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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학문의 역전>이라는 책을 썼다. 문학사에서 일어난 일본과 한국의 선후 역전이 학문 전반으로 확대된다고 하고, 철학이 없고 있는 것이 그 이유라고 밝힌 내용이다. 일본은 문학사를 서술하는 방법을 유럽에서 가져와 선진 학문을 하려고 하는 수입학으로 일관해 왔다. 한국은 문학사 서술의 이론을 스스로 마련하면서 필요한 방법도 갖추는 창조학으로 나아가고 있다. 수입학이 자랑하는 위세를 창조학이 자라나면 뒤집는다.
자료를 정리하는 문헌학 같은 기초적인 방법은 공통점이 뚜렷해 수입해 써도 된다. 문학사 전개의 원리를 밝히는 이론은 자기 문학사를 일차적인 자료로 삼고 자력으로 도출해야 타당성이 크고, 철학의 전통과 관련시켜 가다듬어야 수준이 높아진다. 일본은 작은 성과를 착실하게 이루었고, 한국은 목표를 크게 잡고 모험을 한다.
이유에 관한 논의에 해야 할 말이 다 들어 있다고 할 수 있으나, 너무 추상적이어서 설득력이 부족하다. 일본과 한국에서 문학사를 서술해온 양상을 알아보아야 논의가 구체화된다. 양상은 시공과의 관련에서 파악해야 한다. 문학사는 근대의 산물이며, 대학 강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 말이 시공으로 들어가도록 하는 지침이다.
일본은 19세기 말에 일본문학사를 상당한 분량으로 내놓아, 유럽 선진국들에게 다가간 것이 널리 인정된다. 국력을 기울여 동경제국대학을 만들어 일본문학을 강의하도록 하면서, 유럽 학문 수입에 힘쓴 덕분이다. 芳賀矢一(하가야이쯔)가 독일에서 문헌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동경(제국)대학 일본문학 교수로 자리 잡고, 일본문학사 서술의 전범을 보인 것이 두고두고 평가된다.
久松潛一(히사마쯔센이찌), 市古貞次(이찌고테이지)가 동경대학 일본문학 주임교수 자리를 차례대로 물려받고, 출판사의 요청을 받아들여 전6권의 <<日本文學全史>>를 몇십 년 간격을 두고 거듭 만들어 내놓은 것을 자랑스러운 업적으로 삼는다. 전권의 총편자 1인, 각권의 주편자 6인, 집필자 수십 인이 일사불란한 관계를 가지고 문학사의 자료와 사실을 아주 잘 정리해놓아 문헌학의 방법을 빛내기는 했으나, 이론 모색을 위한 수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받는 동안 강의할 곳이 없고, 다른 지원도 가능하지 않아, 문학사를 이룩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외래 통치자가 식민지의 문학사를 먼저 써서 열등의식을 키우는 전례를, 일본은 역량 부족 때문에 재현하지 못한 것은 다행이었다. 어려운 여건을 무릅쓰고 스스로 연구에 몰두한 국학의 선각자 安廓(안확)이 <<조선문학사>>를 가까스로 써냈다. 서술이 엉성하고 분량이나 내용이 많이 모자라는 결함이 있으나, 민족의 정신적 각성을 고취하고자 하는 의욕이 역전의 가능성을 암시했다.
趙潤濟는 京城(경성)제국에 입학해 일본인 교수가 잘 모르면서 하는 한국문학을 폄하하는 강의를 수강하는 수모를 겪으면서, 근대학문을 익히고자 했다. 실직 상태에 있으면서 안확의 선행 작업에서 많이 나아간 <<국문학사>>를 쓰다가, 광복 후 서울대학교 교수가 되자 내놓았다. 문헌학의 방법으로 자료와 사실을 정리하는 작업을 더 잘 하려고 하지 않고, 문학사의 유기적 전개를 총괄해 논의하는 이론을 갖추는 것을 일본의 문학사에 대응하는 작업으로 삼았다.
일본에서는 동경대학 일본문학 주임교수 자리를 이은 久保田淳(구보다준)이 일본의 가장 큰 출판사를 위해 전18권의 <<日本文學史>>를 다시 만들어주었다. 여러 사람이 각기 쓴 글을 열거해 분량이 늘어났으며, 시대구분조차 갖추지 않아 문학사라고 하기 어렵다. 미국에서 유행하는 문학사 해체론을 받아들여 뒤떨어지지 않으려다가 문학사학을 파괴하고, 독자에게 외면당해 출판사에 손해를 끼쳤다. 久保田淳에게 한국에서 열리는 한ㆍ일학술 포럼에서 문학사에 관한 토론을 하자고 제안했더니 응낙하지 않았다.
조동일은 본문 5권, 전부 6권인 <<한국문학통사>>를 혼자 쓰고 여러 번 고쳐, 안확ㆍ조윤제가 남긴 과업을 차원을 높여 실현하려고 다각도로 노력한다. 구비문학과 한문학이 생극의 관계를 가지고 민족어 기록문학을 이룩한 과정을 밝혀 논한다. 문학사에서 생극론과 대등론의 철학을 도출하고 정립하는 작업을 출발점으로 삼아, 학문의 역사를 바꾸어놓고자 한다.
이것은 한ㆍ일간의 논란을 넘어서는 의의를 가진다. 변증법에 입각해 유럽중심주의를 입증하고자 하는 근대 학문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음 시대로 나아가는 작업을 양면에서 수행하고자 한다. 상극에 치우친 변증법의 편향성을 생극론으로 시정하고, 유럽중심주의의 차등론을 인류는 모두 대등하고, 더 나아가서 모든 생물은 대등하다고 하는 대등론으로 바로잡고자 한다.
필요한 작업을 국내에서 홀로 한 것만은 아니다. 세계 16개국에서 40회 이상의 강연이나 연구발표를 하면서, 얻은 성과를 제시하고 열띤 토론을 했다. 그 가운데 일본, 중국, 인도, 네덜란드, 스웨덴, 이집트에서 있었던 일을 논문에서 보고하고 이해를 구했다. 일본에서 한 토론 하나만 여기 옮긴다.
일본 京都에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가 있다. 일본문화 연구의 발전을 위한 국제적인 교류를 목적으로 설립한 국립 연구기관이다. 나를 일본학자 小西甚一(코니시진이찌)와 함께 초청해, 문학사에 관한 소견을 발표하라고 했다. 나는 <<한국문학통사>>를, 小西甚一는 <<日本文藝史>>를 써낸 것이 상응하는 업적이라고 여겨 기획한 행사였다.
한국문학사에서 시작해 동아시문학사를 거쳐 세계문학사로 나아가면서 문학사 시대구분의 보편적 이론을 정립한 것을 말하기로 하고, 발표문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지 고심했다. 영어로 발표를 하게 되어 있지만, 한자로 써야 알 수 있는 여러 용어를 영어로 옮겨 전달하기 어려워 고민했다. 좋은 방법을 찾아, 발표문을 한문으로 써서 배부하고 영어로 풀이하기로 했다. 전대미문의 ‘한문영어현토체’를 창안했다.
좌중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일본인 학자이고, 미국과 캐나다에서 온 일본문학 또는 비교문학 전공자들도 있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미국의 비교문학자 Earl Miner가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모두 한문은 잘 몰라도 한자는 읽을 수 있으므로, 발표문을 눈으로 보면서 영어로 풀이하는 말을 들어 이해를 정확하게 할 수 있었다. 영어만 사용했더라면 탈을 잡을 수 있었는데, 글을 한문으로 쓴 것을 보고 감히 무어라고 할 수 없었다. 작전이 성공한 것을 알아차리고, 한문 글쓰기의 의의를 역설했다. 동아시아 여러 나라 학자들이 합작해 동아시아문학사를 한문으로 쓰고, 각국어로 번역하자는 말까지 했다.
小西甚一는 준비해온 메모를 보면서 영어로만 말했다. 한자어로 된 용어는 들지 않았다. 자기가 문학사 공부를 하면서 서양 사람들 누구의 책을 읽고 영향을 받았는가 하는 말만 길게 했다. 행세께나 한다는 논자들은 거의 다 등장시켜 화려한 행진을 펼쳐보였다. 토론을 시작해도 우리 둘이 서로 할 말은 없었다.
내 발표에 대해서 일본인 학자가 시비를 걸었다. (그 사람은 동경대학에서 정년퇴임하고 국제일본문학센터의 교수로 와 있는 伊東俊太郞였다. <<比較文明>>이라는 책을 쓰고, 일본비교문명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小西甚一는 <<日本文藝史>>에서, 일본의 고대는 일본 고유의 시대이고, 중세는 중국화된 시대이고, 근대는 서양화된 시대라고 명쾌하게 말했다. 한국도 이렇다고 하면 안 되는가? 왜 공연히 딴 소리를 하는가?”
좋은 기회가 온 것을 반가워하고 바로 응답했다. “일본의 중세가 중국화된 시대라면, 중국의 중세도 중국화된 시대인가? 일본의 근대가 서양화된 시대라면, 서양의 근대도 서양화된 시대인가? 小西甚一는 일본문학사의 특수성을 말하려고 그런 주장을 펴지만, 나는 한국문학사의 보편성을 밝혀, 고대는 공동문어 이전의 시대, 중세는 공동문어의 시대, 근대는 민족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시대라고 한다. 한국문학사에서 출발해 일본, 중국, 서양, 그 어느 곳도 다르지 않은 세계사 전개의 공통된 과정을 밝힌다.”
小西甚一는 일본문학사를 쓰는 것을 소임으로 삼으면서도, 지금은 서양화된 시대이므로 서양을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수입학에서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수입학과 창조학이 어떻게 다른지, 한국문학사에서 동아시아문학사를 거쳐 세계문학사를 쓰면서 보여준다고 했다. 발표문을 한문으로 쓴 것이 중국화된 시대로 복귀하자는 것은 아니고, 서양의 횡포를 바로잡을 수 있는 동아시아의 능력을 다지기 위해 필요했다.
小西甚一뿐만 아니라 다른 일본학자들도 일본문학사를 그 자체로만 논의하고, 동아시아문학사로, 세계문학사로 나아가지 않는다. 일본에는 동아시아문학사가 없으며, 세계문학사는 영문학자가 쓴 수입 가공품을 으뜸으로 친다. 일본문학사를 일본철학사와 함께 논의하려고 하지 않는다. 일본철학사는 없다. 그런 책도 강의도 없다. 일본에서는 서양철학만 철학이라고 한다. 일본문학사와 일본사회사를 관련시켜 논의하는 작업은 일본문학 학계 밖의 평론가들이나 더러 한다.
나는 한국문학사ㆍ동아시아문학사ㆍ세계문학사를 하나이게 연결시켜 고찰하면서,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선 문학사 일반론을 정립한다. 한국문학사ㆍ한국철학사ㆍ한국사회사를 아우르면서, 근대학문의 폐습인 분열을 시정하고 통합을 시도한다. 학문일반론을 마련해 인문ㆍ사회ㆍ자연학문이 함께 나아가는 길을 찾는다. 이것은 자연학문이 주도해 전개하는 학문통합론의 편파성을 시정하는 의의를 가진다.
이 모든 노력에서 얻은 성과를 한 마디로 간추릴 수 있다면, ‘萬物對等生克’이라고 할 수 있다. ‘만물’이 ‘대등’한 관계를 가지고, 상생하면서 상극하는 ‘생극’을 빚어낸다는 원리이다. ‘萬物’이 ‘萬生’이기도 하고, ‘萬人’이기도 하다. 이런 원리를 얻어 일본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면 크게 잘못되었다. 이것은 우선 가까운 이웃인 일본과 공유해야 ‘만인대등’일 수 있다. 중국과의 공유는 그 다음 과제이다. 일본ㆍ중국과의 토론은 예선이고, 유럽 선진국과의 토론이 본선이다.
본선에는 한국선수가 아닌 동아시아선수로 출전해야 한다. 운동과 학문이 이 점에서 다르다. 한국학자가 일본학자보다 본선 경쟁력이 더 있어, 앞에 나서서 큰일을 맡아야 한다. 일본을 배제하지 않고, 함께 대변해야 한다. 일본학자는 흔히 임원 노릇을 하며 도와준다.
본선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알리는 예고편을 조금 보인다. 네덜란드에서 열린 국제비교문학대회에서 폐회사를 맡고 한 말을 간추려 옮긴다. “오늘날 탈식민시대를 맞이해 새로운 사고를 해야 한다든가, 유럽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든가 하는 말을 많이 하지만, 유럽문명권 안에 들어앉아 다른 문명권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면 아무 진전이 없다.” 서두를 이렇게 꺼내고 논의를 진전시켰다.
“학문은 유식의 소관이지 무식의 소관이 아니다. 한 문명권만 아는 것은 무식이고 여러 문명권을 아는 것이 유식이다. 당신네들 유럽문명권 학자들은 다른 문명권을 이해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 없다. 우리 동아시아인은 유럽문명권을 이해하기 위해 오랫동안 애쓴 결과 두 문명권은 어느 정도 안다. 세 문명권이나 네 문명권을 아는 것보다는 무식하지만, 한 문명권만 아는 것보다는 유식하다.” 이런 비교론을 전개했다.
“지금까지의 근대학문은 유럽문명권에서 주도했다. 이제 전환의 시기가 닥쳤다. 둘 이상의 문명권을 알아 광범위한 비교연구를 할 수 있는 유럽 밖의 학자들이 근대를 넘어서서 다음 시대로 나아가는 학문 연구를 주도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렇게 말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것은 서론의 일단이다. 그 뒤에 여러 곳에서 많은 토론을 했다. 유럽문명권과 다투어 이기자는 것은 아니다. 학문은 승패를 넘어서서 크게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이다. 상극이 커서 상생도 크게 하려고 논란을 벌인다. ‘만물대등생극’의 의의를 확대하고자 한다.
조동일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대등의 길〉, 〈한일 학문의 역전〉. 〈국문학의 자각 확대〉, 〈우리 옛글의 놀라움〉,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첫댓글 일본은 19세기 말에 일본문학사를 상당한 분량으로 내놓아, 유럽 선진국들에게 다가간 것이 널리 인정된다. 국력을 기울여 동경제국대학을 만들어 일본문학을 강의하도록 하면서, 유럽 학문 수입에 힘쓴 덕분이다. 芳賀矢一(하가야이쯔)가 독일에서 문헌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동경(제국)대학 일본문학 교수로 자리 잡고, 일본문학사 서술의 전범을 보인 것이 두고두고 평가된다.
久松潛一(히사마쯔센이찌), 市古貞次(이찌고테이지)가 동경대학 일본문학 주임교수 자리를 차례대로 물려받고, 출판사의 요청을 받아들여 전6권의 <<日本文學全史>>를 몇십 년 간격을 두고 거듭 만들어 내놓은 것을 자랑스러운 업적으로 삼는다. 전권의 총편자 1인, 각권의 주편자 6인, 집필자 수십 인이 일사불란한 관계를 가지고 문학사의 자료와 사실을 아주 잘 정리해놓아 문헌학의 방법을 빛내기는 했으나, 이론 모색을 위한 수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받는 동안 강의할 곳이 없고, 다른 지원도 가능하지 않아, 문학사를 이룩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외래 통치자가 식민지의 문학사를 먼저 써서 열등의식을 키우는 전례를, 일본은 역량 부족 때문에 재현하지 못한 것은 다행이었다. 어려운 여건을 무릅쓰고 스스로 연구에 몰두한 국학의 선각자 安廓(안확)이 <<조선문학사>>를 가까스로 써냈다. 서술이 엉성하고 분량이나 내용이 많이 모자라는 결함이 있으나, 민족의 정신적 각성을 고취하고자 하는 의욕이 역전의 가능성을 암시했다.
趙潤濟는 京城(경성)제국에 입학해 일본인 교수가 잘 모르면서 하는 한국문학을 폄하하는 강의를 수강하는 수모를 겪으면서, 근대학문을 익히고자 했다. 실직 상태에 있으면서 안확의 선행 작업에서 많이 나아간 <<국문학사>>를 쓰다가, 광복 후 서울대학교 교수가 되자 내놓았다. 문헌학의 방법으로 자료와 사실을 정리하는 작업을 더 잘 하려고 하지 않고, 문학사의 유기적 전개를 총괄해 논의하는 이론을 갖추는 것을 일본의 문학사에 대응하는 작업으로 삼았다.
조동일은 본문 5권, 전부 6권인 <<한국문학통사>>를 혼자 쓰고 여러 번 고쳐, 안확ㆍ조윤제가 남긴 과업을 차원을 높여 실현하려고 다각도로 노력한다. 구비문학과 한문학이 생극의 관계를 가지고 민족어 기록문학을 이룩한 과정을 밝혀 논한다. 문학사에서 생극론과 대등론의 철학을 도출하고 정립하는 작업을 출발점으로 삼아, 학문의 역사를 바꾸어놓고자 한다.
이것은 한ㆍ일간의 논란을 넘어서는 의의를 가진다. 변증법에 입각해 유럽중심주의를 입증하고자 하는 근대 학문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음 시대로 나아가는 작업을 양면에서 수행하고자 한다. 상극에 치우친 변증법의 편향성을 생극론으로 시정하고, 유럽중심주의의 차등론을 인류는 모두 대등하고, 더 나아가서 모든 생물은 대등하다고 하는 대등론으로 바로잡고자 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