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자랑스러운 할아버지 정신
조상님 제사에 축과 지방을 작성하면서 느낀 일이다. 제사에 축과 지방을 쓰는 일을 지금은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내가 주목한 일은 우리 가문 할아버지의 부인은 모두 한 분씩이라는 사실이었다. 인터넷 족보에도 역대 할머니 산소를 할아버지 산소와 함께 구글어스로 위도를 찾아 위성사진으로 기록하게 되어 아는 일이다. 문중에 누구라도 할아버지나 할머니 산소의 위치를 알아보려면 매우 쉽다. 마우스로 묘소 위치 글자를 클릭하면 위성사진에 명확하게 나타난다.
조상님 제사도 어머니 생시에는 5대조 할아버지 대까지 제사를 모셨다. 내가 우리 가계의 종손이라 고조부모까지 제사를 모셔야 하는 풍속 때문이다. 나에게는 제사 모시는 법도가 비록 벗어난 5대조 부모님 되시지만, 어머니께는 고조부모가 되시는 일이다. 그래서 제사 때는 5대 조부모님 축문과 지방도 작성하게 마련이다. 조상의 전처나 후처가 있는 분의 자손은 제사 때도 자기의 핏줄과 연관 없어도 제사를 모신다. 할아버지 한 분에 할머니는 여러 사람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우리 할아버지들은 첩을 두지도 않았고 어떤 이유의 상처로 부인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면 후처를 들인 일도 없었다. 5대 조부님은 5형제였으나 조부님은 3대 독자로 그렇게 많았던 재종숙들도 족보에만 보인다. 그 후대의 기록은 추가되지 않고 있다. 전쟁 통에 다 어디로 흩어진 일인지도 알 수 없다. 그 5형제 후손들이 다 살았더라면 현재 큰 마을을 이룰 수 있었던 일이다. 달랑 증조부님만 일찍 상처하고 두 아들이 있었으나 하나만 데리고 살아남았다. 나의 5대조 5형제 아래 자손은 조부님밖에 없는 외로운 후손으로 남은 결과다.
조부인 할아버지 동생도 있었으나 젖먹이 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키워낼 방법이 없었단다. 나에게는 조부님이 어린 동생의 입에 먹던 밥을 떠넣어 먹이면 오물오물 받아먹었다. 젖먹이라도 배가 고프니까 밥알을 받아먹었다고 한다. 이를 본 증조할아버지가 매우 성내며 꾸지람하셨다. 그러지 말고, 너나 먹어라. 인간 되지도 않을 것인데 너마저 못 살린다고 하셨단다. 동생은 형의 숟가락 밥을 잘 받아먹었는데 말이다. 조부님이 늘 그때 밥숟갈 받아먹던 죽은 동생 생각으로 마음이 너무 괴로워 날마다 울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나도 동생이 있었으나 불운에 죽었다고 한탄했다는 말이다. 동생이 젖과 밥이 없어 굶어 죽었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나는 어머니에게 들었다.
요즘 같으면 우유를 먹여서라도 키웠을 것인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증조부님은 후처를 두지 않고, 아들과 살면서 조부님을 키워서 우리 가문을 지켰다. 그래서 증조할아버지는 후처를 들이지 않아 우리 할아버지 계보에 후처는 없는 일이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보다 먼저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잠시 첩을 두었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족보나 호적에는 그런 기록이 전혀 없다. 우리 가문은 할아버지 한 분에 할머니 한 분만 족보와 호적부에 자랑스럽게 기록으로 남았다. 가문의 위대한 자랑이며 올바르고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온 내력이다.
입향하신 할아버지 이후 어렵게 이어온 우리 가문에 고조부 이하 3대 외아들로 이어지다가 할아버지가 아들 형제를 두었다. 그래서 비록 종손인 내가 외아들이지만, 사촌은 5명으로 외롭지가 않다. 나도 딸 넷과 아들 두 사람을 두었으니 이제 외로운 가문의 소리는 듣지 않아도 된다. 우리 가문에도 공인회계사와 목사 두 사람이 나왔고 손자 부부는 미국에서 현직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손자도 친손이 넷이고 외손이 7명이다. 누님 두 분도 며느리를 각각 행정 부이사관과 행정 사무관을 두었다. 우리 큰딸이 국군 간호장교 대위로 청와대 지구병원에 근무했다. 나중에 뉴질랜드 이민성 공무원으로 근무하게 된다.
우리 가문이 지켜온 "참되게 살자" 가훈의 기록으로 남 보기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오늘의 영광을 누림이다. 우리 손주들의 재능이 다기능 보유자로 보여서 앞으로 훌륭한 인물은 많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 11명의 손주가 잘 커 준다면 훌륭한 가문이란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가문의 전통이 후손에게 정신으로 이어받게 하여 교육적인 효과로 크게 발전할 수도 있을 일이다. 인적인 자원에서 정신 영향을 놓치지 않고 연결함으로 훌륭한 가훈 역할이 된다. 경주 최부자 가훈의 경우가 더욱 그런 교훈을 보인 일이다. 그래서 경주 최부자집 가훈은 널리 알려져 국민 교육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의 대참사에도 우리 가족이나 친척 혹은 친구들 아무도 피해자가 없었다, 당시 우리 가족 9명이 대구 시내에 살고 있을 때다. 어릴 때부터 항상 너그럽게 생각을 가지라는 어머니 교훈에서 배운 결과의 몫이란 생각이다. 할아버지 때부터 익혀온 정신적인 가족 습관이 가문의 내력으로 고스란히 전수되어 몸으로 익혀진 그 효력이다. 만물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사고 현장으로 향하는 발걸음도 방향을 바꾸게 한다. 원수도 용서하는 어머니 정성의 효험으로 느껴진다.
마치 숲속을 걸으면 나뭇가지의 적셔진 빗물로 온몸을 적셔 낭패를 당하지만, 허리를 굽혀 자세를 낮춰 결으면 고운 옷 버리지 않는 이치다. 꼿꼿하게 자랑스러운 기세의 위세가 아닌 항상 감사하고 베푸는 넉넉한 마음이 바로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어머니 교훈이다. 강하게 자라는 대나무도 절하듯 휘는 기능 때문에 무거운 눈의 무게 피해를 보지 않는다. 굳어진 소나무와 같이 자존심 세우다가는 눈 무게로 가지가 꺾이거나 나무 전체가 쓰러져 죽고 마는 일이다. 나의 어리석은 강한 주장도 남의 너그럽고 어진 생각에는 늘 꺾이기 마련이다,
역대 할아버지들이 남을 피로하게 아니하고 약한 여성의 눈에 눈물 흘리게 하는 일이 없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 일부일처제를 지켜온 철칙의 결과가 말한다. 후처나 첩실의 할머니가 없다는 생활교육이 바로 사람의 도리를 올바르게 한다. 언젠가 퇴근길에 만난 젊은 과부가 막차 버스로 오면서 즐거운 이야기 나누다가 그만 짐을 잊고 내린 적이 있다. 버스에서 내릴 때 그 젊은 과부는 짐을 가지고 내리라고 하지 않았다. 실수인지 고의였는지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마을 지나서 자기가 가지고 내려 전화로 내가 잊은 물건을 가지고 내렸으니 자전거 타고 와서 찾아가라 했다.
생각해 보니 공직자가 밤에 이웃 동네 젊은 과부댁에 간다는 일이 옳지 않다고 다음날 아내를 시켜 찾아오게 했다. 뒷날 친구에게서 들은 말이 절호의 기회를 포착했으나 그 기회가 자기 것이 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더란다. 이런 피난의 생각도 우리 조상 때부터 몸으로 익히게 한 정신교육의 생각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아쉬워한 여성에게는 미안하지만, 사람의 도리를 생활교육처럼 익혀온 습관에 품위유지를 생각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계속)
첫댓글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으려 애쓰고, 부부의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는 도덕성이 자연스레 몸에 배어 훗날 자손들이 잘 살고 있는 듯 합니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