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가운데로, 불 가운데로 지날 때
2024. 11. 3(주일낮예배) 이사야 43:1-3
여러분 인생은 성공하였는가? 여러분은 무엇을 성공이라고 생각하는가? 앤젤라 더크워스가 쓴 그릿(Grit) 이라는 책이 있다. 하버드대학을 수석졸업하고, 마샬장학재단의 후원으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컨설팅회사에서 고액연봉을 받으며 일하였는데, 그 일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뉴욕으로 가서 공립학교 수학교사로 일했다. 그때 앤젤라 더크워스는 IQ가 높은 아이들이 꼭 성적이 좋은 것은 아니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면서 그러면 더 좋은 성적을 가지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하는 질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한다. 그렇게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공부를 할 때 사관학교에 가서 어떤 생도가 중간에 포기할 것인가? 하는 것을 예측하려 하였다. 그리고 전국맞춤법대회에서 어떤 학생이 경쟁에서 이겨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예측하려 하였다. 또 초임교사 중에 어떤 선생님이 학생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끝까지 교사의 임무를 수행할 것인가?도 예측하는 실험을 하였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실험을 통하여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의 공통점을 발견하였다.
성공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었겠는가? 3주 전에 주남이가 집에 와서 이런 저런 대화를 하는 가운데 우리는 엄마 아빠에게 물려받은 것은 성실밖에 없다는 말을 하였다. 어떤 아이들은 체력을, 또 높은 IQ를, 또 다양한 재능을, 아니면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말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이런 것은 물려받지 못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정말 감사한 것은 앤젤라 더크워스가 성공한 사람의 공통점이 체력, 지능, 재능, 재물이 아니었다. 앤젤라 더크워스가 성공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난 공통점을 발견하였는데, 그것은 끈기, 인내, 근성으로 번역할 수 있는 Grit이었다. 그래서 앤젤라 더크워스는 성공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거나, 사람들이 부러워 하는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결국 끝까지 해 내는 것이다고 정의한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끝까지 해내는 성공의 삶을 살고 있는가? 오늘 성경 본문은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는 유다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말씀으로 입술은 연다. 그런데 유다백성들은 고통의 삶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알지 못하고, 또 우리의 송사를 듣지 않는 분이다(사 40:27)고 불평한다. 유다백성은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에도 그들은 위로를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유다백성을 향하여 하나님은 오늘 본문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유다백성에게 무슨 말씀하는지 오늘본문 이사야 43장 2절을 읽기 바란다.
(사 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이스라엘이 언제 물 가운데로 지났는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때였다. 애굽의 바로 왕이 600승거를 위시한 전 병력을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을 잡으러 왔다. 그때 홍해 앞에 장막을 치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 곳으로 인도하였느냐?는 불평과 원망을 털어놓았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여 주었다.
그들이 왜 이렇게 불평하고 있는가?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 앞에 홍해를 건널 수 있는 수만척의 배가 있었다면 그들을 불평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들은 홍해를 건널 수 있는 큰 다리가 있었다면 원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눈앞에 홍해를 건널 수 있는 아무런 길과 방법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두려워 떨며 불평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생각과 다르게 역사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고 걸어서 홍해를 건너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서 불가운데로 지나는 장면이 있다. 다니엘 3장을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두라평지에 금신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온갖 악기소리가 울려퍼질 때 그 금신상 앞에 절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 때 왜? 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다니엘 2장을 보면 느부갓네살왕이 꿈을 꾼다. 그런데 그 꿈의 내용과 의미를 알지 못했던 느부갓네살은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한 느부갓네살은 나라 안에 있는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들에게 그 꿈과 말하고, 해몽하라고 하지만, 아무도 꿈과 해몽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말하고, 또 해몽도 해 주었다.
혹시 다니엘이 기억나게 한 느부갓네살 왕의 꿈의 내용을 아는가?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왕에게 큰 신상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 신상은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쇠와 진흙이었는데,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그 발을 쳐서 부서뜨렸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이 꾼 꿈을 알려주고, 또 해몽도 해 준다. 그렇게 다니엘을 꿈의 내용과 해몽을 알려 주었을 때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에게 예물과 향품을 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다니엘 2장 47절을 읽기 바란다.
(사 42:47)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꿈을 알려주고 또 해몽한 다니엘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참된 왕이심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다니엘 3장에서 느부갓네살은 자신이 꿈을 통하여 본 신상을 만들었는데, 모든 것을 금으로 만든 것이다. 진흙과 놋으로 이루어진 발이 손대지 아니한 돌에 의하여 무너진 것을 알게 된 느부갓네살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 금신상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금신상에게 온 백성들에게 절하라고 한 것이다.
무슨 말인가? 지금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의 힘이 얼마나 강한가?를 온 천하에 드러내고 그 앞에 경배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런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그 명령을 거역하였다. 그래서 풀무를 7배나 더 넣은 뜨거운 불 속에 던져졌다. 그런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았다.
어떻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을 수 있었는가? 엄마에게 3종류의 아들이 있다고 한다. 첫번째 종류의 아들은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 아들이다. 그런데 이런 아들은 거의 없다. 두번째 아들은 착하지만 공부는 좀 못하는 아들이다. 공부는 좀 못하지만, 그래도 엄마 말도 잘듣고, 또 엄마 속마음도 알아서 엄마에게 큰 힘이 되는 아들이다. 그리고 세번째 아들은 지 아빠 닮은 아들이 있다.
그런데 하나님도 남편 닮았다고 속상한 분이 있는가? 하나님도 우리의 계획과 생각대로 일하지 않을 때가 많이 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마찬가지이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풀무불에 들어가기 전에 갑자기 큰 바람을 불어서 우상을 숭배한 사람들을 심판하지 않았다. 아니 폭우를 내려서 그 풀무불을 끄지도 않았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의 명령에 따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그 뜨거운 풀무에 들어가게 했는데, 그 왕의 눈에 결박되지 아니한 4사람이 불가운데 다니고 있었다. 그 중에 한 사람을 느부갓네살은 신의 아들과 같도다 고 말한다. 그 뜨거운 풀무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함께하여서 그들을 지키고 보호만 한 것이 아니라, 자유케 하여 주신 것이다.
놀랍지 않는가?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의 생각과 상식을 뛰어 넘어 우리를 구원하시고, 또 보호하여서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왜 하나님은 우리를 물 가운데로 지날 때 불가운데 지날 때 우리를 구원하여 주었는가? 1절을 보시기 바란다.
(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야곱을 창조하시고, 이스라엘을 지으신 하나님은 너는 내 것이다고 말씀하고 있다.
여러분은 내가 하나님의 것임을 믿고 있는가? 지난 10월 27일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에서 김양재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였다. 목사님은 45살에 의사였던 남편이 간암 말기로 어느날 쓰러졌다. 그리고 남편은 하루를 더 살고 죽었는데, 그 위급한 남편을 주일 아침에 목사님이 심방을 와서 남편 손을 잡고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때 남편은 자신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죄가 많아서 교회에 갈 수 없었다고 말한다. 80년대 산아제한 정책에 따라 무수히 많은 낙태수술을 한 남편은 죄책감을 고통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렇게 죄책감으로 살던 남편은 그날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고 임종하였다.
이렇게 남편을 45살의 젊은 나이에 보낸 김양재 목사님의 삶이 평탄해 보이는가?
학생의 가난한 때에 순종하여 서울대학을 갔어요. 무서운 시어머니의 때에 순종하여 어머니를 구원하셨어요. 매맞는 아내의 때에 복종하게 하여 남편을 구원하셨어요. 젊은 과부로서 엄마의 때에 순종하여 아이들을 구원받게 하셨지요. 여성 목사의 때에 순종하여 성도들의 구원을 이루어 가십니다. 지나고 보니 나의 모든 때를 아름답게 하여서 때마다 고난을 약재료로 사용하여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이제는 이 나라를 살리는 이 자리까지 서게 되었습니다.
김양재 목사님은 자신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모든 때가 다 은혜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어떻게 김양재 목사님이 자신의 삶을 모든 때가 은혜였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되었는가? 주인된 하나님이 김양재 목사님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하나님이 우리의 생각과 계획대로 역사하지 않아서 물가운데로, 불가운데로 지나는 고통의 시간은 있지만, 우리의 주인되신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고, 않으실 것이다. 그 하나님의 주인되심으로 은혜를 고백하고 찬양하는 복된 성도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