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공 요원이 밝힌 ‘간첩의 세계
남파간첩이 가져간 놋주발과 붉은팥
남파간첩이 소지한 북한체제 옹호와 김일성과 김정일 찬양 서적들.
김태욱씨는 1980대 초 3년여간의 탐문수사를 거쳐 검거한 인천 강화도 가족토대공작 사건을 떠올렸다. 강화도 ○○면의 경우 북한과 해안에서 2km 남짓한 거리에 있다. 이 정도의 거리는 밀물과 썰물의 시차를 이용해 하룻밤 사이 ‘당야(當夜)공작’을 할 수 있다. 이 루트는 여간첩 이선실이 북으로 복귀한 대남 공작선의 거점이다.
검거된 남파공작원 박팔석(가명)은 1972년 4월 초 자정 무렵 강화도 고향집 담을 넘어 안방에 들어갔다. 형수와 조카가 깜짝 놀라 깨어났다. 김태욱씨의 말이다.
“사실, 안방으로 침투하는 것은 공작원의 원칙입니다. 안방이 아닌 곳에 침투했다가 외부 손님이 있을 경우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죠.”
형수와 조카가 놀라서 쳐다보니 6·25 때 월북한 시동생이었다. 대학생인 조카는 급히 건넌방으로 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깨웠다. 20여 년 만에 재회한 가족에게 박팔석은 “평양에서 왔다. 통일 일꾼으로 남조선을 미국놈으로부터 해방하려 일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남파 당시 북한 공작지도부 부부장으로부터 받은 인삼주, 곰쓸개, 현금 10만원을 꺼내며 ‘김일성 수령의 선물’이라고 했다. 당시 10만원은 황소 3마리를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형수가 박팔석에게 “형님은 어디에 계시냐”고 물었다. 6·25 당시 박팔석은 자신의 형과 동반 월북한 것이다.
“아! 형님은 지금 평양 김일성대학교 교수로 있습니다.”
박은 “올해 4월 15일이 수령님 회갑인데, 선물로 우리 집안에 소중한 품목이 있으면 갖고 가서 선물하고 싶은데 뭐가 있을까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궁리 끝에 가족은 놋주발과 붉은팥을 다락방에서 꺼내왔다. 붉은팥은 잡귀를 쫓아내는 곡물로 통한다. 김태욱씨의 말이다.
“박팔석이 보자기에 싸서 놋주발과 팥을 북한으로 가져갔습니다. 지금 그 물건들은 당야공작의 성공사례로 평양혁명박물관에 전시 중입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 북한의 《로동신문》에 보도되기도 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