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역사가 한국 고대사 이므로, 일반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창시자(創始者)라고 알려진 서양 그리스 로마시대 초기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사건도 한국 역사서에 기록되었다.
이전 글에서 전술하였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통치를 시작했던 시절에, 한국 역사로 매치하면 고려 태조 왕건이 창업을 시작하고서 여러가지 국가 제도를 정비하기 시작했을 때 태어났다. 즉, 서기 926년이다. 예수께서 30세 즈음부터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고 3년 6개월 정도 하시고 십자가 처형을 받았다고 기록되었으므로, 그 때로부터 정확히 34년 또는 35년 후(後)의 한국 역사 기록을 보면 되는 것이다.
누가복음 3:2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
성경에 많이 기록되었듯이, 당시 페르시아 제국이 끝나고, 초기 그리스 시대는 사회가 안정된 상태가 아니었고, 유대인들은 여기 저기에서 그리스로부터 독립을 향한 봉기와 무장 투쟁으로 혼란한 상태였고, 이 때 유대인의 다윗 왕의 직계 혈통으로 등장한 예수와 그의 죽음은 유대 사회를 중심으로 큰 이슈가 된 사건이기에, 유대를 통합한 그리스 제국에서, 그리스(고려)의 역사 기록은 그 사건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먼저, 한국사에서 어떻게 기록되었는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고려 4대 왕 광종(光宗) 때의 기록을 보자.
辛酉十二年 宋 建隆二年,遼 應曆十一年 신유 12년(961) 송 건륭 2년, 요 응력 11년
夏四月,大水漂沒人家,水變爲赤。○ 是歲,置修營宮闕都監,移御正匡王育第。○ 賜王擧等七人,明經,一人,及第
여름 4월에, 큰 물이 져서 인가를 떠내려보냈고, 물이 붉은 빛깔로 변하였다. 이해에 수영궁궐도감(修營宮闕都監)을 설치하고 정광(正匡) 왕육(王育)의 집으로 옮겨 거처하였다. 왕거(王擧)등 7명과 명경 1명에게 급제를 주었다.
필자(筆者)는 위 고려사절요의 기록, 즉, 홍수가 나서 인가가 떠내려 갔고, 물이 빨간색으로 변했다 라는 기록은 바로 예수 죽음의 사건을 나타낸 것이라 본다. 왜냐하면, 성경에 기록된 것 처럼, 그 시간이 예수 탄생 후 정확히 34년 정도 지난 시점에 일어났던 고려 시대의 사건이라는 것이고, 비록 역사가들은 자연계 속에서 물이 빨갛게 변하였다는 자연계의 이상 현상으로 표현하여 기록했지만, 이것은 실제의 역사 속에 일어났던 '종교적인' 사건을 직접 표현하지 못하고, 예수 죽음의 '피흘림' 사건을 우회적으로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더우기 그 달(月)이 4월달로써, 예수께서 죽으신 유월절 날짜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22장 1-9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가까우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책으로 죽일꼬 연구하니 이는 저희가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줄 방책을 의논하매
저희가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여짜오되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필자가 더욱 그 고려사절요에 기록된, 당시 고려 시대 역사가의 기록, 즉, 물이 빨간색으로 변했다는 기록을 예수의 죽음, 즉 '피'를 부른 종교적인 죽음을 나타낸 역사가의 함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 것은, 그 후에 7년이 지나는 시점에서 나타난 고려시대 일반 백성의 생활을 통해 보이는 사회의 현상들, 즉, 예수께서 죽으시고 형성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처럼 보이는 현상들이 이어지는 고려사절요 기록에 나타나는 것이다.
戊辰十九年 宋 開寶元年,遼 應曆十八年 무진 19년(968), 송 개보(開寶) 원년ㆍ요 응력 18년
夏五月,城威化鎭。○是歲,創弘化,遊巖三歸等寺,王,信讒多殺,內懷疑懼,欲除罪業,廣設齋會,無賴之徒,詐爲出家,以求飽飫,丐乞者,坌至求食,或以餠餌米豆柴炭,施與京外道路,不可勝數,列置放生所,就傍近寺院,開演佛經,禁斷屠殺,至於內膳,亦買市廛以進。
여름 5월에 위화진(威化鎭 평북 운산(雲山))에 성을 쌓았다. ○ 이해에 홍화사(弘化寺)ㆍ유암사(遊巖寺)ㆍ삼귀사(三歸寺) 등 절을 세웠다. 승 혜거로 국사를 삼고, 탄문으로 왕사를 삼았다. 왕이 참소를 믿어 사람을 많이 죽였으므로 마음속으로 의심과 두려움을 품어 죄업을 제거하고자 재회(齋會)를 널리 베푸니, 무뢰배들이 거짓으로 중이 되어 배불리 먹기를 구하고, 구걸하는 자가 모여들어 먹을 것을 찾으며, 더러 떡ㆍ미두(米豆)ㆍ시탄(柴炭)을 서울과 지방의 길가는 사람에게 주기도 하는데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방생소(放生所)를 줄지어 벌여 두고 부근의 가까운 절에 나아가 불경(佛經)을 개연(開演)하고 도살을 하지 않으니, 내선(內膳)을 시전에서 사다가 올리게까지 되었다.
위의 기록은 광종 19년, 즉, 예수 죽음 이후 7년에 나타난 고려 사회의 사건들을 간략히 기록한 것이다. 이 기록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예수 죽음 후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모습과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즉 당시에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활동과 비슷한 이런 일들이 고려 광종 19년에 사회에 만연히 퍼졌고, 그것이 역사서에 기록이 될 정도로 특징적이었다는 것이다. 단지 차이점은, 불교(佛敎)라 기록된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기독교(基督敎)를 지칭함이요, '중'이라 함(詐爲出家)은 바로 집을 떠나서 복음을 전했던 제자들을 포함한 '성도(聖徒)'들을 말하는 것이고, 불경(佛經)이라 함은 당시의 구약 율법과 정리되지 않은 채 여기 저기 산재되어 있던 성경(聖經)을 지칭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후부터 고려 4대 임금 광종은 양주(楊州)에 관심을 많이 두고, 그 곳에 여러개의 사원(절)을 세웠는데, 그 양주(楊州)는 후에 11대 왕 문종(文宗)에 의해서 고려의 삼경(三京) 중에 하나인 남경(南京)으로 승격된다. 이 곳이 후에 근대 조선의 수도 한양(漢陽)이므로, 결국 백제의 한성 수도인 위례성(위라암)과 동일한 곳이고, 한국의 고대 삼국 중 백제 왕국이 성경 속의 유대 왕국으로 매치되므로, 백제의 수도 위례성은 유대 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과 동일한 지역이 되는 것이다.
즉, 광종(光宗)이 관심을 보였던 양주(楊州)라는 지역이 바로 유대 왕국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이었던 것이기에, 7년 전에 물이 빨간색으로 변했다고 하는 역사 기록과, 수 많은 백성들이 길거리에 나와 생활하며, 불경을 연설하고 듣던 고려 사회의 현상은 성경 속의 예수의 죽음과 그 이후에 형성된 초대 그리스도인의 활동을 표현한 것으로, 성경 역사가 한국사라는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필자로서는 그렇게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광종 12년 "여름 4월에, 큰 물이 져서 인가를 떠내려보냈고, 물이 붉은 빛깔로 변하였다"라는 고려사절요의 기록이, 그 당시 개성에 단지 홍수가 났고, 사람들의 집이 떠내려 갔고, 그럼으로써 수 많은 사람들이 많이 피를 흘리면서 죽었거나 해서, 아니면, 인간이 모르는 과학적인 어떤 작용으로 물이 붉게 변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흙탕물을 빨간물이라고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필자의 이 글의 견해에 대한 모든 판단을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첫댓글 역사나 플랫어스 진실 탐구 글을 쓸 마음의 여유가 없네요.. 생활이 매우 바쁘고 시간에 쫒기고 있어요.. 그래서 이런 시간에 예전 글을 스크랩 해왔습니다. 좋은 날들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