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랬던가?
“좋은 음악은 나를 춤추게 한다.”고.
함께 근무하는 사회 선생님의 제안으로 뉴서울필하모니의 브람스 & 라흐마니노프 음악회를 갈 수 있었다.
가까운 전주 소리문화의 전당에서 뉴서울필하모니의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접한 사회 선생님이 제안을 해 주었다.
금요일 창체시간을 이용하여 학생들에게 수준 높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 어떨지.
“좋아요.”
선생님들은 이 좋은 기회를 마다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는 그런 좋은 음악을 직접적으로 접할 기회가 적기에 시간과 예산을 투자하여 바로 표를 예매하고 시간표 조정을 하였다.
평일 2시라 그런지 다행히 표는 남아 있었고 음악을 들을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오전 수업과 점심 식사를 마치고 전주로 향한다.
우리 학교에서 전주 소리문화의 전당까지는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하여 서둘러 공연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차가 많이 막히지 않아 공연 20분 전에 공연장에 무사히 도착하여 입실할 수 있었다.
사회 선생님은 미리 도착하여 표를 찾고 자리를 안내해 준다.
일단, 이 좋은 공연 정보를 잘 찾고 이를 계획하여 공연을 볼 수 있게 해 준 사회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덕분에 우리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수준 높은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음악은 크게 바이올린 독주(임지영)와 피아노 독주(원재연)로 나뉘었다.
오늘 듣는 음악은 브람스와 라흐마니노프이다.
두 독주자는 악보도 없이 악기와 몸이 혼연일체가 되어 신명나게(?) 연주에 임하고 있었고 우리는 이를 숨죽여 바라보며 듣고 있다.
연주하는 그 시간은 온 우주가 멈춘 듯, 공기의 흐름도 잠시 멈추고 이 음악에 빠져 있는 것만 같았다.
음악을 듣는 공연장의 많은 사람들은 두 연주자에게 홀딱 빠져버렸다.
연주자는 음악으로 우리를 홀리고 있었다.
나는 마치 피아노 선율과 바이올린 현으로 이루어진 음악의 대나무 숲에 앉아 음악의 바람으로 인해 흔들거리는 대나뭇잎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다.
눈을 가만히 감고 공간에 흩어지는 음악을 찾아 잡고 있었다.
이 좋은 음악으로 인해 나의 품격이 높아지고 있다.
문득 품격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 음악을 듣는 나는 품격 있는 사람일까?
과연 사람의 품격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음악을 들으며 잠시 고민의 세계에 빠진다.
한참을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니 어느 정도 나 나름의 정답을 찾을 수 있다.
첫째, 언어이다.
저급 언어(욕설, 경어)보다는 고급 언어(수준높은 단어, 존중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품격이 높은 사람이다.
나의 언어 사용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지내는 가족이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그것을 보면 나의 언어를 알 수 있다.
간혹 학생들을 보면 욕설을 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린 학생들은 정확한 뜻도 모른 채 무의식적으로 대화 중 욕설을 쓴다.
특별한 의미없이 사용하고 있다.
왜 그럴까?
물어보면 집에서 부모님이 욕설을 사용하여 이를 듣고 자랐거나 아니면 영상매체를 통해 욕설을 들었거나.
그래서 환경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맹모삼천지교’가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대화 중 아무 의미없이 욕설을 사용하는 어린 학생들을 보면 참으로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
어른으로서 부끄럽다.
“그건 나쁜말이야. 넌 소중한 사람이니 좋은말을 쓰자.”라고 매번 말하곤 한다.
저급 언어는 사람의 품격을 결정하는 가장 큰 ‘보여짐’이라고 생각한다.
고급 언어를 사용하도록 학생들에게도 나 스스로에게도 독려해 본다.
올바른 언어 사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둘째, 책이다.
당신은 지금 무슨 책을 읽고 있는가?
바로 대답할 수 있는가?
바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면 품격있는 사람은 책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품격이 있는 사람이다.
또, 품격이 있는 사람은 책을 읽는 사람이다.
명제와 역, 두 가지 모두 다 참이다.
배움의 시작은 읽기이고, 생각의 과정은 독서이고, 표현의 표상은 글쓰기이다.
자신의 의견을 올바른 방법으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은 품격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기를 수 있는 그 시작이 바로 독서이다.
읽고 생각하고 쓰고.
나 스스로를 위하여 매일 조금씩이라도 책을 읽자.
가방에 작은 책 하나 가지고 다니자.
어디서든 읽을 수 있게.
그래서 우리 학교에서는 아침독서와 수업중 독서를 학생들에게 실시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하루를 시작하면서 책을 읽고, 수업 중 시간이 남으면 책을 읽고, 어디서든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독서는 공부의 출발점이다.
셋째, 예술이다.
좋은 음악을 듣고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면 삶을 풍요롭게 하고 품격을 높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여기서 좋은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이다.
능력이 된다면 학생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능하면 많이 제공해 주고 싶다.
내가 악기를 연주할 줄 안다면 교정에서 멋들어지게 연주를 해줄 텐데.
그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악기를 연주했다면 삶이 더 풍요로워졌을 텐데...
지금의 내 삶에 만족하긴 하지만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그 아쉬움을 교육과정에 녹여냈다.
음악 선생님의 도움으로 매 학기 학생들은 한가지 악기를 배운다.
이번 2학기에는 하모니카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
곧 학교에 멋진 하모니카 선율이 울려 퍼지겠구나.
또, 매주 방과후 시간에는 밴드부를 운영하여 드럼, 베이스, 기타, 피아노와 사물놀이반을 운영하여 꽹과리, 장구, 징, 북을 배우고 있다.
아마 연말 학교 축제에서 멋들어진 공연 한판 벌어질 예정이다.
3년간 악기를 배우면 어느 정도 연주할 실력을 갖출 수 있다.
그럼, 이 학생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어디선가 언젠가 자기가 배웠던 악기를 연주할 기회가 생기겠지.
그럴 때, 멋지게 연주한다면?
그 장면을 생각만 해도 멋있다.
나의 상상에는 미래의 멋진 학생이 아니 어른이 서 있다.
그 한번을 위해서라도 음악을 다루고 배우는 일은 가치가 있다.
품격있는 사람은 진정한 배움을 통해 만들어진다.
올바른 언어를 사용할 줄 알고, 읽고 생각하고 쓸 줄 아는, 음악을 들을 줄 알며, 악기 하나 정도는 다룰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들기 위해 학교에서는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오늘처럼 좋은 음악을 들을 기회가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간다.
오늘 좋은 음악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별 쓰잘데기 없을지도 모르는 생각들을 해보았다.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참 부끄럽다.
품격도 없는 사람이 참 쓸데없는 말 주저리주저리 많이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