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인간의 삶을 염세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 맞다(무아설 무상설)
그렇다보니 사랑과 행복 희망과 성취 같은 인간 삶의 진취적인 면들까지 괴로움의 한 단면들로 놓는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본 통찰 그 자체일 뿐이다
바로 그 통찰 위에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불교다(사성제 팔정도) 이것이 무아와 해탈의 관계다
그리고 그 대안의 최소한 역활은 인간의 삶을 사랑과 행복으로 인도 한다(연기설)
속박 경(A4:10)
1. “비구들이여, 네 가지 속박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감각적 욕망의 속박, 존재의 속박, 견해의 속박, 무명의 속박이다.(*1)
(*1)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으로 된 것이 ‘감각적욕망의 속박(kāma-yoga)'이다.
색계와 무색계의 존재에 대한 욕탐이 ’존재의 속박(bhava-yoga)'이니 禪을 갈구하는 것(jhāna-nikanti)이다.
영원하다는 견해[常見, sassata-diṭṭhi]와 함께하는 욕망과 62가지 견해가 ‘견해의 속박(diṭṭhi-yoga)'이다.
사성제를 알지 못하는 것이 ’무명의 속박(avijjā-yoga)'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감각적 욕망의 속박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감각적 욕망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
그가 감각적 욕망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 감각적 욕망을 즐거워함, 감각적 욕망에 대한 애정,
감각적 욕망에 대한 홀림,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증, 감각적 욕망에 대한 열병,
감각적 욕망에 대한 계박,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가 잠복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러 감각적 욕망의 속박이라 한다.
이것이 감각적 욕망의 속박이다.
그러면 존재의 속박이란 어떤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존재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
그가 존재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존재에 대한 탐욕, 존재에 대한 즐거움, 존재에 대한 애정,
존재에 대한 홀림, 존재에 대한 갈증, 존재에 대한 열병,
존재에 대한 계박, 존재에 대한 갈애가 잠복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러 존재의 속박이라 한다.
이것이 감각적 욕망의 속박이고 존재의 속박이다.
그러면 견해의 속박이란 어떤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견해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견해의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
그가 견해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견해에 대한 탐욕, 견해에 대한 즐거움, 견해에 대한 애정,
견해에 대한 홀림, 견해에 대한 갈증, 견해에 대한 열병,
견해에 대한 계박, 견해에 대한 갈애가 잠복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러 견해의 속박이라 한다.
이것이 감각적 욕망의 속박이고 존재의 속박이고 견해의 속박이다.
그러면 무명의 속박이란 어떤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
그가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들에 대한 무명과 무지가 잠복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러 무명의 속박이라 한다.
이것이 감각적 욕망의 속박이고
존재의 속박이고
견해의 속박이고
무명의 속박이다.
악하고 해롭고 정신적 오염원이며
다시 태어남[再生]을 가져오고 두렵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있게 하는 법들에 묶였기 때문에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자라고 불린다.
이것이 네 가지 속박이다.
2. “비구들이여, 네 가지 속박에서 벗어남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감각적 욕망의 속박에서 벗어남, 존재의 속박에서 벗어남,
견해의 속박에서 벗어남, 무명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감각적 욕망의 속박에서 벗어남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감각적 욕망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다.
그가 감각적 욕망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기 때문에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
감각적 욕망에 대한 즐거움, 감각적 욕망에 대한 애정, 감각적 욕망에 대한 홀림,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증, 감각적 욕망에 대한 열병, 감각적 욕망에 대한 계박,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가 잠복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러 감각적 욕망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라 한다.
이것이 감각적 욕망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다.
그러면 존재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란 어떤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존재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다.
그가 존재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기 때문에 존재에 대한 탐욕, 존재에 대한 즐거움,
존재에 대한 애정, 존재에 대한 홀림, 존재에 대한 갈증, 존재에 대한 열병,
존재에 대한 계박, 존재에 대한 갈애가 잠복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러 존재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라 한다.
이것이 감각적 욕망의 속박에서 벗어남이고 존재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다.
그러면 견해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란 어떤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견해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다.
그가 견해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기 때문에 견해에 대한 탐욕, 견해에 대한 즐거움,
견해에 대한 애정, 견해에 대한 홀림, 견해에 대한 갈증, 견해에 대한 열병,
견해에 대한 계박, 견해에 대한 갈애가 잠복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러 견해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라 한다.
이것이 감각적 욕망의 속박에서 벗어남이고 존재의 속박에서 벗어남이고
견해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다.
그러면 무명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란 어떤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다.
그가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기 때문에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들에 대한 무명과 무지가 잠복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러 무명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라 한다.
이것이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남이고 존재의 속박에서 벗어남이고
견해의 속박에서 벗어남이고 무명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다.
악하고 해롭고 정신적 오염원이며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두렵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있게 하는 법들로부터 풀려났기 때문에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자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가지 속박에서 벗어남이다.”
3. “감각적 욕망의 속박에 묶이고
존재의 속박에 묶이고
이 둘 다에 묶이고
견해의 속박에 묶이고
무명의 속박을 앞세우는 중생들
그들은 태어남과 죽음이 거듭되는 윤회를 하노라.
감각적 욕망과 존재의 속박을 모든 곳에서 철저히 알고
견해의 속박을 뿌리 뽑고
무명의 속박을 빛바래게 하여
모든 속박으로부터 풀린 자들은
참으로 속박을 넘어선 자들이어라.”
출처 : 대림스님옮김 앙굿따라니까야 2권
첫댓글 無我論 - 無我와 解脫의 關係 - 束縛經(대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