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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가家
1
내가 인형을 가지고 놀 때
기뻐하듯
아버지의 딸인 인형으로
남편의 아내 인형으로
그들을 기쁘게 하는
위안물 되도다
노라를 놓아라
최후로 순순하게
엄밀히 막아논
장벽에서
견고히 닫혔던
문을 열고
노라를 놓아주게
2
남편과 자식들에게 대한
의무같이
내게는 신성한 의무 있네
나를 사람으로 만드는
사명의 길로 밟아서
사람이 되고저
노라를 놓아라
최후로 순순하게
엄밀히 막아논
장벽에서
견고히 닫혔던
문을 열고
노라를 놓아주게
3
나는 안다 억제할 수 없는
내 마음에서
온통을 다 헐어 맛보이는
진정 사람을 제하고는
내 몸이 값없는 것을
내 이제 깨도다
노라를 놓아라
최후로 순순하게
엄밀히 막아논
장벽에서
견고히 닫혔던
문을 열고
노라를 놓아주게
4
아아 사랑하는 소녀들아
나를 보아
정성으로 몸을 바쳐다오
맑은 암흑 횡행橫行할지나
다른 날, 폭풍우 뒤에
사람은 너와 나
노라를 놓아라
최후로 순순하게
엄밀히 막아논
장벽에서
견고히 닫혔던
문을 열고
노라를 놓아주게
-《매일신보》(1921. 4. 3)
화가로 어머니로
-나의 10년간의 생활
어머니로서
큰딸, “어머니 머리 빗겨 주세요, 학교 늦겠어요.”
온순히 말한다.
큰놈, “어머니 이것봐, 발가락이 나왔어, 어서 다른 것 줘.”
어머니, 허둥지둥 머리를 빗기고 양말을 갈아준다.
“책 다 넣고 숙제 다 했지.”
큰놈, “네, 갔다 오겠습니다.”
상큼 상큼 우쭐우쭐 나간다.
둘째놈, “어머니 나는 혼자 유치원에 가기 싫어.”
어머니, “오냐 금례하고 같이 가거라. 금례야 애기 데리고 유치원에
갔다 오너라.”
아장아장 걸어 나가며 “있다가 능금 사주어 엄마”한다
셋째놈, “엄마 고기 주어”
어머니, “오냐 주지. 이것도 좀 먹어라, 시금치 나물.”
셋째놈, “나는 싫어.” 킹킹운다.
저녁때가 돌아왔다. 학교에서 세 아이가 돌아왔다. 뒤뚱대똥 소리가
나온다.
하도뽀뽀 하도뽀뽀(비둘기 구구구 비둘기 구구구)
뽀뽀뽀뽀뽀 나이데아소부(구구구 구구구 울면서 논다.)
춤을 추고 껑충 껑충 뛰고 짝짝 손을 치고 야단이다.
외교관 부인으로서
하인, “아씨 편지 왔습니다.”
아씨, “오냐, 이리다오.”
흰 서양봉투를 뜯고 본다. ‘oo전하가 내림 하셔서 영사 본관에서
연회가 있다 고 연회날 저녁이 되었다. 목욕을 하고, 면도를 하고,
머리를 지지고, 비단 치마에 비단 저고리를 입는다. 텁텁하던 꼴이 말쑥하게 되었다.
연회석상이다. 전하께 절을 하고 식탁에 앉아 잡담을 하며 원만히 끌어갔다.
하인, “아씨, 어느 분이 오셨습니다.”
명함을 가지고 들어온다.
아씨, “응접실로 모셔라.”
잠깐 체경을 보고 몸맵씨를 정리하고 나간다.
객, “이거 오래간만입니다.”
부인, “참, 오래간만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저까지 찾아주실 틈이 계셨어요. 이렇게 외지 생활을 하니 찾아 주시는 분이 더욱이 정다와요.”
객,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런데요, 제가 이번에 상해에 가는 길인데 중도까지 동행 좀 못해 주시겠습니까.”
부인, “글쎄요” 잠깐 생각하면서 그의 눈치를 보더니 “가 드리지요.”
객, “감사합니다. 그러면 곧 차려 주십쇼.”
부인은 그를 무사히 버내고 유쾌히 돌아왔다.
별안간 문이 열리더니
객, “여보, R부인 계시오.”
부인, “네, 누구십니까?”
어린애 젖먹이던 채로 안고 나간다.
부인, “이게 웬일이오! 전화도 없이.”
객, “그런데 큰일 났소.”
부인, “무엇이”
객, “삼동주 세필 사가지고 가다가 세를 내라는데 엄청나니, 자 어디봅시다. 영사 부인의 권한이 얼마나 있는가? 좀 모면하도록 못해 주시겠소?
부인, “나는 무슨 재주가 있나?”
태현히 서서 말하며 싱긋 웃는다.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고 그의 앞을 서서 인력거로 정거장을 향하였다. 마침 아는 세관 관리가 있어 꾹꾹
찍어준다. 그 후 그에게서는 반 놀림의 치하편지가 왔다.
이러한 가지각색 사건이 되풀이하기를 6년 동안 두고 하였다.
여자 화가로서
밤 새로 2시다. 남편이 연회에서 돌아왔다.
남편, “그저 안자고 있소?”
아내, “기뻐서 잠이 와야지, 그래 신문을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하지.”
남편, “나도 어찌 기쁜지. 오늘 연회석상에서도 이번에 당신이 ‘선전’
에 특선한 이야기로 한 판 벌어졌겠지? 공사는 나더러 한턱 하라고 하며 우스운 말을 자꾸 하겠지?”
아내, “그래, 당신은 무엇이라고 대답했소.”
남편, “그냥 웃었지. 그러고 남에게 존경받는 아내를 가진 자는 행복스럽다 했지.”
아내, “여보 한턱 하오. 애는 내가 스고 좋기는 당신만 좋지.”
남편, “왜?”
아내, “내가 그림을 잘 그리든지, 사생 여행을 하든지 하면 다 나를 칭찬해주지 않고 남편이 얼마나 관대헤서 그러냐고 하니 안그렇소?”
남편, “그러게 여자는 남자의 부속물이지.”
아내, “또 저런 아니꼬운 소리를 한다.”
R의 화도는 전문이란 것보다 이런저런 일한 여가의 부업이다. 걱정없는 생활에, 사이 좋은 부부에, 재미있는 자식들에 무엇이 그리우랴마는 그림을 그린 후의 쾌감이란 말할 수 없다. 그리하여 비단옷을 무명으로 입으며 화구를 사서 틈을 타서 그림을 그린 것이다.
이것이 자기 기분도 새롭게 할 뿐 아니라 때로는 가정 기분이 쾌활해진다.
구미 만유생활
나의 생활은 그림을 그릴 때 외에는 전혀 남을 위한 생활이었다.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꾹꾹 참으며 형식에 얽매어 산 것이다. 그러므로 구미 만유의 기회는 내게 씌운 모든 탈을 벗고 펄펄 놀고 싶은 것이었다. 나는 어린애가 되고, 처녀가 되고, 사람이 되고, 예술가가 되고자 한 것이다. 마음뿐 아니라 환경이 그리 만들고 사실이 그리 만들었다.
파리 뤽상부르 공원의 오후 4시경이다. 사람은 운집하여 든다. 나는 Y군과 동행하여 공원 벤치위에 앉았다. Y군은 옆에 있는 나를 꾹 찌르며,
Y, “여보, 저기 저 불란서 사람이 R씨를 보고 눈으로 윙크를 하오.”
R, “그럴때는 어떻게 하오?”
Y, “역시 눈을 꿈쩍하여 대답하면 고만이지.”
R, “그러고는?”
Y, “그러면 만일 마음에 들든지, 또 장난으로든지 인사를 하지.”
R, “아이고 망칙해라.”
Y, “처음은 망칙하지만 무어.”
R, “조선도 그렇게 될까?”
Y, “조선은 구라파에 비하여 3세기 가량 뒤졌으니까 3세기 후면 그렇게 되겠지요. 출입이 잦은 이 세상에 제가 무슨 수로 가만히 있을수 있나.”
R, “저것 보죠. 여자가 그대를 보고 눈짓을 하오.”
Y, “대답한번 해줄까? 눈짓이나 한번 해주면 계집애들은 좋아라고 하지.”
한편에서 음악소리가 들린다. 어린아이들이 조그마한 배를 못에 띄우고 좋아라하고 논다. 아이 어머니들은 레스를 짜고 앉았다. 평화를 품고 있는 여신상은 미소를 띄어, 오고 가고 오는 사람을 반겨한다.
독신생활의 금일
Y, “여보, 있소?” 껑충 뛰어 들어오며
R, “네 누구요? 들어오시오.”
Y, “이건 컴컴한 방속에서 무슨 궁상을 띄고 있어?”
R, “그러면 어떻게 하오? 그것이 본직이니.”
Y, “그런데 잘 되었는데, 역시 솜씨는 있어, 그래 이대로 살아갈 작정이요?”
R, “글세 이것저것 생각하는 것이 많아서 어떻게 되겠지.”
Y, “그래 애인이 생겼소?”
R, “다 귀찮아 집어 치웠소.”
Y, “왜?”
R, “시간 없고 돈 없는데 연애가 무엇이오?”
Y, “인제 다 늙었군”
R, “몸도 늙고 마음도 늙고.”
Y, “몸은 늙지만 마음이야 늙는법 어디 있나? 점점 더 젊어가지.”
R, “그건 그래. 오스카 와일드의 시에도 ‘몸이 늙는 것이 슬픈 것이 아니라 마음이 젊어가는 것이 슬프다’ 하였지.”
Y, “그런데 성(性)문제는 어떻게 하오?”
R, “쉬, 풍속문란이요.”
Y, “왜?”
R, “고만 둡시가. 환경의 지배를 받기 싫은 것이 내 고집이라는 것만 말해두지. 그럴 때마다 인생의 진면목을 보는 것 같애.”
나의 10년 생활 중에는 계급과 빈부와 귀천의 굴곡이 가로 내려 질리고 세로 흘러 나를 웃기고 혹 울리고, 즐겁게 또는 괴롭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억제케 하는 것은 오직 내게 깊이 뿌리 박혀진 예술심과 보리심이다.
* 중생무변서 원탁(중생 가이 없으니 헤아릴 수 있기 원합니다.)
* 번뇌무진 서원단(번뇌 다함 없으니 끊어 버릴 수 있기 원합니다.)
* 법문무량 서원탁(법문 한량 없으니 다 공부할 수 있기 원합니다.)
* 불도무상 서원성(불도 끝이 없으니 이룰 수 있기 원합니다.)
《신동아》(1933.1).
냇물
쫄쫄 흐르는 저 냇물
흐린 날은 푸르죽죽
맑은 날은 반짝반짝
캄캄한 밤 흑색같이
달밤엔 백색같이
비 오면 방울방울
눈 오면 녹여주고
바람 불면 무늬 지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춥든지 더웁든지
언제든지 쉬임없이
외롭게 흐르는 냇물
냇물! 냇물!
저렇게 흘러서
호湖 elh고 강 되고 해海 되면
흐리던 물 맑아지고
맑던 물 퍼래지고
퍼렇던 물 짜지고
(화홍문루상에서)
-《페허》2호(1921. 4)
사砂
야원野原 가운데 깔려 있어 값없는
모래가 되고 보면 줍는 사람도 없이
바람 불면 먼지 되고
비 오면 진흙 되고
인마人馬에게 밟히면서도
싫다고도 못하고 이 세상에 있어
이따금 저 천변에
포공영公浦英, 야국화野菊花, 메꽃, 꽃다지꽃
피었다가 스러지면 흔적도 없이
뉘라서 찾아오랴
뉘라서 밟아주랴
모래가 되면 값도 없이
-《페허》2호(1921. 4)-
과연 내 생활 중에서
그림을 제해 놓으면
실로 살풍경이다.
사랑에 목마를 때 정을 느낄 수도 있고,
친구가 그리울 때 말벗도 되고,
귀찮을 때 즐거움도 되고,
괴로울 때 위안이 되는 것은
오직 이 그림이다.
내가 그림이요
그림이 내가 되어
그림과 나를 따로따로 생각할 수 없는
경우에 있는 것이다.
(1926.5.20.조선일보)
소설 경희 중-
경희도 사람이다
그 다음에는 여자다.
그럼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또 조선 사회의 여자보다 먼저
우주 안 전 인류의 여성이다.
이철원 김 부인의 딸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딸이다. 여하튼 두말할 것도 없이 사람의 형상이다. 그 형상은 잠깐 들씌운 가죽뿐 아니라 내장의 구조도 확실히 금수가 아니라 사람이다.
오냐, 사람이다.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험한 길을 찾지 않으면 누구더러 찾으라하리! 산정에 올라서서 내려다 보는것도 사람이 할 것이다.
오냐, 이 팔은 무엇 하자는 팔이고 이 다리는 어디 쓰자는 다리냐?
경희는 두 팔을 번쩍 들었다. 두 다리로 껑충 뛰었다. 빤빤한 햇빛이 스르르 누그러진다. 남치마빛 같은 하늘빛이 유연히 떠오른 검은 구름에 가리운다. 남풍이 곱게 살살불어 들어온다. 그 바람에 화분과 향기가 싸여 들어온다. 눈앞에 번개가 번쩍번쩍 하고 어깨 위로 우레 소리가 우루루한다. 조금 있으면 여름 소나기가 쏟아질터이다. 경희의 정신은 황홀하다.
경희의 키는 별안간 엿 늘어지듯이 부쩍 늘어진 것 같다. 그리고 목은 전 얼굴을 가리우는 것 같다. 그래도 푹 엎드리어 합장으로 기도를 올린다.
하나님! 하나님의 딸이 여기 있습니다.
아버지! 내 생명은 많은 축복을 가졌습니다.
보십쇼!
내 눈과 내귀는 이렇게 활동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내게 무한한 광영과 힘을 내려주십쇼!
내게 있는 힘을 다하여 일하오리다.
상을 주시든지 벌을 내리시든지 마음대로 부리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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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우스님... 덕분에 소중한 ,,,글 ~ 마음에 잘 담아 감니다,,