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애왕태후(獻哀王太后) 황보씨(皇甫氏)는 대종(戴宗)의 딸로 목종(穆宗)을 낳았다. 목종이 즉위하자 책봉(冊封)하고 존호(尊號)를 올려 응천계성정덕왕태후(應天啓聖靜德王太后)라고 하였다. 목종의 나이가 이미 18세였으나 태후가 섭정(攝政)하며 천추전(千秋殿)에 거처하므로 세상에서 천추태후(千秋太后)라 불렀다. 〈태후가〉 김치양(金致陽)과 사통(私通)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로 왕위를 잇고자 하였다. 그 때 현종(顯宗)은 대량원군(大良院君)이었다. 태후가 그를 꺼려서 강제로 출가(出家)하도록 하여 삼각산(三角山) 신혈사(神穴寺)에 살았으므로[寓居] 세상 사람들이 신혈소군(神穴小君)이라 칭하였다. 태후가 여러 번 사람을 보내 해치려고 꾀하였는데[謀害], 하루는 내인(內人)을 시켜 술과 떡을 보냈는데 모두 독약(毒藥)을 섞은 것이었다. 내인이 절에 이르러 소군을 만나 뵙고 직접 먹기를 권하려 하였는데, 절에 어떤 승려가 문득 소군을 땅굴 안에 숨겨 놓고 〈내인에게〉 속여 말하기를, “소군께서 산 속으로 놀러 나가셨으니, 어찌 가신 곳을 알 수 있겠소이까?”라고 하였다. 내인이 돌아간 뒤 〈떡과 술을〉 뜰에 흩어버렸더니 까마귀와 참새가 먹고 바로 죽어 버렸다. 무릇 충신(忠臣)과 의사(義士)들이 더욱 꺼려지는바 되고 죄 없이 모함을 받는 일이 많았지만 목종은 금할 수 없었다. 〈목종〉 12년(1009) 정월에 천추전이 불타고 태후가 장생전(長生殿)으로 옮겨간 뒤 강조(康兆)가 김치양 부자(父子)를 죽이고 태후의 친속(親屬)들을 바다 섬으로 유배 보냈으며, 또 사람을 시켜 목종을 시해(弑害)하였다. 이에 태후는 황주(黃州)로 돌아가 21년 동안 살았다. 현종 20년(1029) 정월 숭덕궁(崇德宮)에서 훙서하니 나이는 66세였고, 유릉(幽陵)에 장사지냈다.
獻哀王太后皇甫氏, 戴宗之女, 生穆宗. 穆宗卽位, 冊上尊號曰, 應天啓聖靜德王太后. 穆宗年己十八, 太后攝政, 居千秋殿, 世號千秋太后. 與金致陽通而生子, 欲以其子, 嗣王位. 時顯宗爲大良院君, 太后忌之, 强令出家, 寓居三角山神穴寺, 時稱神穴小君. 太后屢遣人謀害. 一日, 使內人遺以酒餠, 皆和毒藥. 內人到寺, 求見小君, 欲親勸食, 寺有僧, 輒匿小君於地穴中, 紿之曰, “小君出遊山中, 安知去處耶?” 及內人還, 散之庭中, 烏雀食而卽斃. 凡忠臣義士, 尤所忌憚, 多以非罪陷之, 穆宗不能禁. 十二年正月, 千秋殿灾, 太后入長生殿後, 康兆殺致陽父子, 流太后親屬于海島, 又使人弑穆宗. 於是, 太后歸居黃州者二十一年, 顯宗二十年正月, 薨于崇德宮, 壽六十六, 葬幽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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