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주택을 내려놓다 / 최종호
2월 하순, 정보지에 주말 주택을 판다고 올리자마자 연락이 왔다. “담양에 집 내놓은 분 맞으시죠?” 50대로 들리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근무 중이라 퇴근하면 보러 가겠단다. 한참 지나서 다시 전화가 왔다. 집을 보러 왔는데 집 안이 궁금하단다. 비밀번호를 가르쳐 주면서 나올 때 문단속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녀는 얼마나 깎아 줄 수 있는지를 묻고 오후에 계약하잔다. 오랜만에 배드민턴을 치러 간 아내에게 전화했더니 “그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비싸게 내놓을 것인데.”라며 아쉬워했다.
점심을 먹고 아내와 집을 나섰다. 계약하겠다고 한 사람이 가르쳐준 복덕방은 승용차로 15분 남짓 걸리는 곳에 있었다. 서로 잘 아는 사이라서 이곳으로 오라고 한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고 남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담양 쪽에 시골집을 구해서 살고 싶었는데 아내가 적당한 곳을 찾은 것 같다고 입을 뗀다. 그러면서 논을 담보로 이미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는데 추가로 얼마나 더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염려했다.
책상 주변을 서성이던 공인중개사가 200만원을 깎아 주면 안 되겠냐고 했다. 지인이 부탁을 하더란다. 더 이상 어렵다고 했더니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 사유지라 땅 주인이 문제 삼으면 곤란해질 수 있겠는데요?”라고 한다. 지금 앞집에 사는 사람이 내놓은 땅이라 그럴 염려가 없다고 했지만 나중에 어떤 일이 생길지 아냐며 말에 가시가 있었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어색하고 서먹해졌다. 당사자도 더 자세히 알아보고 연락하겠단다. 삼자가 훼방을 놓은 것 같아 불쾌했지만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비록 계약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곧 팔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집을 보러 오겠다는 전화가 날마다 왔다. 2주 남짓 평균 두세 명에게. 홍보지에 상세 주소가 있건만 집은 어떻게 찾아가고, 팔려는 이유는 무엇이며,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는지 등. 묻는 내용도 여러 가지다. 연락도 없이 왔다 간 사람도 많았다. 광고가 나온 지 사나흘이 지났을 무렵 전원주택을 소개하는 유튜버한테도 전화가 왔다. 영상으로 촬영해도 되는지 물었다. 집주인에게는 손해가 전혀 없으니 걱정하지 말란다.
집을 보고 난 사람들의 반응도 천차만별이었다. ‘골목길이 좁아서 큰 승용차가 드나들기에는 부담스럽다. 땅 모양이 직사각형이 아니라서 이상하다. 살림하기에는 집이 너무 작다. 전망은 좋은데 지형으로 보아 집을 서북쪽으로 지었어야 했다.’ 앉아서 빌려주고 서서 받는다더니 내가 꼭 그 꼴이었다. 이것저것 고민 없이 덜컥 집을 샀던 나와는 달리, 너무 꼼꼼하고 따지는 게 많았다. 광주에서 15분 거리라 접근성이 좋고, 송순이 노래한 ‘면앙정’이 마을 입구에 있어서 터가 좋은 건 생각하지 않는 눈치다. 게다가 너른 잔디밭 마당에서 멀리 병풍산과 삼인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시원한 눈맛도 일품인데 말이다. 어떤 사람은 집이 생각보다 크고 잔디밭도 넓다며 가족과 의논해서 저녁에 알려 주겠다며 기대하게 만들어 놓고 함흥차사이다. 날짜가 점점 지나가자 조급한 마음도 들었다.
광고지에 나온 지 11일 만에 귀가 번쩍 뜨이는 전화가 왔다. 퇴직자인데 아내만 좋다고 하면 사겠단다. 자신은 이미 다녀갔다고 했다. 다음 날 내가 결혼식에 참석할 예정이어서 이른 시각에 만나기로 했다. 아내는 여자와 같이 다니며 설명했다.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남자는 밖에 서서 가격을 흥정했다. 1억 원이 넘으면 1가구 3주택이 된다며 가격 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 날 오전에 전화가 왔다. 9천 5백 이상 줄 수가 없다며 수요일까지 알려달라는 것이다. 하한선으로 제시한 금액보다 300만원이 낮다. 작년에 마을에서 거래된 시세대로 땅값만 받으려고 내놓은 금액인데 고민되었다. 사실 오래 된 집을 고치고 보강토로 축대를 쌓는 데 적지 않은 돈이 들었다. 잔디를 심고, 장독대를 만들고, 입구를 시멘트로 포장하고, 보일러실도 막아서 별다른 노력과 돈을 들이지 않고도 텃밭을 가꾸며 전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더군다나 잔디 깎기도 새로 장만해 놓은 터다. 그렇다고 덥석 내주면 후회할 것 같았다. 수요일까지 기다릴까 하다가 다음 날 전화했다. 서로 반씩 양보하면 좋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수락했다. 일순간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다음 날 법무사 사무실에서 계약하기로 했다. 한데 계약하기 전에 집을 다시 한 번 둘러보겠다며 내게 올 수 있냐고 한다. 신중하게 선택하려는 것 같았다. 급하게 갔더니 두 분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가 “이 집을 사도 후회하지 않겠지요?”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눈치다. 집을 나서려는데 유튜버에게 보러갈 사람이 생겼다고 전화가 왔으나 미안했다. 드론까지 동원해 멋지게 촬영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일찍 완성하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길로 사무실에 간 뒤, 일사천리로 명의 변경이 진행되었다. 시원섭섭하면서도 허전한 마음이 밀려왔다.
이 집을 산 것은 8년 6개월 전이다. 텃밭을 가꾸고 싶은 마음에 조금 무리해서 장만했다. 3년쯤 지내보고 계속 놓아 둘 것인지 결정하자고 한 것이 여기까지 왔다. 집의 경계 문제로 아랫집과 갈등도 있었다. 3년 전, 큰비가 온 뒤 언덕이 무너져서 축대를 쌓느라고 한동안 고생했다. 보강토에서 자갈을 파내고 나무를 심느라, 파낸 잔디를 다시 고르느라, 텃밭의 돌을 고르고 평평하게 하느라 많이 힘들었다. 아내는 꽃밭을 가꾸고, 장독대를 다듬고, 친구를 불러 김장도 여러 번 했다. ‘소유는 잠재적 고통’이라 할 만큼 말도, 탈도 많았다. 함께 배추를 심고, 막걸리와 차를 나눠 마시던 이웃과도 헤어져야 한다. 이제 모든 것을 정리하니 아내가 가장 아쉬워한다. 깜순이와 미미의 놀이터였기에 녀석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