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흠(陳欽) 참판공(叅判公) 신도비, 시비(神道碑, 詩碑), ○ 증 참판 예조좌랑(禮曹佐郞)진공 만재(陳公晩宰) 신도비(神道碑) 신도비 소재지 ☞ 전남 함평군 해보면 대각리 회화정 마을입구
진흠 참판공 월계사 약전 (陳欽 叅判公 月溪祠 略傳) 월계사 봉안조 ▼
◎ 9世 호조참판 (戶曹叅判) 여양진공 휘 흠(驪陽陳公 諱 欽) ◎ 公之六代孫 15世 증(贈) 참판( 叅判) 行 예조좌랑(禮曹佐郞) 진공 만재(陳公晩宰)
♤ 향사일:매년 봄 (음) 2월 중정일(中丁日)- 천간(天干) 두번째 정(丁)일.
월계사(月溪祠) 소재지 ☞ 전남 함평군 해보면 대각리 회화정
월계사는 호:금호(錦湖) 호조참판 휘 흠(欽) 선조, /(贈)참판 예조좌랑 휘 만재(晩宰) 두분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봄 2월 중정일(中丁日)에 향사를 받든다. 9世 휘 흠(欽) 참판공 현조께서는 세종조 정미(1427)년에 출생하시여 조선 제7대 세조 원년(1455년 12월 27일(戊辰)에 원종공신原從功臣에 록훈錄勳되었다. 함평군 해보면 국사봉(國士峰)이 대동저수지를 바라보며 내려선곳, 월계사 소재지 대각리는 산자수명(山姿水明)한 고장으로 고상한 선비를 많이 배출하였으니 어찌 그의 정기 때문이 아니랴. 대각리에 월계사 사우를 세움은 문과에 급제하여 향도천(鄕道薦) 온양현감에 특별히 제수되고 거듭승진하여 통사 지사역원사(通事知司譯院事), 나아가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지낸 휘 흠 선현과, 식년시式年試 문과에 급제하여(증)참판 예조좌랑을 지내신 휘 만재 선현의 높은 학문을 기리기 위함이다.
휘 흠 참판공은 자질로 효우에 돈독하였으며 옛것을 숭상하면서 인작(人爵 1)은 사람에게 있고 천작(天爵 2)은 나에게 있는데 나의 뜻을 버리고 어찌 벼슬하랴, 일찍이 호조참판에 올라 그 이름이 높았으나 초야에 은거하며 어버이께 효도하고 학문을 탐구함이 현조의 높은 표본이며, 선대의 유지를 이어 더욱 스스로를 다스리고 만년(晩年)에 다시 학문을 강마(講磨)하였음이 선현의 발자취이다.
감회롭도다.
세상을 떠난 후에 향(鄕)에서 제사 모심은 덕행(德行)과 학문이 고을의 선생으로 추모하여 가히 후세에 모범이 됨이다. 참판공이 나아가신 바는 진실로 거룩하였으니 진사 강주영(姜柱榮)이 사적에 그 체통을 활달하게 밝혔다. 참판공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을 좌우명으로 삼았고, 효를 행함에 민자건(閔子騫)의 행적을 따라 변을 맛보고 단지(斷指)하였으며 죽을 먹으면서 십년을 하루같이 시묘(侍墓)하였으니 어찌 효행의 극치가 아니랴, 선현의 신도비(神道碑)와 시비(詩碑), 휘 흠 참판공 상대사 연구 사적비를 새우며, 고귀한 삶을 추모할 적에 시로 가로되 옛 벗이 천리 길을 찾아온 듯한데 어찌 선후(先後)를 따지리오.
공맹(孔孟)의 아언(雅言 3)을 모름지기 체득하여 행의(行義)를 이룬 연후에 참판공 선현의 행실을 따르려 힘써야 할 것이다. 산자수명한 함평천지에 현덕(賢德)한 인물이 많으니 인걸(人傑)이 땅의 인연임을 믿게 하노라. 참판공 사우의 창건은 英祖 乙未(1775)年에 향도(鄕道)의 제현(諸賢)이 공의(公議)로 발의(發議)하여 사림(士林)에서 호 금호선생(錦湖先生)으로 추향하였다.
서기 1945년~ 해방의 기쁨을 채맛보기도 전에 좌,우익의 대립으로 남로당 박헌영의 부대가 국군의 토벌작전에 쫒겨 용천사 방면으로 퇴각하면서 참판공 후손들이 대대로 학문을 연마하고 후학을 가르치던 큰 서당 월계재를 임시본부로 강점하여 최후 항전의 보루로 삼았다. -(증언:갑언 족숙)
밤과 낮으로 진영과 고지가 바뀌며 수개월동안 교전중, 월계사(月溪祠)와, 월계재(月溪齋) 방화로 소장하고있던 한수레 분량이 넘는 종중자료와 유품이 함께 소실(燒失)되었다. -(증언:막동 대부님)
오호(嗚乎)~통재(痛哉)라! 그날의 슬픔을 딛고 6.25 직후 월계사는 다시 중수하였으나 사적은 어두운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대각문중은 많은 인적, 물적 피해로 재기불능의 쇠락기를 거치며 오늘에 이르렀다. 2005년 부터 불민한 후손이 참판공 상대사를 연구하면서~
전국에 산거(散居)하던 후손들이 열정적으로 위선사업에 참여하여 운교문중, 백암문중, 대각문중, 문장문중이 통합, 대각 참판공 종중으로 역사를 다시 쓰게된다. 참판공께서는 한시대 지방수령(온양현감)과 외교관(통사지사역원사)을 지냈으며, 행정각료(호조참판)로서 수행한 선현의 정치이념과 학문을 본받고 명문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며 선업을 대대손손 이어가기 위해 참판공의 위상을 드높이는 위선사업에 이제 후손이 하나가 될때다.
일천(一淺)한 학문으로 왕조실록 등, 정사(正史)에 기록된 훌륭하신 선현의 일대기를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나의 부족한 부분은 후대에 다시 정리하여 주길 바라면서 "월계사지(月溪祠誌)약전(略傳) 서문에 명(銘)하여 불비약술(不備略述)한다.
癸巳(2013)年 (음) 二月 중정일(中丁日)
호조참판 진흠(陳欽) 16 代孫, 25世 해송(海松) 옥수(玉洙) 근 찬謹撰
註 1) 사람에게는 천작天爵(하늘이 내리는 벼슬)과 인작人爵(사람이 내리는 벼슬)이 있다。 <맹자>
註 2) 옛 사람은 천작天爵 인,의,충,신(仁·義·忠·信)을 닦으면 인작人爵이 따라 왔는데, 지금 사람은 인작人爵을 얻고 나서 천작天爵을 버리니, 마침내 그 인작人爵마저 반드시 잃고 말 따름이다. <맹자>
註 3) 아언(雅言)- 바르고 우아한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