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슬기로운 주체생활]에서 ‘일’ 혹은 ‘노동’은 중요한 문제다. ‘빈곤(양극화), 인권, 기후, 전쟁, 사랑, 아름다움, 자본주의 시스템’과 같은 문제들처럼 ‘슬기로운 주체생활’을 위해서 지속적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일 혹은 노동’에 대한 나의 주체적인 생활방식은 <발과 자기활동>이라는 글에서 쓰고 있듯이 ‘밥을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동과 자기 활동’을 하며 살겠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삶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지향한다’는 말은 사전적 의미(‘뜻을 모아 향하다’)처럼 어떤 방향을 향해서 간다는 것이지 그 방향의 목적지가 고정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해서, ‘최소한의 노동이 얼마만큼의 노동인지’, ‘자기활동은 어떤 활동인지’ 등의 구체적인 내용은 유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향한다’는 것은 현재의 상태를 ‘지양’해 간다는 의미가 강한 것이기도 하다. 그 방향을 향해 가는 것도 ‘지금, 여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고 현재의 상태에 대한 풍부한 인식에 근거해 현재의 상태를 뜻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바꾸며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처럼 ‘지향’과 ‘지양’이라는 말의 의미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로의 지향점은 같거나 비슷할 수 있지만, 지양해야 할 구체적인 현재의 상태는 각자 다를 수 있는 것이다. 해서, 지향점은 비슷해도 각자의 처지에 따라 지양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정규직, 비정규직, 대기업 직장인, 중소기업 직장인, 자영업자, 사무직, 현장직, 일용직(특수고용) 등 일의 형태에 따라 경제적인 처지는 다르다. 가족 구성 형태, 가구원 수, 부양가족 여부, 남녀 성별도 삶의 처지를 다르게 한다.
그럼에도 일(노동)이 자기실현을 위한 의미 있는 창조적 행위,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도움이 되는 행위이기를 바란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 현재의 임금체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노동시간 단축, 여성이나 지역, 학력에 따른 임금 차별이나 유리천장과 같은 차별, 권위주의적인 직장 문화를 없애야 한다는 ’지향점‘은 비슷했다.
그리고 각자 처지가 다르지만 일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동의하는 비슷한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 가능한 자기 활동들(성찰, 예술, 연구, 제도 개선 등)을 해야 한다는 지향, 그 활동에는 현재의 상태를 알아가는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는 지향도 비슷했다.
2023. 1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