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후퇴를 거듭하던 국군이 영천의 보현산 준령에 최후의 보루를 만들었다. 보현산과 기룡산과 화산이 마치 중국의 만리장성처럼 방풍 벽으로 영천의 북쪽을 휘감아 지켰다. 그런데 포항이 무너지며 안강전투에서 학도병의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영천까지 시가전을 벌인 일은 참혹하다. 운주산 줄기의 동편이 무너지자 영천시가지는 거의 적의 첨단 보병이 다가온 전쟁터가 되었다. 화남면 죽곡리와 영천시 도림동 오미동이 적의 보병이 넘나든 전쟁터가 되어 35번 국도가 도림동에서 막혀 피난길마저 화남면 사천리에서 되돌아 가야 하는 판세다. 영천의 보현산과 화산이 최북단의 보루 역할로 팔공산과 함께 버티며 영천시가지 서편 유봉산이 성벽처럼 지켜서 적은 남진을 멈추고 말았다. 당시 유일한 35번 국도가 도림동에서 막히자 화남면 소재지에서 화산면 가상리를 통해 대구로 새길을 뚫어야 했다. 지금도 백학산 위쪽 잘룩이에 당시의 길 흔적이 남아있다.
보현산도 마지막엔 내어놓고 사천리 뒷산까지 국군이 밀려나기도 했다. 화남면 사천리 동편에 있는 신호리 앞산은 이미 적군이 기습하여 백병전을 연일 치루었다. 바로 대내실못 아래 절벽을 이루는 산이다. 적의 탱크가 보현산 준령을 피해 동편 포항 쪽으로 밀어서 신호리와 사천리와 대천리와 선천리는 보현산의 방패막이로 무사했다. 마을에는 후퇴한 군인들로 국군의 전후지가 되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보니 난데없이 에나멜 전선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리 마을 사천교회가 그래도 큰 건물이라 군부대가 야전본부를 만들었다. 필자가 어릴 때라 엄마 따라 채소밭에 갔다가 "여기는 낙동강 두만강 나오라! 오버!" 연속하여 외치는 무전 치는 소리를 나에겐 노랫소리처럼 들렸다. 재미가 나서 나도 따라 읊조렸더니 엄마는 겁이 나서 나의 손목을 잡고 황급히 집으로 왔던 일이 못내 아쉬웠다는 당시의 내 미련한 생각이다.
백병전이 연일 치러졌던 신호리 앞산은 영천시 임고면과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올챙이 골엔 수많은 인명의 피해가 났다. 소위 육박전이라는 백병전에서 밤마다 어둠 속에 힘으로 먼저 제압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아군과 적군을 분별했다는 선배님들의 전쟁 이야기를 나는 기억하고 있다. 대내실못이라는 저수지를 타고 절벽 아래로 기습한 적의 보병 선발대가 절벽의 완만한 곳을 기어올라 기습을 가한 것이다. 아군은 뒤가 후방이라고만 믿고 방심하다 생기는 불운이었다. 금호강 지류인 고현천 하류가 신호리에서부터 영천시 서쪽 유봉산까지 최후 배수진 방어선이 되었다. 동편으로 포항시와 경주시가 적의 수중에 들자 영천도 일부 시가지까지 점령당하는 꼴이었다. 그 때문에 아군은 고현천까지 밀린 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올챙이 골에는 전쟁의 흔적이 더러는 유골과 탄피로 발견된 일이다.
보현산과 화산의 준령 덕택으로 현재의 화남면 지역은 적의 발길에 더럽혀지지 않고 전쟁의 참화에 온전할 수가 있었다. 최후 점령당하지 않은 영천땅 최북단 지역으로 남았다. 목숨을 걸고 지켜온 국군의 피 흘린 결과로 오늘의 번영과 영화를 우리는 누리고 있다. 당시 우리 사장어른이 오미동에 사셨는데 나이가 많아 죽어도 고향 집에서 죽겠노라고 혼자 피난을 가지 않으셨다. 어느 날 새벽이 오자 밤에 오미동을 점령한 인민군이 비행기 소리를 듣고는 다급하게 숨기 시작하더라고 그랬다. 전투기가 기관총을 쏘아대자 개미떼처럼 흩어지는 인민군들은 야산의 소나무 포기 밑에 끼어들어 숨던 장면을 상세하게 이야기로 들려주셨다. 이때가 북진의 시발점이었다. 인민군들은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될 때쯤 이미 미군의 전투기에 녹아나고 있었다. 당시의 산들은 민둥산이라 적군들의 몸은 전투기에 모두 노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겨우 도망가기 바빠진 일이었다.
지금도 대구-포항고속도로 북영천 IC를 끼고 흐르는 고현천은 천혜의 한국전쟁 방어선이었다. 보현산과 화산의 준령을 보루로 한, 국군의 뒤에 배수진을 만든 강이 되고 말았다. 도림동과 오미동 건너편 매산동, 녹전동, 대전동은 화남면 사천리와 함께 적의 발길이 닿지 못한 지역으로 남았다. 산하는 아직도 변함없이 굳건하고 맑게 흐르고 있어도 전쟁의 상처는 아물 길이 없다. 전쟁으로 희생된 임들은 영원히 다시 돌아올 수 없고 그래도 휴전선은 사라지지 못했다.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에 임들의 넋을 건지고자 하는 마음만 간절할 뿐이다. 한국전쟁의 처절한 저지선 북단 보루 영천시 화남면 사천리에서 직접 당해본 전쟁의 참화현장을 다시는 전쟁으로 인한 불행이 없도록 기원하는 마음으로 되새겨 본다.
( 글 : 박용 2017.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