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친 글] 1일 매니저 / 정희연
일요일 오전, 광주 상무 지구를 벗어나 고속 도로로 접어들었다. 대전으로 가는 길이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매주 출퇴근했는데 감회가 새롭다. 2년 반쯤 근무하며 지냈던 일상이 뇌리를 스친다. 뜨거운 햇볕 아래 짙푸르던 가로수 나뭇잎도 가을의 초입에 들어선 듯 빛바래가고 은행나무 열매도 따뜻한 기운의 노란색으로 토실토실 영글어 가고 있다.
아내의 「한국 학습 코칭 전문가 협회 지식 나눔 정기 포럼」 일정이 있어 오가는 길을 동행하기로 했다. 코칭 센터를 연 지 2년이 되었다. 그동안의 학습 코칭을 지도하면서 경험했던 사례를 주제로 발표한다. 피피티(PPT) 35쪽 분량이다. 광주 톨게이트를 지나자 아내가 연습에 열중한다.
“평가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학교로 가는 진로 코칭 사례」를 발표하게된 입니다.”
“학교로 가는 진로 코칭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 어떻게 시작하였나. 두 번째, 이렇게 하고 있어요. 세 번째, 다음은 어디로 성장을 이어가나.” 한참 이야기하더니 말문이 막히는지 어쩌고저쩌고 설명이 이어진다.
“준비되지 않은 부연 설명은 자칫 주제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실전처럼 해 보세요.”
“내 학습 상태가 이랬구나, 난 꼭 프로파일러가 되고 싶은데 학습을 너무 소홀히 생각했네, 그래 이것은 나도 느꼈던 거야, 그래 조금씩 고쳐 보자.”
많은 경험과 숙달에서 오는 여유와 말에 강략을 조절하며 힘이 담겨있는 목소리에서,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아내가 코칭 센터를 운영하면서 우리 가족도 더불어 코칭 과정을 수료하고 자격증도 따게 되었다. 만나면 코칭으로 시작해 코칭으로 끝났다. 눈이 마주쳐도 그렇거니와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면서도 그랬다. 침묵이 길어지면 보따리를 풀었고 때론 뜬금없이, 하물며 멸치 똥을 뗄 때도 계속되었다. 학습 코칭, 진로 코칭, 라이프 코칭, 비즈니스 코칭, 리더십 코칭, 안전 코칭, 시니어 코칭, 에이아이(AI) 코칭을 더하여, 성과를 높이는 퍼포먼스 코칭, 고위 경영진을 대상으로 하는 임원 코칭, 정신 정서 역량을 높여주는 멘탈 코칭, 재무 예산 투자 계획을 지원하는 금융 코칭 등 다양하다.
두 시간 조금 넘는 거리인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다. 열두 시 30분에 시작해 다섯 시 30분에 끝나고 이사회 회의까지 마치면 일곱 시 30분 전후가 된다고 한다. 그동안 나는 도서관에 있기로 했다.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와 『논리적 글쓰기를 위한 인문고전 100』을 읽고 있다. 함영대의 책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나오는데, 주제를 스무 개로 나누고 그에 따라 다섯 권씩 고전을 소개하고 있어 한쪽으로 치우치는 독서 습관을 바로 잡아 주는 데 도움이 되었다.
카톡음이 울린다. “일곱 시 30분에 주차장에서 만나요.” 아내의 표정이 밝다. 발표 도중 “자, 빛나라 별들아.” 자작곡을 부르고 “진로 코칭으로 날개를 달았습니다.”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고 한다. 발표가 끝나고 노래를 부를 때는 청중들은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줄 알았고, 큰소리로 외칠 때는 우레와 같은 박수도 받았다고 한다. 아내는 완벽을 추구하면서도, 때론 자신을 엉뚱하고 어리숙하게 보일 때가 많다. 인간관계를 부드럽고 또는 따뜻하게 만들어가려는 것이라는 데 어찌 되었건, 주제 발표는 과거를 매듭짓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해 보였다.
이번 추석이 지나면 나는 ‘경상남도 울산’으로 현장(일터)을 옮긴다. 가치관과 문화는 내가 사는 전라도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넓은 들판과 서해의 평온한 바다 그리고 삶의 터전이 있는 반면, 울산은 동해안의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같은 대규모 산업이 발달했다. 그곳의 상황을 익히고 숙달하려면 그만큼 노력을 더 해야 하겠지만 새로운 곳에서 얻는 경험은 또 다른 맛을 만들어 줄 것이다. 조금 있으면 새로운 세상이 내게로 온다. 지금은 그걸 담을 수 있는 새 그릇을 준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