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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 좋은 책은 혼자 읽지 않는다
저-이경희
출-이랑
독정-2019년 3월 26일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 스베나 플리스필러(1975년 독일 출신 여성 철학자) 저.
-오늘 날 우리에게 노동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우리는 좋아서 일하고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일에 쏟아 붓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의무 노동자가 아니라 향락 노동자다.7쪽 지은이는 통증을 통해서만 일이건 사랑이건 운동이건 내가 나 자신에게 과도한 요구를 한다는 걸 안다. 아무리 내 몸이라도 내가 남김없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배우며, 몸이 저항할 때는 그 뜻을 존중해 주어야 몸이 상ㄹ하지 않는다는 것도 배운다.-과도한 향락 노동자는 어린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잘 못 참는 경향이 있다. 놀이터에서도 열심히 스마트폰을 두드리고 손으로는 블록을 쌓으면서도 계속해서 급히 처리해야 하는 프로젝트를 향해 달려간다. 14쪽. 엄마른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바로 내 모습이다.
,타임 푸어. 브리짓 슐트 저. 더퀘스트
- 위싱턴 포스트 기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가 쓴 책 자신을 포함해 왜 점점 더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지 그 이유와 해결 방안을 참구한 여정을 담았다. 지은이의 탐구가 깊어질수록 시간이 부족한 이유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와 제도 탓이라는 게 드러난다. 육아에 대한 책임을 사회적으로 덜어주지 않고 엄마에게만 몰빵하는 문화. 집에는 돌봄 노동 전담(전업주부)가 있으리라는 전제 하에 기업에서는 일에만 매진하는 ‘이상적인 노동자’를 상정하는 문화말이다. 미국 고학력 주부들은 어릴 적 티브이 드라마 <초원의 집>에서 봤던 가정 모습을 21세기 현실에서 재현하려 한다. 그런 라이프 스타일은 블로그나 매체에서 각광 받는다. 한국도 제주에 정착해 무릎가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논사 짓고 요리 만들고 살림하는 이효리의 삶이 트랜드를 리디하는 것으로 보인다. 든든한 철학도 받쳐 준다. 지구환경을 덜 파괴하고 소비 사회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선택한 급진적 삶의 방식이다. 안전하지 않은 먹거리로부터 가족을 지켜내며 노동자를 기계의 부품처럼 여기는 산업사회의 가치에 반기를 들고 느린 속도로 살아가기란 그 자체로 급진적 삶의 방식이다. 여자가 “왜 일을 안하세요?”보다 “왜 일을 하세요?‘가 이직은 더 흔한 질문이다.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사람이란 지금 쥐고 있는 페이퍼 나이프를 못 쓴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곧바로 사고방식을 바꿔서 손에 잡히는 모든 도구를 시험해볼 수 있는 사람이다. 논리적인 사람을 따지가 좋아하는 사람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은 부엌칼 하나로 모든 요리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이고 논리적 사람은 쓸 수 있다면 드라이버든 호치키스든 요리에 모든 걸 쓴 사람이다. 그때 그때의 기술적 난문에 가장 어울리는 접근법을 찾아내기 위해서 주변 온갖 도구의 사용법과는 다른 사용법을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러브 스토리> 에릭 시걸의 영화 “사랑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거에요.” -신분이 다른 아가씨와 결혼한 아들과 의절한 아버지가 요절한 그 아가씨의 장례식 때 몇 년 만에 만난 아들에게 I‘m sorry. (미안한 짓을 했다)라고 후회의 심정을 전했을 때 아들이 차갑게 대답한 말이다. 만약 당신이 나를 사랑했다면 나중에서야 미안하다라고 말할 법한 행동을 할 리 없다. 즉 당신은 아들인 나를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사랑 따위 하지 않는다라는 절연의 말이다. 사랑이란 나중에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을 만큼 긴장된 대인관계다,
·현재 일본인 대부분은 직접적으로 식민지 지배에 관여한 적도 없고, 아시아 인민을 살상한 경험이나 박해한 경험도 없다. 그런 우리가 식민지 지배를 지금 여기서 청산하라는 말을 들어도 그것을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 어려움을 해소하고 우리에게 가해자 의식을 철저히 불어넣기 위해서는 하나의 논리적 기교를 세워야 한다.
· 게스탈트 심리학에서 자주 쓰이는 마주 보는 두 여자의 하얀 옆얼굴과 까만 꽃병 그림이 있다. 여자의 옆얼굴을 바라보면 꽃병은 배경으로 사라진다. 꽃병을 바라보면 여자는 배경으로 사라진다. 그림과 배경의 반전을 결절하는 것은 보는 쪽이 어느 쪽을 유표한 대상으로 보는가 하는 주체의 결의에 달렸다.
· 미국에서는 ‘하얗다’는 것은 무표(無標)적으로 실질적으로 ‘백인’이라는 분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흑인을 뜻하는 까맣다는 유표(有標)적 오점을 뜻한다
·훅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를 부모로 둔 흑인이라면 일반 견해를 객관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이는 스스로 자각이 있든 없든, 그가 백인이든 흑인이든 본질적 부분에서 인종주의자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피차별자 해방이라는 사업이 어느 단계까지 피차별자의 유표화를 전략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한다. 흑인이든 유대인이든 재일한국인이든 부락민이든 그 사람이 실제로 받는 차별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피차별 유표자로서의 위치를 분명히 드러내는 것이 필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차별 해소가 유표화하는 시선 자체를 없애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유표화 전략은 어딘가에서 버려야 한다. 나는 지금 당장 버리라는 게 아니다. 무리라는 사실이다.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미니를 둔 아이는 흑인이다는 유표화 말은 현제 현재 상식으로 통용되나 일단은 언젠가 폐기해야 할 상식이다. 많은 상식은 유통기한이 지나면 썩는다. 하지만 유통기한이 지날 때까지는 먹을 수 있다. 그것을 버리면 당장 먹을 게 없는 경우도 있다(민주주의나 국민국가. 일부일처제 등이 그런 것이다) 모든 사회제도가 생겨난 데는 역사적 조건이 있으며 그것이 소멸하고 다른 무언가에 의해 그 사회적 기능이 대체되려면 나름의 역사적 조건이 숙성될 필요가 있다.
·국가와 국가가 대치하는 공식 자리라면 일본을 대표하는 사죄가 당연하다. 하지만 개인과 개인의 만남에 딱히 국가와 국가 관계를 흉내 내지 말고 그 꼬임을 솔직히 드러내면 된다. 일본사 시험에 교토 절 이름을 쓰는 문제가 나와 “웃기지 마”라며 전부 백지로 낸 적도 있다. 일본 국적을 취득한 재일 사람들, 자신이 류쿠 왕국 후예라는 오키나와 사람들은 분명 어지간해서는 일본을 대표해서라는 마음을 가지지 못하겠다. 거의 본능적으로 좀 참아줘라는 기분이 든다. 이는 정말로 솔직한 기분 문제이지 이념이 아니다 사상 이전의 신체 거부 반응이다. 이를 바꾸라고 하는 것은 거의 호모에게 헤테로가 되라 하는 것이다.
·아무도 안 하지만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그때는 내가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어른의 상식이다.
나 하나의 민간 외교가 나라를 살린다.
·카프카의 <성>의 부조리성은 그곳에 성이 있고 성에서 보호받거나 기생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으면서도 누구 하나 성을 대표하지 못하여 항의나 요청, 질문에 모두가 “그에 관해 대답할 권리가 제게는 없습니다.”라고 뿌리치는 비빌 언덕이 없는 불쾌함에 속하는 존재들이다.
한일의 화해를 상징한 것은 ‘월드컵 공동 개회“라는 축제나<쉬리>나 <공동경비구역 JSA>같은 영화였다. 유화를 견인한 것은 정치도 외교도 아닌 양국민의 ’보통의 생활 감각‘이었다. 최종적으로 두 나라 사이의 벽을 부수는 것은 정치가의 연설도 외교관의 사전 교섭도, 미더운 선동도 조국의 천상적 개입도 아닌 ’보통 국민의 보통 생활 감각‘수군에서의 ’친밀감”과 ‘경의’ 조성이다. 국민감정 수준에서의 친화와 경의 없이는 외교 관계의 초석을 다지기란 불가능하다. 가령 나는 미국을 싫어한다. 초강대국인데 국제 사회에 보여주는 나쁜 매너는 거의 유아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제껏 많은 미국인과 개인적으로 교류하며 거의 모두에게 친밀감과 경의를 느꼈다. 그, 결과 미국이라는 글자를 볼 때 강권적인 국가의 이미지와 구체적 얼굴을 가진 미국 친구들의 이미지를 동시에 떨린다. 미국 천구들과의 추억이 내가 미국 시책을 싫어하면서도 그 나라를 전체적으로 미워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미일관계는 현재 우호적으로 변하고 있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셰계 전략과 일본의 국익 사상에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일본 국민의 상당수가 일상생활 속에서 실체로 미국인을 만나 친밀하게 교류한 경험을 가졌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한일 국교 정상화는 실패였다. 재일조선의 차별 문제나 위안부 문제를 생각하면 이룬 것 없이 흘려보낸 세월이 길다. 이 실패는 양국의 정관 재게 톱 레별에서의 합의와 미국의 적극 중개가 있어도 국민 수준에서의 친밀함과 경의 조성을 위한 국민적 운동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일을 북한-일본 정상회담은 외교사적으로는 앞 단체가 있는 것 같지만, 오 몇 개월간의 사전 교섭은 비밀리에 일부 외무 관료들만의 주도로 이루어졌다고 보도되었다. 정상회담이 일단 공동성명발표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정치가와 관료 중에는 정치적 성공을 축하하기도 하지만 참된 정상화는 아직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몇 장의 외교문서 교환이나 군사 행동을 자제하자는 약속으로는 국교 정상화의 초석을 다질 수 없다. 두 나라 사이에 열린 외교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양국 국민에게 좋은 일이라는 일반 국민의 생활 감각에서 우러난 동의. 이것이 국교 정상화를 뒷받침한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친밀함이 느껴지고 경의를 품을 수 있는 북한 사람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경험이다. 북한 국민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 역시 친밀함이 느껴지고 경의를 품을 수 있는 일본 사람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경험이다. 그런 국민적 공감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번드르르한 외교적 약속이나 거액의 경제 협력은 양국 관계에 거의 도움 되지 않는다. 그런 원활한 소통이 참된 의미의 안정 보장을 담보한다. 그런 의무라는 이번 납치 사건에 대해 외무성이 취한 비밀주의나 정보를 찔끔찔끔 내놓는 전략, 수많은 미디어에 목 놓아 외친 ‘굴욕 외교‘ 캠페인만큼 흐름을 거스르는 일은 없다. 이렇게 쓴 뒤 미디어는 고이즈미 내각의 지지율이 75퍼센트로 급반등했다고 알렸다. 오른쪽부터 왼쪽가지 거의 모든 미디어가 납치 문제에 관한 정부의 저자세를 매도하는 와중에 보통 국민의 보통 생활 감각은 고이즈미 방북으로 문이 열리고 거기서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을 어쨌든 환영한 것이다. 나는 이 상식의 편에 서겠다.
한 사람의 국민은 그 나라를 대표한다. 그 나라를 대표하여 다른 나라 국민을 규탄할 권리가 있고 다른 나라 국민을 용서할 권리가 있으며 다른 나라 국민 앞에서 고개 숙일 권리가 있다. 나는 국민국가라는 것은 그런 한 사람의 국민이 가진 대표권의 환상 위에서만 비로소 건전하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본인을 대표하여 일본이 베트남에 범한 죄과에 대해 빙에게 사죄했고 빙은 베트남을 대표하여 과거는 과거로 지나갔어요. 괜찮아요라며 사죄를 받아주었다.
·<거리의 미국론>에서 미국은 전쟁으로 다른 나라 군인에게 침략당한 경험이 거의 없다. 예외는 인니언 추장 시킹 불이 이끄는 수족에게 커스터 잔군의 제7기병대가 전멸당한 리틀 빅혼 전투와 진주만 공습뿐이다.
·베트남 나라에는 그런 당당한 청년을 조직적으로 길러내는 성숙을 위한 시스템이 있는데 반해 일본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다는 점이 교육자인 내게 쓰라리게 느껴진다.
·네오소프트 내셔널리스트의 입장에서 애국심을 교과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사람에겐 국가 이상적 모습에 대해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듣고 싶지 않다. 이런 그만 흥분하고 말았다. 사회를 지탱하는 환상은 실질적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는 논리로 네오콘의 종교성과 타자성의 논점으로 이어지지만 그 이야기를 시작하면 더욱 길어질 성싶으니 그것은 다음 기회에.
·교양 없는 사람이란 자신이 누구이고 어느 위치에 있으며 어디를 향해 나아가는지를 생각할 때 살고 있는 맨션의 배치도 따위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교양 없는 사람이란 세계사 지도 같은 두꺼운 책을 떠올리며 그 어디쯤의 시대, 지역에 자신을 놓아두면 좋을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다.
·국민의 절반이 헌법을 바꿈으로 이 꽉 막힌 느낌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품는다.
·쾌도난마-헝클어진 쌈을 칼로 정리한다는 뜻.
타인을 비판할 때도 자신은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어서 이 책을 아무리 읽어도 그로써 세상의 풍경이 명확해지는 일은 기대할 수 없다. 세계정세는 복잡하고 괴기하고 역사는 구불구불 나아가며 일본 사회도 어떻게 될지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절대 화내지 말 것 쿨해질 것 자신의 주관적 바람이 객관적 정세 한단에 제공한단 사실을 항상 계산에 넣을 것, 그것이 전쟁을 향한 자원 투입과 전쟁으로 인한 재해의 도래를 1초라도 미루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단칸방 시절 내개 가장 큰 공포는 쥐였다. 혼자 집에 있는데 창으로 빼꼼히 내다보니 생쥐가 쪽마루에 놓인 물그릇을 압발로 붙잡고 물을 핥아먹고 있다. 방에 들어올까봐 방에서 나가지도 못하던 어린 시절을 지나 어린이 되어서도 생쥐는 여전히 사람과 가까웠다. 천장에서 쥐들이 이쪽 구석에서 저쪽 구석으로 떼를 지어 달리곤 했으니까
<집의 초심, 오두막 이야기>나카무라 요시후미 저
일본 대표 주택 전문 건축가이자 주거공간디자인 코스 규수가 작은 오두막을 짓는 여정이 담겼다. 산기슭에 버려진 채 있던 7평짜리 헌집을 빌려 14평짜리 오두막으로 고쳐 짓는다. 선은 전기선, 가스관, 수도관, 전화선 등 문명의 생명줄을 말한다. 놀라운 것은 그런 생명줄이 없어도 산다는 점이다. 오두막에서는 빗물을 받아 정화해 생황용수로 쓰고 숯불 풍로로 요리를 한다. 풍력 발전과 ㅌ내양 발전을 이용해 전력은 자체 조단한다. 빗물을 최대한 받을 수 있게 지붕을 비스듬하게 만들고 그 자장자리에는 홈통을 달아 깔대기처럼 물을 모은다. 큰 찌꺼기를 집수과정에서 걸러낼 수 있는 필터를 홈통에 설치하고 땅을 파 지하 저수조를 만들어 물을 저장한다. 높은 탑을 지어 그 꼭대기에 수조를 놓아 펌프로 저장된 물을 끌어올린 뒤 낙차를 이용해 화장실과 부엌에 물을 공급한다. 전구 하나를 이 공간 저 공간으로 옮겨가며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숯불 양동이를 옮겨 난로에 넣거나 조리대에 끼워 넣는 방식으로 난방과 조리에 다용도로 쓴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설계했기 때문에 손님이 많이 와도 최대 12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놀러온 사람들은 모두 일꾼처럼 일한다. 풍로에 숯불을 지펴 고기를 구울 동안 누구는 텃밭 채소를 거둬 상 차리고 누구는 펌프로 물을 퍼 올린다. 겉치레를 버리고 군살을 모조리 뺀 집의 원형을 찾아 지었다. 지진으로 물건이 주인을 공격하기 때문에 심플 라이프를 추구한다. 원시적 방법이라도 문명의 이기 없이 살 수 있다. 오두막에서는 방 한 칸밖에 없지만 방 밖에 무한히 열린 공간이 있다.
-툇마루로 다리를 한껏 벌려 건너가는 일, 굴러 떨어지지 않고 댓돌에 벗어 놓은 신발을 다시 신는 일, 콧김을 내뿜는 소의 앞을 지나 개방형 뒷간에 무사히 도착하는 일, 우물 안으로 고꾸라지지 않고 얼음장같이 차가운 우물물을 길어 올리는 일까지 어린 아이에게는 모든 게 모험이었다. 어린 내 눈에 시골집은
무척이나 광활했다. 고삐 풀린 황소가 전속력으로 몇 순배 돌 만큼 마당의 한 구석에 쌓인 퇴비 더미는 어마어마하게 높았다. 한켠에는 닭장이 있었는데 수탉이 지붕 위까지 푸드득 날아오를 때는 빛나는 닭털이 몇 개씩 떨어지곤 했다. 어린 나는 대문을 지키던 개보다 외양간에 매여 있는 소보다, 제 멋대로 마당에 돌아다니는 닭이 더 무서워 닭장으로 들어간 뒤에야 마당에 발을 디디곤 했다. 작은 방에 다닥다닥 붙어 잠을 잤다. 남자는 남자끼리, 아이는 아이끼리 나뉘어 방을 하나씩 차지했다.
<싱글 래이디스>레베카 틀이스터 저 북스코프 출
지은이는 1950년대 미국 여성들은 단순히 결혼하는 차원을 넘어 조혼의 압박에 시달렸다 한다. 열일곱 살이면 약혼을 하고 20대에 결혼을 재촉하여 여성 진보를 저지했다고 해석한다. 이상적 가정 부부는 백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개념이었다. 흑인 여성은 참전용사에게 대학 교육을 제공하는 GI 법안이나 교외 주택 제공 혜택에서도 흑인들은 제외되었다. 오로지 백인 남성들이 혜택을 받아 곧장 중산층에 진입했고 백인 남편의 경제력으로 가정을 꾸리는 백인 여성 주부라는 전형이 탄생했지만 그런 모델은 저소득 노동자 계층 여성의 현실을 숨기고 왜곡했다. 2016년 기준으로 전체 가 구(1937만 가구) 중 4인 가구 비중은 18.3%, 3인 가구도 21.4%다. 1인 가구가 27.9%로 가장 많다. 3인 가구와 4인 가구를 합하면 39.7%로 수치가 올라가긴 하지만 우리 통념보다 1인 가구가 많다. 1인 가구는 1995년 1`64만 가구에 그쳤지만 2016년에는 무려 540만 가구로 늘었다. 학교에서 ‘가족’의 정의를 혈연, 혼인, 입양, 친분 등으로 관계되어 같이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 그 구성원이다. 하지만 1인 가구가 열중 셋에 이른 시대에 가족을 보호하는 사회적 제도나 장치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지은이는 비혼족에 대한 편견, 혼자 사는 여성은 이기적이라는 통념, 같은 것도 버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2011년 마국 현대 가족위원회의 조사 결과 부모를 경제적으로 부양하는 비율은 기혼보다는 미혼이 높았다. 특히 비혼 여성의 경우 정치 함여나 지역 사회 봉사 빈도가 높았다. 기혼 남녀는 에너지를 핵가족 안에서만 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연구 분석이었다. 한국 기혼 여성들을 더 억울하다. 결혼 전에는 내 부모만 신경 쓰면 되지만 격혼 뒤에는 양가는 물론 돌아가 남편 집안의 조상까지 신경 쓴다. 아무튼 기혼 여성의 관심ㅅ하가 가족 테두리에 갇히게 되는 현실이다. 시간과 에너지는 누구에게나 한정된 자원이니까.
사회학자 미셀바닥이 1979년부터 2006년까지 부모가 된 남녀 임금 격차 자료를 연구해 2014뇬 ㅂㄹ표한 자료를 보면 남성은 아버지가 되면 평균 6% 임금 상승을 기대하지만 여성은 하이가 하나 태어날 때마다 임금이 4%씩 하락한다. 임금이 더 높은 전문직은 격차가 다소 줄어드는데 직업적으로 안정된 다음 늦게 결혼하는 집단이라서 이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2014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이 졸업생 대상 조사 결과 남편보다 자신의 커리어를 우선시한나이 세대는 75였다. 그보다 연령이 높은 베이비부머다. 한국은 일단 남녀 임금 격차에서 미국은 한국을 따라갈 수 없다. OECD 조사 2002년부터 우리나라가 압도적 1위였다. 20~20세에는 남녀 차이가 없지만 30세 이후는 여성 임금이 확연히 떨어진다. 40~50대에는 남성 임금 절반에 그친다. 주된 이유는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 단절 되어 다시 사회 복귀하면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뿐이다. 전체 노동자 비율도 37.8% 남성은 15.4%다. 국가 시스템이 만든 환상에서 깨어나려면 여성들이 더 이기적이어야 한다. 여성은 항상 남의 필요에 맞추도록 훈련되어 자기 욕구를 뒤로 미루며 수세기 동안 자기희생을 이어 왔다. 지은이는 이를 깨닫고 바로 잡아 여성이 자신을 일순위로 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깨름칙할 땐 여성 자리에 남성을 집어넣어 보면 답이 나온다. “애는 엄마가 키워야지‘가 성립하는지 보려면 ”애는 아빠가 키워야지’도 당연히 성립하는지 생각해보자. ‘저 여자(남자)는 가정보다 일을 우선시해 .“ 꿈이 있는 여자가 이기적이라면 꿈이 있는 남자도 이기적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 마땅하다. 결혼 제도가 여성에게 불리했기에 엘리자베스 튜더 여왕도 1558년부터 1603년까지 결혼을 거부하고 의회가 결혼을 하라고 탄원하자 ”짐은 국가와 결혼했다.“ 단칼로 잘랐다. 또 ”거지이면서도 독신인 여성이 결혼한 여왕보다 낫다.“는 명언을 남겼다. 엘리자베스 튜더 같은 싱글 여성들이 오늘날 여성들 지위 향상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 여성에게는 결혼이 불리하고 불행한 제도였고 결혼 파업이 여성의 경제력과 인권을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공직 여성은 육아 휴직을 3년까지 쓸 수 있다. 육아맘에게는 꿈의 직장이지만 비혼인 친구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 상사가 기대하는 여성 직원은 승부욕 없이 부품처럼 조용히 일하다 아이를 키우는데 전념하고 또 돌아와 조용히 부품처럼 일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저출산을 극복하자는 국가의 어젠다에도 호응을 하고. 1973년 대한가족협회 표어는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다. 엄마 따라 목욕탕에 가면 눈에 가장 잘 띄는 위치에 산아제한 포스터가 있었다. 1980년대에는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였다.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은 미개하다는 인식을 주입시켜 놓고 이제 와서 거지꼴을 못 면하게 덮어놓고 낳으라고? 제 1차 세계대전에 남자들이 전쟁에 도원되자 여성은 이손이 부족한 군수공장에서 일하며 후방에서 전쟁을 지원했다. 남성 영역으로 인식되던 영역에 여성이 용접, 군용 차량 조립 등 방위산업에서 일 햇?다. 이들은 여권 신장, 페미니즘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전쟁 덕분에 여권이 신장된 듯 착시현상이었다. 전쟁이 미국 승리로 끝나자 국가는 여성을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노력했다. 다시 남자들에게 일자리를 돌려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주부들에게 ’완벽한 가정‘을 꾸려야 한다고 세뇌했다.
<마흔 이후 누구와 살 것인가> 캐런 루이즈 저 심플 라이프-원제는 협동주텍에서 훨씬 적은 비용으로 훨씬 잘 살기이다.
돌싱녀 캐런은 고양이를 키우며 출장 때 고양이 맡길 일이 고민일 때 루이즈에게 공동양육권을 제안 받는다. 세 여성이 함께 살기로 하고 물품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부는 아예 처분하고 포기할 수 없는 물품은 각자 개인 공간 물품으로 분류 저장한다. 사적 공간은 각가 몫으로 두되 공유 공간은 전시 특권을 활용해 한 사람?ㅆᅟᅵᆨ 돌아가며 꾸미기로 합의. 가끔은 서로 일방적 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도 허용. 서로 미적 취향은 달랐지만 합의와 ㄴ타협으로 분제를 해결한다. 공동체 유지 위해 법률협약서도 썼다. 구성원이 사암시 제정 관련 상속자 위한 유산을 상실할 경우, 한 사람이 떠나 공동체 재정이 불안정해질 경우 해소할 수 없는 갈들이 일어날 경우 등 고려해 사전 이익을 최대한 보호할 방법을 찾았다. 각가 자신을 제외한 나머디 두 사람을 수령인으로 해 생명보험에 가입했다. 갑자기 1인분 생활비가 줄더라도 재정 비상사태륾 막을려고. 냉정한 조항이지만 서로 신뢰에 상관없이 최악 상황에 대비했다. 그 결과 관계가 더 끈끈해졌다. 공동생활은 경비절약(난방 가스비 등 50%절감) 상대 배려 습관도 고치고 혼자 살 때는 물건을 늘어놓았지만 최소한 공동 공간에서는 주의, 갈등 조 법도 배웠다. 살림을 합치고 가장 심각했던 문제는 화장실 휴지를 거꾸로 걸 것이냐 제대로 걸 것이냐 투표로 결정 개인 공간에 허락없이 들어가기는 금물. 10년간 협동주택에 살면서 더 행복해졌다. 유머로 기름칠을 하며.
<중독 사회>- 앤 월슨 새프 저. 이상북스. 임상심리학 박사. 심리치유 전문가. 2016년 한글로 번역 출간됐지만 1987년 책이다. 사랑은 서로 통제하고 통제 받는 것이라는 믿음, 남이 마음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망상. 짝사랑과 집착이 스토킹으로 변화하는 것 등. 위기라고 강조하면서 정부나 기업이 뭔가 대책을 내어놓으면 ‘아 정부가 뭔가를 하고 있구나 그 기업이 뭔가 하고 있구나 믿게 되기 때분이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언론이 매일 위기를 만들어 내야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존재 간다. 저널리즘의 속성에서 중독 사회의 전형적 특징을 찾을 수 있겠다. 병적 중독자가 아닌 평범한 개인도 위기 상황을 만들어야 무언가 나름의 역할을 하는듯해서 이 사회에서 뭔가 쓸모 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다
누구든 세상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실패하기 십상이라고 지은이는 단언한다. 그 결과 우울증과 스트레스가 돌아오고. 지은이는 완전한 결혼을 남녀 관계의 중독성에 적극 뛰어드는 일이라 했다. 결혼 공적 영역에서 여성은 어린이 남성은 어른이다. 남성은 늘 결정을 내리고 바깥세상의 일을 처리하며 돈 번다. 사적 영역에서는 역할이 바뀌어 남성은 어린이 여성은 어른 된다. 여자는 밥, 옷 등 남성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의존하는 대상이다 여자가 남편을 아들 하나 더 있다하는 익숙한 풍경이다. 지은이는 중독적 관계는 영원한 부모-자녀 관계와도 같다한다. 중독 관계에 빠진 이들은 서로 성장하지 않고 영원히 의존적으로 사는 길을 택하는 셈이다. 30년 전 책이라 쇼핑 중독, 성형 중독, 게임 중독, 스마트 폰 중동 사례는 없다.
사랑에 빠진 남녀 눈에는 하트가 뽕뽕 나타나는 줄 알고 있다.
· 2018년 7월 21일 ‘유엔 이종차별철폐협약 한국심의대응 시민사회공동사무국과 서울지방변호사가 개최한 <한국사회 인종차별을 말하다>보고대회 발제문에서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이정은 사무국장은 교과서 속의 인종 차별을 지적했다. 초등 5학년 1학기 사회교과서에는 한국 문화 체험 외극인의 모습은 백인으로 이주 노동자는 유색인으로 표현된다. 중 1년 도덕교과서는 다문화 가정 청소년의 사춘기 어떤 모습일까 질문이 오히려 다문화 가정 청소년을 차별하는 질문이다. 다문화라는 용어가 한 사회 내의 다양한 소수 문화를 존중한단ㄴ 의미가 아니라 이주민 집단 지칭으로 쓰인다. 인종 차별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 2018년의 난민 사건이다. 제주도에 예멘인 561명이 와서 난민 신청 절차를 밝자 받아 주지 말라는 청와대 청원이 71만명. 인도주의적 청원 수는 미미.’난민 미세먼지 다 추방하라‘’난민은 신안 염전에 보래.‘난민 제주도 바깥으로 절대 내보내지 마라.’ 난민 대신 쓰레기 단어를 넣어야 성립할 문장들이 즐비했다. 난민 자리에 동성재자, 외국인 노동자, 여자, 한국인을 넣어보자.
2015년 터키 휴양지 보드륨 해변에 세 살짜리 남자아이 에이란 쿠르디가 모래에 얼굴읆 묻은 채 엎드려 있는 사진이다. 시리아 내전을 피해 유럽으로 가려다 터키 앞바다에서 배가 뒤집혀 숨졌고, 쿠리디 시신은 해변으로 미려온 것이다. 아마소시오페스가 아니라면 그 사진을 보고 슬퍼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시신이 떠밀려온 곳이 터키가 아니라 우리나라 해안이었다면 그때 느낀 감정과 제주의 예멘 난민에 대한 감정을 왜 그렇게 극단적으로 다를까.
난민 신청자에게 월 138만원을 준다는 왜곡 보도의 실체는 2017년에는 785명이 신청해 436명만 돈을 받았다. 총액 8억 1700만원 1인당 187만원, 6개월로 나누면 월 31만원꼴이다.
한국의 난민법이 좋아 예멘인이 왔다는 정보도 오해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1994년부터 2017년까지 24년간 난민 신청 3만 2733건 중 난민 지위를 인정해 준 경우는 706건(2.2%)이다. 2017년 한국이 인정해준 난민은 121명, 한 해 배출된 전 세계난민의 0.0007%를 품었다. 유엔 기준에 부합하는 난민법을 제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적용이 워낙 부수적이고 엄격했다. 결론적으로 예멘 난민 신청자 중 대부분은 1년짜리 인도적 채류 허가를 받았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이는 한 명도 없다. 임신부, 미성년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취업은 할 수 잇지만 교육이나 의료보험 등의 사회보장은 받지 못한다.
<우리 곁의 난민> 문경란 저. 서울 연구원 출.
-한국의 난민 여성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보듯 우리나라에 사는 난민 여성 7ㅁㅇ 이야기 중심으로 난민 현황과 제동 대해 풀어낸 책이다. 피부색이 짙은 이들은 더 심각한 이종 차별을 감내해야 한다. 이들은 자신이 원해 난민이 된 게 아니라 난민으로 내몰렸고 투명인간처럼 사회에서 고립된 채 살고 있다. 피부색이 짙을수록 차별을 당했다. 실향민은 난민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한때 난민을 대거 배출한 전쟁 국가였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으로 급속히 평화모드로 들긴 했지만 전쟁이 나면 모두 고무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널까? 2017년 기준 한국인 난민 및 난민 신청자는 누적 631명, 북한 출신은 1766명이다. 난민은 단순히 가난해서 남의 나라에 일하러 가는 이들이 아니다. 전쟁이나 인종, 정치, 종교 등 이유로 박해를 받지만 국가가 이를 보호해주지 않아 다른 나라에 가서 보호를 요청하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이런 이를 보호재주가가 난민 협약이다. 누구나 난민이 될수 있다.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선 이들에 경계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릴 때 고양이나 강아지를 보면 무서워할 때 “오히려 고양이가 너를 더 무서워 하겠다 고양이보다 너가 훨씬 더 크잖아 저것 봐. 너가 지나가니까 저렇게 도망가잖아.” “우리가 더 두려울까, 난민이 더 두려울까? 적대적 사람과 제도로 꽉 막힌 한국 사회에서 절대 소수자 그들이 겪는 공포는 우리의 막연한 그것보다 더 실체적이다. 중국산 가전제품을 쓰고 스페인에서 만든 송을 입고 중동 원유로 자동차를 달리는 시대. 국경 없는 세계 시민으로 살아갈 자녀들에게 필요 자격은 영어 능력이 아니다. 다른 이,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힘을 키워주며 우리 안의 차별과 혐오, 민족주의도 들여다봐야겠다.
·<폭력의 기억,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엘리스 밀러 저 양철북—어린 시절의 체벌과 학대가 이후의 삶에 미치는 여향 보고서-
부모가 저지르는 학대는 교육, 혹은 훈육이란 이름 아래에서 합리화 된다. 하지만 학대다 학대 당한 자녀는 언젠가는 부모가 자신을 사랑해주리라는 기대, 언젠가는 억눌렀던 감정을 털어놓고 부모아 제대로 소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지은이는 비정상적이고 엇나간 잘못히라 한다. 잘못된 애착을 어릴 때는 당연한 듯 받아들이며 살아도 성인이 되면 결국 배우자나 아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고통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폭력의 대물림되는 속성이 있다는 것은 지금은 상식이다.
폭력을 지켜보는 것도 힘들었지만, 막을 수 없다는 무기력이 더 고통스러웠다.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 잘못 하는 것은 한국인의특성이다. 이심전심의 사회여서일가? 아이에게 잘못하고도 사과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정서 학대다. 폭력의 기억은 몸에 새긴다. 도스토엡스키, 안톤 체홉. 카프카, 니체, 랭보 등 걸출한 문호들의 어린 시절 부모들로부터 고통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그런 사실을 깨닫지 못했거니와 문학 작품 속에 오히려 부모를 철저히 이상화하는 방식으로 오린 시절의 상처를 의식에서 지워버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병을 얻거나 요절하거나 비참하게 삶을 마감했다는 주장이다. 지은이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도덕이 옛날부터 어른의 편에서 아이를 억압해왔다고 한다. 효를 강조한 동양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심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이 있다. 학대 받은 몸에는 부모에게 반항하면 처벌 받을 거라는 불안이 잠재해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일이 학대였다는 것으로 해서 불안이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 불안이 해소된다는 게 전분가로서 그가 갖는 확신이다.
·<거의 모든 것의 탄소 발자국>마이크 버너스리 저, 도요새 출
화장실 종이 타월과 핸드 드라이어를 보면 종이 타월 한 장에 탄소발자국 10g 고효율의 다이슨 에어블레이드는 3g이 든다. 열을 뿜는 핸드 드라이어는 20그램으로 종이 타월의 두 배. 하지만 종이 타월을 두 세장 뽑아 쓰면 승자는 핸드 드라이어다. 물론 지구를 아끼는 가장 좋은 방법을 자연 바람에 저절로 마르도록 내버려두는 것이지만 또 하나 반전은 종이 쇼팽백이다 재생지로 만든 얇은 쇼핑백은 12그램, 브랜드 매장 고급 쇼팽백은 80그램을 배출한다. 반면 비닐봉지는 3그램!10그램 재사용 가능 두꺼운 비닐이 50그램의 탄소 발자국을 남긴다. 지은이는 종이가 비닐보다 친환경적이라는 상식은 잘못되었단다. 특히 쇼핑백을 재활용하지 ㅇ낳고 매립하면 썩어 온실가스 내뿜는다는 것이다. 매립 종이 1그램당 50그램의 온실가스가 나온단다. 전 세계 데이터 센터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은 2010년 기준 한 해 1억 3000만통이다. 전 세계 탄소 발자국의 0.25%다. 지은이는 2020년이면 데이터 센터의 탄소 발자국이 2~3배 늘어날 추정이다. 이런 추세면 디지털 정보가 전체 탄소발자국에서 인소ㅔ 및 종이 기반 발행물이 차지하는 비율인 1프로를 넘어설 날이 멀지 않단다.
일단 대학부터 가고 나서 하고 싶은 거 해라는 말은 미래를 살아갈 아이에게 잘못된 지침일 수 있다.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몰입하는 경험, 직접 생각하고 만들어 내는 경험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오늘날의 바람직한 부모상이다.
사슴벌레 알을 낳으면 블로그를 만들어 자신이 얻은 정보와 경험으로 도움을 주려는 마음으로 운영하려는 것이다.
밀폐용기 통째 요구르트 제조기에 올려놓고 요구르트를 만들었다. 한 자 듬뿍 떠내자 내용물이 빈 공간으로 쏠리면서 금이 생겼다. “북극 땅 같아 사람들이 전기를 많이 써서 북극 얼음이 녹사서 갈라지는 거야.”
자동차 타고 마트 갈 때 아이는 또 “빨리 주차장에 도착하면 좋겠다. 자동차 매연 때문에 지구가 더워져서 북극이 녹는 거잖아. 북극곰 집도 없어지고.”
유치원에서 환경에 대해 배워 계속 녹아내리는 북극에 대한 염려였다.
<이웃집 살인마> 데이비드 버스 저. 사이언스 북스 출
살해 피해자 중 캐나다는 남성이 74%, 미국 77.4%. 살인을 저지르는 것도 8할이 남성, 살해당하는 것도 7~8할이 남성이다. 미국과 달리 총기 소지가 불가능한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맨손 방어력이 뛰어난 남성이 살인자가 덤벼든 상황에서도 실제로 살해되지 않고 더 많이 살아남은 셈이다 그러니 최종 피해자는 과도할 정도로 여성이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