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명유래(종로구)
종로구
•황토마루(세종로, 신문로)
세종로와 신문로 · 종로가 갈리는 네거리 남쪽인 세종로사거리에 있던 야트막한 고개로서, 이 고개가 황토로 이루어졌던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일설에 따르면 황토가 아니라 음양오행상 중앙을 뜻하기 때문이라 한다.
황토현이라고도 하였다.
•사모바위(구기동)
구기동 승가사 뒤에 있는 바위로서, 모양이 사모같이 생긴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새문안(신문로2가)
조선 세종 때 지금의 고려병원과 경향신문 사이에 새로 세운 돈의문, 즉 신문(新門) 안인 광화문 방향의 새문안길 좌우쪽이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당고개(창신동)
창신동 일대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으로, 서일정보산업고등학교 자리에 옛날 도당이 있던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당현'이라고도 하였다.
•치마바위(사직동): 사직공원 서쪽에 있는 넓고 평평하게 생긴 바위로, 중종의 첫 번째 왕비인 단경왕후와 관련된 전설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삼형제고개(홍파동)
홍파동에 위치한 언덕으로, 옛날 고개 밑에 주막을 경영하는 삼형제가 살았는데, 형제간에 우애가 깊고 효성이 지극하여 정문이 세워졌다고 전하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연못(행촌동)
대신중고등학교 부근의 골짜기를 막아 못을 만들고 연을 심었던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피맛길 또는 피맛골(청진동)
조선시대 고관대작들이 가마나 말을 타고 행차하는 행렬을 피하는 길이었던 데서 유래되었다.
•갯골(명륜동1가)
명륜동1가에 있던 마을로서, 성균관 서북쪽의 개천이 있는 곳에 있던 마을이었다.
'포동'(浦洞)이라고도 불렀다.
•중학다리(중학동)
지금의 한국일보 사옥 주변에 있던 다리의 이름으로, 조선시대 조정에서 운영하던 4부학당 중 '중학'의 앞에 있던 다리여서 중학다리 또는 '중학교'라고 하였다.
창덕궁을 출입하는 고관들이 다니던 다리여서 '양반다리'라고도 불리웠다.
•경교다리(평동)
지금의 서울적십자병원 앞에 있던 다리로, 경기감영이 위치했던 곳 앞에 있던 다리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개전골(서린동, 종로1가)
조선시대 이 곳에 조개를 파는 가게가 몰려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부침바위(부암동)
현재 천주교 세검정교회 주변에 있던 큰 바위로, 이 바위에 다른 돌을 붙이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바위에 돌을 문질러 붙이던 것에 유래한 이름이다.
이 바위를 한자로 '부암'이라고 했고, 이 바위의 이름이 현재 부암동의 이름이 된다.
•성제우물(삼청동)
현재 삼청동길 북쪽에 있던 우물로, 칠성당에 제사를 올릴 때 쓰던 우물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은행나무골(행촌동)
행촌동 일대에 있던 마을 이름.
•청석골(견지동, 관훈동)
조선 중기의 문신인 청성부원군 김석주(1634-1684)가 살던 동네라고 하여 '청성골'이라고 불리던 것이 변하여 '청석골'이라고 불렸다.
•남이탑골(연건동)
연건동에 있던 마을로서, 조선 전기의 무신 남이의 집터에 '남이탑' 혹은 '남미탑'이라고 하는 탑이 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영미다릿골(창신동, 숭인동)
창신동과 숭인동에 걸쳐있던 마을의 이름으로, 지금의 동묘 남쪽 청계천 하류에 놓인 다리의 이름이 영미다리라 불렸는데 이 다리의 이름이 마을의 이름으로 붙여진 것이다.
•샛골(창성동)
창성동에 있던 마을로, 동네 양 옆을 통하는 길 사이에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개천(창신동)
청계천의 원래 이름으로, 조선이 건국된 이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하천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배오개(종로4가, 예지동, 인의동)
앞에 나열된 동에 걸쳐있던 마을의 이름으로, 예전에 숲이 울창해 짐승과 도깨비가 많아 '도깨비고개'라고 불렸는데, 이 고개를 대낮에도 넘기 힘들어 백명은 모여야 넘을 고개라 하여 '백고개', '백채', '백재'라고 불리다 음이 변하여 '배오개'라는 이름이 붙었다.
•진골(운니동)
운니동에 있던 마을로서, 어원은 불분명하다.
영조 때 만든 도성지도에는 익선동과의 경계가 되는 소로의 남쪽으로 표시되어 있다.
•새말(교북동, 행촌동, 홍파동)
열거된 지역에 걸쳐져 있던 마을의 이름으로, 이에 대한 두 가지의 설이 존재한다.
하나는 이 인근에 있던 모화관을 헐고 난 자리에 사람들이 이사해 살기 시작하면서 붙은 지명이라는 것과, 인근에 서대문형무소가 생겨나면서 옥바라지를 하기 위해 올라온 사람들이 이룬 마을이어서 '새말'이라고 명명되었다는 것이다.
•홍덕이밭(동숭동)
낙산 아래에 있던 밭의 이름으로, 병자호란 때 효종[59]이 청군에게 볼모가 되어 심양에 있을 때, 나인 홍덕(弘德)이 또한 포로가 되어 심양에 있으면서 김치를 담가드렸고, 본국에 돌아와서도 다시 김치를 담가서 나인을 시켜 효종께 바친다.
이를 효종이 감탄하여 상을 주고자 하나 홍덕이 사양한다.
이에 명을 내려 낙산 아래에 있는 밭을 주었다고 전하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수짓골(명륜동)
지금의 성균관대학교 서울캠퍼스 동북쪽에 있던 마을의 이름으로,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한자어로 '수지동'이라고도 불렸다.
•바자다리(묘동)
단성사 앞에 있던 다리의 이름으로, 조선 초기 대나무를 얽어서 다리를 놓고 그 위에 흙을 덮어서 가설했기 때문에 '파자다리'라고 불렀고 한자명으로 파자교(把子橋)라고 했던 것이 점점 변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가재우물(옥인동)
지금의 우당기념관 남서쪽에 있던 우물로 석벽 밑에 가재 구멍같은 곳에서 물이 나오는 우물이라 하여 '가재우물'이라고 하는 이름이 붙었다.
세 개의 우물이 한자 품(品)자와 같이 모여있었다고 전한다.
•두께우물골(종로1가)
•두다리(종로5가)
•비팟골(관수동)
•웃잣골(혜화동, 동숭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