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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12)
예수 무덤 성당
(Basilica of the Holy Sepulchre)
예수 부활 성당, 성묘 교회
1. 소개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있는 성당이다. 가톨릭·정교회와 더불어 오리엔트 정교회인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시리아 정교회·콥트 정교회·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를 아울러 기독교 교회 6군데의 공동 성지이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하고 무덤에 매장되었다가 3일만에 부활했다는 종교적 사건의 무대이다.
약 325년경에 콘스탄티누스 1세의 모친 플라비아 율리아 헬레나가 성지순례를 하다가 발견한 예수의 빈무덤 자리이다. 326년경 콘스탄티누스 1세가 예수의 무덤자리라 추정되는 곳에 교회를 짓게 하였다. 이후 파괴와 재건축을 거쳐 오늘날까지 1600여 년이 넘도록 교파를 가리지 않고 세계 각지의 기독교인 순례자들이 끊이지 않는 성지순례의 단골코스가 되었다. 또한 부활절 지정에 아무런 점화 장치가 없는데도 홰에 저절로 불이 붙는 성령의 불 현상이 일어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장소라는 인간구원 명성에 걸맞지 않게 낡은 데다가 주변은 시장과 모스크로 둘러싸여 부지도 협소한 상태이다. 매년 수백만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성 베드로 대성당이나 엘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과 비교하면 초라하게 보일 정도인데, 이는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예루살렘을 놓고 공방전을 반복하면서 예루살렘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예수 무덤 성당의 운명도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십자군 전쟁 당시 기독교 세력에게 점령된 예루살렘을 1192년 아이유브 왕조의 술탄 살라흐 앗 딘이 다시 점령했을 때, 살라흐 앗 딘은 자신과 가까운 무슬림인 조우데흐 가문과 누쎄이베흐 가문에 각각 예수 무덤 성당의 열쇠와 문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겨 교회를 보호했다. 특히 누쎄이베흐 가문은 637년에 2대 정통 칼리파 우마르의 통치 때부터 예수 무덤 성당의 관리인 보직을 맡고 있었던 가문이었다. 지금도 이들 두 가문이 예수 무덤 성당의 관리를 맡고 있으며, 매일 두 번, 조우데흐 가문의 일원이 열쇠를 문으로 가져오면 누쎄이베흐 가문의 일원이 문을 한 번은 잠그고 한 번은 연다.
2. 종파간 분할 관리
여길 두고 각 기독교계가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는데, 1852년에 당시 예루살렘을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에서 기독교 종파별로 예수 무덤 성당의 구역을 나누어 맡게 하져 지금까지 이어진다. 개신교 교단은 여기서 구역을 배정받지 못했는데, 개신교 전체를 대표할 만한 교단도 없고 당시 예루살렘에서 개신교인의 수가 적었기 때문에 고려대상에서 빠져버린 것. 여기에는 가톨릭과의 갈등 문제 때문에 처음부터 예수 무덤 성당을 인정하기 꺼린 부분도 있다. 아래에 언급할 정원 무덤을 개신교 측에서 주장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다만 이는 공식적인 교단의 입장이고 일반 개신교 신자들은 다른 기독교인들처럼 성지순례로 방문하는 사례가 많다.
이런 종파 문제 때문에 어느 부분이 낡아 고치려고 해도 다른 종파 구역을 넘어서기에 제대로 고치지도 못하는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이게 뭔 말인가 하면 가톨릭은 대문을 책임지고 창문은 시리아 정교회가, 창문 난간은 그리스 정교회가, 이렇게 나뉘서 관리하다보니 창문이 낡아서 고치려고 해도 난간에 시리아 정교회인들이 사다리를 두는 걸 그리스 정교회 측에서 거부한다는 거다. 실제로 아래의 건축 항목에 나오듯이 이런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150여 년 동안 사다리를 방치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성지에서 각 기독교 종파의 분열과 갈등을 실감할 수 있다. 기 들릴(Guy Delisle)이 그린 만화 "굿모닝 예루살렘"을 보면 이스라엘에서 이 건물 안에서도 각 종파들이 뒤엉켜 싸움질하는 게 나와 작가 자신이 '내가 무신론자라서 다행이다.'며 비꼬았다. 이를 두고 '오스만판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 비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이제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게, 기독교 종파들의 이 교회 소유권 분쟁은 이 구역 배분이 일어나기 전인 17세기 오스만 제국을 둘러본 프랑스 왕국 대사도 참 난감한 문제라고 우려할 정도였다. 정교회에게 넘겨주면 가톨릭 나라들이 이걸 빌미로 전쟁을 벌일지도 모른다고 했으니.
Greek Orthodox(정교회),
Latins (Roman Catholic, 가톨릭),
Armenians(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Copts(콥트 정교회),
Ethiopians(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
Syrians (Jacobites)시리아 정교회,
Common property of Greeks, Latins, and Armenians
(정교회·가톨릭·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공동)
가톨릭은 예수 무덤 성당에서 프란치스코 1회의 한 분파인 작은형제회를 가톨릭의 대표자로 삼았다. 예루살렘 작은형제회에서 운영하는 웹사이트에서 성당의 모습을 가상현실로 체험할 수 있다.
3. 2017년 보수공사
2017년 예수 무덤 성당을 보수공사 하면서 예수 무덤 성당의 예수의 빈 무덤(시신 안치대) 부분을 수 세기 만에 다시 열고 보수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먼저 12세기 십자군 시대에 안치된 윗 덮개 석판이 발견되었고, 그 아래의 석판은 연대측정 결과 서기 300년대 콘스탄티누스 1세 시절의 것임이 밝혀졌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을 발견해 예수 무덤 성당의 시초를 놓았다'는 기록이 사실로 증명된 것이다. 동굴을 깎아 만든 선반 형태와 장식은 1세기 예루살렘 유대인 부유층의 무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형태라고 한다. 성경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의 무덤자리는 산헤드린 공의회원이자 부자였던 아리마태아의 요셉이 준비한 무덤이었다. 복음서의 기록과 발굴 기록이 일치하는 것. 또한 이 작업을 지휘한 아테네 국립 공과대학의 안토니아 모로폴루 박사에 따르면, 동굴 서쪽 벽면에서 채집한 가장 오래된 회반죽 표본들은 서기 4세기의 것으로 측정되었는데, 이는 기독교화 직후의 로마시대에 예수 무덤 성당의 건설작업이 진행됐음을 보여주는 추가 증거라고 한다. 박사와 동행한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는 '석판이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명령으로 4세기 중반에 설치됐을 것임을 보여 주는 새 연구 결과는 성스러운 유적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환영할 만한 놀라움을 가져다준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를 취재한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에서는 예수 무덤 성당 무덤 보수작업 과정에서 전문가들이 장비를 동원해 성묘 내부를 스캔했는데, 예수의 무덤 부분, 즉 예수가 안치되어 3일간 누웠던 무덤 위쪽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잘 작동되던 장비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멈춰버리는 신기한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방송 언급에 따르면 이는 과학자들도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 14처 그리스도의 무덤, 안에는 천사의 방을 지나 예수님의 무덤이 있는 곳
▲ 독서대가 놓여 있는 천사의 방
▲ 그리스도 무덤 위 제대
4. 건축
1. Main entrance - 주 입구
2. Steps to Calvary - 골고타(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3. Chapel of the Franks
4. Chapel of the Nailing to the Cross - 십자가에 못 박힘 경당
5. Chapel of the Crucifixion - 십자가에서 돌아가심 경당
6. Chapel of Our Lady of Sorrows - 성모통고 경당
7. Silver disc where cross stood - 십자가를 세웠던 바위의 은반
8. Rock of Calvary - 골고타
9. Steps down from Calvary - 골고타(2층)에서 내려오는 계단
10. Stone of Anointing - 성유석
11. Greek mosaic
12. Rotunda - 원형 홀, 아나스타시스(부활)
13. Edicule -
14. Chapel of the Angel - 천사들의 경당
15. Tomb chamber - 예수님 무덤 제대
16. Katholikon - 카톨리콘 경당(아담의 배꼽)
17. Chaple of the Apparition - 주님 발현 경당
18. Chaple of St. Helena - 헬레나 경당
19. Chaple of the Finding of the Cross - 십자가 발견 경당
20. Immoveable ladder - 부동의 사다리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이스라엘 성지 한국대표부
4.1. 정면과 중앙부
■ 정면(Facade)
예수 무덤 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앞에는 작은 공터가 있다. 일반적인 성당의 정면에는 넓은 광장이 있는 것처럼 창건 당시에는 예수 무덤 성당도 지금보다 공터가 더 넓었지만, 7세기에 예루살렘을 정복한 제2대 칼리파 우마르가 교회 앞 광장에서 처음으로 알라에게 예배드린 것을 기념하기 위해 10세기에 들어와 무슬림들이 그 자리에 모스크를 지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협소한 공간이 되고 말았다.
▲ 거룩한 무덤 교회의 주요 출입구,
정면 1층 아치문 2개, 2층 아치창 2개, 오른쪽 아치창 아래 부동의 사다리(Immovable Ladder)
왼쪽 종탑
▲ 부동의 사다리. 주현관에서 본 확대한 사진
교회 정면의 1층에는 아치문 2개가, 2층에는 아치창 2개가 있는데 1층의 아치문 중 오른쪽에 있는 문은 십자군 시대 군주들의 무덤이 있는 지하실로 통하는 문이지만 벽으로 폐쇄되었으며, 왼쪽에 있는 문은 교회를 출입할 때 사용하는 정문이다. 자세히 보면 1층의 아치가 2층의 아치보다 끝이 약간 뾰족하게 올라간 첨두식으로 되어 있다. 2층 오른쪽 아치창 앞에는 나무 사다리 하나가 외벽에 걸쳐져 있는데, 이 사다리를 치우자는 종파간의 합의가 없었기에 1854년 이래 지금까지 150년 넘도록 그 자리를 지켜 이른바 '부동의 사다리(Immovable Ladder)'라 불린다. 청소와 수리를 위해 잠시 안으로 옮겨진 적은 있다. 198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암살 시도사건 1달 후에 이 사다리를 치우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저지당했고, 1997년에 사다리가 사라졌다가 몇 주 뒤에 되돌아온 사건도 있었다. 2009년에도 종탑의 비계를 치우기 위해 잠깐 사용된 적이 있다.
교회의 정면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종탑이 있다. 십자군 시절인 1160년에 세워진 이 종탑은 1545년에 지진으로 붕괴되었다가 재건하면서 돔 지붕이 사각뿔 지붕으로 바뀌고 높이도 낮아졌다.
■ 성유석(聖油石, The Stone of Anointing)/도유석(塗油石, The Stone of Unction)
정면의 현관으로 들어가면 바닥에 닳아서 윤이 나는 붉은색 대리석 하나가 깔려 있는데, 이 판석은 예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서 이곳에 눕히고 향유를 바르며 염한 성유석으로, 성유석의 뒷배경을 장식하는 모자이크 성화에도 그 내용을 묘사하였다. 성유석 네 귀퉁이에는 촛대 1개씩 4개를 세웠다. 성유석 윗부분을 가로질러 걸린 등잔 8개는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콥트 정교회·정교회·가톨릭에서 봉헌한 것이다. 사실 이 돌 위에서 예수의 시신을 염했다는 전승은 십자군 전쟁 이후부터 알려진 것으로, 오늘날 볼 수 있는 성유석은 1810년에 깔았다. 그럼에도 종교적인 의미가 크기 때문에 성직자들이 성유석 앞에서 예배를 드리며 뿌리는 성유를 손수건이나 천에 적셔 가져가려는 순례자들로 항상 붐빈다.
▲ 13처 성유석(聖油石)
■ 골고타(Golgotha)/ 갈바리(Calvary)
예루살렘 성벽 바깥에 있는 언덕으로,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된 곳이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과거부터 예수 무덤 성당이 골고타 언덕 위에 세워졌다는 전승이 내려와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름은 그리스어 '크라니온(Κρανίου)'에서 라틴어 '칼바리오(Calvario)'로, 영어 '캘버리(Calvary)'로 변화했는데 모두 해골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한국의 개신교에서는 '갈보리'로 음역된다. 한국 가톨릭은 현재는 아람어의 골고타라는 음역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지만 과거에는 라틴어를 따라 '갈바리오' 내지는 '갈바리아'라는 음역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언덕의 지형이 해골의 모양과 비슷했거나, 그곳에 공동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정교회가 관할하는 십자가 못 제대가 있는데, 그 아래에 있는 구멍을 통해 십자가가 세워졌던 홈을 볼 수 있다.
▲ 12처, 그리스 정교회에서 소유하고 있는 골고타 언덕의 꼭대기에 자리한 (예수의 십자가 수난) 경당
‘골고타’는 아람어로 ‘굴골타’, 곧 ‘해골터’를 뜻한다(예수님 시대에 통용되던 언어는 아람어였다). 당시 골고타는 예루살렘 성 바깥이었다. 도성 안에서는 형을 집행할 수 없기에, 죄인들은 성 밖으로 끌려 나갔다(레위 24,14; 1열왕 21,13 등 참조). 십자가 형은 로마인들이 집행한 형벌 가운데 가장 야만스럽고 잔인한 종류로, 형틀에 매달린 죄인은 2~3일에 걸쳐 서서히 죽는다. 형틀 위에 늘어진 몸이 호흡기를 압박하면서 질식사한다. 사람의 한계를 시험하는 이 지독한 고통 때문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그 인간적인 번민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예수님이 당일 운명하시자, 빌라도가 놀란다(마르 15,44). 로마인들은 사망한 죄인을 바닥에 방치하여 새나 들짐승의 먹이가 되게 했으나, 특별히 매장 허가를 내리는 경우도 있었다.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빌라도에게 청하여 주님의 시신을 거두었는데(마르 15,43; 루카 23,50-51), 그는 명망 있는 의회 의원이었다고 한다. 빌라도의 허가까지 얻어낸 것으로 보아, 최고 의회인 ‘산헤드린’의 의원이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반역죄로 처형된 이의 시신을 청하는 행위는 공범자 또는 추종자라는 의혹을 일으킬 수 있으나, 산헤드린 의원이라는 위상이 요셉의 신변을 보호해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모세오경 율법에 따르면, 나무에 매달리는 형벌로 죽은 이를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신명 21,22-23). 그날 바로 묻어야 한다. 그래서 요셉은 바위를 깎아 만든 새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모신 후, 돌을 굴려 입구를 막았다. 구약 시대부터 이스라엘이 지켜온 매장 방식은 매우 독특했다. 가난한 이들은 그냥 땅에 묻지만, 부유층은 대부분 가족무덤으로 만들었다. 큰 동굴에 방을 여럿 만들고, 방마다 돌침대들을 두었다. 돌침대 위에 망자를 누인 후, 살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냄새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또는 유물이 도굴되지 않도록, 입구는 돌을 굴려 막았다. 일 년 이상의 시간이 흘러 뼈만 남으면, 돌침대 아래쪽 구덩이에 망자들의 뼈를 차곡차곡 모았다. 그래서 가족들의 뼈가 한 구덩이 안에 모두 모이게 되므로, 성경에는 ‘조상과 함께 잠든다’는 표현도 생겨났다(1열왕 2,10 등). 그러나 신약 시대에 접어들면서 지중해 지방 전역에 부활에 대한 믿음이 강해지게 된다. 그래서 뼈를 한데 모으지 않고, 각자의 부활을 기원하며 따로 보관하는 상자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시신에는 향료나 몰약을 발랐는데, 주검에서 나는 악취를 줄이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여인들이 새벽에 예수님 무덤으로 가면서 항료를 준비한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마르 16,2). 그곳에서 여인들은 빈 무덤만 발견하고 당황했지만, 이것은 주님의 부활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무덤은, 서기 2세기에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아프로디테 신전을 세운 후, 외형이 파괴되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은 점차 넓어져 골고타가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으며, 4세기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무덤 터를 다시 찾아 성전을 봉헌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이 죽음 이긴 부활을 지향하는 것처럼, 골고타 언덕도 이제는 해골터로 외면받는 바깥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중심으로 탈바꿈했다. 사실 예수님 죽음의 의미를 깨닫고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겠다는 고백과 같다. 그러므로 공동선을 위해 희생을 감내할 줄 알게 되는 그리스도인의 용기 또한, 주님 부활과 하느님 나라의 존재에 대한 또 다른 증거가 되어 줄 것이다. |
5. 예수의 무덤에 대한 다른 가설
이곳 외에 예수가 죽어서 묻힌 장소가 다른 곳이라는 주장도 있다. 1883년 영국의 찰스 조지 고든이 예루살렘 성벽 바깥의 정원 무덤을 발굴했는데 이곳이 신약성서에 나오는 예수의 무덤에 대한 묘사와 매우 비슷하다는 것.
개신교 측에서는 예수 무덤 성당의 가치를 무시하지는 않지만 이 정원 무덤이 좀더 예수와 연관된 곳이라고 보고 있다. 현재는 정원 무덤의 관리를 성공회에서 맡고 있다. 성공회 측에서 정원 앞에 "예수께서는 여기에 묻혀계시지 않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라는 문구를 적어두었다고. 하지만, 현재의 일반적으로는 이 정원이 예수의 무덤이 아니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에 대한 결정적인 고고학적 및 역사적인 근거로는 이 정원이 무덤이라 주장되는 근거인 도시를 둘러싼 성벽부터가 그리스도의 시대에 지어진 것이 아닌 훨씬 후대인 오스만 술탄 술레이만 1세 때에 지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 Domes and cropped bell tower of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 Bell tower of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 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from above, huddled in by surrounding buildings
▲ Steps down to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from St Helena Rd entrance
▲ Entrance to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from Souk el-Dabbagha
▲ Parvis (courtyard) of 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 Only entrance into 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 Climbing steps to Calvary
▲ Mosaic in Catholic Chapel of the Nailing to the Cross
▲ Twelfth Station: Greek Orthodox Chapel of the Crucifixion
▲ Close-up of crucifix in Chapel of the Crucifixion
▲ Pilgrims queue to touch rock of Calvary in Chapel of the Crucifixion
▲ Disc marking traditional place where Jesus' cross stood, in Chapel of the Crucifixion
▲ Looking from Calvary to the dome over the Katholikon
▲ Catholic altar of Our Lady of Sorrows
▲ Fissure in rock of Calvary, in Chapel of the Crucifixion
▲ Steps down from the floor of Calvary
▲ Christ taken down from the cross, detail of mosaic at the Stone of Anointing
▲ Christ carried to tomb, detail of mosaic at Stone of Anointing
▲ Christ laid out for anointing, detail of mosaic at Stone of Anointing
▲ Pilgrims at the Stone of Anointing
▲ Stone of Anointing from above
▲ The Edicule after restoration in 2017
▲ Holy Thursday Eucharist at the Tomb of Jesus
▲ Back view of edicule over the Tomb of Christ
▲ Dome over the Tomb of Christ
▲ Light from opening in dome above Tomb of Christ
▲ Edicule over Tomb of Christ with doors shut
▲ Front of edicule over the Tomb of Christ
▲ Visitors entering the Tomb of Christ
▲ Entrance to the Chapel of the Angel, with the tomb chamber beyond the pedestal with candles
▲ Rolling-stone tomb similar to the one in which Jesus was buried
▲ Figure of the crucified Christ in the tomb on Good Friday
▲ Inside the Tomb of Christ
▲ Close-up of the split in the marble slab over the bench where Jesus' body lay
▲ Decorations inside the Tomb of Christ
▲ Pilgrim leaving the tomb chamber
▲ Lamps and medallions on the front of the Tomb of Christ
▲ The resurrected Christ, a painting hanging above the entrance to the edicule
▲ Katholikon (or Greek choir), the central worship space in 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 Greek Orthodox clergy at altar in the Katholikon
▲ Icon of Jesus in dome of the Katholicon
▲ Chapel of the Apparition of Jesus to his Mother
▲ Steps down to Chapel of St Helena and Chapel of the Finding of the Cross
▲ Visitors in Chapel of St Vartan
▲ Drawing of a ship, possibly by a pilgrim, in Chapel of St Vartan
▲ Chapel of the Finding of the Cross
▲ Statue of St Helena with the True Cross, in Chapel of the Finding of the Cross
▲ Rooftop view of Church of the Holy Sepulchre's Katholikon dome
▲ Ethiopian Orthodox monks' village on roof of 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 Members of Ethiopian Orthodox community at lunch on roof of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 Dome of the Katholikon and dome of Chapel of St Helena (right), from roof of 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 Sword, spurs and cross of Godfrey of Bouillon, Crusader who became first ruler of Kingdom of Jerusalem in 1099, in Latin sacristy in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 Immovable ladder on ledge over entrance to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 The domes and cropped bell tower of 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 Key to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Opening the Doors of 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https://youtu.be/4N39r7bTezg
This ceremony is performed for the last couple of hundreds of years since Salah A-Din captured Jerusalem and the Christian could not decided by themselves who will preform this ceremony of opening the doors of the holies church for Christian all over the world.
Mr. Wajeeh from the Nuseibeh family is the one who knock the doors and waiting for the priests inside the church to hand him a ladder to reach the upper lock. After he unlocks the doors he returns the key to Mr. Adeeb Jawad from the Joudeh family who keeps the key until the next time the doors are opened.
▲ Chapel of St Helena, now dedicated to St Gregory the Illuminator, with floor restored in 2017
▲ Front of edicule over the Tomb of Christ
▲ Side of the edicule, showing reddish-cream marble restored in 2017
▲ Top of edicule, below the dome's starburst of 12 rays of light representing the apostles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천주교 광주대교구
남동 5.18 기념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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