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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우(Mu)대륙은 마고성(麻姑城)이다
1926년 제임스 처치워드(James Churchward 1851~1936 . 이하 처치워드)는 인류의 태초 문명사를 탐구한 저서 '인류의 조국 무(Mu)잃어버린 대륙(The Lost Continent of Mu Motherland of Man)'을 발표하였다. 그는 영국에서 태어나고 인도에서 군 생활을 하였고 1890년대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그의 첫 번째 저서는 50여 년간 연구한 걸작임에도 불구하고 '오거스트스 르 프롱전(Augustus Le Plongeon 1825–1908)'이 저술한 책을 베껴 썼다는 오해를 받았다. 그때 나이가 무려 75세였다.
처치워드는 이듬해 멕시코의 광물학자이자 고대문명 탐사가인 '월리엄 니이벤(William Niven . 이하 니이벤)'을 찾아가게 되고 니이벤이 보여준 약 2,500여 점의 석판을 보며 마치 자신이 인도에서 50년간 연구하며 찾아 헤맸던 나아칼의 비문을 발견한 것처럼 흥분에 휩싸였다. 바로 그 해에 처치워드는 두 번째 저서인 '멕시코시티 인근 Santiago Ahuizoctla에서 윌리엄 니이벤이 찾은 돌판의 사본(Copies of Stone Tablets Found by William Niven at Santiago Ahuizoctla Near Mexico City . 1927)'와 황금시대의 책(Books of the Golden Age . 1927)등 두 권의 저서를 잇달아 발간하였다. 그 후에도 처치워드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저술활동을 펼쳐 The Children of Mu (1931), The Lost Continent of Mu (1931), The Sacred Symbols of Mu (1933), Cosmic Forces of Mu (1934), Second Book of Cosmic Forces of Mu (1935) 등 1935년 까지 계속해서 무우(Mu)문명을 해설한 책들을 연속으로 발표하였다.
처치워드의 가장 위대한 베스트셀러는 잃어버린 대륙 무우(The Lost Continent of Mu . 1931)인데, 1931년 뉴욕에서 발간되었다. 처치워드는 잃어버린 대륙 무우(The Lost Continent of Mu . 1931)의 서문에서 아래와 같이 밝혔다.
"이 책에 쓰여 있는 사건들은 모두 두 종류의 고대비문 판(Stone Tablets)에 근거하고 있다. 그 하나는 나 자신이 몇 십 년 전에 인도에서 발견한 나아칼(Naacal)의 점토판이며, 또 하나는 월리엄 니이벤씨가 멕시코에서 발견한 2천 5백 여 점의 석판이다. 이 두 종류의 비문판은 모두가 무우(Mu)대륙의 성전 "거룩한 영감의 책"을 바탕으로 하여 기록된 것이다.
나아칼(Naacal)의 점토판은 고대 나가마야(Naga-Maya)의 표상과 문자에 의해서 엮어져 있으며 전설에 따르면 그것은 "어머니의 나라" 무우(Mu)에서 쓰여져 버마를 거쳐 인도로 가져온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만5천 년 전의 일이다.
멕시코의 석판이 어디에서 기록되었었는지는 의문이지만 북방의 고대 위글계의 표상과 문자가 쓰여지고 있다. 어쨌든 그런 것들이 무우(Mu)대륙에서 쓰여지고 있었던 알파벳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멕시코 석판의 연대도 아주 오랜 옛날인 약 1만 2천년 정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가 있는데 어머니의 나라에서 쓰여 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들 석판에 의해서 내가 발견한 나아칼(Naacal)의 비문 가운데 특히 천지창조에 관한 기술에서 빠져 있는 부분 즉, 우주의 4대 원동력의 발생과 그 활동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내가 동양에서 볼 수가 없었던 나아칼(Naacal)의 점토판은 "잃어버린 고리"(밋싱링크)처럼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가능한 한 자기 자신의 체험에 의해서 이들 비문판에 기록되어 있는 사건들을 보증하고 증명해 보고자 했다. 나는 그것을 위해 약 50여 년의 귀한 세월을 소비하며 세계 각지를 싸돌아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어떤 중대한 사실을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시기에 이 지구상에 아주 크나큰 문명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이며, 그 문명은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 문명을 훨씬 능가하는 고도의 문명이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위대한 고대 문명이라 하여 경탄해 마지않는 인도, 바빌로니아, 페르샤, 이집트, 유카탄 "마야문명의 중심지"등지에서 볼 수 있는 모든 문명의 흔적은 사실 그 대문명의 타다 남은 잔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수반하여 이해되었던 것은 인류 탄생의 땅, 인류 최초의 문명이 일어났던 발상지는 나일의 강변도, 유우프라테스의 강 유역도, 미국도, 오리엔트의 어떤 고장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책을 씀에 있어서 영국박물관, 호놀룰루의 민속박물관, 아메리칸 위클리지, 로스앤젤리스의 E. A. 솔즈베리 대위,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새뮤얼 하버트 씨, 텍사스주 오스틴의 윌리암 니이벤씨 등의 협조에 뜨거운 감사를 보내는 바이다. 또 인도 및 티베트의 몇 군데 승원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으나 그 쪽의 희망에 따라 사원의 이름, 지명 등은 일체 기록하지 않기로 했다.
-제임스 처치워드 기록 . 지 방훈 번역 . 오자 탈자 수정 박 민우-
제임스 처치워드의 기록은 그가 50년 동안 피눈물 나게 연구했던 결과를 요약해서 말해주는 대문장이다. 처치워드 연구의 발단은 먼저 나아칼(Naacal) 점토판을 만난 것이고, 그 속의 문자들을 해독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나아칼(Naacal)점토판이란 앞서 소개한 수메르 점토판과 유사한 것으로 처치워드가 '어머니 나라'라고 생각한 Mu(무우)의 역사가 기록된 납작한 점토판을 말한다.
1868년 인도에서 군 복무 중이던 처치워드는 그 곳에 대기근이 닥치자 난민들에게 구호양곡을 배급하고 있었다. 그의 부대가 주둔한 힌두교 사원의 고승(高僧)이 그에게 오래된 원반 형태의 점토판 두개를 보여 주었다. 고승은 아득히 오래 전 인류의 본 고장에서 자신들을 가르치기 위해 찾아온 나아카루스 형제가 인간의 말을 새긴 점토판이라고 설명했다.
두 개의 점토판에는 난생 처음 보는 이상한 도형과 기호 같은 것이 빽빽이 새겨져 있었다. 고승은 점토판이 신비한 모국(母國)인 무(Mu)에서 보내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노승은 처치워드를 토굴 속으로 안내했다. 거기에는 1만여 년이라는 세월에 부식된 점토판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는 고승의 도움으로 때로는 스승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지내면서 근 2년 동안 점토판 해석에 매달렸고, 마침내 상형 문자를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그 점토판은 무(Mu)대륙의 성경인 '거룩한 영감의 책'이었는데, 무 대륙의 건국에 관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점토판에 새겨진 무 대륙의 건국 설화는 구약의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 설화와 비슷했다. 그러나 지금 이 유물에 관해서 남아 있는 것은 처치워드가 직접 그린 몇 장의 그림뿐이다.
그는 제 2의 나아칼(Naacal) 점토판을 찾기 위해 50여 년을 인도와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어느 날 처치워드가 버어마에 있는 어떤 사원을 방문하여 그 곳의 스님에게 비장한 문서를 보여 달라고 했을 때 도둑놈으로 오해 받고 쫓겨나기도 했었다. 처치워드는 또 자신의 저서에서 고승이 있었던 사원의 위치를 본인이 거부했다는 이유로 밝히지 않음으로서 나아칼 점토판은 아직도 미궁에 빠져있다.
그는 50여 년을 전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다고 하였으나 큰 성과를 이루지는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그의 첫 번째 저서가 르프롱전의 저서를 재 편집 한 것으로 오해를 받았던 사실로 간단히 알 수 있다.
르 프롱전의 저서에는 이집트와 중앙아메리카의 고대문명은 무우(Mu)제국의 피난민들이 세운 것이라고 적혀 있었고, 그가 50년간 연구하였던 무우(Mu)란 이름까지 기록되어 있어 르 프롱전의 저서를 전격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다. 또 그때까지 풀리지 않던 무우(Mu)의 멸망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접한 때문이었다.
그것은 대서양에 있었던 아틀란티스의 침몰이 태평양으로 일괄 이동하여 무우(Mu)란 이름으로 재탄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충격에 빠진 처치워드는 그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탐구했던 모든 것들을 정리하여 서둘러 책으로 내게 되었다. 태평양에 무우(Mu) 대륙이 있었다고 주장하면 그가 연구했던 모든 것들의 궁금증이 한방에 해결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대단한 자신감에 차있었지만 학자들은 신지학의 새로운 학자가 태어난 것으로 간단히 생각하여 관심을 끌지 못했다. 첫 번째 저서가 나온 후 곧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멕시코의 광물학자 월리엄 니이벤이 무너져 버린 고대 마야의 궁전에서 고문서를 발견하였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곧바로 니이벤이 있는 유카탄 반도로 달려갔다.
니이벤이 보여준 2,500여 점의 석판에 기록된 문자들을 해독하면서 처치워드는 고대 마야인들이 '어머니의 나라', Mu(무우)에서 왔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처치워드의 서문은 거의 모든 문장이 나아칼 점토판과 마야 석판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만큼 처치워드의 주장에 결정적인 열쇠를 제공한 것은 인류 최초의 어머니 나라에서 비전 되어 온 고대문자 '무우(Mu . □)'였던 것이다.
독자들은 이쯤에서 무우(Mu . □)는 마고성(麻姑城)이라고 간단히 결론 내릴 수 있는 데 동의 할 것이다. 그리하여 무우(Mu . □)를 언급한 최초의 문명학 저서 '무우(Mu)여왕과 이집트 스핑크스(Queen Moo and the Egyptian Sphinx)'는 '마고 할매와 이집트 스핑크스'로 바뀔 수 있다. 동양사를 모르고 서양사만 가지고 유물을 연구하였으므로 반쪽의 진실만 밝혀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앞서 소개하였듯이 무우(Mu . □)는 산스크리트語이다. 그리고 우리말일 뿐 아니라 중국말(母)이기도 하다. 그것은 마야어이며 이집트어이다. 영어의 Mother, 어머니이며, 할머니, 근원 등 인류를 먹여 살리는 보육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무우(Mu . □)이다. 그것은 道의 근원지 이기도하다. 道는 산스크리트로 풀면 (doha)이다. 우리말로 젖, 영어 밀크(milk), 젖 먹여 기른다. 도울 조(助)에서 도와 조(doha-do) 하듯이 도는 먹여 살린다 의 뜻이 있다. 하늘의 자손들이 천산(天山)이라는 道의 근원지에서 천부(天符)를 봉수(奉守)하여, 선천(先天)을 계승(繼承)하였던 것이다.
부도지(符都誌) 제1장 (第一章) 인용
마고성(麻姑城)은 지상(地上)에서 가장 높은 성(城)이다. 천부(天符)를 봉수(奉守)하여, 선천(先天)을 계승(繼承)하였다. 성중(成中)의 사방(四方)에 네 명의 천인(天人)이 있어, 관(管)을 쌓아 놓고, 음(音)을 만드니, 첫째는 황궁(黃穹)씨요, 둘째는 백소(白巢)씨요, 셋째는 청궁(靑穹)씨요, 넷째는 흑소(黑巢)씨였다.
[인용문 끝]
마고성(麻姑城)은 지상(地上)에서 가장 높은 성(城)이다. 그러므로 바다가 될 수 없다. 성중(成中)의 사방(四方)에 네 명의 천인(天人)이 있어, 관(管)을 쌓아 놓고, 음(音)을 만들었으니 마고성(麻姑城)의 모양은 바로 무우(Mu . □)의 형태와 같았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피라미드의 바탕도 4면으로 되어 있으니 피라미드는 마고성(麻姑城)을 근본으로 지은 성전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 길 아니라면 가지 말고님이 아니면, 부르지 말어라.
길 따라 정처 없이 걷다 보면어느덧 서산, 노을이 진다네."
[道에 대하여 실담어 해설]
* dhi-o-ina : 도인(道人, 道仁), 깨우친 성자(聖者)
* ina : 인(人, 仁, 神), 神[씬] 동국정운 2:24, a wise king, teacher, master, king
* 인자(仁者) : 어진 사람. cf : ja, jya : 제(帝) 뎨. mister, miss, master, king
* dhi^-o^ : , 디오, 됴(道), 참선하다, 명상하다.
* 태극도설(太極道設)에서 도생육만물(道生育萬物)이라 하였다.
* 道는 첫째, (doha), 우리말 젖, 영어 milk, 젖 먹여 기른다. 도울 조(助)에서 도와 조(doha-do) 하듯이 도는 먹여 살린다의 뜻이다. 도울 조(助)도 道와 같은 의미를 가진 산스크리트이다.
* 道는 둘째, (path), 영어 pass, way 등 사람이 다니는 길을 뜻한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고, 님이 아니면 그 이름을 부르지 마라".
노자의 도덕경 맨 앞 구절은 이와 비슷한 말로 시작한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길을 만들어 놓았으면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없는 길은 길이라 할 수 없다. 이름이 있으면 영광스럽고, 명예로워야 하는데, 명예롭지 못하면 가히 이름이라 할 수 없다.
* 님 : nimi(산스크리트)는 왕(王, 帝)를 뜻한다.
처치워드는 잃어버린 대륙 아틀란티스가 바로 무우(Mu)였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광범위한 조사 자료를 제시하였다. 그중 가장 주목받은 것이 무우(Mu) 대륙의 위치와 크기를 설정한 것이다. 무우(Mu) 대륙은 태평양상에 있었는데 동쪽은 이스터 섬, 서쪽은 마리아나 제도, 남쪽은 쿠크 제도, 북쪽은 하와이이고 동쪽과 서쪽사이는 8,000Km이며, 남쪽과 북쪽사이는 5,000Km 여서 지금 태평양의 1/2 크기 해당하는 대륙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의 배경은 과거에 무우(Mu)대륙이 가라앉았을 때 대륙의 정상 부분이 수면 위에 남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지금 태평양상에 화산대를 따라 길게 펼쳐진 섬들이 그 잔재라고 하였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 멕시코 석판에 쓰여 진 기록들과 무우(Mu) 대륙의 위치가 자연스럽게 맞아 떨어졌다.
유카탄 반도의 욱스말 사원 비문에 새겨진 '서방의 나라, 우리는 그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는 표현도 그 증거의 하나다. 멕시코시티 남쪽에 있는 피라미드의 비문에는 '어머니 나라의 붕괴를 기념해 세웠다'라는 구절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대 해양학. 지질학을 알지 못했던 처치워드의 한계였다.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조차도 그때는 학계에서 논의 중이었던 것이었다. 처치워드는 최선을 다해 무우(Mu) 대륙의 비밀을 밝혔지만 결국 절반의 성공만 남긴 채 1936년 1월 4일, 무우(Mu)여왕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가 태평양상에 있었다고 했던 무우(Mu) 대륙은 파미르고원에 있었던 마고성(麻姑城)이었으며 그가 제시했던 많은 증거들이 마고성(麻姑城)의 대재앙과 일치하였다. 무엇보다도 현대의 '해저확장설'은 무우(Mu) 대륙의 존재를 완벽하게 침몰시켜버렸다.
'해저확장설'과 무우(Mu) 대륙의 침몰은 이글의 끝 부분에 서술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