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4-5
⑷ 열매의 진리
우리는 열매를 보고서 어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역동성이 그의 삶에서 맺은 열매의 양과 질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다. 이 열매의 결과는 영적인 뿌리의 깊이와 가지를 얼마나 잘 쳐 주었는가로 결정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때때로 영적 고갈이라는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것은 강한 뿌리를 일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 요한복음 15:1~2
John 15:1~2 "I am the true vine, and my Father is the gardener. He cuts off every branch in me that bears no fruit, while every branch that does bear fruit he prunes so that it will be even more fruitful.(NIV)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에서는 과실을 맺는 일에 대하여 3단계로 이야기 합니다. 그냥 과실을 맺는 것이 있고(bear fruit), 더 과실을 맺는 것이 있고(bear more fruit) 다음에는 과실을 많이 맺는(bear much fruit)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불의의 이를 탐하나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하느니라 ~ 잠언 12:12
우리는 뿌리를 일구는 과정에서 협력이 꼭 필요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빚어 가기 위해서 홀로 모든 일을 하실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하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저절로 영적인 열매가 무르익어 가기를 기다립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책임을 모른다면 히브리서 기자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 히브리서 5:11~14
영적으로 성숙하고 계속해서 생산성을 증진시키며 그리스도를 닮는데 꾸준히 성장하는 일은 훈련과 연습과 행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 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케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 이사야 5:4~5
당신이 영적으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게으름 때문입니다. 적은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그것은 영적인 게으름이 더 많은 열매를 맺는데 실패의 이유가 됩니다.
게으른 육체가 수근거리려 할 때
편안함이 우리를 마법으로 유혹하네.
저녁기도의 시간까지 우리의 마음을
단단히 하세.
주의 눈썹에서 가시관을 바라보네
주께서 가신 길엔 핏방울이 떨어지니
오 우리로 돌이키지 말도록 막으소서.
~에이미 카마이클(Amy Carmichael, 1867~1951)~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인 성숙과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 하나님은 은혜로 가지 치기를 하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장과 결실을 저해하는 죽은 가지를 잘라 내버리는 방법으로 그 자녀의 삶을 이끌어 가기 시작합니다. 이 때 영적인 잠재력을 가진 제자는 처절한 실망감을 맛보기도 합니다.
예기치 않은 손실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질병에 걸려 하루의 삶도 보장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병원의 침대에 누워 있을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그 아픔의 척도는 누구도 잴 수도 없을 것입니다. 언제 완쾌되리라는 단정을 내릴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가장 믿고 사랑했던 친구가 가룟 유다처럼 배반하는 쓰라린 경험을 맛볼 수도 있습니다.
혹은 가정불화나 결혼 생활의 파경으로 무기력한 사람처럼 비틀거릴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자녀의 반항적인 일들로 눈물을 흘릴 수도 있습니다.
상심과 절망에 빠져 죽음의 어두운 골짜기를 통과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외로움, 오해, 비방, 무관심, 버림받음이 주는 고통을 체험할 수도 있습니다.
절망을 통한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맛볼 수도 있습니다.
긴긴 시간의 고독 속에서 가끔 무섭도록 밀려오는 고통이 영혼을 절망의 늪 속에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계속해서 누구에게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될 형편에 놓여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두 눈에 눈물에 젖은 호소를 할 것입니다. "나는 가족과 사회에 무거운 짐밖에 되지 않았구나? 참으로 무용지물이 되어버렸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존재로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자신을 미워하면서 저주하기도 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아 합니까?"라고 하나님께 물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저에게 화가 나셨습니까? 아니면 제가 무슨 큰 죄를 주님에게 지었습니까? 저를 지금 벌주고 계십니까?"라는 식으로 계속해서 질문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친절하게 대답해 주실 것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나는 너를 벌하는 것이 아니라 가지치기를 하는 것이란다."
당신이 고난이라는 용광로 속에서 살아 왔습니까? 시련이라는 어두운 강물을 헤쳐 왔습니까? 사나운 폭풍 속에서 이리저리 표류하며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쳐 왔습니까? 정말 참아 내기 힘든 압박을 받아 왔습니까?
이런 환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끗케 하시고 더 많은 열매를 위해서 가지를 치는 것입니다. 징벌이 아니라 가지를 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열매를 맺을 잠재력이 있는 나무의 가지를 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지치기 하시는 목적은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이라는 풍성한 수학을 거두도록 거룩함을 향상 시키는 일에 도전을 줍니다.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 요한복음 15:2
또 아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 히브리서 12:5~11
"인내와 경험과 희망, 사랑을 위한 성도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방법은 종종 그를 고통의 용광로에 집어넣는 것이다." ~ 리차드 세실
(God's way of answering the Christian's prayer for more patience, experience, hope and love often is to put him into the furnace of affliction. ~ Richard Cecil)
중국 선교사였던 제임스 허드슨 테일러(James Hudson Taylor, 1832~1905)가 그의 누이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나는 기도하고, 금식하고, 번민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결심하고,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은둔과 묵상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효과가 없었다. 매일 거의 매 시간 죄의식이 나를 엄습했다. 나는 '구원책이 없는가?' 이것 ~ 끊임없는 갈등 그리고 승리 대신에 너무나도 작은 패배 ~ 로 끝장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자신을 증오했고 나의 죄를 증오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에 대항할 아무런 힘도 얻지 못했다. 나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느꼈지만 자녀로서의 나의 특권에 응하여 일어서는 방법을 전혀 알 수 없었다. 나는 거룩함, 즉 실질적인 거룩함은 은혜의 방편들을 부지런히 사용함으로써 점진적으로 얻어진다고 생각했다.
나는 세상에는 내가 원하는 것도 간절히 필요로 하는 것도 없다고 느꼈다. 내 영혼의 고통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어느 편지 속의 한 문장이 내 눈의 비늘을 제거해 주었으며,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와 하나가 된다는 진리를 계시해 주셨다."
그 편지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충만함이 풍성하게 흘러 내려가는 통로는 믿음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던 가지가 열매를 풍성히 맺는 줄기의 한 부분이 됩니다. 내면에 그리스도를 많이 소유하는 사람은 크게 거룩한 사람입니다. 발길을 가로막아 많은 사람들을 실족하게 하는 불완전한 믿음입니다.
주 안에 거하십시오. 투쟁하거나 애쓰지 말고 주를 바라보십시오. 주께서 지금 능력을 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완전한 구원, 모든 죄로부터의 구원을 자각하고 기쁨 속에 안식하십시오. 주님이 진실로 지존하신 분으로 영접하십시오. 이것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새롭습니다.
나는 끝없이 넓은 바다의 한쪽 가장자리에만 이른 듯합니다. 문자 그대로 전부이신 그리스도는 이제 능력, 봉사를 위한 유일한 능력으로 여겨집니다. 변치 않는 기쁨의 유일한 원천인 듯이 보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믿음이 증대되었습니까? 예수가 계신다는 것 그가 우리를 위해 계신다는 것을 생각함으로써만 우리의 믿음은 성장합니다.
믿음을 갖기 위해 혹은 믿음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력이 아니라 신실하신 분을 바라보는 것, 영원토록 사랑받는 자 안에 안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단지 전에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길
애니 존슨 플린트(Annie Johnson Flint, 1866~1932)
칼이 닿는 것을 느끼는 것은
열매를 맺는 가지라네.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해서
더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
비록 모든 싹트는 잔가지들과
흔들거리는 덩굴잎
새로 돋아나는 나뭇잎의 모든 아름다움이
그 자리를 잃을지라도
오, 그대 아름다움이 베어져 삶의 기쁨을 빼앗기고
그대의 포부가 먼지 속에
멍들고 상처 입은 채로 뒹굴게 되었다고 해도
기뻐하라 그대의 모든 바램과 꿈
그리고 희망이 무너지고 사라져 감을
그것이야말로 사랑의 하나님의 손길이라네.
가장 부드러운 손길로
칼을 잡고 자르고 떠여 버리는 하나님은
이제까지 열매를 맺은 당신의 삶이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해주시리.
~바다에서
애니 존슨 플린트(Annie Johnson Flint)
당신의 생애에서 당신은 홍해에 다다른 적이 있는가?
온갖 노력을 다해도
밖으로도 길이 없고, 뒤로도 길이 없으며,
통과할 다른 길이 전혀 없는 그곳에
당신은 다다른 적이 있는가?
그때 평온한 신뢰로 주님을 기다리라,
두려운 밤이 지나갈 때까지.
그분께서 바람을 보내시고,
큰물들을 무더기처럼 쌓아올리시리니,
그때 그분께서 당신의 혼에게 말씀하시길 "계속 전진하라." 하시리라.
그분의 손이 당신을 그곳, 열려진 길로 인도하시리라,
물로 된 벽이 흘러내리기 전에.
어떤 원수도 당신에게 미칠 수 없고,
어떤 파도도 해치지 못하며,
어떤 거센 바다도 당신을 빠뜨릴 수 없으리라.
굽이치는 큰 물결이 파도의 물마루를 솟구치게 하리니,
그 물거품이 당신의 발아래 꺼지리라.
그 바닥 위로 당신은 마른 신을 신고 걸으리.
주님께서 만드신 길로.
아침 경점에, 치솟은 구름 아래서,
당신은 오직 주 만을 보게 되리라.
그분께서 당신을 바다에서
당신이 알지 못하는 땅으로 인도하실 때,
두려움은 당신의 원수들처럼 사라지고,
당신은 더 이상 무서워 떨지 않으리.
당신은 더 좋은 곳에서
그분의 찬양을 노래하리라,
그분의 손이 지으신 곳에서.
~그러나 하나님은(But God)
애니 존슨 플린트
나는 모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아신다네.
내가 모르는 미지의 날들이
그에게는 분명하고 확실함을 알기에
나 두려움에서 벗어나 복된 안식을 누린다네.
모든 수수께끼 같은 당혹할 "왜" 의 물음이
회의와 공포가 되어 커져갈 때
난 이 생각으로 해답을 찾는다네.
난 모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아신다고
난 할 수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할 수 있으시다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어떤 짐도
그의 손길은 능히 들어 올리심을 알기에
내 염려했던 일들은 오히려 유쾌한 일들일 수 있다네
비록 독수리의 날개가 피곤해지고
내가 한 때 달렸던 길을 이젠 걸어야 할지라도
난 내게 주어질 능력을 알고 있다네.
난 할 수 없어도 그러나 하나님은 할 수 있으심을 알고 있다고
나는 볼 수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보신다네.
내게는 어둡고 감추어진 길이어도
그분에겐 여전히 밝은 길이기에
내 가는 길에 넉넉한 빛을 볼 수 있다네
내 긴장되고 충혈된 눈이
안식 가운데 눈 감을 수 있고
평화로움 속에 잠들 수 있는 이유는
나는 보지 못하나, 그러나 하나님은 보시는 때문이라네.
~무명의 어떤 환자의 기도
주님, 나는 당신에게 출세하기 위해 힘을 원했으나
당신은 제게 순종을 배우라고 나약함을 주셨습니다.
주님, 나는 위대한 일을 하고 싶어 건강을 청했으나
당신은 내가 지혜로운 자가 되도록 가난을 주셨습니다.
주님, 나는 만민이 우러러 존경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명예를 청했으나
당신은 나를 비참하게 만드시어 당신만을 필요로 하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 나는 당신에게 내 삶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청했으나
당신은 다른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어야 하는 삶의 길을 주셨습니다.
비록 내가 당신께 청한 것을 하나도 받지 못했으나
당신은 나에게 바라시던 그 모든 것을 주였사오니
참으로 나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복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The Dark Night of the Soul)
십자가의 요한(John of The Cross,1542~1591)
어느 어두운 밤에
사랑에 들떠 열이 올라
(오 그지없이 행복한 맹세여!)
아무도 몰래 나왔노라
고요한 나의 집을
밤에, 눈에 안 띄게
비밀 계단으로 변장하고
(오 그지없이 행복한 맹세여!)
밤에, 몰래
고요한 나의 집을
헤매는 복된 밤에
몰래, 아무 눈에도 띄지 않고
나도 본 게 없이
빛도 길잡이도 없이
마음속에 타는 불빛밖에는
한낮 빛보다 더 탄탄히
그 빛이 나를 이끌었어라
내가 잘 아는 분이
나를 기다리시는 데로
그분만이 계시는 그곳으로
오, 그렇게 인도한 밤이여!
오, 새벽빛보다 더 친밀한 밤이여!
오,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가 결합되고
사랑하는 자 안에서 사랑받는 자가 하나로 녹아드는
감미로운 밤이여!
내 꽃다운 가슴 속
오르지 그분 위해 지녀온 가슴 속에
내 사랑하는 그분을
달콤히 쉬시게 하리
스기목(杉木)들은 부채인 듯 바람을 보내고
첫 바람은 탑에서 불어와
그분의 머리카락 흩날릴 때
그분의 손 부드럽게
나를 감싸 안으시니
내 몸의 모든 감각 끊어졌어라.
그래 나는 모든 걸 잊고
나를 맞아주신 그분께 빰을 대이니
모든 게 없고 나도 없어라
내 근심과 부끄러움
백합들 속에 둔 채 잊어버리고
~모래 위에 발자국
어느 날 밤 한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해변을 따라 걷고 있는 꿈이었습니다.
해변을 거닐 때 두 사람의 발자국이 모래 위에 나란히 새겨져 있었습니다.
하나는 주님의 발자국, 다른 하나는 자신의 것이었습니다.
하늘을 가로질러 그 동안 살아온 생애의 장면이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그때 그는 자신의 인생의 지나간 각 장면을 뒤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랜 그의 인생의 길에서 단지 한 사람의 발자국만 새겨져 있는 순간들이
여러 분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또한 알았습니다.
자신의 삶의 여정에서 너무도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웠던 험한 골짜기를 통과할 때
는 발자국이 하나뿐 이였다는 것을……
이 사실이 그를 괴롭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의아해서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내게 말씀하셨지요? 내가 주님을 믿고 따르기로 했을 때
세상 끝 날 까지 항상 나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입니다.』
"............................"
『그런데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인생의 가시밭길을 통과할 때는
왜 발자국이 하나뿐이지요?』
"..............................."
『내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할 그때에 왜 나를 떠나 계셨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랜 침묵을 깨고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 소중하고 사랑스런 아들아! 난 너의 곁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단다."
『그렇다면 주님, 내가 고통 가운데 눈물의 골짜기를 걷고 있을 때 주님은 어디 계셨죠?』
"네가 시련과 고난의 골짜기를 지날 때는 내가 너를 안고 걸었단다.
그래, 가시밭에 새겨진 한 사람의 발자국은 너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란다."
『..............................』
~저 장미꽃 위에 이슬(I come to the garden alone)
C.오스틴 마일즈(C.A.Miles, 1868~1946)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 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주가 나와 함께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주님, 나를 사로잡아 주시옵소서,
그때 내가 자유케 됩니다.
나의 검을 넘겨 드리게 하옵소서,
그때 나는 승리자가 됩니다.
내가 나 자신의 힘으로 설 때,
나는 인생의 위기에 처합니다.
주님의 팔 안에 나를 가두어 주시옵소서,
그때 나의 손이 튼튼해집니다.
~ 조지 마티슨(George Matheson, 1842~1906)
~주님의 시간에
주님의 시간에 그의 뜻 이뤄지리 기다려
하루하루 살 동안 주님 인도하시니
주 뜻 이룰 때 까지 기다려
기다려 그때를 그의 뜻 이뤄지리 기다려
주의 뜻 이뤄질 때 우리들의 모든 것
아름답게 변하리 기다려
In His Time
In His time, in His time,
He makes all thing beautiful in His time.
Lord, my life to You I bring,
May each song I have to sing,
Be to You a lovely thing, in Your time.
In Your time, in Your time,
You make all thing beautiful in Your time.
Lord, my life to You I bring,
May each song I have to sing,
Be to You a lovely thing, in Your time.
"He hath made every thing beautiful in his time:"
Ecclesiastes 3:11
~오! 하나님이여!
우리들의 눈을 열어 이 십자가의 길을 보게 하소서!
주님을 따라 땅 속에 깊이 파묻혀 죽게 하소서!
또 영생하도록 보존하는 열매를 맺게 하소서!
~한 알의 밀알이 고저
박 정 희
오늘의
여기 옥토에 머물려
지심(地心)의 소리를 캐내는
우리는
한 알의 밀알이 고저
골고다로 가는
지순(至純)의 행렬
숱한 밤의 그림자가 내리고
겹겹이 회의는 쌓이는가
아, 인고(忍苦)의 긴 언덕길
흙내음이 물빛으로
물빛이 다시 흙내음으로
풍화작용이듯 연륜은 쌓이는데
폐회(閉會)의 도성에 떨어진
우리는
한 알의 밀알이 고저
온 누리에 푸름이 깨어나는 날
오순절의 아침이듯
또 하나의 탄생이 비롯되는
아, 우리는
한 알의 밀알이 고저.
~십자가
이 석 현
당신은
언제까지 십자가로 팔을 벌린 채
화석(化石)인 양 서 계시렵니까?
머리의 가시관은
무수한 빛살로 감싸여도
발에는 연신
흙탕이 끼얹어집니다.
오른손 가에는
에덴의 봄이 피어나는데
왼손의 칠흑에 저려
파르르 떨고 계십니까?
언제까지 입니까.
하늘에 곤두선
당신의 물구나무는 ……
「미세레세(Miserere)
미세레세 노비스(Miserere nobis)」
당신이 슬프기에
내게 웃음이 옵니다.
당신이 아프고
나는 멀쩡합니다.
당신이 굶어서
내가 배부릅니다.
당신은 울고
나는 춤을 춥니다.
마침내
당신은 죽고
내가 살아나고……
어째서
어째서입니까?
당신이 되살고
이제쯤
내 죽을 시각이
다가옵니다.
※ Miserere nobis: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을 아프시게 한 것은
주님을 아프시게 한 것은
쓰라린 가시 면류관이 아니요
주님을 아프시게 한 것은
수치와 조롱의 침 뱉음이 아니고
주님을 아프시게 한 것은
연거푸 내려치는 채찍질이 아니며
주님을 아프시게 한 것은
괴로움의 못 박히심이 아니라
주님을 아프시게 한 것은
날카로운 창박이심이 아니라
주님을 아프시게 한 것은
우리의 배반이요
주님을 아프시게 한 것은
우리의 불순종이며
주님을 아프시게 한 것은
주님의 마음을 모르는 우리의 무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