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지의 봄
월성과 첨성대 주변의 사적지는 꽃단지로 조성돼 4계절 꽃대궐이 된다.
봄철 장관을 이룬 유채꽃 단지.
월성과 첨성대 주변의 사적지는 꽃단지로 조성돼 4계절 꽃대궐이 된다.
봄철 장관을 이룬 유채꽃 단지.
경주 사적지의 4월은 꽃무덤이다.
황량한 벌판에 감나무 듬성듬성 서있는 터에 삿갓 몇 개 엎어둔 것 같았던 풍경이 봄과 함께 꽃단지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계절이 자연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빠르게 돌린다.
꽃피우고 푸르게 키워 다시 낙엽을 떨구고, 눈발 날리며 겨울잠으로 윤회시켜 생명을 불어 넣는다.
시간의 마술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신라시대 왕들이 거쳐했던 월성을 에워싸고 있는 언덕에는 4월이면 고목이 된 벚꽃들이 한창 꽃을 피워 올린다.
월성이 꽃대궐이 된다.
월성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계림에도 형형색색 화색이 창연하다.
화려한 날개를 퍼덕이며 시선을 끌었을 비단벌레 전기차가 첨성대를 가로질러 사적지를 누비고 다닌다.
오래된 시간들이 재생되는 역사현장을 지나며 관광객들은 탄성을 터뜨린다.
천년의 시간을 넘어 신라시대 인물들의 혼들이 후손들의 호명에 시시각각 부활한다.
경주시는 월성둔덕과 첨성대, 교촌마을, 동궁과 월지를 잇는 사적지에 야간에도 조명을 밝힌다.
신라시대의 영화가 불꺼지지 않고 이어지는듯한 환상을 보게 한다.
조명등으로 빛나는 벚꽃의 군무는 오히려 밤에 더욱 화려하다.
눈보다 흰 빛깔로 지상으로 하강하는 천사의 날개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실의 일상들이 어둠속으로 역사와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큰 무덤들이 즐비한 경주의 풍경을 두고 어떤이들은 죽음의 도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분군들이 불룩불룩하게 자라나 오랜 시간의 존재를 직시하게 하면서 오히려 삶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부각시켜 생동감이 넘치게 한다.
오랜 시간의 죽음이 무료한 일상들을 활성화시키는 기폭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봄을 맞아 꽃대궐로 장식되고 있는 신라왕궁의 터 월성에서 첨성대, 동궁과 월지, 고분군으로 이어지는 경주 동부사적지를 순회하면서 역사기행을 떠나본다.
◆신라왕궁의 꽃대궐
경주시가 신라 천년의 왕경을 복원정비하는 신라왕경복원정비사업을 대규모 국책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1조원의 사업비를 들여 신라왕궁 월성과 첨성대, 고분군, 동궁과 월지, 황룡사 등으로 이어지는 신라왕경을 조사하고 발굴해서 옛모습대로 복원하려는 것이다.
신라시대의 화려한 궁궐을 비롯한 세계4대도시로 손꼽혔던 서라벌의 실체를 재현해보려는 시도가 하나씩 결실을 맺고 있다.
월정교가 신라시대 다리의 옛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누각만 완성되면 궁궐에서 남천을 건너 남산으로 이어지던 통로가 복원된다.
신라천년의 대궐이 흙속에 묻혀있지만 월성을 에워싸고 있던 언덕이 화려한 벚꽃단지로 조성돼 꽃대궐을 장식하고 있다.
북쪽으로 이어졌던 주작대로는 유채꽃이 노란 바다를 이뤄 바람이 불면 노랗게 파랗게 파도가 일어나 오늘날의 세상과 역사 속 세상을 혼돈하게 한다.
경주시민과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으면서 역사의 한 장면을 포획해 정물화 시키면서 또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이어간다.
겨울이 오기까지 신라왕경은 꽃대궐이 된다.
4월 벚꽃이 화사하게 무대를 펼치고 이어 유채꽃이 노랗게 세상을 밝힌다.
벚꽃이 지는 설움을 느끼기도 전에 연꽃이 약한 꽃대들을 무더기로 피워 올려 다시 꽃대궐의 영화가 이어진다.
황하코스모스와 꽃무릇, 팬지 등의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 통일신라의 화려함을 재생시켜 나간다.
월성이 다시 꽃대궐로 화려한 영화를 이어가는 것이다.
꽃들이 화려하게 세상을 피워나가는 풍경은 백성들의 웃음소리가 왕궁의 영화를 보장하는 초석이 된다는 진실을 오늘까지 변하지 않는 율법으로, 특히나 선거철에 강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듯하다.
◆내물왕릉
신라 제17대 내물왕은 13대 미추왕에 이어 김씨의 두 번째 왕으로 김씨 세습을 이루는 단초를 마련했다.
356년부터 402년까지 46년간 재위에 있으면서 백성들을 위해 흉년에 세금을 면제하고 죄지은 이들을 사면하는 등의 선정을 베풀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백제 근초고왕이 세력을 넓히면서 침략해 오는 바람에 고구려에 원병을 청해 약한 신라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외세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외세에 의존하기 시작하면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까지 험난한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내물왕은 4촌이자 동서간인 실성왕을 고구려에 볼모로 보내 국가간 분쟁, 왕권다툼 혈전의 씨앗을 만들기도 했다.
내물왕의 아들인 눌지왕이 그의 장인인 실성왕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실성왕이 고구려에 볼모로 잡혀갔던 것에 대한 보복으로 내물왕의 두아들을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보내고, 내물왕의 큰아들 눌지왕을 죽음으로 내몰다 역으로 당한 것이기도 하다.
아픈 역사다.
내물왕릉은 월성의 서북쪽 100m 위치에 봉분을 마련하고 있다.
내물왕릉이라 단정은 하기 어렵지만 월성에서 계림으로 이어지는 고분군 사이에 첫 번째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내물왕릉을 비롯해 월성의 서북쪽으로 주인 이름을 알 수 없는 고분들이 무리지어 낮은 산들의 군락을 이루고 있다.
내물왕릉은 월성의 서북쪽으로 처음 나타나는 무덤이기도 하지만 무열왕의 딸이 거쳐했던 요석궁에서도 바로 연접한 곳의 무덤이기도 하다.
서방정토라는 의식에서 왕궁의 서쪽으로 왕릉이 조성되었을 것이라는 사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럴듯하기도 하다.
노동리와 노서리고분군에 이어 서악으로 이어지는 고분군이 모두 월성의 서쪽편으로 조성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고분의 주인이 누구인지 이름을 밝힐 수가 없어 오래된 고분들이 엉뚱한 이름표를 달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고 보면 왕릉을 찾는 역사기행에서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논제를 얻기도 한다.
◆왕릉벌초와 축제
경주에서 자란 사람들은 왕릉에서 잔디썰매, 눈썰매를 타본 추억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을 것 같다.
시내 곳곳에 산재한 고분들이 대부분 집터로 사용되고 있었던 것을 보면 삶과 죽음은 늘 이웃이었던 것 같다.
집터보다 크기도 했던 고분들이 귀한 사람의 무덤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면 함부로 올라가 썰매를 타는 것과 같은 놀이는 하지 않았을 터이다.
떵떵거리던 왕권이 죽음으로 높은 고분의 위엄을 떨치고 싶었지만 오랜 시간의 무게에 눌려 아이들의 썰매터로 전락한 것이다.
죽은자가 산자의 재물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보게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높았던 봉분이 허물어지고 평평해지면서 집터로 둔갑해 마당에 호박을 심다가 고분의 바닥에 내장되었던 금귀걸이와 금붙이들이 호미에 걸려나오기도 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일부 왕릉과 고분들의 높이가 낮은 곳에는 무덤 옆이지만 낮은 민가들이 들어서 마당이 되기도 하고 집터로 붕괴되기도 했던 것 같다.
무덤 사이로 집을 짓고 감나무를 심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무덤을 형성했던 흙더미는 살찐 토양이 되었다.
쉽게 고랑을 내어 밭을 갈고 보리를 심었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통일신라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관광자원화 등의 목적으로 고분을 발굴하고 주변환경을 정비하면서 고분이 제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경주시가 최근에 왕경복원정비사업을 서두르면서 민가는 고분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고분군들은 다시 고즈넉한 환경으로 무덤 속의 고요를 회복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요는 잠시다.
일상생활의 시끄러운 다툼에서 벗어날 뿐 꽃밭속의 음악회, 에밀레소리축제, 선덕여왕 축제 등등의 행사가 무덤속의 잠을 깨우고 있는 것이다.
경주시는 최근 왕릉벌초하는 일을 축제로 전환시켜 이벤트를 진행해 일반 국민들을 참가시키고 있다.
선조들의 죽음이 후손들의 삶의 수단이 되게 하고 있다.
전국에서 일반국민들이 왕릉 이발하는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2천여명에 이르는 국민들이 왕릉벌초에 참가해 대성황을 이루었다.
왕릉벌초를 하면서 주변에서 자리를 깔고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는 풍경은 이색적이었다.
왕릉벌초이벤트에 사진전까지 열려 고분군들은 여름철의 생각지 못한 고난을 겪었으리라. 역사가 오늘날 생활 속으로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비단벌레
신라시대에는 비단벌레가 많았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비단벌레 장식이 가구를 포함해 투구와 말안장, 갑옷 등등의 장식에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역사기행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귀족들을 위해 백성들이 부지런히 비단벌레를 잡아다 대령하고 장인들은 꼼꼼히 손질해 갑옷과 투구를 만들었으리라. 신라의 달밤을 비행하던 비단벌레는 죽어서 껍질을 남겼다.
수천년을 지나 다시 기계문명의 시대에 날개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천년 전에 죽어 생의 빛이 꺼진 비단벌레의 껍질은 천년을 지나 무덤 속에서 발굴되면서 다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더욱 반짝거리는 모습이 오래된 역사를 목소리 높여 증언하고 싶은 무엇이 있는 것 같다.
경주시는 비단벌레의 모습을 형상화시킨 전기자동차를 제조했다.
그들이 날개를 펼치고 웅웅거리며 날아다니던 왕궁과 첨성대, 동궁과 월지 사잇길로 새롭게 무늬옷을 입고 활보하고 있다.
비단벌레전기차 속 관광객들의 역사 이야기가 시끄럽게 들리는 것이 비단벌레의 속 불편한 심기노출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아이들과 어른, 관광객들은 비단벌레들이 우아하게 날아다니던 길을 꾸물거리는 비단벌레차를 타고 천천히 돌아볼 뿐이다.
비단벌레차를 운전하며 사적지 곳곳을 해설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짝을 부르던 비단벌레의 발신음으로 사적지에 울려 퍼지고 있다.
월성과 첨성대 사적지를 걸으며 하는 역사기행은 비단벌레의 화려한 의상처럼 비상을 꿈꾸게 한다.
첫댓글 꽃대궐 신라왕궁터 동부사적지........
겨울을 빼고는 말그대로 꽃대궐이 되는 역사문화사적지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