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제사
2022년 10월 2일 오후 2시에 꽃꽂이 수료생 헌신 예배가 있었다. 매해 평창군은 군민들을 위하여 다양한 장르의 강좌를 개설하여 군민들의 문화생활을 지원한다. 미술, 공예, 붓글씨, 동양화, 악기, 노래 교실에서 무료로 전문가의 지도를 받을 수 있다. 그중 올해 2022년에는 10주 과정으로 꽃꽂이 교실이 봉평교회에서 개설되었다. 덕거교회 유기옥 사모의 지도 아래 꽃꽂이 교실은 5월 5일부터 9월 20일까지 격주로 열렸다. 이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개인의 취미활동에 도움도 받지만 나름대로 강단 장식에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이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에는 15명이 등록하였는데 7명만 수료했다. 바로 그 날의 예배는 이들이 수료를 기념하여 강단 꽃꽂이에 헌신할 것을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오래전에 강단 꽃꽂이 맡은 어떤 집사가 입신 체험을 간증한 적이 있었다. 그는 천국의 어느 들판에 가득 핀 꽃의 향기를 맡으며 주님과 즐겁게 춤추며 뛰놀던 체험을 간증했다. 그는 자신이 매주 봉헌한 꽃의 향기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며 이 사역을 소중히 여기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처럼 강단 장식의 꽃꽂이는 참 귀한 사명이다.
그동안 교회 꽃꽂이 사명을 담당했던 플로리스트(florist)는 새 성전이 건축되기 2007년 이전에 추성옥 집사가 맡았고 그 후로는 황숙자 권사가 15년 정도 감당했다. 2020년 황 권사가 춘천으로 이사하는 바람에 정혜선 성도가 담당했다. 2022년 그도 일신상의 이유로 이 일을 더 감당할 수 없게 되어 갑자기 이 사역에 공백이 생기고 말았다. 이즈음에 꽃꽂이 교실이 개설되면서 이금숙 집사는 이 수업에 참가했고 자연스럽게 그가 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 후 이 집사는 매주 최숙희 사모와 함께 이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데 꽃꽂이 교실 수료생들과 함께 더 열심히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강단 꽃꽂이 사명은 꽃의 확보가 관건이다. 그동안은 서울 양재동의 꽃 도매시장에 직접 가거나 인터넷 배달로 꽃을 구매했다. 예산이 많이 확보되어야 풍성하게 강단을 장식하는데 현실은 녹록지 못했다. 개인의 경조사를 맞이하여 기념으로 강단에 꽃을 봉헌하는 일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풍성하게 장식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설상가상(雪上加霜) 지난 2022년 2월에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가하면서 물가 상승의 요인을 일으켰고 꽃 시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예년에 비하면 50% 상승효과가 발생하여 교회마다 강단 장식에 드는 비용은 재정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과도기에 꽃꽂이 사역을 맡은 이 집사는 시름이 깊어만 갔다. 예산도 절감하며 꽃꽂이 장식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두 마리 토끼 잡는 일이라서 비책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때는 바야흐로 겨우내 추위에 눌려 숨죽이며 존재조차 감추고 있던 각종 나물과 들꽃들이 활짝 얼굴을 내밀며 주변의 산야(山野)를 아름답게 꾸미는 만춘성하(晩春盛夏)의 계절을 맞이했다. 여느 때처럼 늘 그 자리에서 자연을 장식하던 그 꽃들의 존재가 새삼 눈에 들어왔다. 그 꽃들을 강단에 올려 장식하면 어떨까? 처음 시도한 일인데 예상보다 반응이 좋았다. 일상에서 오랜 세월 함께했던 낯익은 꽃들이라서 많은 사람들에게도 매우 친숙했다. 당연히 강단의 꽃꽂이를 보는 기쁨도 생겼다. 화훼재배자들이 좁은 온실에서 인위적으로 키운 꽃이 아니고 하나님이 넓은 들녁에서 자연적으로 키워 주셔서 만개한 꽃들을 강단에 봉헌한다는 의미는 더욱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 후 여러 성도들이 늘 자기 집 둘레에서 피는 꽃, 텃밭에서 키운 나물이나 채소에서 핀 꽃, 길가에 즐비하게 피어있는 수많은 들꽃,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산중에 긴 세월 홀로 피고 지던 무명의 들꽃들까지 채취하여 강단에 봉헌하기 시작했다. 늘 이만 때면 지천에 깔려 있는 꽃이라 너무 흔해서 강단에 올릴 용기가 없었는데 이렇게 봉헌할 용기가 생긴 것이다. 이제 강단 장식은 어느 한 사람만이 꾸미는 개인 사역의 영역이 아니고 모든 성도가 함께 헌신할 공동의 사명이고, 강단은 이렇게 성도들이 채집해준 다채로운 꽃들로 꾸며지는 은혜로운 꽃밭이 되었다. 고기를 싸 먹던 상추꽃, 김치로만 먹던 부추꽃, 봄나물의 대명사인 냉이꽃, 쑥꽃, 돼지감자꽃, 진달래, 무궁화, 국화, 수국, 과꽃, 구철초, 백일홍, 메밀꽃, 철쭉꽃, 해바라기, 맨드라미, 더덕, 고사리, 민들레, 갈대, 모시풀, 마리골드, 강아지풀, 소나무, 산사나무(애강나무), 당귀, 부들, 그외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들꽃이 강단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이름하여 집에서만 기른 가축을 제물로 받으시고 그 향기를 기뻐하시는 (레위기 1:13) 하나님께 드리는 꽃꽂이 제사다. 지금 봉평교회는 그런 향내 나는 꽃 제사를 하나님께 봉헌하고 있다.
강단은 말씀이 선포되는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말씀이시다. 강단 장식은 바로 예수님을 아름답게 꾸미는 사명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 구주의 외모는 흠모할만한 것이 없다고 예언했다(이사야 53:3). 그리스도인은 그 예수님을 누구나 흠모할 수 있도록 아름답게 장식해야 할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이다. 인위적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를 가지고 예수님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이다. 여기에 사도 바울처럼 주님을 위하여 스스로 제물이 되어야 한다. 봉평교회 꽃 제사는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신앙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 하라”(예레미야 18:11).
상추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