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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 새겨지는 이름의 뜻을 생각해 본다
-제30회 열린한마당에 다녀와서
장 영 복
1.“잘 했어”
<열린아동문학> 2016 여름호에는 나의 글이 실렸다. ‘이 계절에 심은 동시나무’는 <열린아동문학>의 주요 꼭지여서 기회가 온 것만으로도 무한한 영광이다. <열린아동문학>에서는 아주 특별한 원고료를 지불한다. 2차로 나뉘는 원고료 중에서 첫 번째로 받은 원고료는 청도 구시장 기름집에서 직접 내린 참기름과 방파제표 된장, 부산 기장산 청어멸치, 그리고 <열린아동문학>의 편집위원이자 방파제 공동대표이신 예원 박미숙 선생님이 화선지에 필자의 동시나 작품 일부를 정성껏 써주시는 서예작품이다. 이것만 받아도 감동은 물결치는데, 동봉해온 하얀 봉투를 열면 <열린아동문학>의 직인이 선명한 ‘열린한마당’ 초대장이 들어있다. 나는 2014년 열린아동문학상 시상식 때 고성 ‘동시동화나무의 숲’에 한번 다녀온 적이 있지만 필자로서는 아니었으므로, 필자에게 주어지는 ‘열린한마당’의 행운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계절에 심은 동시나무 꼭지에 나에 대한 글을 집필한 김바다 시인과 함께 갈 수 있어 더욱 설레었다. 버스표를 예매하고 나서 4시 반경에 고성에 도착한다고 배익천 주간님께 전화로 말씀 드렸더니 선생님께서 이러신다.
“일찍 좀 오지, 일찍 와서 숲도 좀 둘러보고...” 앗, 생각이 짧았던 거다. 너무 일찍 도착하면 선생님들께 혹, 방해가 될까싶어 시간을 맞춘다고 맞춘 거였는데, 선생님은 우리가 좀 더 편안하게 생각하고 일찍 도착하여 ‘동시동화나무의 숲’을 즐겨주기를 바라시는 거였다. 잠시 고민하다가 김바다 시인에게 전화를 걸어 일찍 나설 수 있겠느냐고 했더니 바다 시인도 좋다고 한다. 표가 남아 있으려나 하고 예매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더니 세 시간가까이 빠른 차가 아직 있었다. 다시 전화를 드렸더니 주간님께선 시원하게 한마디 하셨다.
“잘 했어.”
그 한 마디에 선생님과 나 사이에 놓였던 어려움이라는 안개가 쓱 걷혔다. 기분 좋게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바다 시인도 설렜는지 나보다 더 일찍 서울남부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터미널에서 우리들의 멋쟁이 이규희 선배님을 우연히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선생님도 우리와 같은 버스표를 예매하신 거였다. 우린 거의 나란히 앉아서 고성으로 향했다.
2. 낯설지 않은 길
배익천 주간님께서 고성까지 나와 주셨다. 2014년에 다녀 온 고성의 기억은 이미 다른 기억들에게 밀려 어떤 길이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하더니 배익천 선생님 차에서 내다보니 길이 낯익은 사람 만난 듯 편안하다. 생각해보니 그때 나는 전세버스가 우리를 내려준 마을에서 동시동화나무의 숲까지 걸어서 가고 걸어서 나왔었다. 내가 사는 고장보다 훨씬 남쪽인 이곳의 들녘은 어떤지, 숲은 또 어떤지 호기심이 많았으므로 걷는 길이 너무나 좋았다. 하얗게 피어난 삘기를 보았던 길, 엉겅퀴에 앉은 노랑나비를 사진에 담으려 살금살금 다가앉았던 길, 버찌를 따먹던 길, 버찌 알러지 때문에 갑자기 목이 부어 긴장했던 길, 남도 마을의 골목이 궁금하여 골목마다 한 번씩 들어가 본 길이었다. 그 길에서 만난 새로운 들꽃들 이름을 몰라서 사진에 담아와 나중에 찾았던 기억도 떠오른다. 약모밀, 마삭줄의 꽃, 질경이처럼 길 가운데서 자라던 작고 노란꽃을 피웠던 좀가지풀, 연못에 핀 하얀 자라풀도 그때 알았다. 문학관에 도착하자마자 오디와 앵두와 보리수 열매 먼저 따먹으며 반갑게 수다 떨던 추억을 떠올리는 동안 ‘열린아동문학관(가칭)’ 에 도착하였다.
예원 박미숙 선생님과 홍종관 대표님께서 반가이 맞아주신다. 예원 선생님은 우리가 버스에서 간식을 하였으므로 식사를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도 여장을 풀고 내려오는 동안 된장찌개와 쌈밥을 차려놓으셨다. 싱싱한 채소와 매실절임을 넣은 된장쌈밥으로 오자마자 내 입이 호강에 겨워 콧소리가 절로 나왔다. 도울 일이 있으면 시켜달라고 하였으나 이미 다 준비해놓으셨다면서 계곡물에 발이나 담그라신다. 처음 뵙는 강민숙 작가님과 표성흠 작가님 내외분과 인사를 나누었다. 배유안 작가님은 이미 도착하여 봉사를 하고 계셨으며, 박선미 시인도 마침 도착하였다. 박시인이 명찰 만드는 일을 좀 도왔다. 도착할 작가명단을 보니 잘 아는 이름들이 보여 그분들 얼굴이 눈에 선했다.
3. 봉선자매
박미숙 선생님께서 김바다 시인과 내게 재미난 일감을 주셨다. 마당 여기저기 피어있는 봉숭아꽃을 따서 빻아놓았다가 ‘열린한마당’에 참석한 작가님들 손가락에 봉숭아꽃물을 들여주라는 말씀이었다. 이렇게 즐거운 숙제라니, 예원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네’라며 그릇과 백반가루를 받아들고 소담스런 봉숭아꽃을 양푼에 따 담았다. 잎도 몇 개 따 넣으니 바다 시인이 돌멩이를 주워 물에 씻어오셨다. 백반가루를 솔솔 뿌려가며 꽃잎을 빻아놓고, 손가락 싸맬 재료는 아주까리 잎이 좋은데 하면서 마당을 둘러보니 아주까리는 보이지 않았다. 지지난해에 시상식에 왔을 때 오디를 따 먹던 뽕나무 생각이 났다. 뽕나무 잎이 무성하였다. 넓적한 뽕나무 잎으로 손가락을 싸매보기로 하였다. 잎을 몇 개 따다보니 나뭇가지가 부러진 것이 있었는데. 잎이 적당히 말라있어 부드럽게 접히기에, 두어 주먹 따서 준비하였다. 뽕나무에 야생 누에 한 마리가 고개를 들고 잠들어 있었다. 생태에 관심이 많은 바다 시인이 야생 누에가 맞느냐면서 사진에 담았다. 나는 야생 누에를 본 적은 없지만 어릴 적에 누에를 많이 키워보았기에 누에라 믿었다. 뽕잎을 따오다가 평론가 ‘김경복’이라 쓰인 이름표를 달고 있는 어떤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평론가께서는 바다 시인과 나의 사진을 박아 주셨다. 그분께 우리를 ‘봉선자매’라고 이름을 급조하여 소개하고 함께 웃었다. 초록기운을 흠뻑 받으며 테이블에 앉아 넓적한 뽕잎을 반으로 나누다가 뽕잎 뒤에서 누에고치를 발견하였다. 야생 누에 뿐 아니라 고치까지 보았으니 행운이다.
4. 열린 밥상
그 동안에도 잔치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다. 배익천 주간님께서 내게 <열린한마당>의 후기를 써보겠느냐 하신다. 나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네’하고 대답하였다. 무슨 용기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면 사진도 필요할 터인데, 내 휴대폰의 배터리가 거의 빨강불이어서 부랴부랴 충전기를 찾아 끼워놓았다. 작가님들이 속속 도착하고, 딸랑딸랑 종이 울린다. 배익천 선생님이 <제30회 열린한마당>이 시작된다고 선언하신다. 마침내 조촐하다지만 조촐하지 않은 품격 있는 잔치가 시작되었다.
모든 음식은 땅과 바다에서 온 것들이며, 정성이 깃든 좋은 음식들이다. 더불어 광주의 모시떡, 대전의 부추빵을 비롯한 지역에서 오신 작가님들이 기부하신 먹을거리들도 그득하다. 빈손인 내가 부끄럽기도 하나 잘 먹어주는 것도 필요할 터이니 즐겁게 먹자 마음먹었다. 이옥용 권영상 박선미 시인 등 앉다보니 동시인들이 자연스럽게 한곳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즐거운 웃음과 대화가 오가고 접시를 든 손이 오고갔다. 먼 길에 시장도 하셨을 터이지만, 요리가 최고이니 모든 것이 온전히 즐거웠다. 후기가 생각나서 식사 하는 장면을 몇 장 찍었다. 문학관건물과 잔디마당이 만나는 턱 낮은 문지방 바깥쪽에 일부러 남겨둔 듯한 풀 몇 포기가 발돋움을 하고 우리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초록의 수묵화처럼 보여서 두어 번 사진을 찍었으나 휴대폰으로 찍자니 아쉬움이 많아, 좀 무겁더라도 사진기를 빼는 게 아니라고 후회를 또 하였다. 어느 덧 맛있는 식사가 끝나고 참석한 작가들을 소개하는 시간이다.
5. 열린 마음
이번 열린 한마당은 특별히 계간지 <신생>의 편집진들과 함께 하는 자리라고 소개하셨다. 계간지 <신생>과 <열린아동문학>은 발행횟수까지 비슷하다니 자매지가 되자고 하셔서 모두 박수를 쳤다. <신생>의 대표님을 비롯한 편집진들을 먼저 소개하였는데, 뽕나무 잎을 따면서 만났던 김경복 평론가도 경남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이자 <신생>의 편집진이었다.
다음으로는 <열린아동문학>의 필자 소개시간이다. ‘여는 글’의 필자 이성자 선생님을 시작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신인작가 지연 선생님의 소개가 있었다. 내일 일찍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잠시 참석을 위하여 먼 길을 달려왔고, 내일을 위해 다시 밤새 달려가야 한다고 소개하며 그러한 열정으로 곧 훌륭한 작품을 쓸 거라 하셨고, 동감의 박수소리가 컸다. 다음은 권영상 시인 차례인데, 권영상 시인은 여러 차례 <열린아동문학>의 필자로 참여하였지만 ‘열린한마당’ 참가는 처음이라면서 동시동화나무숲을 찾아오면서 배익천 주간님과 홍종관 박미숙 대표님들이 우정과 사랑으로 가꾸어 가는 ‘동시동화나무의 숲’에 대한 감회가 남달랐음을 고백하였다. 글이란 게 영원할 것이 없고, 정말 중요한 것은 인생 여정에 끝까지 남길 수 있는 우정이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우정으로 이루어가는 <열린아동문학>이 하는 일과 같은 것이 참으로 소중하지 않겠냐고 하신다. 배익천 선생님께서도 모처럼 찾아온 권영상 시인의 고백에 감동받은 듯, 박미숙 선생님이 정성껏 준비하는 원고료와 숲으로의 초대에 대해 좀 더 설명하였다. 활자로 만나던 작가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사람과 이야기하고, 작품과 이야기하면서 서로 감동받을 수 있는, 그러한 정말 좋은 잡지 하나 만들어가야겠다, 좋은 상하나 만들어야겠다는 뜻을 품었고, 두 분(홍종관 박미숙)께서 그 뜻을 받아주셔서 이뤄지게 되었다고 박미숙, 홍종관 대표님께 공을 돌리면서, 칭찬을 받으니 힘이 난다고 하였다.
소개가 이어졌다. 이문희 시인, 이옥용 시인을 비롯하여 이지현 작가님, 한은희 작가님, 강민숙 작가님, 표성흠 작가님, 그리고 최경희 작가님을 비롯한 몇몇 작가님들이 더 있었다. 마침내 나도 나를 소개할 차례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가 서툰데다가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감성이 앞선다. 속으로 싸구려 감성에 빠져드는 스스로를 책해보나 이미 또 하나의 흑역사가 씌어진 후다. 나 다음으로 김바다 시인, 배유안 작가님을 비롯한 몇몇 처음 만나는 작가 분들을 소개하였다. 모두 권영상 시인의 마음과 한마음이었을 것이나 감동의 경로는 조금씩 달랐다. <열린아동문학>의 미술편집위원 이영원 작가님과 음향기기 전문가이면서 와이너리라는 박창호 선생님, 한복디자이너 김인영 선생님, 그리고 몇 분의 소개가 더 있었다. 송구하게도 성함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얼굴을 보면 이제 구면이니 반갑게 웃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건만 기억하지 못해 송구스럽다.
마지막으로 <열린아동문학>의 편집진이신 소중애 선생님, 이규희 선생님, 박선미 시인을 소개하고 예원 박미숙 선생님과 홍종관 대표님의 짧은 말씀이 있었다. 삼십여 년 전부터 아동문학을 만나 힘든 줄도 모르고 너무 행복하게 사셨다는 예원 선생님은 ‘원고료를 돈으로 드리려면 아주 적은 돈을 드릴 수밖에 없’다면서 뭔가 ‘의미 있는 원고료를 필자들에게 드리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가 두 가지의 특별한 원고료를 지급하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열린아동문학>이 잡지의 필자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어 감동적이었다. 끝으로 홍종관 대표님이 인사를 할 차례인데, 배터리가 떨어져 급히 충전기를 연결하느라 바다 시인께 사진은 부탁했지만 귀한 말씀은 놓치고 말았다. 문학을 잘 모른다고 겸손하게 말씀 하셨던 것 같다. 2014년 시상식에서도 들었던 말씀이다. 나는 대표님이 문학과 예술을 아주 잘 하시는 분이라 여겨진다. 우정과 사랑으로 30년 넘게 아동문학을 위해 헌신하시니 어쩌면 삶으로도 문학을 하시는지 모르겠다. 우리 아동문학에는 크나큰 축복이고 아름다운 친구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홍종관 대표님, 배익천 선생님, 예원 박미숙 선생님, 세 분이 헌신으로 동화 같은 공간이 만들어지고 그 공간에서 동화가 살아가는 것 같다. 뒤풀이 때 감로 선생님은 손수 북장단을 치면서 ‘흥타령’을 불러주셨는데, 구절구절이 세분 선생님의 마음이 아닐까도 싶다.
창밖에 국화를 심고 국화 밑에 술을 빚어 놓으니/술 익자 국화 피자 벗님 오자 달이 돋네/아희야 거문고 청 쳐라 밤새도록 놀아보리라/아이고 데고 허허~어~어 음~음 성화가 났네 에~
6. 열린마당
글을 쓴다는 자부심보다는 글을 잘 쓰지 못한다는 열등감에 더 많이 젖어 사는 내게 이러한 자리는 과분하고 벅차기만 하다. 그러함에도 모든 걸 내려놓고 맘껏 분위기에 젖었다. 작가들의 감동어린 말씀에 젖어 봉선자매의 소임도 잊고 말이다. 나도 바다 시인도 잔디마당 테이블 위에 고이 올라앉은 봉숭아꽃을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쯤에서 꽃물 들이는 시간을 가졌으면 더욱 좋았을 것인데, <신생> 선생님들께는 좀 죄송하게 되었다.
<신생>의 편집진들이 돌아가고 난 뒤 삼삼오오 모여앉아 뒤풀이에 열중하고 있을 때, 예원 선생님께서 봉숭아꽃물 말씀을 하셨다. 그제야 생각났다. 면목이 없었으나, 김바다 선생님과 나는 봉선자매로서의 소임을 시작하였다. 촛불을 밝힌 그럴듯한 분위기다. 등불아래서 봉숭아꽃물 들이던 어린 날처럼, 작가들의 손가락 하나하나에 봉숭아꽃 빻은 것을 올려놓고 뽕잎으로 싸고 랩으로 한 번 더 싸주고, 종이테이프로 묶어주었다. 아이들처럼 손가락 하나를 맡기고 얌전해지는 작가님들이 참 귀여웠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노래가 한곡 두곡 나온다. 우리가곡, 외국의 가곡, 우리가요, 우리민요, 우리 동요, 참 다양하게 부르고 순수한 마음으로 어우러진다. 최경희 선생님, 박창호 선생님의 노래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감로 선생님의 둥두둥 둥둥 북소리와 우리소리에는 그만 넘어가 버렸다. 들어보라, 감로 선생님이 몸소 예술인임을 증명하신다, 얼쑤! 때맞추어 별똥별 하나가 떨어졌다. 행운이 겹치고 겹친다, 랄라. 밤이 깊으니 찬 기운이 느껴졌다. 김바다 시인과 살금살금 방으로 들어왔다.
7. 동시동화나무의 숲을 걸으며
눈이 떠진 시간이 5시다. 더 자기엔 아까운 곳이다. 내가 일어나자 바다 시인도 일어났다. 둘이 새벽 산책을 나섰다. 어제 차를 타고 내려왔던 숲길을 신발을 벗어들고 걸었다. 조용조용 천천히 작가들의 이름을 새긴 바위와 우람한 동시동화나무들 숲 사이를 걷자니 다정한 얼굴들을 만난 듯도 하다. 가는 실 모양 꽃잎을 공작날개처럼 펼치고 가지 끝에 살포시 피어난 꽃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바다 시인과 서로 낑낑거리면서 떠올리려 애썼다. 어느 사이 ‘동시동화나무의 숲’ 출입구까지 왔다. 해가 떠오르는 시간이어서 산중턱에서 내려다보는 산 아래 풍경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아, 자귀나무”하고 바다 시인이 꽃 이름을 떠올려 그렇다고 박수를 쳤다. 사슴농장 쪽으로 얼마 쯤 걷다가 반대쪽에 안국사라는 절이 있으니 그곳까지 걸어보자고 하였다. 지지난해에 왔을 때도 안국사까지 걸었는데 나름 멋진 절이라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에 갔을 때는 거리가 좀 느껴지더니 이번에는 금방 절이 나왔다. 절 마당으로 들어서니 강아지 두 마리가 격하게 짖으며 달려 나온다. 바다 시인이 무어라 달래도 멈추지 않고 짖어 우린 석불까지만 갔다가 도로 나와야 했다. 아침햇살이 비추는 산사는 ‘고즈넉하다’라는 낱말을 참으로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산책에서 돌아오니 이옥용 시인이 산책을 나가잔다. 나가고 싶었는데 미처 나서지 못했단다. 좀 지쳐 있었지만 산책을 마다하랴, 세수나 좀 하고 내려가겠다고 하였다. 이옥용 시인과 걸어 나오는데, 아랫집에서 밤을 보낸 소중애 선생님과 이규희 선생님이 올라오셨다. 소중에 선생님의 안내로 선생님의 글샘으로 향했다. 숲 안쪽에 소중애 선생님의 이름이 새긴 바위가 있었다. 이곳에는 ‘글샘전설’이 전해온다고 한다. ‘왼손으로 물을 떠 마시고 오른손으로 이마를 탁 치며 앗쭈구리하고 외친다. 그리고 5년간 죽어라 노력하면 세계적인 작가가 될 것이다’ 전설이 재미있어 왼손으로 물을 떠 마시고 오른손으로 이마를 탁 치면서 ‘앗쭈구리’라 해보았다. 멋쩍어진 나는 수다로 분위기 반전을 노렸다. 이 물을 마시고 세계적인 작가가 나올 것이고, 그러면 이 글샘물을 마시려고 온 세상 사람들이 몰려와 줄을 설 것인데, 앗쭈구리를 우리나라 사람은 어렵지 않게 외칠 수 있지만 외국 사람들은 발음이 어려워서 아주 재미나겠다고 깔깔거리다가, 문득, 지난밤 이영원 선생님께서 돌에 내 이름을 새기다가 열린한마당에 오셨다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아아, 드디어 내 이름이 바위에 새겨지나, 설레는 일이면서 두려움이 밀려온다.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있는가, 이름을 길게 남길만한 작품은 있는가, 이름을 새긴 바윗돌의 영광과 함께 바윗돌처럼 무거운 작가로서의 임무가 얹히는 느낌이다. 나쁘지는 않다. 어쨌든 나를 열심히 걸어가게 할 터이다. 50년 100년을 내다보고 이어가는 ‘동시동화나무의 숲’바위에만 이름을 남겨서는 곤란할 일이다.
8. 손가락 기념사진
아침식사를 마치니 주간님께서 드디어 2차 원고료 지불이 끝났다고 하신다. 1박 2일의 길고 정성스런 원고료를 지불하기 위해 몇 날을 준비라고 몇 날을 고민했을까. 생각하니 또 먹먹해진다. 자리를 마련하는 일, 손수 음식을 장만하는 일, 사람을 부르는 일, 한 가지 한 가지마다 사람마음이 깃드는 일이다. 30회 열린한마당을 잘 차렸으니 집행부 선생님들의 어깨가 조금 가벼워지려나, 큰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하시려나, 아닐 것이다. 다음 원고료를 지불하기 위해 끝나자마자 다음마당을 준비 하리라. 지난밤 봉숭아물을 들인 손가락들이 모여 인증사진을 찍고 단체 사진도 박았다. 예원 선생님께서 마지막까지 꼭꼭 챙겨주시는 떡봉지를 들고 고성으로 향했다. 배익천 선생님 홍종관 대표님, 박미숙 선생님의 미소가 그지없이 아름답다. 그분들이 늘 건강하시기를 빌어본다.
미처 인사를 나누지 못하고 헤어진 선생님들도 있으나, 남은 사람들과 서로 포옹으로 악수로 아쉬운 작별의 정을 나누었다. ‘동시동화나무의 숲’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박선미 시인의 차를 탔다. 부산일보 신춘문예 동지 박선미 시인은 <열린아동문학>에서 오랜 시간동안 묵묵하게 일하는 시인이며, 부산의 아동문학인들 또한 돌아가면서 자원봉사를 한다. 아름다운 동네다. 바쁜 박시인은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게 아쉽기도 하다면서 잠깐 내려 사진이라도 찍자고 하였다. 최경희 작가님과 박선미 시인, 김바다 시인, 나 이렇게 네 사람이 번갈아 가며 사진을 찍었다. 흐뭇한 미소를 가득 안고 돌아왔다. 글 몇 줄 쓸 수 있어 행복한 나들이, 바위에 새겨지는 내 이름의 무게를 생각해보는 뜻 깊은 ‘한 여름 밤의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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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열린 한마당에 다녀온 듯, 후기 글에서 다 느껴집니다.
마치 한 편의 작품 같은..^^
혹 불편한 부분이 없나 확인하러 들어왔는데, 선생님의 칭찬을 받네요. 감사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잘 쓸까! 다음에도 후기 담당 해야겠네^^
옙^^이라고 하면 앙! 되지요~^^ 칭찬 고맙습니다, 선생님
장영복선생님
그날의 선생님심경이 이렇듯
좋은 후기를 쓰셨네요
수고 하셨습니다
거기 모인 한분한분이 선생님들의 정성어린 마음에 신데렐라가 된 듯 하였을 거여요. 잊지 못할 자리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벌 조심하시어요.^^ 저도 산에 가면 벌이 제일 무서워요.^^
장영복 선생님 글을 읽고 나니 그 날의 행복했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르네요. 후기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한은희 선생님^^ 반가워요. 이렇게 또 선생님과 한걸을 가까워지네요. 어디서든 또 만나면 더 반갑겠지요. 고맙습니다.
아이구, 글샘전설, 그런게 있었군요.
다음에는 나도 꼭 해봐야지, 왼손으로 물을 떠 마시고, 오른손으로 머리를 탁 치면서, 아쭈구리~~~~~
재미나요, 꼭 해보셔요.^^
초고을 읽다가 얼굴이 붉어졌어요. 고친 것도 내일 읽으면 또 그럴거지만, 좀 다듬어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