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5 주일설교
두려워하지 말고 소동을 일으키라
사도행전 19:23~32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것 한 가지는 세상에 복음이 전해지면 사람들이 서로서로 양보하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하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고 오해이며 예수님의 말씀과도 맞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잡혀가서 재판을 받고 채찍질 당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8절). 하지만 그런 억울한 재판과 환난을 끝까지 견디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22절).
덧붙여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하셨습니다(34절). 그래서 가족이 서로 원수가 되어 싸우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보다 가족을 더 사랑하면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하셨습니다(37절).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우리가 전도할 때 거기에 불화가 생기고 소동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가는 곳에 소동이 있는 것을 걱정할 일이 아니라 소동이 없는 것을 걱정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 가정, 우리 직장에 불신자가 많이 있는데 소동이 없다면 여러분이 제자로 살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제가 성탄절만 되면 마음이 불편한 문구가 하나 있습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문구입니다. 천사들은 그렇게 말한 적이 없거든요. ‘하나님께 영광’을 ‘하늘에 영광’으로 바꾸고 하나님과 성도 사이의 평화를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화로 바꾸는 것은 성경 왜곡이며 하나님 모독입니다. 복음이 전해지면 오히려 싸움이 벌어진다고 하셨는데 예수님의 탄생으로 땅에 평화가 온다는 말은 속임수입니다.
마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현상은 사도들의 전도 현장마다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의 전도 현장에서 매번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13장부터 19장까지, 1차 전도여행부터 3차 전도여행까지 바울 앞에는 소동이 없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2년간 머무르면서 두란노서원에서 매일 5시간씩 성경 말씀을 가르쳤더니 사람들이 말씀에 감동하여 삶이 달라졌습니다. 특히 마술쟁이들은 5만 드라크마의 마술책을 불살라버렸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바울이 전하는 복음 때문에 소동이 일어났습니다(23절). 그런데 이번 소동은 양상이 좀 다릅니다. 전에는 유대인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소동을 일으켰는데 이번에는 특이하게 이방인이 일으킨 소동이고 종교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가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당시 에베소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데미 신전이 있었습니다. 아데미 신전은 길이 137미터, 너비 69미터, 높이 18미터에 127개의 기둥이 있었습니다.
18미터이면 아파트 8층 높이입니다. BC 323년에 이런 건물은 온 세계 사람이 놀랄 규모입니다. 전 세계 많은 사람이 와서 아데미 신전을 참배하고 돌아갈 때는 신전 모형이나 아데미 신상을 사갑니다.
그래서 아데미 신상을 만들어 파는 은장색들은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소아시아 지역의 젊은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에베소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성경을 배우더니 사람들이 변하고 장사가 잘 안됩니다.
그래서 은장색 데메드리오는 동종업계 사람들을 모아 그들을 선동했습니다. 데메드리오의 주장은 바울 때문에 사업도 망하게 생겼고 아데미 신전도 무시당하게 생겼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데미 신전은 핑계이고 중요한 것은 돈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내가 가는 곳에서 나쁘게 돈을 버는 악한 사람들이 위기를 당하게 해야 합니다.
구한말 우리나라 야소교인은 1만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탐관오리들이 야소교인을 가장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야소교인들은 스스로 죄를 짓지도 않고 탐관오리의 죄도 용납하지 않고 상소하여 탄핵했기 때문입니다.
자기도 죄를 짓지 않고 남도 죄짓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제자의 모습입니다. 남이야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든 말든 나만 잘하면 된다는 말은 사탄의 목소리입니다. 탐관오리를 지적하려면 손해를 각오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손해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 보전해주시는 줄 믿습니다.
데메드리오에게 선동된 사람들은 이렇게 소리질렀습니다.
“메갈레 아르테미스 에페시온”(위대한 에페소의 아데미여)
“메갈레 아르테미스 에페시온”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그 소리에 온 시내가 들썩들썩했습니다.
오늘날도 무슬림들은 툭하면 이렇게 소리를 지릅니다.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 “알라후 아크바르”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초막절 기간동안 번제단을 돌면서 이렇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나 아도나이 호쉬아나”(여호와여 구하오니 이제 구원하소서)
우리나라 축구 응원단은 이렇게 소리를 지릅니다.
“대~한민국” “대~한민국”
CCC 대학생들은 100문 1답을 할 때 질문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외칩니다.
자, 여러분은 뭐라고 소리를 지릅니까?
사람이 뭐라고 소리치든지 분명한 이유나 알고 소리를 질러야 하는데 32절에는 이유도 모르고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여기서 태반(太半)은 헬라어 πλείων인데 ‘더 많은’을 뜻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유도 모르고 군중심리에 선동되어 2시간 넘게 “메갈레-아르테미스-에페시온”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왜냐하면, 군중은 뇌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군중 속에 들어가면 뇌 없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날도 이유도 모르고 선동되어 군중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전도사로 섬길 때 우리 교회의 한 자매가 석가탄신일에 군중 속에서 등을 들고 행진한 적이 있는데 이유도 모르고 따라갔다고 했습니다. 그랬던 자매가 예수님 믿고 교회에 나오게 되었으니 참 다행이죠.
2008년에는 MBC TV가 광우병의 위험성을 과장하고 전교조 교사들이 학생들을 선동하자 많은 사람이 광화문으로 몰려갔습니다. 그 당시에 미국 소고기를 먹느니 청산가리를 먹겠다고 말한 여배우도 있었습니다. 어떤 목사는 잘 몰라서 거길 다녀왔답니다. 그분은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우리 아들보다 못해요.
우리 아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 끓여도 죽지 않고, 얼려도 죽지 않고, 햇빛에 말려도 죽지 않는 그런 병균이 있다면 인류가 벌써 멸망했을 것입니다.” 오래지 않아서 광우병은 거짓 선동임이 밝혀졌지만, 신문기사에 의하면 미국 소고기 반대 시위로 발생한 경제적 손실이 무려 3조 7천 5백억 원이나 된다고 합니다.(법률신문 2009-08-31)
우리 하나님의 백성은 아무 말에도 선동되어서는 안 됩니다. 거짓말에 쉽게 선동되는 것, 이유도 모르고 군중 속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은 예수님 제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믿는 것이 무엇이며 왜 믿는지 분명하게 정립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이 나에게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물을 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벧전 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35~41절에 보면, 이유도 모르고 소리를 지르던 그 사람들이 서기장이 나가서 한 마디 말했더니 아무 소득 없이 흩어졌습니다. 37절에서 서기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이제 너희들이 이 소요사태에 대해 오히려 책망받을 위험이 있다.”
40절에서 책망받는다는 말은 헬라어로 ἐγκαλέω인데 고발당한다는 뜻입니다. 로마는 철저한 법의 나라였기에 무고죄와 명예훼손죄로 고발하면 도로 당할 수가 있습니다.
본문에는 예수님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서기관이 나서서 소요사태를 해결한 것이 사실은 성령님이 하신 것입니다. 마치 바사의 고레스 황제가 포로된 유다 백성을 돌려보낸 것처럼 서기관은 소요사태를 해결하고 잡혀온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돌려보내 주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적진 속에도 주님 종의 역할을 할 사람을 요소요소에 배치해 놓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서기관이 나서자 위험하고 심각했던 소요사태는 고무풍선에 바람 빠지듯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복음 전하다가 소동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강경하게 말해서 사람들이 싫어하고 충동이 생기고 평지풍파가 일어날까 봐 복음에 물타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WCC로 대표되는 에큐메니컬 진영은 독선적 복음을 주장하지 말고 사회와 화합하는 것이 선교라고 하는 비성경적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WCC에 반발하여 순수한 복음 전도를 주장하고 나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1970년 발표된 프랑크루르트 선언입니다. 선언문 가운데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 사이에 그리스도의 교회와 적그리스도 세력 간의 갈등이 점점 더 절정에 이를 것이다.”
설교 서두에 이야기한 대로 우리가 세상에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이 서로서로 화해하고 세상에 평화가 올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과도 맞지 않습니다. 우리가 소동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나 타 종교인이 반발하여 일으키는 소동이지만 결과적으로 복음 전도 현장에는 소동이 일어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도하는 것은 소동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두려워하지 말고 소동을 일으키라”입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첫째, 내가 전도해서 좋은 분위기를 깨고 소동이 일어나면 어쩌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미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마태복음 10장에서 예고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소동이 일어나는 것이 정상입니다. 오히려 여러분의 친구 중에, 여러분의 직장 동료 중에, 가문에 불신자가 많이 있는데 아무 소동도 없고 반발도 없고 평화롭다면 그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을 걱정해야 합니다.
둘째, 이렇게 소동이 일어나서 내가 피해를 보거나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입니다. 여러분도 소동의 한복판에 있을 때 적진 가운데에 주님이 준비해 놓으신 손길이 등장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에베소 소동에는 서기관이 나가서 한마디 했더니 군중이 해산했고 잡혀갔던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는 풀려났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 여러분은 복음을 무리하게 전하다가 소동이 일어날까 봐 두려워하지 말고 소동을 일으키는 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