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소 혼욕
박경선
제 이야기 좀 들어보실래요? 여러분도 아시면 유용한 정보가 될 것 같아서요. 이미 사용해 본 분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그러니 혼자서 밥을 먹으면 뭐라고 하나요. 혼밥이라 하지요? 혼자서 술을 마시면 뭐라고 하나요. 혼술이라 하지요? 남녀가 함께 목욕하면 혼욕(混浴)이라 하지만, 혼자서 목욕하면 뭐라고 하나요? 저는 이런 경우를 혼욕이라 할게요.
혼자서 밥을 먹거나 혼자서 술을 마실 때 특별한 수저나 컵을 준비할 필요가 있나요? 그런데 혼자서 목욕하려면 특별히 준비해야 하는 것이 있어요. 그것이 다이소 목욕용품 판매대에 있더군요. 퀴즈로 나갑니다. 무엇일까요? 그 물건은 무심코 지나치는 사람들 눈에는 뜨이지 않는 물건이었어요. 남편과 저는 무심코 지나는데 깔끔한 차림새의 한 노파가 우리에게 묻더군요.
“이 솔이 혼자 목욕하는데 쓰는 땟솔 맞소?”
우리는 그 할머니가 발견해서 치든, 구둣솔 끝에 긴 막대기가 달린 모양의 땟솔을 처음 보았어요. 그 막대기를 등 뒤로 넘겨 때를 밀면 혼자서도 등을 쉽게 쓰윽 쓰윽 밀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어요.
“어머 타올이 아니고 솔이 막대기로 연결된 땟솔이네요.”
제가 감탄하자 할머니가 물었어요.
“손목시계 찬 것 보니 청와대를 갔다 왔구먼. 이 땟솔 중에 어느 게 털이 연하고 더 부드러운지 좀 봐주오.”
‘청와대라니?’ 저는 깜짝 놀라 제 손목시계를 보았어요. 퇴임 때 대통령께 받은 시계를 알아보는 걸 보면 그 할머니도 국록을 먹고 사신 분인 것 같았어요. 무심코 차고 다닌 시계 때문에 할머니께 꼬투리가 잡혀, 더 부드러운 땟솔을 찾아주어야먄 할 의무로 이것저것 정성껏 만져보았어요. 그러나 아무리 정성껏 만져 봐도 똑같은 땟솔이었어요.
“저희가 보기엔 모두 똑같이 연한 솔인데요? 공장에서 생산된 물건이라….”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남편이 이렇게 대답하자 할머니는 성에 차지 않는 듯 툴툴거리더군요.
“그렇잖아. 더 보드라운 게 있을 게야.”
할머니는 아무리 공장에서 생산된 똑같은 제품이라도 할아버지 손길처럼 더 보드라운 게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계속 고르고 계셨어요. 저는 이런 할머니를 응원하고 싶어 한동안 할머니 뒤에 서 있으며 이 막대기 땟솔을 고안해 낸 발명가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어요. 이 제품은 혼자 사는 노인의 목욕을 돕기 위한 애정이 없었다면 고안해 낼 수 없는 물건이었어요. 그렇잖아요? 소재에 대한 생각도 일반적인 범주를 뛰어넘었잖아요. 이태리 천 같은 까칠까칠한 타올만 땟솔로 사용했던 우리들의 관념을 깨고 부드러운 털을 끼워서 손잡이를 길게 만든 등밀이 솔이잖아요? 등 밀어주는 사람이 없을 때 쉽게 등을 밀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든 발명가의 기발한 생각 전환에 감탄하며, 우리도 그 구둣솔처럼 생긴 땟솔을 하나 사 왔어요. 목욕하면서 등만 아니라 온몸을 그 솔로 밀어봤어요. 어땠냐구요? 천보다 더 시원하고, 등 밀어줄 누가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패를 끼치지 않고 내 손으로 내 등을 밀 수 있어 너무 좋았어요.
‘아 이래서 사람들이 다이소에 자주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더군요.
가만히 보면 ‘다이소’에는 신기 방통, 편리한 아이디어 상품이 가성비 좋게 모여 있는 곳이더라고요. 한때,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로 불거진 일본 상품 불매운동 때 아성 다이소가 일본 기업이라는 오해를 받았던 때가 있었잖아요. 아성 다이소 창업주 박정부 회장이 쓴 『천원을 경영하라』는 책을 읽어보면 1992년에 설립한 한국 기업으로, 한국 다이소가 일본 다이소에 매년 1300억원 규모의 제품을 수출하는 데 비해, 수입은 207억 원 규모로 5.7배 차이가 나며, 한국 다이소의 전체 매출의 70%는 국내 업체가 납품한 제품이라 해요.
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천원짜리 제품의 편리함이에요. 이런 데 오면 ‘편리함을 찾아 노력하면 저절로 터득되는 지혜의 산물이 발명품이고 이렇게 길러지는 것이 창의성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창조적인 소비자가 새로운 편리한 것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솔솔해요. 요즘 초등학생들도 학교 마치고 가는 코스 중의 하나가 ‘다이소’ 쇼핑이라 하데요. 우리 손주도 용돈으로 자질구레한 생필품을 사며 즐길 수 있다고 좋아하던데요? 아이디어 상품이 모여있는 이런 곳에 오면, 저도 무심코 살지 말고 생활 속 불편함 앞에서 조금씩 머리를 써서 편리한 용품을 만들어 써야겠다는 의욕도 생기지만요. 우선은 편리한 것을 찾아 쓰는 것만도 감사하지요.
저번에 우리 문학회에서 범어역 지하철 전시 공간을 빌려 시화전을 할 때 말이에요. 제가 봉사하는 날이라 나가봤더니 방명록 적을 종이도 모자라고, 방명록을 놓고 쓸 마땅한 책상도 없더라고요. 그때 그 옆에 있는 다이소에 들어갔더니 앙증맞은 앉은뱅이 책상도 있고, 방명록으로 쓸 파일철과 A4 용지도 구해서 임시방편의 방명록을 준비할 수 있었거든요.
가게를 나오며 제가 감사한 것은 이런 편리한 물건을 만들어 내는 위대한 사람들과 천원을 경영하는 정직하고 성실한 회장님과 동시대에 살고 있는 축복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느낀 축복을 여러분께 나누고 싶어 이야기를 꺼냈어요.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상입니다. (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