 만해대선사수진 - 석주스님(해방이후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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