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급식 운동이 학교를 넘어 전국화되는 과정에서 농민운동과 만나면서 성북구친환경급식센터 이빈파 센터장은 ‘학교급식이 교육문제라는 인식에서 농민문제’로 확대되었다고 한다. 1998년부터 15년 동안 학교급식운동으로 다져진 서울 토박이 이빈파 센터장은 농민운동 전문가이자 학교 현장에서 식량을 다루는 식량운동 야전사령관이었다. 7월 19일 성북구청 내 친환경급식지원센터에서 이빈파 센터장을 만났다.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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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빈파 성북구 친환경급식지원센터 | 관동 학운협과 앨범 가격 정상화 운동
1998년 아이가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삼성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학부형이 되고 학교 운영위원이 되었다. 관악·동작 학교운영위원협의회를 만들고 첫 사업으로 앨범 가격 정상화 운동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교장과 담당교사, 교육청 관료, 업체들이 서로 얽혀 비리의 온상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언론에 제보했더니 앨범 문제가 전국적인 이슈가 되었다. 이후 관동 학운협 주최로 앨범전시회가 3~4년 반복되면서 서울에서 남부, 서부 학운협이 창립되고 경남, 광명, 전북, 대구, 부산, 충남, 광주 등지에서 학운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학교 식중독 사건 역추적하다 급식 운동 시작
2002년 3월 아이가 5학년 때 식중독 사건이 일어나 급식이 중단됐다. 학운위가 교장과 협의를 했지만 교장은 방관했다. 식재료 공급 체계를 역추적했다. 학교-중간납품자-공장-생산자 순으로 조사했다. 이를 계기로 관동 학운협의 본격적인 학교급식 운동이 시작됐다.
이후 관동 학운협 활동 소식의 여파로 2002년 4월 27일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준비위원회’가 발족하고, 서울 월촌중학교에 대한민국 직영급식 1호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학교급식, 교육문제에서 농업문제로 확대
UR이 타결되고 WTO시대로 전환되면서 위기를 느낀 농민들이 전국을 돌면서 농업을 살리자고 호소한 일이 있었다. 당시 ‘우리쌀 지키기 우리 농업 회생 100인 100일 걷기’ 운동을 마친 이들이 토론회 참가를 제의해 왔다.
급식네트워크 홍보 차원에서 참가했다가 급식 문제와는 전혀 다른 경지에서 학교급식을 논하는 집단이 많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농민 쪽 관계자들도 급식네트워크라는 게 있는지 몰랐다면서 반가워했다. 이들은 “학부모들이 농업문제를 이야기 하면 상당한 파급 효과가 있을 것”이라면서 “준비위 딱지를 떼고 학교급식법 개정에 함께하자”고 제안해 왔다.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창립
2002년 11월 1일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가 창립됐다. 창립과 함께 본격적인 학교급식법 개정 운동에 돌입했다. 2003년 9월 23일 나주 신정훈 시장이 국내 최초로 학교급식 지원조례를 제정 선포하고, 10월 20일에는 전남도의회가 주민발의 조례를 공포했다.
이를 계기로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가 실무 중심이 되어 ‘학교급식법 개정과 조례제정을 위한 전국운동본부’결성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전남도와 나주의 조례를 지켜 내는 활동과 함께 전국적인 조례제정운동을 펼쳤다. 전국적으로 주민발의 방식의 조레제정운동이 들불처럼 확산돼 나갔다. 우리는 이를 ‘그물코 운동’이라 불렀다.
학교급식법 개정…다시 현장으로
2006년 6월 30일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가지원 내용이 삭제되고 우리농산물 허용 원칙이 빠졌지만 간사를 맡고 있던 지역구 의원을 통해 급식지원센터와 조례지원 항목을 추가하고 무상급식 범위를 넓히는 것과 직영 원칙을 강조하는 문구를 삽입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법 개정 후 제대로 실천하는 지역사례를 만들기 위해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2006년 8월 ‘친환경급식전국네트워크’를 창립하고 당곡중학교 운영위원이 되어 직영급식으로 전환시킨 뒤 나주시와 쌀 직거래를 시작했다.
삽시간에 소문이 퍼져 도봉구, 구로구, 강서구 등의 중학교들이 앞 다투어 직영으로 전환하고 쌀 공동구매에 나섰다. 서울에서 친환경급식 사례를 만들면서 농림부로부터 친환경 대상과 감사원으로부터 감사원장상을 받았다. 가문의 영광이었다.
관악에서 성북으로
2010년 6·2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김영배 성북구청장이 나를 초대했다. 김영배 구청장의 공약 1호가 친환경 무상급식이었다. 곧바로 6월 4일 성북구로 이사 하자마자 아줌마들 모임부터 만들었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와 함께 성북구 친환경 급식지원센터 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가 위원장을 하고 내가 부위원장을 맡았다. 센터를 만들기까지 10개월 동안 자원봉사를 했다. 조대엽 위원장, 김영배 구청장과 함께 공동으로 책을 써가며 급식지원센터 준비했다.
성북구친환경급식센터 설립
2011년 2월 23일 성북구친환경급식센터가 설립되고 센터장이 됐다. 구청장이 내 의견을 수용해 전국 최초로 교육지원과에 친환경무상급식팀을 만들고 교육지원담당관으로 승격시켰다. 구청장-부구청장-교육지원담당관이 무상급식을 직접 챙기고 있다.
월 1회 운영위원회 개최
센터장, 생협이사장, 민노당위원장, 식품전문가, 영양사, 정책전문가, 구청직원(급식 팀장) 등 민관거버넌스로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장은 센터장이, 간사는 급식팀 직원이 맡고 있다. 운영위 초기에는 주 2회씩 회의를 하면서 소위를 구성하고 사안별로 토론했다. 자료를 수집하고 만드느라 발품을 많이 팔았다. 지금은 월 1회 운영위원회를 개최한다. 모니터단도 1개 만들고, 60개 학교 영양사협의회도 만들었다. 학부모 수 백 명으로 급식소위원회도 구성했다. 대표자만 100명이다.
수요자 중심으로 운영한다
학교와 영양사와 아이들이 뭘 원하는지를 조사해서 급식과 김치, 수산물을 바꾸고 GMO를 배격하고 있다. 쌀값을 지원하고 격주로 과일을 추가하고 있다. 내년엔 매주 공급할 계획이다. 과일은 처음엔 돈으로 지원했는데, 지금은 산지직송을 통해 현물로 학교에 공급한다. 학교 간 김치 공동구매를 통해 타 지역보다 400~500원 싸게 구입하고 있다. 수산물도 공동구매 하면서 G2B(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보다 질은 높고 가격은 내렸다.
급식운동은 ‘포지티브 운동’
성북구에 처음 왔을 때 정부미를 먹고 있었다. 학부모 조직도 전혀 없었다. 커피와 밥을 사면서 아줌마들을 만났다. 이사를 온 이유다. 지역 주민이 아니면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은 주민 설문조사에서 친환경무상급식이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친환경무상급식에 대한 신뢰도도 1위다. 급식팀에 있는 공무원들이 4명이나 승진했다.
그리고 앞으로
센터를 중심으로 마을기업을 만들고 협동조합도 추진할 계획이다. 학교 생협도 조직중이다. 학부모들이 출자해 소도 1마리 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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