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상
중앙일보
입력 1973.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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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올 1만원권의 세종대왕상을 두고 당국에서는 뜻하지 않던 문제에 부닥치고 있다.
최근에 세종대왕기념 사업회에서 제시한 세종대왕상에는 턱수염이 없다. 그런데 1만원권의 도안에는 턱수염이 길게 달려 있다. 54세에 승하한 대왕에게 그런 수염이 있겠느냐는 반론이 나온 것이나.
도시 지폐에 인물상이 들어가게 된 까닭은 위조지폐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인물에는 주름살이 있고, 수염이 있고, 그것들은 모두 가는 선으로 묘출된다. 정교할수록 위조지폐를 만들기는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래서만 인물이 들어가게 된다면 어느 정도로 사실적이냐는 것은 그리 문제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지폐에 인물상을 넣는데는 또 하나의 까닭이 있다. 이왕에 인물을 넣을 바에야 온 국민이 존중하는 역사적 인물이어야 좋을 것이다. 이래서 어느 나라나 왕이 아니면 역사적인 지도자들을 넣는다. 자연 역사적인 고증에 의한 사실성이 문제되지 않을 수 없다.
분명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대왕상은 50세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요새 눈으로 봐서 그렇다. 옛 풍속으로는 그만한 나이에도 긴 수염을 기르는 일도 흔했다.
따지고 보면 수염만이 문제는 아닐 것이다. 오늘날 나돌고 있는 세종대왕상이 어느 하나 꼭 맞는다고 보기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사진이 없던 옛날에는 화가가 초상화를 그리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의 우리는 또 그 초상화에 의해서 영정들을 추정해 나가는 수밖에는 없다.
그러나 옛 화가들의 진실성이란 별로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 한대의 왕소군 얘기가 그 두드러진 본을 보여준다.
한나라 원제 때 개노의 요구를 따라 궁중의 여관 한 명을 몽고에 보내게 되었다. 원제는 하는 수 없이 가장 미운 여관을 골라내기로 했다.
당초에 궁녀들은 궁중에 들어가게 될 때 화가가 그 얼굴을 그려 놓도록 되어 있다. 모두 화가를 매수하여 되도록 아름답게 그리게 하였다. 그러나 왕소군은 회뢰하지 않은 탓으로 가장 못생긴 여자로 되어 버렸었다. 그녀가 몽고로 떠나게 된 것도 이런 탓이었다.
옛 화가가 왕을 그릴 때는 더욱 사실성이 무시되어 있었다.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왕후는 왕후답게, 장군은 장군답게 그려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더우기 왕·학자·장군의 「이미지」가 미리 마련되어 있었다. 화가들은 여기에 맞춰 나가며 그리면 됐던 것이다.
그러기에 세종대왕상은 임금답고, 율곡상은 선비답고, 이순신 장군은 장군답게 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요즘도 우리는 비슷한 고정관념만을 따르고 있는 듯 하다. 사실성은 거의 무시되고 있다. 우리는 그러니까 가짜「이미지」들만을 숭앙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