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수록 빠져드는 맛, 이게 사누키우동이다
최근 사누키우동 애호가들이 점차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탱글탱글한 면발의 식감, 소스와 토핑재료에 따라 다양하게 맛을 낼 수 있는 사누키우동 만의 특징이 미식가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 같은 먹을거리로서 매력 외에도 영화와 책으로 알려진 사누키우동의 감성적 이미지는 외국 문화를 소구하려는 계층에게도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번 3박 4일 취재기간동안 무려 35~40그릇의 우동을 먹었다. 어쩔 수 없이 과식은 했지만 탈이 난 적은 없었다. 이제 찬바람이 나고 가을로 접어들면 사누키우동을 찾는 미식가들의 발길이 그 어느 때보다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외식업계에서도 점차 관심을 보이고 있는 사누키우동에 대해 알아보고자 사누키우동의 본고장 일본 가가와현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만난 다양한 사누키우동 집들을 통해 사누키우동의 여러 얼굴을 보았다.
양질의 식재료 풍부한 가가와현, 탱탱 면발의 사누키우동 탄생
일본 시코쿠(四國) 다카마쓰(高松)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장으로 나가는 통로 천장에 “우동의 왕국 가가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한글 광고판이 눈에 들어왔다. 진짜 사누키우동의 본고장에 왔음이 실감났다. 역시 사누키우동은 서민의 대중음식이자 가가와현(香川縣)의 간판 음식이고 대표 관광 상품이었다.
전해져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8세기 초에 이 지방 출신 승려인 홍법대사가 당나라에서 밀가루와 함께 우동 만드는 기술을 익히고 귀국하여 처음 만들면서 가가와현에 비로소 우동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누키우동이 널리 퍼지고 본격적으로 우동 집이 늘어난 시기는 현재 성업 중인 점포들의 개점연대로 보아 아무래도 2차 대전 종전 이후로 보인다. 일본의 본토 혼슈 남쪽의 섬 시코쿠의 가가와현은 양질의 밀과 멸치와 소금이 풍부하고 물이 좋아 예전부터 훌륭한 우동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 있었다. 가가와현의 옛 지명이 ‘사누키(讚岐)’였는데 여기서 이름을 따 ‘사누키우동’으로 불린다.
씹을 때의 탱탱한 식감과 밀이 원래 지닌 향을 느끼는 게 사누키우동을 제대로 즐기는 포인트다. 그러다보니 다른 조미를 가급적 배제하고 파, 무즙, 겨자, 참깨 정도만 넣고 간장이나 소스에 찍어먹는다. 먹을 때는 다른 음식과는 달리 격식을 차리지 않고 우동그릇을 든 채 후루룩 소리를 내면서 먹는 점도 흥미롭다. 라면을 먹어도 최소한 김치 하나쯤 있어야 하는 우리네 밥상과는 달리 밑반찬이 전혀 나오지 않고 오직 달랑 우동 그릇 하나만 나오는 것도 한국인의 관점으로는 생소했다.
쯔유 부어 먹는 붓가케우동 등 종류 다양
첫째, 가케(かけ)우동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우동 형태이자 가장 선호하는 우동으로, 국물이 들어간 우동을 말한다. 국물을 만들 때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멸치국물과 가다랑어 국물로 나눌 수 있다. 두 번째는 자루(ざる)우동이다. ‘자루’라는 말은 일본어로 소쿠리라는 뜻이다. 삶은 우동을 찬물에 담갔다가 물기를 제거한 다음, 나무로 만든 소쿠리나 채반 위에 얹어서 튀김가루와 무 간 것, 실파 썬 것과 깨소금을 뿌리고 쯔유에 찍어서 먹는다. 먹는 방법이 소바를 닮았다.
이와 비슷한 것이 붓가케(ぶっかけ)우동. 붓가케우동은 소쿠리가 아닌 우동 그릇에 면을 넣고 쯔유를 부어서 간을 맞춰먹는다. 들어가는 양념은 자루우동과 같고 냉과 온 두 가지가 있다. 밀의 향기와 면발의 식감을 즐기는 사누키우동의 전형적인 형태로 가장 중독성이 강한 우동이라고 한다.
네 번째는 쇼유(しょうゆ)우동이다. 앞의 우동들과 달리 쯔유가 아닌 간장 즉, 쇼유를 넣어 먹는 점이 다르다. 처음에는 가정이나 제면소에서 생간장을 그대로 넣어 먹다가 간장의 풍미를 중시하는 사누키우동의 한 메뉴로 굳어졌다. 맛을 보고 조금씩 쇼유의 양을 늘려가면서 간을 조절해가며 먹는다. 다섯 번째는 가마아게(釜揚げ)우동이다. 솥에서 삶은 우동을 밀의 향이 우러난 삶은 물과 함께 그릇에 담아 장국에 찍어 먹는 음식으로 밀 자체의 풍미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좋아한다.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는 그다지 맞지 않지만 현지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높다. 여섯 번째는 가마타마(釜玉)우동이다. 가마아게우동과 같은 면에 생계란을 넣고 비벼서 먹는다. 쇼유와 함께 먹는 신선한 계란의 고소함을 즐길 수 있는 우동이다. 비린내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먹으면 의외로 맛있는 우동이다.
어느 유형의 우동을 선택하건 사누키우동은 면의 양, 면의 온도, 양념의 종류, 국물의 유무, 소스의 종류, 토핑의 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 조합이 가능하다. 따라서 최대한 자기 입맛에 맞춰 먹을 수 있는 유연성이 풍부한 음식이다. 섞이는 요소의 종류와 양에 따라 달라지는 우동의 표정을 읽어보는 것도 사누키우동을 먹는 재미다.
배식 시스템은 셀프 서비스에서 풀 서비스까지
사누키우동집은 대고객서비스 방식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일반점 유형. 일반점 유형은 보통의 식당처럼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주문을 받고 손님이 주문한 우동을 내오는 방식이다. 먹고 나서 음식 그릇을 그대로 두고 나와도 된다. 이런 유형의 점포는 메뉴 종류가 많은 것이 특징으로 대도시에 있는 식당에서 주로 채택하는 방식이다. 서비스가 좋은 만큼 대체로 우동 값도 비싸다. 우동 맛은 깔끔하지만 소울푸드로서의 사누키우동은 기대하기 어렵다.
두 번째는 셀프서비스 유형이다. 사누키우동집 가운데 가장 흔한 방식이다. 학생식당의 벨트 컨베이어처럼 식당에 들어서서 자신이 원하는 음식들을 하나씩 자기 식판에 올리고 계산을 한 뒤 자리에 와 앉아서 식사를 하고, 빈 그릇을 설거지 코너에 반납하고 나가는 방식이다. 대개 그 순서는 비슷하다.
셀프점에 들어가면 먼저 우동 사이즈(대, 중, 소)를 어떤 것으로 먹을 지를 결정하고 원하는 사이즈를 주문한다. 사누키우동은 어느 점포나 크기(玉)가 대 중 소(大 中 小), 세 가지가 있다. 크기에 따라 우동 값도 달라진다. 두 번째는 우동에 얹어먹을 토핑재료를 고른다. 각종 튀김, 오니기리, 오뎅 등 점포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세 번째는 계산대에서 음식 값을 낸다. 마지막으로 파와 겨자 국물 등 각자 기호에 따라 조미해서 먹는다. 점포마다 셀프의 범위나 방식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먼저 온 사람을 잘 살펴보고 따라하는 것이 좋다.
우동 집에 갈 때 주의할 것이 몇 가지 있다.
점포마다 영업시간이 천차만별이어서 가기 전에 미리 영업시간을 확인해보고 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날 판매할 물량이 소진되면 정해진 폐점시각보다 일찍 문을 닫기도 한다. 일부 신생업체를 빼고는 대부분 주차환경도 열악하다. 간혹 무료 토핑재가 나오는 경우 먹지도 않을 토핑재를 너무 많이 올리거나, 뒷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데도 식후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삼가야 한다. 대개 실내에서 금연을 하고 있으므로 흡연자는 미리 담배를 피고 들어가는 센스도 필요하다.
(1) 알수록 빠져드는 맛, 이게 사누키우동이다
가가와현 당국 국물 나오는 수도꼭지 설치 등 다양한 정책 지원
가가와현은 사누키우동의 관광 상품화를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펼치고 있다. 다카마쓰 공항 청사 2층 ‘하늘의 역 가가와’(空の駅, 관광특산물 홍보관)에 가면 특별한 수도꼭지가 있다. 밸브를 틀면 우동국물이 나온다. 하루에 양이 제한되어 있어 약수처럼 무한정 나오지는 않지만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한 컵씩 뜨거운 우동 국물을 맛볼 수 있다. 가가와현 관광협회가 설치한 것이다. 기발한 아이디어도 찬탄할 만하지만 가가와 현 측의 사누키우동에 대한 애정과 정책 의지가 읽혀진다.
가가와현은 홍보활동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사누키우동에 대한 품질개선과 소득증대에도 힘쓰고 있다. ‘사누키의 꿈 2000 인증점’ 제도가 그런 노력의 하나다. 면발을 좀 더 탄력 있고 쫄깃한 식감이 나게 만든 ‘사누키의 꿈’이라는 개량종 품종을 밀 농가에 보급하고 이 밀로 만든 밀가루를 100% 사용하는 점포를 ‘사누키의 꿈 2000 인증점’으로 지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그다지 활성화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현지의 우동 전문가에 따르면, 가가와의 밀가루가 품질이 좋지만 비싸기 때문에 업소에서 쓰기에는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대부분 업소에서는 가가와현의 밀가루와 호주 산 밀가루를 섞어서 사용한다고. 호주산이라고는 하지만 밀 품종의 스펙은 일본에서 미리 정한 것이어서 밀가루 품질은 시코쿠에서 나온 것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향토음식에서 세계음식으로, 사누키우동 힘의 원천은?
1999년 5월에 시코쿠와 히로시마를 연결하는 세 번째 다리가 완공되면서 시코쿠는 훨씬 일본 본토와 가까워졌다. 동시에 다른 나라와도 가까워졌다. 시코쿠로 가는 배 위에서 사누키우동을 먹으며 그리운 고향 땅으로 향했던 시코쿠 사람들의 모습은 사라졌다. 그러나 일본 시골구석의 소박한 향토음식이었던 사누키우동이 일본에서는 소울푸드로, 한국과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일종의 에스닉푸드로 더욱 가까워졌다. 이밖에 사누키우동이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음식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몇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음식 자체의 기본적인 맛과 질의 뛰어남이다. 사누키우동은 문화적 지리적 차이와 관계없이 누가 먹어봐도 맛있다고 느낄 수 있는 좋은 맛의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다. 둘째는 지역사회의 사누키우동 사랑에 대한 토양이 탄탄하다는 점이다. 우동을 만드는 사람, 그것을 먹는 이 지역 사람, 우동을 홍보하고 정책을 펴는 지자체, 모두 사누키우동에 대한 에너지가 충만하다. 셋째는 매체의 힘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이 여행한 지역을 글로 쓴 수필집 ‘하루키의 여행법’과 모토히로 카츠유키 감독의 영화 ‘우동’은 차츰 번져나가던 사누키우동 열풍에 불을 붙였다.
사누키우동 집, 기업화 경향 두드러져
폭발적으로 늘어난 사누키우동 수요와 함께 우동 집들도 그만큼 늘어났다. 사누키우동 집들은 점주의 경영철학과 그 집의 내력에 따라 점포의 성격과 지향점이 천차만별이다. 점포의 입지도 도시의 최고 요지에서부터 산속이나 들판 한가운데까지 다양하다. 취급하는 메뉴와 맛도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다. 규모나 서비스 방식도 다르고 조금만 자세히 보면 면을 만들어내는 방식까지 제각각이다.
그러나 거칠게 두 가지로 분류하면 가업형 점포와 기업형 점포로 나눌 수 있다. 가업형 점포는 점포 운영 구성원이 가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동 집을 시작한지 오래되었고 부모 자식이 대를 이어서 운영하며 전통적인 우동 맛을 유지하려는 관성과 보수성이 있다. 기업형 점포는 사누키우동을 하나의 상품차원으로 접근, 고객이 원하는 맛과 서비스를 제시하고 끊임없는 마케팅 활동을 통해 이윤창출을 극대화 하려는 점포다.
규모가 대체로 작은 가업형 점포는 인간적인 정과 푸근함을 느낄 수 있고 그 집만의 개성 있는 사누키우동의 맛을 볼 수 있다. 기업형 점포에서는 쾌적한 식당환경과 위생적이고 일정한 수준 이상의 사누키우동을 맛볼 수 있다. 대체로 관성에 의해 점포를 운영하는 가업형에 비해 수익증대라는 구체적인 사업목표가 있기 때문에 우동의 조리나 서비스 오퍼레이션이 경제적이고 합리적이며 표준화되어 있다. 관광객이나 중장년층이 가업형을 선호하는 반면 학생이나 젊은 층이 기업형을 선호하는 흐름이 감지된다. 차츰 기업형 점포가 늘어나면서 시장점유율도 점차 높아지는 추세도 엿보인다. 사누키면기계(주) 영업부 강습지도과 모리야 히사시언(守谷壽彦) 계장의 말은 향후 사누키우동의 흐름과 관련하여 시사하는바가 많다.
“앞으로는 사람 손보다 기계가 하는 부분이 더 늘어날 것입니다. 기계가 만든 반죽의 질이 수제반죽을 따라잡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위생이나 시간과 비용 문제가 반드시 대두될 것입니다. 고객들도 깨끗하고 위생적인 음식을 찾을 것이므로 앞으로 기계를 이용하는 생산방식이 대세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지에서 자가제면(自家製麵) 우동집을 운영하고 있는 다나카 히토미씨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우동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기계를 사용하는 것과, 제면과 조리 과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기계를 사용하는 것은 아주 다른 얘기’라고 한다.
사누키우동을 먹겠다는 사람은 계속 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수요를 감당하려면 어차피 기계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한 추세를 거스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엔지니어가 생산한 식품이 아니라 장인의 정성이 깃든 우동을 미래에도 계속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